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born as a Son of Villain

< -- Devil's Tree. -->

페이는 말은 칼 같았다.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어선 안 된다. 계획이 끝나고 이 공동은 완전히 흙더미에 묻힐 예정이며, 공동과 연결된 통로들도 모조리 박살 낼 거다.

악마의 시체에 눈이 벌게진 마법사들이 땅을 파고 들어왔을 때 미궁의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연구 기관까지 설립될 정도로 거대하고 큰 가치를 가지고 있던 미궁은, 그 가치 때문에 은폐되었고 소수의 사람만 아는 비밀이 되었다. 그게 다시 터진다면 카메론 학원은, 카메론의 평화는 무너질 것이다.

돈과 아티팩트와 명예를 노리는 무뢰한들이 몰려들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보는 건 악마의 나무와 그게 만들어낸 참상뿐. 그들이 미궁에 닿아선 안 된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도련님도 착한 놈은 아니야.”

지인을 가차 없이 내버리는 잔혹함에 용진운이 질려했다.

“작은 구멍 하나에 댐을 망가뜨릴 순 없어. 그럴 거라면 구멍을 막아버려야지.”

생매장되었던 사람들이 살아나왔다. 어떻게 살아나왔는지가 논란이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지하에 있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통로가 언급될 것이다.

그럼 끝. 숨기려 한 보람도 없이 미궁의 존재가 드러난다. 그렇기에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야 한다.

팔레트는 지인이니 한 번 설득은 해보겠지만, 그것뿐이다.

“나무도 정리가 되어가는 것 같은데.”

용진운이 날카로운 눈으로 악마의 나무를 훑었다. 뿌리는 거의 다 잘려나갔고, 악마의 모습을 한 나무 베이고 구멍 뚫린 상처로 가득했다. 뿜어지던 검은 혼도 전부 사라졌다.

“막타는 우리가 먹어야지. 영단의 도끼 쓰는 놈을 부탁할게. 문제없지?”

“나머지 넷은 도련님 몫인가.”

“일단은 셋이지.”

팔레트를 제외한 숫자다.

“내가 신호할게.”

용진운이 손가락을 꼽았다.

“셋, 둘, 하나. 지금.”

한 줄기 바람을 남기고 사라진 용진운은 바로 다음 순간 도끼 든 남자의 심장을 뽑고 있었다.

전장에서 암살자란 저런 존재겠지. 저 손이 자신을 향할 것이라 생각하면 소름이 돋았다. 잠깐 정신을 팔았다. 페이도 남은 셋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벨.

어둠의 장막이 한순간 공동을 덮었고, 페이가 날린 암기가 표적을 꿰뚫었다. 정면 승부도 아니고 적에게 관심이 쏠려 있는 사람의 뒤를 치는 것.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설령 그것이 인단의 단법사일지라도.

장막이 걷혔을 때는 심장에 수리검을 박은 세 명의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페이는 추가로 수리검 몇 개를 꺼내 허공에 던졌고, 벨의 유도에 따라 수리검은 남자들의 급소를 차례차례 관통했다. 확인사살이다.

“페일? 저 수리검은 네 짓인가? 그 전에 여긴 대체 어디지?”

“잠깐만 거기 계시죠. 금방 끝납니다.”

급변한 사태에 혼란스러워하는 팔레트를 놔두고 페이는 악마의 나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용진운은 이미 악마의 나무까지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퍼져나간 충격파가 나무 중앙에 큰 구멍을 뚫었고, 악마의 나무가 쓰러졌다.

페이는 나무를 회수하기 위해 다가가다가 발을 멈췄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검은 혼들이 사방에 옅은 안개처럼 퍼져 있었다.

까드득. 까드득.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나무가, 악마가 상체를 일으켰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악마의 몸을 구성하는 나무들이 부서지고 떨어졌다. 배에는 용진운이 남긴 구멍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용진운이 순식간에 악마로부터 거리를 벌려 페이의 앞에 섰다.

악마의 눈이 두 사람을 두 사람을 주시했다. 무색이던 그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증오서린 눈동자에 페이가 침을 꿀꺽 삼켰고.

번쩍!

붉은빛이 공동을 가득 채웠다. 페이가 눈을 떴을 때는 눈에서 빛이 사라진 악마가 쓰러지고 있었고, 벨이 페이와 악마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용진운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했다.

“정령 아가씨. 뭐 했어?”

악마의 눈이 빛나기 전후로 달라진 것이라곤 중간에 끼어든 벨이 전부였다.

-저놈이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낸 저주를 막았지.

엣헴. 벨이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저주?”

붉은빛이 나타난 직후 오묘한 혼의 움직임을 느끼긴 했다. 나타나기 무섭게 사라졌었다.

