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born as a Son of Villain

< -- Wizard with Short Term. -->

“페일? 왜 여기에?”

신위연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페이는 벨에게 들키지 않도록 돌아가라고 말한 뒤 뒤에 있는 신위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도 대미궁에 볼 일이 있어서 말이야. 미안하지만 뒤를 쫓았어. 민폐?”

“아니, 덕분에 살았으니까.”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신위연도 페이의 옆으로 와 자리에 앉았다.

잠깐의 침묵, 먼저 입을 연 것은 신위연이었다.

“대미궁에 볼일이 있다며. 그런데 내 뒤를 쫓을 필요가 있었어?”

“입구를 몰랐거든. 내가 아는 입구는 전부 들어가기 힘든 장소라서. 여자 기숙사의 화징실로 출퇴근할 수는 없잖아?”

“하하. 그것도 그렇네. 그런데 진짜 그런데 입구가 있어?”

신위연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있다고 하면 진짜로 여자 기숙사로 쳐들어갈 기세였다. 페이는 친구를 변태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니, 농담. 그래도 진짜 가기 힘든 장소에 있는 건 맞아. 그래서 새로운 입구가 필요하던 참에, 네가 기숙사 구석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걸 봤다는 거지.”

“대미궁에서 뭘 찾고 있는지 물어도 돼?”

“그건 질문?”

페이와 처음 만났을 때의 문답을 떠올린 신위연이 킥킥대며 대답했다.

“질문.”

“미궁 어디에 있는 보물들.”

“그게 뭐야. 모험가도 아니고.”

“아니, 진짜라니까.”

페이는 억울했다. 대미궁 안에 있는 알짜배기들의 이름과 성능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게 어디 있는지 모른다. 일해라 작가! 적어도 작가 후기 대신 미궁의 전체 지도를 책의 말미에 싣는 정도의 성의, 작품에 대한 예의를 보여라! 이 넓은 미궁을 맨몸으로 탐색할 거라 생각하면 페이는 절로 기분이 암울해지고 작가에 대한 살의가 샘솟았다.

“이제 내 차례. 너는 왜 미궁에 들어왔어?”

“가문을 상징하는 반지가 있어. 그리고 가주, 내 아버지가 젊을 적 이 대미궁에서 그걸 잃어버렸고. 그걸 찾는 게 내가 가주가 되는 조건이야.”

가문의 치부를 고백하는 신위연의 얼굴을 부끄러움 물들어 있었다.

“자기 실수를 아들에게 떠넘기는 거야? 몹쓸 아버지네.”

“아니, 그런 건 또 아니야. 나는 차남. 장남인 형을 대신해 가주가 되려면 그만한 실적이 필요해.”

“집안싸움?”

“그렇게 보여?”

“그럼 뭘로 봐야되는데.”

차남, 가주가 되기 위한 시험. 그것 말고는 달리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형과 사이가 꽤 좋아. 형도 내가 가주가 되는 걸 바라고 있고. 나도 가주가 되고 싶어.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그렇지 않아.”

“아하. 보여주기?”

“그런 거야.”

장남은 가주가 되기 싫다. 차남은 가주가 되고 싶다. 형제끼리 합의가 됐어도 일단 정통성은 장남에게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장남을 지지한다고 하면, 차남이 가주가 되기 위해서는 장남보다 뛰어남을 보일 필요가 있다. 요컨대 실적이 필요하다. 잃어버린 가문의 상징이라면 충분한 실적이 되겠지.

“페일, 너 대단하다.”

음음. 혼자 고개를 끄덕이는 페이에게 신위연이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페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뭐가?”

“이것만 듣고도 전부 알았잖아?”

“책을 읽어.”

“나도 책은 많이 읽었어.”

“책도 뭘 읽느냐가 중요해, 이 친구야.”

밀레스 사가라던가, 밀레스 사가라던가, 밀레스 사가라던가.

“오늘은 여기서 나가자.”

“응.”

충분히 쉬었다. 페이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신위연도 함께 일어섰다.

“아, 그 지도 좀 봐도 돼?”

“여기.”

페이의 예상대로 기숙사의 입구를 중심으로 길이 표시된 지도였다. 손으로 직접 작성했는지 어설프고 빈 부분도 많았다. 페이는 신위연에게 받은 지도를 그대로 외워 머리에 넣었다. 마법의 패턴도 기억하는데 이런 지도야 쓱 보면 척이다.

“페일. 그 저기.......”

“도와줄게. 대신 네가 짐꾼이다?”

