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born as a Son of Villain

< -- Hiro is a Hiro. -->

가르시안은 규모만 따지면 카메론보다 작지만, 항구 도시 특유의 바다 냄새와 강인한 분위기는 호기심 많은 청년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텐은 마차에 내려서도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살피기 바빴고, 메르비는 옆에서 그 모습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봤다.

페이는 잠깐은 놔두기로 했다. 자신도 처음 밸론에 도착해 항구 도시 특유의 공기를 마셨을 때는 며칠 동안 뽈뽈 돌아다닌 기억이 있다.

저 앞에서 꼬마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근처에 오기도 전에 손을 앞으로 뻗고 준비하고 있는 게 아텐을 제대로 호구로 본 모양이었다.

아텐과 꼬마가 충돌했고, 그 순간 아텐이 꼬마를 잡아다 땅에 내리꽂았다. 꼬마의 입에서 피가 튀었다.

“...?”

아텐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한 지도 모르는 것 같다. 페이는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저 꼬마의 실력이 너무 뛰어났다. 슬쩍 품으로 들어오는 손길을 공격으로 생각하고 감각도가 반응한 것이 분명하다.

실전 같은 훈련과 실전을 반복해왔으니 힘 조절 같은 걸 가르칠 시간도 없었고. 가르칠 필요도 사실 못 느꼈다. 이 일도 엄밀히 따지면 저 꼬마가 죽을 짓을 했다.

아텐이 입고 있는 옷은 값싼 게 아니다. 부호나 귀족을 털려고 하다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놈들이나 하는 짓이다.

“오빠?!”

경악하는 메르비를 밀치고 페이는 꼬마에게 다가가 입에 포션을 물렸다. 다 죽어가던 꼬마의 얼굴에 안색이 조금씩 돌아왔다.

페이가 회복되는 꼬마보다 안색이 창백해진 아텐의 등을 두드렸다.

“주머니는 멀쩡하냐?”

“아!”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아텐이 품에 있는 아공간 주머니를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이 꼬마가 잘못한 거야. 야, 애새끼. 기절한 척하는 거 다 알 거든? 좋은 말 할 때 그냥 꺼져라. 니가 먹은 포션이 얼마짜린 줄 알아? 그거 몸으로 갚게 해줘?”

험악한 페이의 말에 꼬마가 냉큼 일어나 길 저쪽으로 사라졌다.

“사부님, 그건 완전 악당인데요.”

아텐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꼬마가 한 일에 비하면 지나치게 자비로운 처사인데, 저 대사가 전부 망치고 있다. 전투에 쓸 장비가 있는 아공간 주머니. 장비는 모두 북극성 상회에서 지원받은 것이다. 도둑맞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섬뜩했다.

“나였으면 그대로 죽게 놔뒀다. 너 때문에 살려준 거야.”

“아........”

아텐은 페이가 무엇을 신경 써줬는지 알았다. 그리고 페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본능적인 반응이라곤 하나 의도하지 않게 사람을 죽였다면 상당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설령 저 꼬마가 한 짓이 객관적으로 죽을만한 짓이라고 해도 말이다.

“저기... 이건 무슨 일이야?”

아텐이 소매치기를 죽이나 싶더니 페이가 살려주더니 겁줘서 쫓아 보내고, 아텐이 페이에게 인사한다. 메르비는 이게 무슨 일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작은 소요가 지나가고 세 사람은 항구로 향했다.

아텐과 페이가 탈 배는 중간 크기의 범선이었다. 항해 일정은 편도 3주. 왕복 6주. 한 달 반에 달하는 일정이다.

“아가씨.”

험악하게 생긴 뱃사람 사이에서 비교적 온화한 아저씨가 메르비를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출발은 모레 맞죠?”

“맞습니다만, 아가씨. 다시 생각해 주시죠. 요즘 바다가 흉흉합니다. 배가 계속 가라앉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오히려 거기 한 손 거들기 위해 타는 거예요.”

“살아남은 사람이 없으니 해적인지 마수인지 알 방법도 없습니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그는 끙. 소리를 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물러갔다.

“그냥 너는 남는 게 어때?”

“어떻게 오빠만 위험한 곳에 보내요. 저도 가게 해주세요.”

잘들 논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과 루리리를 보는 아텐이 이런 심정이었다고 생각하니 마냥 웃을 수는 없는 페이였다.

***

배가 출항했다. 페이는 5년 만에 나온 바다 공기를 만끽했고 바다에 처음 나오는, 초보 뱃사람 두 명은 뱃멀미에 걸려 죽상을 하고 난간에 늘어져 있었다.

