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born as a Son of Villain

< -- A tiny, misplaced eight-year-old-->.

짧은 설명이었다. 길게 끌 것도 없었다. 그 짧은 설명의 중간부터 표정이 굳어 있던 린다는 설명이 끝난 지금도 표정을 펴지 않았다.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 페이가 린다를 불렀다.

“저기, 린다?”

“최근 이상해지신 것도, 요즘 복통에 시달리시는 것도, 주인님을 맨날 못살게 구시는 것도, 전부 그것 때문이었군요.”

“그, 그렇지.”

린다는 무서운 표정으로 페이에게 다가와, 그를 껴안았다.

“그런 거였다면 진작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말한다고 현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아뇨, 달라졌을 거예요. 제가 도와드렸을 테니까요.”

꽉 안겨 있었기에 페이는 린다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 목소리가 물기에 젖어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다행이다.’

도박은 나쁘지 않게 성공한 듯하다.

“도와줄 거야?”

“물론이죠. 저를 뭘로 보시고. 저는 도련님의 보모라고요.”

“엄마가 아들을 꼬시기도 하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뭐 어때요. 피도 안 이어졌는데!”

린다는 린다였다.

“내 감동 돌려내.”

조금만 장난쳐도 이 모양이다. 이 철밥통성애자를 구원할 수는 없는가. 도움을 받기 전에 우선 린다를 도와야하는 건 아닐까.......

“잘 풀려서 다행이네.”

“그래서 도련님. 이 빚쟁이는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건가요? 이참에 해고하고 저와 함께 대책을 짜도록 하죠. 둘만의 공간에서 말이에요.”

“누가 빚쟁이야, 누가! 이제야 떳떳하게 말하겠는데! 그거 전부 가짜 서류라고! 위대한 잠룡 용가의 장남을 뭘로 보고!”

“잠룡 용가? 처음 듣는데요. 그건 어디 붙어 있는 가문인가요? 도련님, 저런 근본도 모르는 사람은 역시 멀리하는 게 좋겠어요.”

잠룡 용가. 아는 사람이 극히 적은 신비에 싸인 가문이다.

“제길! 숨기를 택한 선조를 원망할 날이 올 줄이야! 검은 형제단! 그놈들과 우리가 같은 뿌리라 이거야. 이제 좀 우리 가문의 위대함을 알겠지?”

이미 전부 말해버린 뒤라 가문의 정체를 거리낄 것도 없었다. 용진운은 그것보다 저 메이드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더 열 받았다.

“장난치는 사람은 죽인다고 했으면서 황제도 못 죽여 잠적한 그 암살단이요?”

“으득. 과연, 도련님이 누구에게 교육받았는지 확실히 알겠어.”

사람 복장을 뒤집어 곱창으로 구워버리는 저 솜씨. 검은 형제단에서 나온 사람을 상대하던 페이와 똑같았다. 용진운은 피보다 진한 교육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진짜 대화를 나눠보죠. 그래서 당신은 어쩔 거죠? 믿을만한 사람이라곤 도저히 생각 안 되는데요.”

“그건 내가 보장할게.”

“도련님의 천리안은 불안정하다면서요. 그런 천리안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한가요? 사람을 전적으로 믿을 만큼?”

괜히 페이의 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듯, 린다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페이는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말했잖아. 몇 년씩이나 사용해왔다고. 불안정한 만큼 많이 봤지. 용진운은 믿을만한 몇 안 되는 사람이야.”

“도련님이 그렇게 말하신다면야.......”

린다는 찝찝한 얼굴을 하면서도 한발 물러나 주었다. 페이가 저토록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일은 드물었다. 굳이 꼽자면, 재상님 괴롭히기를 할 때?

“상의할 사람이 늘어서 좋겠어, 도련님. 안 그래?”

“상의할 사람이 는다고 고민이 해결되면 세상 모든 사람하고 이 고민을 공유하고 싶지만...... 행동반경이 늘어난 건 다행이긴 해.”

린다를 끌어들였으니 눈치 볼 사람이 줄었다. 확실히 좀 더 활발하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봤자 마을에 자주 나간다든지 가정교육을 더 많이 빼먹는 것 정도다.

‘후우. 빨리 커야겠어.’

나이를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더 늘어나리라. 마음 같아서는 바로 어른이 되어서 곳곳에 숨어 있는 기연과 보물들을 찾아 먹고 싶었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했다.

“가정교사가 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도련님.”

