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born as a Son of Villain

< -- Admissions. -->

-첫 경험이네.

달리는 페이의 옆에서 벨이 몸을 꼬며 말했다. 요염한 그 몸짓을 무시하고 페이가 태연한 척 대꾸했다.

“추격은 첫 경험이지.”

여태껏 벌인 살인은 대부분 암살이나 거점에 있는 적을 찾아가 죽이는 것이었다. 추격은 이번이 처음이다. 페이는 먹이를 쫓는 맹수가 된 것 같았다. 먹이는 저 앞에 도망가는 어른 한 마리.

페이는 암기를 꺼내 아무렇게나 던졌다. 조준은 어차피 벨이 알아서 해줄 것이다.

암기는 불규칙적으로 꺾이며 남자를 향해 쇄도했다. 지부장은 능숙하게 암기를 피했다. 그러나 암기는 다시 꺾여 남자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자, 한 발!

벨이 환호하며 암기에 더욱 힘을 실었다. 표창과 수리검이 나비처럼 날아다니며 남자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건 뭐냐!”

지부장이 짜증 난다는 듯 손을 휘둘렀지만, 암기를 요리조리 피하며 계속 그의 급소를 노렸다.

-오, 말했다. 천박함이 가득 담긴 것이 고고한 척해도 저놈도 그 덩치랑 같은 부류였구나.

“넌 왜 그렇게 신난 건데.”

-파트너가 날 너무 무시해서 그런 거잖아. 힘을 쓰는 게 얼마 만인데! 오예! 한 방 더!

벨이 좋아할수록 지부장의 몸에 박힌 암기가 늘었다. 밸론에서 늙은 개에게 돌을 던지며 쫓아가던 아이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장면이 생각났다. 개가 다치고 죽어갈수록 아이들은 좋아했었다. 벨도 딱 그랬다.

그때 페이는 가만히 그 아이들을 구경하기만 했었다. 지금도 말릴 마음은 들지 않았다. 통쾌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어차피 죽일 놈이다. 원한도 듬뿍 있는 죽일 놈. 그런 놈이 죽어가는 것을 좋아할지언졍 슬퍼할 이유는 없다.

다리에 수리검이 박힌 지부장이 넘어졌다.

“너무 약한 거 아냐? 내가 나설 필요도 없잖아.”

-내가 강한 거다.

벨이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 페이는 벨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벨이 간지럽다고 머리를 흔들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 그래. 다 네가 센 거지. 그리고 이놈이 약하기도 하고. 인단이 왜 이렇게 약해?”

“몇 년간 실전에 나선 적이 없으면 실전 감각은 퇴화하기 마련이지. 그리고 도련님의 그 암기술은 솔직히 반칙이야. 밤에 날아오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고.”

뒤따라온 프레이가 쓰러진 지부장을 보며 말했다.

“게르트. 기분 나쁜 놈이라고는 생각했는데, 큰일에도 손대주셨군.”

“내가 이런 곳에서 쓰러질 것 같으냐? 내 위에는.......”

지부장의 눈코입귀에서 피가 흘렀다. 볼 것도 없이 죽었다. 프레이가 혀를 찼다.

“무식한 놈이라 도발하면 뭐라도 뱉을 줄 알았는데. 상대도 바보가 아니었어.”

“이놈 위가 또 있어?”

“인신매매라고. 사람이 이만큼이나 사라졌는데 들키지 않을 정도라면 뒤를 봐주는 놈이 있다고 봐야 해. 나머지는 용병 길드가 할 일이니까 도련님이 신경 쓸 건 아냐. 설마 찾아갈 생각은 아니겠지?”

“나도 이 정도로 충분해.”

직접 얽힌 놈들을 처분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나머지는 직접적인 관련도 없다.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자길 건드리지 않는 놈들까지 찾아가 족칠 만큼 페이는 정의감 넘치는 인간이 아니었다.

“먼저 간 놈들을 통솔 때문에 나는 여기서 가야겠어. 카메론으로 가면 한 번 만나러 갈 테니 기대하고 있어.”

페이의 눈이 조금 커졌다. 행선지를 알려준 적은 없었는데?

“에밀의 소개장. 도련님 나이 12살. 이 정도면 뻔하잖아? 마법도 배우고 싶어 했고. 처음 만난 용병들이 너무 대단한 놈들이라서 잘 실감이 안 나나본데. 나도 한가닥하는 용병이라고 도련님. 너무 무시하면 섭섭해.”

“확실히 알았어.”

페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프레이도 대단했지만, 자신도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마지막 인사. 또 봐. 정령 아가씨도.”

“잘 가.”