-이 벨님이 누구시냐. 모든 속성을 다루는 만능 정령이라는 말씀. 혼의 반응에도 당연히 정통하지. 마지막에 저놈이 사용한 건 정령술에 가까운 저주야. 마법과 단법보다 훨씬 원초적이고 강력한 기술이지.

정령술에 가까우며 마법과 단법보다 원초적인 기술. 용진운은 그것과 비슷한 것을 떠올렸다.

“주술?”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주술을 직접 본 적이 없는 벨은 거기에 확답해줄 수 없었다. 그녀가 아는 지식은 정령이 가지는 기본적인 지식을 제외하면 페이가 아는 정도에 그쳤다.

-그나저나 갑작스럽게 막는다고 혼을 막 끌어다 써버렸지 뭐야. 파트너 좀 부탁해.

“내가 왜........”

내가 왜 도움 받아야 돼? 라고 말하려던 페이는 몸을 휘청였다. 단이 텅 비었다. 현기증까지 몰려왔다.

“이런 씨........”

망할 정령에게 한 바탕 퍼부어 주지도 못하고, 페이는 그대로 쓰러졌다.

***

페이가 눈을 뜨고 처음 본 것은 검은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었다. 어째 비슷한 장면을 자주 보는 것 같았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잘되지 않았다.

-단에 있던 혼뿐만 아니라 정신력과 생명력까지 조금 가져가 썼으니까 움직이기 어려울 거야.

“망할 정령.......”

-내가 아니었으면 대응도 못 하고 저주에 걸려 죽거나 사경을 헤매고 있었을 건데?

레드 로즈에 저장된 혼으로 단을 채우자 겨우 움직일 만해졌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페이가 불평을 뱉었다.

“그건 고마운데. 미리 말이라도 해주면 안 되냐.”

만남부터가 사기계약이더니 이제는 주인의 혼을 강탈해가기까지 한다. 이러다 정령에게 혼이 빨려 죽는 건 아닌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말했을 때는 늦었을걸. 그리고 파트너도 무의식으로는 허락했다고. 우리가 아무리 영혼으로 연결되어 있거니 남의 생명력을 막 가져다 쓸 수 있을 리 없잖아?

“그래?”

-당연하지, 바보야.

듣고 보니 빛이 반짝이기 직전 무슨 생각이 지나간 것 같기도 했다.

-의심 많은 파트너니 증명까지 해줘야 믿겠지. 내가 거부할 테니까. 파트너가 내 힘을 가져가 봐. 우리 연결은 일방통행이 아니잖아?

벨의 말대로 이어진 영혼을 통해 벨의 힘을 사용해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반대로 벨이 허락하자 벨에게서 페이에게로 혼이 조금씩 흘러들어왔다.

-봐?

“그렇네.”

-의심 많은 파트너 같으니라고.

괜한 의심을 받은 벨이 페이의 어깨에 올라타 볼을 쭉쭉 잡아당겼다.

“햐지먀.”

몸을 일으킨 페이는 멍하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한 사람, 팔레트에게로 향했다.

악마의 나무가 있던 자리를 보니 용진운이 아공간 주머니를 덜렁덜렁 흔들고 있었다. 저쪽은 끝났나 보다.

“페일, 이건 전부 무슨 일이지? 이 공동은. 그리고 저들은?”

“팔레트, 이건 전적으로 당신이 저에게 보여준 호의에 대한 보답입니다. 선택하십시오. 죽을 겁니까? 모든 걸 버리고 살아갈 겁니까?”

미소 띤 페이의 얼굴을 보고 팔레트는 섣불리 입을 열 수 없었다. 호의적으로 웃고 있지만 그 아래에는 수백 수천 개의 칼날이 솟아 있는 환각이 보였다.

그는 신중히 생각했다.

살 것이냐, 죽을 것이냐. 단순한 질문이라면 무조건 답은 전자다. 그러나 전자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모든 걸 버리고? 모든 것이란 어디까지일까?

신분? 얼굴? 육체? 아니면...... 단법까지?

단법사들에게 단법을 잃는 건 죽음과 같았다. 평생을 투자해 쌓은 성이 무너지는 것이다. 무너진 성의 기억을 가지고 사는 것은 때론 죽음보다 괴롭기도 하다.

목이 말랐다. 물을 마시기 위해 물병을 찾았지만, 허리춤의 물병은 구멍이 나 물이 전부 새버렸다.

“드시겠습니까?”

페이가 팔레트에게 물병을 내밀었다. 그는 그걸 받아 목을 축였다. 흙먼지로 텁텁한 입안을 맑은 물이 씻어주었다.