혼자 해보다 안 되면 나중에는 드란을 끌어들이든 대미궁을 아는 다른 사람에게 타진하든 일행을 늘릴 생각이었다. 시기가 조금 빨라진 것뿐이다.

“알았어.”

신위연도 불만은 없었다. 미궁을 혼자 오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짐꾼으로라도 미궁에 들어올 수 있으면 만족했다.

두 사람은 함께 기숙사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 텅 빈 기숙사 방이 보였다.

“이런 면은 편하네.”

“그러게.”

페이의 말에 신위연이 동의했다. 다른 사람과 같은 방을 썼다면 매일 밤 눈치를 보며 들락거려야 했을 것이다. 꽤 피곤한 일이 되었겠지. 그러나 둘이 함께 미궁에 들어간다면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이런 면에서는 확실히 편하다고 할 수 있었다.

‘기묘한 우연이야.’

단법과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대미궁에 볼일이 있어 입학한 녀석이고, 그놈과 같은 방을 쓰게 됐다.

아니, 필연인가. 서로가 또래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관심을 가질 만도 하다. 그리고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처음부터 단법과에 입학할 이유가 없다. 다른 목적이라고 할 만한 것은 대미궁 정도. 꽤나 필연에 가까운 우연이다.

우연적인 요소가 있다면, 페이와 신위연이 동갑이고 같은 년도에 입학했다는 것 하나. 이것만이 순수한 우연일 것이다.

두 사람은 말도 없이 각자의 침대에 누웠다.

“단법은 별로인데, 마법은 조금 기대된다.”

신위연이 말했다. 뒤로 돌아누워 있어 신위연이 어떤 표정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게.”

페이는 가볍게 대꾸하고 잠을 청했다.

***

두 사람은 미궁 탐험을 잠깐 보류하기로 했다. 신위연의 지도가 쓸모 없어졌다는 게 드러나면서 정보가 부족해졌고, 결정적으로 마법과의 입학식이 마무리되고 새 학기가 시작됐다. 둘 모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새 학기 첫 수업이다. 다른 수업을 신청한 사람들도 잘 들어둬라. 단법과의 무술 수업에는 예로부터 전통이 있다.”

기초 창술 수업의 교수는 브렉이었다.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활동적인 복장으로 저기 있으니 어쩐지 어울리지 않기도 했다.

“바로 담당 교수와의 대련이다. 첫 수업에서 모두 하게 될 것이므로 잘 알아둬라.”

교수와의 대련이라는 말에 몇몇 학생의 얼굴이 검게 죽었다.

“너희의 실력을 확실하게 알기 위한 일이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몰아붙일 것이다.”

이어서 다른 학생들의 얼굴도 비슷해졌다. 페이와 신위연은 태연했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역시 차석과 수석은 다르다고 중얼거렸다. 페이는 순수하게 그 시선을 즐겼다. 조금 있으면 공부에 미궁에 밤낮으로 고생할 건데 이 정도는 나쁘지 않지 아니한가.

“먼저 페일과 신위연. 너희 둘부터 나와라.”

“한 사람씩 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신위연이 브렉에게 물었다.

“한 명 한 명 봐주고 있을 시간 없다. 너희는 그나마 수석과 차석이라 둘이지. 다른 놈들은 셋씩 넷씩 한 번에 할 거다. 창을 들고 앞으로 나와라.”

구석에 세워진 창을 들고 페이와 신위연이 브렉의 앞에 섰다. 페이는 브렉을 살폈다. 어쩔까. 진심으로 해버리면 이겨버릴 것 같다. 잠룡 용가의 세월은 진짜였고, 무상연공의 위명은 명불허전이었다. 페이는 인단까지는 어떻게든 혼자 정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브렉은 인단이다.

교수를 이기는 학생. 엄청난 소란이 날 것이다. 제국에서도 그랬지만 페이는 과도한 관심은 사양하고 싶었다. 단지 뛰어난 학생과 12살의 나이로 인단에 올라 교수까지 쓰러뜨리는 불세출의 천재.

뭐가 더 눈에 띄냐면 물을 것도 없다.

페이는 페일의 무력을 설정했다.

‘영단법은 인단 아래로, 단법의 응용이 뛰어나고, 무술은 그대로 갈까.’

단법 수준을 낮추고 무술에 특출난 재능이 있다는 식으로 간다. 이 정도면 7급 용병이라는 신분과도 어울린다.

“보고만 있을 건가?”

“갑니다.”

페이가 창을 겨눴다. 쓰는 것은 란나찰. 그 세 가지면 충분하다. 슬쩍 신위연을 곁눈질한다. 기초 창술을 선택한 것은 창술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점수를 따지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자세가 제법 잡혀 있다.