“배가 익숙해 보이시는군요.”

도착한 날에 본 온화한 아저씨, 벨토르라고 자신을 소개한 머룬 상회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머룬 상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머룬 후작가가 출자해 설립한 상회다.

“몇 번 바다에 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큰 배를 타는 건 처음이지만.”

페이는 웃으며 대응했다. 굳이 바다에 살았다는 이야기까지 해줄 필요는 없지. 사소한 말실수가 산을 태우는 산불로 번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침몰에 대한 소문 같은 건 있습니까?”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생존자가 없어서 말이죠.”

“무역선에는 단법사와 마법사도 태우는데 그게 말이나 됩니까? 살아남았다가 근처 배에 구조 요청하는 게 보통으로 아는데요?”

“아마 술집에서 들은 것 이상의 정보는 얻기 힘드실 겁니다.”

“그렇군요.”

자신이 발품 팔며 정보를 모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벨토르의 말에 페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상대할 사람은 아니다.

떠보는 건 관두고, 화제를 돌렸다.

“짐작 가는 부분은 있습니까?”

“마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적이라면 항해사와 선장의 몸값이 얼마인지 모를 리가 없으니까요.”

무역에는 숙련된 항해사와 선장은 항해의 성공을 좌우한다. 그걸 아는 해적들도 배를 나포한다고 사람을 막 죽이지는 않는다. 지나친 학살은 악명을 높이고, 높은 악명은 높은 현상금과 수많은 토벌대를 부른다.

해적이라도 속된 말로 유도리 있게 살아야 한다.

“그러니까 마수라는 거군요. 대형 범선도 침몰시키며 생존자를 한 명도 남기지 않는.”

“솔직히 믿기지 않는 일이죠.”

벨토르가 장난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진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가보겠습니다. 하고 벨토르가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페이는 신나게 토악질을 하고 있는 아텐에게 다가갔다.

“어... 사부님. 우엑.”

“그런데 너희 둘 언제부터 아는 사이냐?”

“제가 1학년 입학했을 때부터요.”

“호오?”

페이가 아텐의 옆에 축 늘어진 메르비를 보았다.

“그러니까 이놈이 1학년 때부터 침 발라 놓으셨다?”

누가 주인공 아니랄까봐 아텐의 외모 묘사에는 잘생긴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간다.

아니나 다를까 메르비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귀가 빨개져 있었다.

“그냥 메르비는 1학년에 적응하지 못하는 저를.......”

“그게 침 발라놨다고 하는 거야.”

마법과의 단법과 멸시가 얼마나 심한지 아는 페이로서는 외모 하나로 그걸 극복한 아텐이 신기할 따름이다. 아니면, 인연이나 흐름이라는 걸까.

두 사람의 성격이 낳은 필연일지도.

밀레스 사가라는 세상을 깨닫고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운명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아텐과 메르비 사이에 묘한 공기가 흘렀다. 메르비가 페이에게 원망하는 눈길을 보냈지만, 페이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분위기도 좋은데 둘이 잘 해보라지. 재정 문제만 해결하면 머룬 후작가는 든든한 뒷배가 된다.

이미 반쯤 넘어온 것 같으니 이참에 완전히 꼬셔버려도 좋다.

운이 좋으면 둘 사이를 좁혀줄 이벤트도 일어날 테고.

***

항해 시작 일주일 째. 육지가 보이지 않게 된 지는 오래됐고, 배는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다. 사실 그렇게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

방향을 틀어 이틀이면 가까운 육지에 정박할 수 있다. 다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바다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배가 가라앉는데 이틀이면 충분하다.

육지와 가깝다 해도, 그게 한달음에 닿을 거리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으니 그냥 망망대해에 떠 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페이는 한가로이 바다를 구경하고 있었다.

‘드라이크가 그립다.’

드라이크는 신수 수룡. 물속이야말로 그의 영역이다. 바다의 마수는 다스 단위로 몰려와도 상대도 안 될 건데. 배를 끌어달라고 하면 목적지까지도 순식간에 도착할 거고.

쩔을 못 받으니 몸이 고생이다.

-파트너. 왔다.

바닷속에 있는 벨에게서 신호가 왔다. 페이는 알람 마법을 발동했다.

삐이이잉! 귀 따가운 소리가 갑판을 때리고 배 전체를 울렸다.

“무, 뭐야?!”

“습격인가!”

갑판 위로 차례차례 사람들이 올라왔다. 그중에는 아텐과 메르비도 있었다.

“아텐, 장비 갖춰 입어. 풀세팅. 바다에서 마수가 온다.”