“살고 싶다.”

“좋습니다.”

페이는 팔레트에게 간단한 혼의 맹세를 요구했다.

여기 떨어진 직후부터 여길 나갈 때까지 본 모든 것들을 말하거나 기록하거나 후세에 남기려 하면 죽는다. 그리고 얼굴과 신분을 바꾸고 다른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그런 내용이었다.

단법사가 자신의 혼에 하는 맹세는 절대적이다. 혼의 맹세가 심문에만 사용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혼의 맹세까지 마친 팔레트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힘 빠진 목소리로 물어왔다.

“혼의 맹세까지 한 입장에서 이 정도 질문은 허용해줬으면 싶군. 이 참상은 전부 뭔지 설명해줄 수 있나?”

“이 미궁은 밝혀지지 않은 대미궁이고, 그걸 둔 이권 다툼이었습니다. 저기 죽은 저놈들도 한 명 빼고는 미궁 관계자죠. 모르는 게 평생 편했을 겁니다.”

불친절한 설명이었지만, 팔레트는 그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이권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일에 끼어들었다간 대개 좋지 않은 꼴을 당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사망자 처리된다면 이 얼굴도 바꿔야 한다. 그런데 난 얼굴을 바꾸는 법을 몰라.”

“용진운. 알고 있지?”

“얼굴을 바꾸는 정도야 기본이지.”

“라고 합니다. 할 일 다 했으니 나갑시다.”

공동을 벗어났을 때 팔레트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시체들은, 놔두는 건가?”

“악마의 나무가 발견되지 않으니 시체라도 발견되어야지요.”

페이는 뭐 그런 걸 묻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품에서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땅이 흔들렸고, 화끈한 열기가 밀려왔다.

“뜁시다, 통로가 무너지기 전에.”

머리에서 돌조각이 부슬비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페이가 가장 먼저 달렸고 다른 두 사람이 뒤따랐다.

미궁 안에서 일어난 장렬한 싸움은 폭발 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

***

악마의 나무는 뿌리를 이용해 공격했다. 뿌리는 땅속 넓은 곳까지 퍼져 있었으며 그 뿌리가 땅을 뚫고 올라왔으니 지반이 약해졌다. 약해진 지반에 드란의 강력한 마법의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고, 악마의 나무와 단법사 다섯 명이 땅 아래로 추락했다.

싸우던 중 죽은 사람 둘까지 합해 총 일곱의 피해를 내고 토벌은 일단락되었다. 살아남은 용병들과 교수들이 땅을 파서라도 악마의 나무의 생사를 확인해야 한다고 거듭 요청했지만, 학원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지원은 없다. 할 거면 사비를 들여서 해라.

겉으로는 이미 해결이 끝난 사건을 쉬쉬하는 전형적인 권력자의 분위기였지만, 페이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학원 상층부에도 미궁 관계자가 다수 있다. 그들은 땅이 파헤쳐지고 미궁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미궁 어딘가에 있을 악마의 나무를 찾기 위해 미궁 탐색에 매진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모두 헛수고지.’

악마의 나무는 이쪽에서 회수했고, 통로까지 무너뜨렸다. 운 좋게 무너진 공동을 파낸다 해도 건질 건 악마의 나무의 파편 정도일 것이다. 무너진 흙더미 사이에서 그 작은 조각을 구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끼익 소리와 함께 용진운이 들어왔다. 단, 문이 아니라 창문으로. 겉으로는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 용진운이 당당하게 문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다. 본인이 하려고 하면 은신술을 쓰고 들어오겠다만.

“어떻게 됐어?”

“얼굴은 완전히 바꿨고, 떠나는 것까지 확인했어.”

용진운은 팔레트의 얼굴을 바꿔주고 오는 길이었다. 잠깐씩 쓰는 변장이 아닌 얼굴 근육과 골격을 건드려 영구적으로 바꿔버리는 기술이다. 팔레트는 얼굴도 이름도 바꾸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비밀엄수는, 죽기 싫으면 할 것이다. 어기는 순간 죽는다는 게 더 정확하다.

“그리고 도련님, 드디어 완성했어.”

“그럼?”

페이가 화색을 띠며 말했다. 지도, 카니아에게서 구입한 지도와 원래 가지고 있던지도, 그리고 페이가 드란 것을 베낀 지도까지 총 3개의 지도를 합친 완성본이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지도를 완성했어. 2층만 아니라 3층까지 탐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지. 나도 죽은 거로 처리되면서 자유로워졌고, 이번 겨울은 미궁에서 보내게 될 거야.”

========== 작품 후기 ==========

미안, 그 나무 누가 전부 가져갔어. 땅 파도 안 나와.

87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