19명이 사망과 실종으로 추정, 그리고 아직 집계되지 못한 부상자들만 다수다. 짧은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했으며, 부상자들의 전투 후유증도 굉장히 짙어 보였다. 작전이 끝나기도 전에 했던 빠른 후퇴를 생각해 본다면, 이 정도 사상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바쁜 의료진과 뒤늦게 찾아온 지원 병력을 이용해 정문에 쓰러져 있는 부상자들을 전부 병원 안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나마 정신을 붙잡고 있는 한 부상자에게 따뜻한 물과 담요를 내주며 전투의 전말을 물어보았다.

따뜻한 물을 겨우겨우 삼키는 부상자는 무언가를 걱정하는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망설임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꼭 비밀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해 줬다. 그러자 조금 앳돼 보이는 전투조원은 말을 더듬어 가며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에덴의 전투조는 온실 속 화초였다. 또한, 그 연약함에 독을 더하는 지독한 책상물림과 이기심은 더 큰 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김윤식은 말만 전투조 조장이었지 지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아예 없었고, 아주 간단한 체력훈련과 얼치기식 지휘로 싸움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상대로 참혹한 패배.

살인과 싸움에 능숙한 부랑자들은 전투조 대원들을 손쉽게 살해했지만, 싸움경험이 없다시피 한 전투조 대원들은 질 좋은 무기와 장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부랑자 하나 쉽게 죽이지 못했다. 그렇다고 숫자라도 많았나? 아니, 그저 많은 늑대들 앞에 놓인 양 떼들일 뿐이었다.

전투 시작과 동시에 대형은 붕괴하고, 중간에 난입한 괴물 놈들로 인해 지휘체계조차 무너진다. 곧이어 김윤식과 일부 전투조 간부들의 빠른 도주는 피해를 확산시켰고, 전투조 대원 다수는 후퇴 명령조차 듣지 못한 채 그곳에 고립되었다고 한다. 결국, 전투조는 우리가 대형마트를 빠져나옴과 동시에 부상자만을 간신히 챙기고 에덴으로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무능한 상관과 책임감 없는 중간 간부들이 만든 패착. 권력과 실적에 눈이 먼 일부 사람들 때문에 이런 심각한 피해가 생기고 말았다. 어린 전투조 대원은 끝내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그 공포와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기에 나는 그를 병실로 인도하고 모든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난 손에 흠뻑 묻은 피를 천으로 대충 닦아 내며 숨을 훅 내뱉었다. 온몸이 녹초가 된 상태로 도착했지만, 전후처리까지 도맡아 하느라 한숨 돌릴 겨를이 없었다. 난 모든 조치가 끝났다고 판단한 순간 피와 붕대들로 어지러운 병원 복도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리고 내 옆에 노인은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단체장이 그냥 두지는 않을 거다.’

‘그렇겠죠.’

이번 일은 나의 작전권 포기가 없었다면 실행되지 않았을 작전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김윤식과 전투조는 너무나 무능했고, 어쩌면 에덴의 주민이라 할 수 있는 평대원들의 희생을 불러 왔다. 이번 일을 통해 그간 김윤식을 안 좋게 보고 있던 단체장이 절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김윤식의 징계가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단체장의 칼날이 과연 김윤식의 정치적 생명을 끝낼지, 혹은 김윤식의 생명 자체를 끝낼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저 이 살얼음 같은 에덴의 분위기가 김윤식의 끝이 절대 좋지 않을 것이란 것만 말해 주고 있었다.

물론 나와 노인이었다면 그대로 놈의 목숨 줄을 끊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명의 잔재를 간직하고 있는 에덴은 인간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법규와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작전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그를 죽이게 된다면, 그 여파는 예상치도 못한 변수를 만들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가 과연 어떤 대처를 취해야 해야 하는가였다.

난 찬바람에 메마르고 찢어진 입술을 혀로 핥아내었다. 눈앞에 있는 적은 우리에게 잠재적인 위협을 가한다. 하지만 그 적에게 묶여 있는 목줄이 상대에게 혹은 우리에게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명분을 주고 있었다. 물자니 뒤가 무섭고, 안 물자니 앞이 무서운 상황. 난 한참을 그렇게 앉아 천천히 가라앉는 황혼을 바라보았다.

‘동윤아, 혹시 대검 남은 거 있냐?’

