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born as a Son of Villain

< -- Devil's Tree. -->

남녀의 대화를 모두 들은 용진운은 카메론 학원의 담을 넘어 페이가 있는 단법과 기숙사로 향했다.

일을 마친 페이도 이미 기숙사로 돌아와 있었다. 아텐이 수련하러 나간 탓에 기숙사 방에는 용진운과 페이 둘뿐이다.

“어땠어?”

용진운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시원스런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다.

“완벽하게 멍청한 놈들이야.”

멍청해도 이렇게 멍청한 놈들이 없다. 아니, 그건 아닌가. 용진운이 사악하게 웃고 있는 페이를 보았다. 며칠 후면 13살이 되는 저 도련님이 해온 업적을 보면, 누구도 13살이라고는 믿지 못할 것이다.

113살이라면 몰라. 113살이라 해도 그 망명은 너무했다.

“그러는 너는 어때? 괜히 들킬 짓 안 했지?”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들키지 않고 움직이는 건 특기라고.”

미행하던 두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용진운의 입지는 카메론에서 매우 위태롭다. 죽은 것으로 처리되어 있기에 아는 사람과 마주치면 농담으로 안 끝난다.

“얼굴이라도 바꾸던가. 맨얼굴로 위험하게 뭐 하는 짓이야.”

변장 기술도 있으면서 맨얼굴로 다니는 게 더 불안했다.

“인상을 흐릿하게 하고 있어서, 자세히 보지 않는 한 알아보지도 못해.”

“어련하시겠어.”

들키면 팽해버리자. 알아서 도망쳤다가 알아서 돌아오겠지. 다행히 용진운과 페이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드란과 카니아 정도다. 드란은 이 일에 한해선 같은 편이니 카니아만 신경 쓰면 된다. 좋아, 버려도 되겠군. 페이는 결심을 다졌다.

“그런데 잘도 이런 유치한 계획을 생각했어.”

용진운이 장난치는 어린애 같은 얼굴로 말했다.

“그 유치한 게 통하니까 또 웃긴 거 아니겠어.”

페이도 같은 얼굴로 맞받았다. 밀서를 흘리고 다니다니 무슨 개그냐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밀서를 그대로 믿는 바보들의 존재도.

꼬맹이 소리 듣기 싫으니 빨리 크고 싶다고 했던 건 취소. 이런 계획이 계속 통한다면 쭉 꼬맹이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 다음 만남은 내일로 할까.”

침대에 걸터앉은 페이가 발을 흔들었다. 마음 같아선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다.

“또 그 카페?”

“갑자기 접선 장소를 바꾸면 이상하잖아? 모르는 사람이 그 편지를 주워도 무슨 단서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땅에 떨어진 편지만 보고 무언가를 깨닫기에는, 편지에 담긴 내용 자체가 너무 적다. 악마의 나무라는 말에서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만, 그게 끝이다.

“그놈들 정체는 좀 알아냈어? 내가 부르기 전까지는 두문불출하더니.”

이 작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하나 있었다. 함정에 걸려든 바보들이 용진운의 존재를 모를 것. 다행히 그놈들의 미행은 학원 안까지 미치지 못했고, 페이와 용진운은 학원 안에서만 만나왔다.

“고작 일주일 가지고 두문불출까지야. 우리 뒤를 캐는 놈들이 있다는 말에 확실히 하고 가자고 한 건 도련님이잖아.”

“괜히 꼬리를 남겼다가 뒤를 밟히면 곤란하니까.”

여기서 뒤란 미궁에 대한 일뿐만이 아니라 페이의 과거에 관한 일까지 포함한다.

7급 용병 페일이 아닌 페리라 상회 상회주의 아들인 페이. 더 나아가 페이 디 아데 브레퓐이라는 신분이 겉으로 드러나면 위험으로 안 끝난다. 제국에서 그림자를 필두로 한 암살자들이 밀어닥친다.

밸론에 정착하며 신분 세탁은 완벽하게 끝냈지만, 세상에 완벽이란 없다.

“나는 그 멍청한 놈들에 대해 좀 더 캐볼게. 내일 그 자리, 그 시간에 다시 보자고 도련님.”

“그 자리, 그 시간에 말이지.”

시간관념이 없는 멍청이라도 늦지 않도록 그 자리, 그 시간에.

두 사람은 사악한 웃음을 나눴다.

***

그때, 그곳, 그 사람. 페이와 용진운은 멍청이라도 알기 쉽도록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서 만났다.

“이 멍청이가...!”