업히라고 등을 내주는 린다에게 올라타고, 페이가 수련장을 떠났다. 페이의 등에 대고 용진운이 무시할 수 없는 말을 꺼냈다.

“아, 도련님. 전에 그 대답을 들으러 오늘 찾아갈 거야.”

“그런 건 빨리 말해!”

가장 중요한 걸 잊어먹을 뻔하다니! 페이가 용진운에게 꽥 소리 질렀다. 믿을 만하다는 건 취소. 저건 못 믿을 놈이다.

***

페이는 누군가 자신의 뺨을 때리는 감촉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페이는 침대 옆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벨.”

-이제 완전히 조명 취급이야.

뾰로통한 벨은 그러면서도 순순히 페이의 바람대로 작은 불을 피워주었다. 침대 옆에 용진운과 검은 형제단의 남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두 명이 함께 올 줄은 나도 몰랐는데."

“제법 큰 사안이라 나름대로 조율이 필요했거든. 우리 가문 어르신들하고 저쪽 높으신 분들끼리 시끄럽게 한바탕했지.”

용진운이 평소와 같은 태도로, 능청을 부렸다.

“그래서, 좋은 결과들 들고 오셨나?”

“그건 네 대답에 따라 다르다.”

남자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조율이 되었다는 건 사실인지 저번처럼 살기를 뿜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남자의 얼굴을 찬찬히 살필 수 있을 정도로 페이는 여유로웠다.

‘무표정하긴 해도 특색 있는 얼굴은 아니네.’

그 무표정한 얼굴과 딱딱한 어조가 남자를 가까이 가기 힘든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너는 검은 형제단이 상실한 비전이 있는 장소를 안다. 맞나?”

“맞아.”

“그리고 잠룡 용가의 비전도.”

“그래.”

“그 두 개는 같은 장소에 있는 건가?”

“정답. 둘은 싸워서 동귀어진했어. 서로 죽은 건 아니고. 비경을 빠져나올 힘을 잃어서 그 안에 갇혀 죽었다는 게 정확하지.”

그런 뉘앙스를 풀풀 풍겼으니 정보의 전문가들이 모른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남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원하는 게 뭐지?”

“그 전에 조건이라는 게 뭐였는데? 내가 두 개가 다른 장소에 있다고 했다면 어쩔 거였어?”

“두 집단은 개별행동으로 도련님의 요구에 응하기로 했지.”

용진운이 끼어들었다.

“시조가 같다지만 분리되고 워낙 오래됐잖아? 가는 길도 너무 다르고. 높으신 영감님들끼리 합의한 결과. 두 비전이 다른 장소에 있다면 각각 거래하기로 했어.”

“같으면?”

“어쩌겠어. 힘을 합쳐야지. 비전이 욕심나는 건 양쪽 다 같지만, 서로 싸우면 남는 게 없기도 하니까. 또 비전을 둘 다 얻으면 우리 모두가 좋잖아? 그밖에 이것저것 거래가 있었지만 말이야.”

고개를 저으며 용진운이 말했다.

“태도가 아니꼽지만, 저 남자의 말대로다. 서로 적대하는 조직도 아닌 이상, 불필요하게 피를 흘릴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의적이다.”

자신을 의적이라 밝히는 남자의 말에서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검은 피부의 형제, 밀레스 사가의 설명에 따르면 둘이 단법을 익히고, 은신과 암살을 익힌 건 인종차별 때문이었다 하는데 그럼에도 남긴 유산은 이토록 훌륭하니 간접적으로나마 두 형제의 됨됨이를 알 수 있었다.

책으로 읽은 것과 직접 본 것은 다르니 페이의 감회도 새로웠다. 머리 빠지는 일상에서 찾은 작은 만족감이라고나 할까?

“실전된 무술서를 요구했으면서 잘도 말하는데.”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찌릿, 용진운을 노려봤다. 이 두 사람은 아무래도 궁합이 나쁜 듯했다. 아니, 잘도 싸우니 사이가 좋은가? 악우 정도로 해두면 될 듯했다. 페이가 짝, 손뼉을 쳤다.

“싸움은 거기까지. 그럼 세부 사항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지. 내가 말한 비전은 아까 말했던 대로 비경 안에 있어. 비경의 정확한 위치도. 그 안에 있는 비전의 위치도 모두 나만이 알고 있지.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나를 도우면 비경에 데려다줄게. 간단한 조건이지?”

“기간은 없는 건가?”

용진운을 째려보던 남자의 시선이 페이를 향했다. 시선에 살기가 담기니 피부가 따끔따끔 아렸다. 페이는 침착했다. 하도 도박을 많이 하다 보니 기세에 노출되는 것도 익숙해졌다. 이런 것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는데, 후우.......