대검? 마치 담배 연기를 내뱉듯 입김을 연신 내뿜던 노인이 나에게 천천히 손을 내민다. 아, 대형마트에서 끝내주는 투척술을 보여주던 노인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마 그곳에서 가지고 갔던 대검을 모두 사용한 모양이다. 난 내 허리춤에 꽂혀 있는 대검을 빼내 노인에게 내밀었고, 노인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대검을 받아들었다. 꼭 악동 같은 미소가 마음에 걸렸다.

‘형님! 이것 좀 드세요!’

그 순간 저 복도 끝에서 활발한 용팔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한창 바쁘게 움직이던 일행들이 지친 얼굴을 하고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들의 손에는 꽤 먹음직스러운 주먹밥이 한 덩이씩 들려 있었다.

생각해 보니 한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었다. 그 때문일까?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주먹밥에 저절로 시선이 갔다. 나는 용팔이가 내미는 주먹밥을 받아들고 노인과 반반씩 나눠 먹었다. 짭짤하고 고소한 게……. 꽤 익숙한 맛이다.

‘혹시, 수련 씨가 해 줬어?’

그러자 용팔이는 허겁지겁 주먹밥을 먹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입에 밥풀을 잔뜩 묻히고 먹어 대는 꼴이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 시선을 돌려보자 이미 다른 일행들도 허겁지겁 주먹밥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주먹밥을 더 달라는 두식이한테서 도망 다니며 밥을 먹던 용팔이는 입안에 남아 있는 밥알을 마저 삼키며 나에게 말했다.

‘우리가 저녁 시간에 못갈 것 같다고 말하니까, 여기까지 가지고 와 줬어요.’

난 가만히 주먹밥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상념에 젖어 있었다. 그러다 두식이가 내 주먹밥에 눈독을 들이기에 황급히 입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밥알을 입안에 굴리며 이곳까지 허겁지겁 달려왔을 그녀의 얼굴을 상상해 보았다. 왔으면 얼굴이라도 보고 가지. 난 괜히 콧물을 삼키며 손에 묻은 참기름을 빨아먹었다.

‘동윤 씨!’

용팔이에게 물을 건네받아 마시는 중에 저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무를 끝마치고 들어오면 항상 듣는 익숙한 목소리였기에 난 고개를 돌리지 않으며 물을 마저 마셨다. 그리고 발걸음이 지척에 왔을 때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또 회의죠?’

은테 안경이 바쁜 전후처리를 마치고 우리를 찾아온 모양이었다. 그는 무척이나 바쁜 듯 이 추운 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를 보자 구석에서 야금야금 주먹밥을 먹고 있던 노인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밥풀을 튀기며 역정을 냈다.

‘좀 쉬자 이놈들아!’

나도 동감하는 바다. 우리 일행들이 이건 좀 아니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은테 안경은 유난히 당황스러운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 회의냐는 내 질문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을 나타냈다. 은테 안경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듯 비장한 얼굴로 우리에게 말했다.

‘징계위원회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일행들은 조용해졌다. 노인은 말없이 주먹밥을 입안에 욱여넣었고, 과거의 일을 잘 모르는 강 형사는 그냥 일행들의 짐을 대신 챙겨 주었다. 그리고 김혜정은 코를 벌렁거리며 콧김을 훅훅 내뱉는 게 딱 봐도 흥분으로 가득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고, 추위로 딱딱하게 굳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긴장감을 털어내었다.

에덴으로 처음 들어오던 날이 생각났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고생과 역경으로 얼룩진 상황 때문인지 굉장히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수 없게 웃고 있던 김윤식의 모습을 드디어 청산하고, 우리들의 온전한 둥지를 만들 시간이 왔다. 나는 가져 왔던 장비들을 다시 챙기며 무장했고, 내 정신 또한 강하게 무장했다.

* * *

징계위원회 시작까지 대략 한 시간 정도가 남았다. 우리는 그동안 위원회에서 증언할 말을 정리하고, 김윤식의 반응에 대해 예상을 해 보기로 했다. 우리를 배려한 은테 안경은 일부로 길을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아니, 사실상 은테 안경도 우리 편이었고, 그도 자신이 아는 바를 모두 말해 주며 우리 일행들의 증언 준비를 도와주었다.

‘분위기는 좀 어때?’

노인이 은테 안경에게 물었다. 그러자 은테 안경은 표정을 심각하게 구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심각한 표정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에덴이 처한 환경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미 소문이 다 나서 주민들 분위기도 좋지 않아요. 단체장님이랑 새로 들어온 간부들은 당장 쳐낼 분위기 같은데……, 또 기존 간부들이 반대하는지라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미 에덴의 지도부는 단체장과 신입 간부, 그리고 구 간부들의 대결 구도가 만들어져 있었다. 에덴이 설립될 때부터 같이 있었다고 하는 구 간부들의 세력은 절대 작지 않았으며, 우리를 이용해 단숨에 떠오른 단체장의 영향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말 그대로 비등비등한 상황, 분명 김윤식이 잘못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된 징계를 내리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릴 부른 거죠.’