억누른 목소리에서는 주체하지 못한 화가 느껴졌다. 용진운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페이를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페이는 울먹이며 몸을 움츠렸다. 화난 어른을 상대하는 또래 아이 그 자체였다.

“벌은 나중이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전해라.”

“무, 뭐라고 전할까요?”

“내일 새벽. 외곽에 있는 저택이다. 라스란 교수에게 똑바로 전하는 거다.”

은근슬쩍 스트란의 이름을 흘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페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고개를 떨궜다.

“재수 없는 것. 재능 좀 있다고 거뒀더니 이 꼴이군.”

용진운이 거칠게 의자를 밀치며 일어났다. 페이는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눈물로 보이는 물방울 하나가 툭 떨어졌다.

누가 봐도 심하게 혼난 모습.

그런 페이의 모습을 보고 어제와 같이 뒷자리에 앉은 남녀가 수군댔다.

“역시 저 남자가 꼬마를 조종하는 게 맞는 거 같지?”

“거래 장소를 알았으니 꼬마는 필요 없어. 정보부터 전하자.”

“그런데 빌어먹을 저 남자는 대체 정체가 뭐야? 집중해서 봐도 인상을 모르겠어.”

페이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미소 지었다. 고개는 여전히 떨구고 있었다.

***

스트란은 저택에 돌아와 이를 갈고 있었다. 이틀 전 침입자가 남긴 검은 봉투. 거기에는 자신의 비리와 치부가 모두 적혀 있었다. 이틀 후 새벽 방문할 테니 준비하라는 친절한 안내가 덧붙여져 있었다.

스트란은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이 편지를 보낸 놈들이 누군지는 모른다. 그러나 장소가 자신의 저택인 이상 우위는 절대적으로 자신에게 있다.

그는 세상 물정 모르는 놈들을 갈아 마셔버리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경보가 울렸다. 한 방향이 아니다.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려댔다. 그는 혼으로 패턴을 조합하며 조용히 기다렸다.

소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탐지 마법에 걸린 숫자는 20여명. 명백히 살인을 위함이다.

스트란은 참고 또 참았다가 적 대부분이 저택에 발을 들이는 순간 마법을 사용했다.

이틀에 걸쳐 짜낸 정십이면체의 패턴이 저택 자체를 끔찍한 살인 괴물로 만들었다. 저택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안에 들어온 생명체를 난도질했다.

단 한 사람도 살아나가지 못했다.

“멍청한 것들.”

스트란의 잇새로 만족스런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큭큭 웃으며 남은 도망치는 두 명에게 추격 마법을 걸고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긋하게 추격해서 저놈들의 본거지를 몰살시켜버리리라.

대마법사에 가깝다고 불리는 스트란의 몸이 천천히 하늘로 떠올라 추적 마법의 흔적을 따라 날아가기 시작했다.

***

카메론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 사냥꾼들이 쓰는 오두막이 불타올랐다. 그리고 지상에서 지하로 폭격이 떨어졌다.

땅이 울리고 폭음이 퍼지는 광경을 페이와 용진운은 팝콘을 먹으며 구경했다.

지하에서 사람들이 올라와 반격을 시작했다.

“이래서 마법사들은 상대하기 귀찮아. 위에서 펑펑 쏴대면 접근하기 까다롭다니까.”

“허공답보도 할 줄 알면서 엄살은.”

용진운의 불평에 페이가 타박했다.

“도련님이 대마법사랑 붙어본 적이 없어서 그래. 마법사랑 싸울 때 접근하면 이길 것 같지? 대마법사들은 접근해도 힘들어.”

“그나저나 참 잘도 싸운다.”

용진운의 푸념 아닌 푸념을 머리에 새기며 페이는 팝콘을 한 줌 입에 넣었다.

“갓 영단이 된 놈이 두목인 숫자만 많은 조직? 참 뭐라고 해야 할지.......”

-하잘것없지?

부르지도 않았는데 튀어나온 벨이 페이의 팝콘을 하나 들어서 갉아먹기 시작했다. 벨의 체구로 팝콘 하나를 한입에 먹는 건 무리였다. 팝콘 하나도 너무 커 양손으로 들고 있다.

솔직히 조금 귀엽다.

“그래, 무슨 배짱으로 미궁에 들어가냐고 묻고 싶다.”

미행이 어설플 때부터 알아봤는데, 미궁을 둘러싼 조직들 중에서도 저놈들은 숫자로 승부하는 분류인 듯했다. 그러니 언제 올지도 모르는 페이를 기다리며 붉은 지붕의 집 앞에서 죽치고 있는 시간 낭비에 가까운 행위도 가능했겠지.