“내가 비경에서 비전을 꺼내올 때까지.”

“그런 불명확한 말을 어떻게 믿으란 말이지?”

“늦어도 20년 이내로는 꺼내올 거야.”

우수한 부하들을 잃기는 싫으니 되도록 오래 끌 생각이지만, 그걸 고려해도 페이는 20년 이내로 모든 걸 끝낼 생각이었다. 20년 이내는 좀 이른가? 어쨌든 되도록 밀레스 사가의 흐름을 따를 생각이었다. 밀레스 사가의 엔딩도 대충 그쯤이다.

“너처럼 수상한 자의.......”

분노를 드러내는 남자의 말을 페이가 중간에 끊었다.

“정의에 어긋나는 일은 안 시켜.”

20권 분량을 스킵해 이들과 접촉했다는 소리는 남은 분량만큼 이들과 어울렸다는 소리. 페이는 검은 형제단의 성격이 어떤지 잘 알았다.

“뭐?”

당황하는 남자. 페이의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단법으로 혼을 움직인 페이가, 그 혼을 담아 말했다.

“사슬의 혼을 가진 인간이 맹세하나니. 거짓을 고하면 내 영혼을 끊어져 무너지리라.”

“잠깐! 도련님, 난 그런 거 가르쳐준 적 없다고! 혼의 맹세는 어떻게 아는 건데!”

당황한 용진운이 소리쳤다. 혼의 맹세. 사슬의 혼을 익힌 자들만이 가능한, 영혼을 걸고 하는 맹세다, 라고 거창하게 말해도 비슷한 맹세가 가능한 단법이 없지는 않았다. 마법의 경우에는 수십 종류나 된다.

밀레스 사가의 용진운도 혼의 맹세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페이도 혼의 맹세의 사용법을 알았다. 다만, 자주 쓰지 않는 방법이다. 맹세를 어겼을 때의 반동, 이 경우는 페이는 자신의 말에 따라 목숨을 잃는다.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용진운이었다면 용의 이름에 걸고 하는 맹세만으로 충분했겠지. 용가의 사람들에게 그건 특별한 의미를 가지니까. 그러나 검은 형제단의 남자에게는 아니었다. 확신이 필요하다. 신뢰가 필요하다.

“나는 검은 형제단을 이용해 도리에 어긋날 일을 할 마음이 전혀 없으며 내 목적은 오로지 악의 박멸과 평온한 생활이다.”

악의 박멸은 전혀 하고 싶지 않지만, 황제라는 절대악이 있는 한 평온도 없으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양심에 한 점 거리낌 없는 진실이고, 진심이니 영혼이 끊어져 무너지는 일도 없다.

“.......”

남자가 침묵했다. 검은 형제단은 의적들. 한 사람의 명령을 따르게 된다고 해도 그게 올바른 길이라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페이는 긴장된 마음으로 기다렸다.

“검은 형제단은 네게 힘을 빌려주도록 하지. 나중에 다시 오겠다.”

그 말을 끝으로 남자는 바닥으로 꺼지듯 사라졌다.

“도련님, 그 천리안이란 거 진짜 애매한 거 맞아?”

둘만 남자 용진운이 궁금해하던 것을 물었다. 페이의 천리안은 본인이 애매한 성능과는 아무리 생각해도 거리가 멀었다.

“애매하지. 예를 들어 십수 년 정도 후에 네가 운명의 그 사람과 만난다는 건 아는데 정확히 어디서 만나는지는 모르거든.”

“...... 거 참 쓸모없네.”

운명의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잔뜩 흥분했던 용진운이 시무룩해졌고.

“그렇지?”

페이는 그 모습을 보고 낄낄 웃었다.

“결정 났으니 나도 다음에 다시 월담해야 할 거야. 그때는 우리 쪽 꼰대 몇 명이 같이 올 거 같아.”

“걸리지만 마.”

“나보다 더 뛰어난 꼰대들이니 그건 걱정할 필요 없을 거야.”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용진운도 어둠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혼자 남은 페이는 푹신한 침대에 몸을 맡겼다.

‘우군은 만들었고...... 다음은 어쩐다냐.’

산은 많은데 겨우 하나 넘었을 뿐이고, 남은 산을 어떻게 넘어야 할지도 깜깜했다.

========== 작품 후기 ==========

구르고 또 굴러라! 구름의 미학에 끝은 없다!

17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