내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린 말이 정답이었다. 일행들은 전부 고개를 끄덕였고, 은테 안경은 정말 미안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단체장의 수족인 은테 안경에게 있어 우리의 원조는 꼭 필요한 상황이었고, 세력 구도를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그렇기에 우리가 쉴 틈도 주지 못하고 이렇게 호출을 한 것이겠지. 골머리가 아픈 정치싸움은 딱 질색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이야기가 달랐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저 멀리 중앙 건물이 보였고, 거리를 걷는 노인이 조용히 읊조렸다. 그래, 이것이 마지막 기회다. 여태까지 칼과 총으로 적들을 죽였다면, 이제는 그간의 실적과 혀로 사람을 죽일 차례였다.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나는 항상 불안요소를 뒤에 두고 밖을 나가야 했다. 둥지에 내 알과 새끼들을 두고 가는 이상, 그런 일은 절대로 벌어져서는 안 됐다.

일행들은 꼭 임무를 나가기 전인 사람들처럼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 날선 얼굴들은 당장이라도 대검을 내지를 듯한 칼날 같았고,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노련함을 풍겼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길을 지나 계단을 오르는 와중에도 내 등은 너무나 든든했다. 곧이어 회의실 문을 열자 한창 위원회가 시작되었는지 사방에서 고성이 울려 퍼졌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19명이 죽었어요, 19명!’

‘아니, 임무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직위를 박탈한다면 누가 일을 하려고 하겠어요?!’

징계위원회가 시작된 회의장은 개판 오 분 전이었다. 신입 간부들과 구 간부들은 오늘 결판을 보겠다는 듯 서로에게 삿대질과 함께 고함을 내질렀으며, 그 가운데에선 단체장이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독설을 내뱉으며 끝나지 않는 개싸움을 벌이는 지금, 그 상황은 우리가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쾅!

분명 일부러 그랬다. 은테 안경은 우리가 왔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기라도 하듯 있는 힘껏 힘을 줘 회의장 문을 열어 버렸다. 벽과 문이 부딪히는 소리는 크게 울려 퍼졌으며, 우리는 의도치 않게 남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한순간 회의장에는 침묵이 감돌았고, 모두가 그 자세 그대로 멈춰 선두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후.

내 등에는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다. 그런 나를 노인이 힘내라는 듯 천천히 밀어주었고, 그 믿음을 받은 나는 등을 곧게 피며 어깨를 당당하게 열었다. 곧바로 나는 일행들과 함께 거침없이 걸어 한가운데 마련된 의자를 향해 다가갔다. 침묵이 감도는 회의장에는 오직 우리들이 내는 발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오! 젊은 친구!’

저 사람은 여기 왜 있어? 나를 부르는 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참관석으로 보이는 자리에 박대박과 그의 무리들 몇몇이 앉아 있었다. 한참 지루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던 박대박은 내가 모습을 나타내자 굉장히 반가워 보이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단체장과 할 이야기가 있었다고 했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어떻게 잘 된 모양이다. 난 그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내 자리에 털썩 앉았다.

내가 회의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분위기는 이상하게 바뀌고 있었다. 표정이 어둡던 단체장과 신입 간부들은 마치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다는 듯 기세등등해졌고, 한쪽에서 얼굴을 붉히던 김윤식과 구 간부들은 이를 갈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참 뻔뻔하다. 자기 아들뻘 되는 대원들이 그렇게 죽어 나갔는데, 양심의 가책조차 못 느끼는 모양이었다.

난 마른 입술을 핥으며 차갑게 타오르는 가슴을 식혔다. 마음 같아선 총을 뽑아다가 놈의 머리를 날려 버리고 싶었다. 왜 혼자 살아왔냐고, 그들을 버리고 왜 혼자 도망 왔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직 혀와 머리로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차갑게. 난 나를 매섭게 노려보는 그들을 애써 무시하며 입을 열 준비를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머리가 뜨거운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윤식아, 눈알 돌려라. 후벼 파기 전에.’

노인은 자신들을 노려보는 그들을 향해 독설을 내뱉었고, 김혜정과 용팔이는 기다렸다는 중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내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