페이는 어렸을 때 르윈과 했던 합격을 떠올렸다. 그때의 상대는 영단인 용진운, 지금 앞에 있는 건 인단인 브렉.

‘그때처럼 일방적인 경기가 나오진 않겠어.’

“내가 공격할 테니 옆에서 보조 부탁해.”

“알았어.”

페이의 실력을 알고 있는 신위연은 선선히 옆으로 한 걸음 빠졌다. 페이가 혼압과 함께 창에 혼을 담았다. 투명한 창기가 창을 감쌌고, 그대로 페이는 브렉을 공격했다.

“시험 때도 봤지만 제대로 정련된 혼이군! 단법을 잘 익혔어!”

호쾌하게 외치며 브렉이 페이의 창에 창을 엮었다. 브렉의 창에 외류(外流)가 들어가며 페이의 창을 바깥으로 튕기려 했다. 란(攔)이다.

페이는 그걸 다시 나(拿), 내류(內流)로 감아 안으로 되돌리며 창을 찔렀다. 브렉은 외류를 내류로 바꾸어 페이의 창끝이 땅을 향하게 했다.

창이 애꿎은 땅을 찌르고, 브렉의 창이 페이의 목을 노렸다. 두 사람의 공방을 놓치지 않고 있던 신위연이 끼어들어 아래에서 위로 브렉의 창을 걷어냈다. 란나찰도 아닌 단순한 휘두르기였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브렉의 틈이 커졌다. 페이가 창을 회수하며 동시에 창을 길게 잡았다.

창의 장점은 잡는 방법에 따라 같은 기술이라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짧게 잡으면 짧아지고 길게 잡으면 길어진다. 봉처럼도 쓸 수 있고, 어설프지만 검 흉내도 가능하다.

같은 란나찰이라도 왼손과 오른손의 위치에 따라 란나찰의 개념이 바뀐다. 란이 나가 되고 나가 란이 된다.

길어진 사거리로 페이가 아래를 훑었다. 브렉은 땅에 창을 꽂아 페이의 공격을 막았다. 그리고 그 궤적은 신위연의 공격도 함께 흘려보내고 있었다.

일석이조. 한 수에 두 가지 이득을 거뒀다. 페이는 거두며 창을 짧게 잡으고 브렉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신위연은 페이의 움직임을 보조하기 위해 란의 수법으로 브렉의 창을 바깥으로 쳐냈다. 브렉도 만만치 않았다.

바깥으로 회전하는 창에 오히려 더욱 강한 회전을 가해 가속을 주어 페이의 움직임을 견제했다. 페이가 한 걸음 물러서며 간격을 살폈다. 신위연이 그 중앙을 뚫어 길을 열었고, 페이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눈 돌아가는 공방이 이어졌다. 신위연의 보조는 실로 절묘해 페이는 실력을 숨긴 상태에서 마음껏 브렉에게 달려들 수 있었다.

창술만으로는 서로 비등하게 보였으나 그래도 임기응변과 기초의 탄탄함에서 브렉이 두 수 위였다.

한순간의 빈틈을 보인 순간 브렉이 페이의 손등을 쳐 창을 떨어뜨렸고, 바로 이어서 신위연의 허벅지를 찔렀다. 수련용 창이라 창끝에는 날 대신 뭉툭한 솜덩어리가 달려 있었지만, 그래도 단법으로 혼을 담았는지라 꽤 아팠다.

“여기까지. 둘 다 예상이상이었다. 특히 신위연. 페일과 합을 맞추는 건 처음인데도 완벽하게 합을 맞추는 그 센스는 수준급이다.”

“감사합니다.”

신위연이 고개를 숙였다. 그에게 이 정도는 기본이었지만, 그래도 역시 칭찬 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 다음!”

격렬했던 대련의 여파인지 기분이 고양되어 보이는 브렉이 다음 상대를 불렀다. 그리고 브렉은 기분이 고양됐던 것이 맞았다.

그 후로 대련에 나서는 학생들은 실력도 내보이지 못하고 브렉의 창에 나가떨어져야 했다.

실력 테스트가 전혀 되지 않았으므로 결국 제대로 된 테스트는 다음 수업으로 미뤄졌다. 신입생 모두가 넝마가 되어 땅에 뒹굴었다.

========== 작품 후기 ==========

미궁 탐색에 쓸 짐꾼 겟. 이제 도적만 찾으면 미궁 공략을 위한 파티 완성.

주인공요? 물주 겸 정령사 겸 검사 겸 마법사요. 이건 완전 버스.......

5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