아텐이 군말 않고 아공간에서 장비를 꺼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상 기초적인 장비는 차고 있지만, 북극성 상회에서 전폭적인 지원으로 받아낸 장비는 겨우 저 정도가 아니다.

갑옷부터 아대와 각반까지 모두 범상한 것이 없었다. 화룡점정은 검이었다.

1층 비밀의 방에서 얻은 고서, 3층에서 얻은 마법서. 그리고 2층에서 얻은 2개의 기연, 그중 하나.

붉은색 마법검. 혼을 주입하면 검기에 불이 붙게 해주며 절삭력도 극대화시켜주는 아티팩트다.

장비를 바닥에 꺼낸 아텐이 마법을 사용했다. 장비들이 떠올라 아텐의 몸에 착착 달라붙었다. 모든 장비를 장착한 아텐은 전쟁터에 나가기 직전의 젊은 장군처럼 패기가 넘쳤다.

“다른 것들도 다 가지고 있지?”

페이가 아텐에게 준 것들은 저걸로 끝이 아니다. 만약을 위해 준비한 아티팩트와 스크롤이 저 안에 넘쳐난다.

그걸 모두 사용하면 인단도 아텐 앞에서 개기지 못한다. 간단히 말해 템빨이다.

“네.”

“그럼 네가 마수를 상대해.”

전생의 아텐은 머룬 후작가에 왔을 때 이미 인단이었지만, 지금의 아텐은 마법도 익히고 있으며 고급 장비로 무장하고 있다. 무력으로 따지면 크게 밀리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은요?”

“내가 나서면 네 훈련이 안 되잖아. 아니면, 하나부터 열까지 나한테 끌려다닐래?”

“아뇨. 제가 해보고 싶습니다.”

아텐이 힘주어 말했다. 페이는 아텐에게 맡긴다는 의미로 난간에서 물러나 갑판 중앙으로 나왔다.

“사망자는 안 나올 테니까, 마음껏 날뛰어.”

그 말이 끝남과 함께.

쾅! 배 뒤쪽 바다가 폭발하며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쳤다. 지느러미였다. 거대한 지느러미가 배를 양단할 듯이 아래로 내려왔다.

“흐압!”

아텐이 뛰어나가 검으로 지느러미를 쳐냈다. 지느러미가 배 옆으로 떨어져 바다와 충돌하며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파트너, 배 아래를 노리는데?

-그쪽은 부탁해.

-라져.

쿠웅! 아래쪽에서 굉음이 울렸지만 배에는 아무 충격도 없었다. 몇 번 굉음이 반복되고, 다시 지느러미가 바다 위로 올라왔다.

마수의 특성을 이해한 아텐은 마수에게 대응하기 위해 여러 스크롤을 중첩해서 사용하던 중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갔다 와.”

아텐이 바다로 뛰어들었고, 선원들이 모두 난간으로 뛰어나가 바다 아래를 보았다. 큰 그림자와 작은 그림자 한 쌍이 바다 아래를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바다라는 환경에 단법사들은 전투력이 깎이고, 저 마수는 마법 내성이 뛰어나 마법도 잘 통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몸은 단단하며, 긴 지느러미를 무기 대신 사용하기까지 한다.

물속에서 싸우기 위한 무술을 전문적으로 익힌 단법사도 있지만, 그런 사람이라도 장비도 못 챙긴 상황에서 기습으로 배가 파괴되고 싸우기 시작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놈이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생존자가 없어도 이상하지 않다. 육지로 가는 통로를 막아버리면 바다 위를 표류하다 죽는 수밖에 없다.

페이는 벨과 시각을 공유해 아텐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스크롤로 버프를 받은 아텐은 능숙하게 괴물의 공격을 피하고 쳐내며 마수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불시의 기습에서 시작된 전략적 행동이 무서운 거지 마수 자체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 18살의 아텐과 루리리가 힘을 합쳐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을 정도다.

사투를 벌이던 아텐이 기어이 마수의 머리에 검을 꽂았다.

마수 사건은 일단락되고, 아텐이 마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들고 오는 것으로 뒷배를 캐낼 단서가 나타난다. 이게 밀레스 사가의 흐름이다.

그런데 하나가 다르다.

-음, 파트너. 한 마리 더 오는데?

짧은 전투로 아텐은 지쳐있다. 도저히 한 마리 더 상대할 상태가 아니다.

‘이것도 나비 효과인가?’

짧은 한숨과 함께 페이는 배 아래로 뛰어내렸다.

========== 작품 후기 ==========

추천의 시간입니다. 모두 추천 한번씩!

99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