-잘 가라.

프레이가 나무 사이로 사라지고, 페이도 몸을 돌렸다. 그대로 트란티카로 돌아가려다, 잠깐 뒤를 보았다.

“아, 벨 이 시체 좀.”

-오케이.

벨이 시체에 불을 붙였고 시체는 불타 사라졌다. 페이는 트란티카로 걸음을 옮겼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3월. 세계 최고의 마술 학원이 있는 카메론의 정문으로 넝마에 가까운 옷을 걸친 페이가 들어섰다.

“신분증.”

입학 시즌. 하루에도 수천, 많으면 만 명 이상 같은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문지기는 귀찮음을 숨기지도 않고 페이에게 신분증을 요구했다.

이 정도도 이해 못 하고 난리 칠 정도로 또라이는 아니었으므로 페이도 얌전히 신분증 대용의 용병패를 내놓았다.

“용병?”

아이가 신분증으로 용병패를 제시한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용병은 패의 재질과 거기에 적힌 숫자는 더욱 놀라웠다.

“7급?”

문지기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용병패와 페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곤 엄한 얼굴로 페이를 윽박질렀다.

“꼬마야. 이거 어디서 훔친 거냐?”

“후우.......”

페이는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페이의 반응을 뭐라고 해석한 건지 문지기는 더욱 강하게 나왔다.

“신분증의 분실 및 절도는 중죄다. 당장 말하는 게 좋을 거야!”

“확인해.”

“이게 어디서 반말.......”

“닥치고 길드에 확인이나 해봐.”

페이는 살기까지 담아 낮게 말했다. 트란티카에서의 일 때문에 의뢰라곤 하나밖에 안 했는데, 그것마저 제대로 된 의뢰가 아니었는데 그 실력과 도움을 높이 산다며 본부 쪽에서 등급을 2등급이나 올려주었다.

7급. 알아보니 평범한 용병이 3, 4년은 꾸준히 의뢰를 수행해야 가능한 등급이란다. 그걸 어린애가 들고 있으니 가는 곳마다 이 모양이다. 마음 같아서는 등급을 내려달라 하고 싶었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까다로운 일이라 관뒀다.

문지기가 페이의 살기에 겁을 집어먹고 안으로 들어갔고, 페이는 경계병 초소로 안내되었다. 기분 나쁘다고 혼압까지 팍팍 뿜고 있는 페이에게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12살에 본부에서 7급을 받은 소년이 있다곤 들었는데, 진짜로 보니 5급도 아깝지 않겠군.”

용병 길드에서 나왔다는 남자는 처음 페이를 보고 그런 말을 꺼냈다. 용병하면 딱 떠오르는 거친 외모의 근육질의 남자였다.

말을 저렇게 했어도 남자는 페이의 혼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무상연공은 형상이 없다. 성취가 오를수록 자연스럽게 혼압이 감춰진다. 차휘연 정도, 신단 직전의 인간이 아닌 이상에야 영단의 고수라도 페이의 혼압을 모두 읽을 수는 없다.

“카메론 지부의 부지부장을 하고 있는 팔레트라 한다.”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페이는 손을 맞잡았다.

“팔레트?”

“내 꿈이 뭔지 아나? 팔레트라는 미술 도구를 발명한 놈을 찾아 흠씬 두들겨 팬 다음 이름을 바꾸게 하는 거다.”

“그 사람은 죽었잖아.”

미술을 많이 아는 건 아니지만, 팔레트가 사용된 지 200년이 넘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귀족으로서 배운 기초 교양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란 놈이지!”

팔레트는 호쾌하게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다짜고짜 포박하려는 놈들은 봤어도 이런 고전적인 방법으로 힘을 시험하려는 사람은 처음이다. 페이는 조금 들뜬 기분으로 어울려주기로 했다.

페이는 손이 작아 팔레트의 손가락 세 개를 잡는 정도였지만, 그 손가락을 부러뜨릴 기세로 힘을 주었다. 한동안 교착 상태가 지속되다 결국 팔레트가 항복했다.

“그만하자. 이 이상은 누구 하나의 손가락이 부러지겠어.”

힘을 줘 벌게진 손을 마사지하며 팔레트가 밖의 경비병들을 불렀다.

“확인은 끝났다. 확실히 본인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는 내가 아니라 무능한 너희들 때문에 두 시간 가까이 여기 묶여 있는 저 사람에게 해라.”

경비병이 떫은 표정을 지었다. 어린놈에게 고개 숙이기 싫다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쾅! 팔레트의 주먹이 책상을 박살 냈다.

“이래서 머리가 굳은 것들은.......”

“죄, 죄송합니다!”