“우리한테는 잘 됐잖아? 가서 마무리만 하면 되니까.”

용진운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편안한 태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자리에 용진운만 난입해도 바로 정리가 가능하다.

서로 싸워서 힘을 빼준다면 더욱 쉽다.

긴장감을 가지려 해도 가질 수가 없다.

조직의 대장으로 보이는 영단이 나서며 일방적이던 싸움이 조금은 균형이 맞게 되었다. 스트란과 다른 이름 모를 조직의 싸움은 격화되었다가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가자.”

페이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용진운도 먹던 팝콘을 마저 먹고 몸을 일으켰다.

“벨.”

-알았어.

커다란 어둠이 싸움터를 뒤덮었다. 페이는 소모된 혼을 레드 로즈로 채우며 그 장막 안으로 달려갔다.

용진운은 이미 달려가 스트란의 목을 따고 있었다.

다음 날, 마법과 교수 스트란의 죽음과 그의 비리가 밝혀졌다. 그의 시체 주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시체가 함께 있었다. 사람들은 약점을 잡힌 스트란이 그들을 역으로 죽이려다 상잔했다고 추측했다.

진실을 아는 건 두 사람과 한 정령뿐이었다.

***

“해가 보고 싶다........”

미궁 2층의 바닥에 드러누운 페이가 중얼거렸다. 뚫어져라 바라봐도 벽을 투시해 저 위에 있는 태양을 볼 수는 없었다.

-섬광탄이라도 만들어 줄까?

“해가 보고 싶은 거지 실명하고 싶지는 않아.......”

-쯧쯧. 왜 그러게 되도 않는 고집을 부려서는.

“2층을 돌아다니는 거라면 나 혼자서도 가능하니까. 솔직히 루리리랑 같이 싸우면 훈련이 안 되기도 하고.”

루리리가 보조해주고 여차하면 용진운도 있다. 안전을 중시할 생각이긴 하지만, 안전해도 너무 안전했다. 긴장감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헤어졌다.

루리리는 용진운과 같이 보내고, 페이는 혼자 떨어졌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쪽이 더 효율이 좋기도 하다. 페이도 실전 훈련이 되고, 루리리도 안전하게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다.

루리리가 떼쓰는 거에 용진운이 애먹기야 하겠다만 설마 2층에서 용진운의 실력으로 무슨 일이 있으려고. 내 코가 석 자인 상황이다.

저 멀리 있는 하늘, 아니, 미궁 천장을 노려보던 페이가 몸을 일으켰다. 충분히 쉬었다. 다시 움직일 시작이다.

***

페이의 걱정은 조금 다른 의미로 적중했다.

루리리의 외견은 엉망이었다. 금발은 먼지투성이였고, 옷은 여기저기가 해져있었다. 페이가 사준 방어구들이 아니었다면 몇 번이나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위축되기는커녕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었다.

“다음!”

독기 가득한 목소리로 루리리가 소리쳤다.

“쉬지도 않고 5시간째야. 이제 쉴 때도 안 됐어?”

“아직 움직일 수 있어.”

루리리의 고집에 용진운이 고개를 저었다. 3시간 동안 미궁을 움직이며 마수를 일부러 찾아다녔다. 5번 싸웠고, 30마리에 달하는 마수를 루리리 혼자 해치웠다.

숨이 쉽게 진정되지 않고 무릎이 떨리는 것이 누가 봐도 체력이 한계인 것이 보일 정도. 그런데도 저 아가씨는 고집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실전만 무작정한다고 강해지는 게 아니야. 마법과 단법이 따라와야지.”

“마법하고 단법은 학교에서 익힐 거야.”

루리리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이미 모두 계획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그녀의 단호함에 용진운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처음 페이가 따로 다니자고 했을 때 용진운은 이 낙천적인 아가씨를 자기가 끌고 다니는 그림을 예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 항상 루리리가 먼저 움직였고, 그 행동력에 용진운이 끌려다니고 있다.

말린다고 듣지도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은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게 해주었다.

-페이랑 같이 싸우고 싶어!

아주 직설적인 대답. 그러나 그걸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면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이 순간에도 두 사람 사이의 실력 차는 착실히 벌어지고 있을 것이기에.

‘그래도 방법이 없지는 않지.’

그렇다고 마냥 방법이 없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 : 겨우 12살 짜리가 뭘 알겠어.

야, 안 돼. 걔 12살 아닐지도(환생까지 합치면) 몰라!

9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