“사과는 내가 아니라 저 용병에게 하라고!”

팔레트의 고함에 작은 방이 쩌렁쩌렁 울렸다. 미친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다혈질적인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페이는 팔레트가 꽤 마음에 들었다. 이때까지 자신을 꼬마가 아니라 용병이라 칭한 것은 여행을 나오고 팔레트가 최초였다.

모두들 페이가 용병임을 알고 있음에도 꼬마나 꼬맹이라고 불렀다. 가끔 애새끼라 부르는 정신 나간 것들도 있었다. 물론, 그놈들은 몇 달 정도 수입에 지장이 생기도록 해주었다. 꼬마는 몰라도 애새끼는 명백한 멸칭이었고, 약한 놈들의 멸시를 그대로 받아줄 만큼 페이는 얌전한 성격이 못됐다.

“됐습니다. 딱히 사과받을 일도 아니고. 진정하세요.”

그대로 두면 주먹질이라고 할 기세였기에 페이가 적당히 나서 팔레트를 말렸다.

“본인이 그렇다면 됐겠지.......”

팔레트는 찜찜한 얼굴을 하면서도 화를 거뒀다. 병사들은 겁먹은 표정으로 몸을 움츠리고 있을 뿐이었다.

“카메론의 용병 길드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모른다면 안내해주지.”

“좋습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기에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페이는 팔레트를 따라 경비 초소를 나왔다.

“12살에 7급 패를 딴 용병은 수십 년 만이다. 레이커가 그렇게 밀어붙인 일이라고 들었는데, 레이커와 아는 사이인가?”

페이는 조금 놀랐다. 2등급 특진에서 그 이름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스승 비슷한 겁니다.”

“그래서였군.”

납득했는지 팔레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커는 본부에 있습니까?”

“1년 전에 1급 용병이 돼서 지금은 본부의 요직에 앉아 있다.”

“그렇군요.”

잘살고 있다고 알았으면 그걸로 됐다.

“그런데 페일, 너는 이 도시에 무슨 볼일이지.”

“12살이 3월에 카메론에 올 일이라면 뻔하지요.”

“입학인가. 그러데 괜찮겠나? 카메론의 학비는 싸지 않다. 과거 의뢰를 열람해보니 의뢰도 몇 개 수행하지 않았던데.”

“돈은 충분히 있습니다.”

장학생으로 들어가 장학금 잔뜩 받아 졸업할 생각이니까 돈 벌 일은 있어도 돈 나갈 일은 없었다. 돈독 오른 건 아니지만 능력껏 벌 수 있는 돈을 벌지 않고 넘어가는 것도 손해다.

“그럼 됐다.”

성품도 괜찮아 보이고 실력도 있다. 팔레트를 보고 있자니 페이는 문득 궁금해졌다.

“2년 정도 전에, 기밀 의뢰를 하나 받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당시 나는 길드 간부 시험이 있어서 참여하지 못했다. 네가 얽힌 일이었나?”

“내용은 기밀이지만, 그렇습니다.”

그 의뢰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팔레트의 성품과 실력을 대변한다. 페이는 이 남자에 대한 경계를 다소 누그러뜨렸다.

용병 길드는 시가지와 맞닿은 지역에 있었다.

“여기가 용병 길드. 그리고 저기 시계탑을 중심으로 도시 중앙에 카메론 학원이 있다.”

팔레트의 손가락 끝에는 높은 시계탑이 보였다. 이 도시에서 저 건물 하나만이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 있었다. 사각형으로 솟은 첨탑의 한 면에는 여기서도 보일 정도로 커다란 시계가 달려 있었다.

“시간 개념이 없는 평민들도 카메론에서만은 예외가 되지. 모두가 저것 덕분이다.”

“좋은 구경 했습니다.”

“이 정도로 뭘. 돈이 필요하면 와라. 벌이가 쏠쏠한 의뢰를 찾아주마.”

팔레트는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씨익 웃으며 다시 손을 내밀었다. 힘 싸움이 아닌 진짜 악수였다.

팔레트가 용병 길드로 들어갔다. 페이도 거리를 돌며 적당한 숙소를 잡았다. 여행을 하며 노숙도 익숙해졌지만, 숙소를 잡는 것도 요령이 생겼다. 일단 청결한 곳을 찾으면 되고, 두 번째로 여자가 있는 곳을 찾으면 된다. 그러면 최악은 면한다.

페이는 학원 근처에 있는, 주인의 딸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서빙을 하는 곳으로 여관을 잡았다.

입학식은 내일이다.

========== 작품 후기 ==========

이 소설은 클리셰를 준수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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