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born as a Son of Villain

< -- Mountaineering. -->

상당수의 마수가 정리되었다. 아군 피해는 거의 없다. 정기 행사처럼 덮쳐오는 마수들을 상대로 매번 피해를 낸다면 마수의 산은 마수의 평원, 마수의 나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것이다.

페이는 마무리에는 끼어들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서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살폈다. 거물들은 전부 정리했고, 병사와 초급 용병들이 자기 몫을 챙기고 있었다.

페이 같은 사람이 나서 잔챙이까지 정리해버리면 아랫사람들에게 미움받는다.

싸우는 사람이 정말 죽을 위기라면 모를까 남의 싸움에 끼어드는 건 그 사람의 수입을 빼앗는 것이다. 함께 싸워 함께 적을 물리친다는 기본적인 전술을 생각하면 동떨어진 가치관이지만, 자기가 죽인 마수의 부산물만을 가질 수 있다는 최전방 요새의 규칙을 생각하면 합리적이다.

싸움은 좆밥 싸움이 제일 재밌다던가. 어설픈 움직임으로 병사들이 마수를 상대하는 것을 보면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그걸 막으면 안 되지! 거기선 좀 더 깊숙이!

입밖에 나진 않고 훈수를 두던 페이의 귀로 낮고 둔중한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 산에서 들리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페이와 거의 비슷하게, 마르코라는 이름을 가진 용병이 변화를 알아챘다. 그는 영단의 단법사로 실전을 위해 최전방 요새에 있는 사람이었다.

“뭔가 온다.”

나직한 그의 말에 싸움을 끝내고 마수의 사체를 수거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손을 멈추고 무기를 들었다.

이윽고 소리는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다.

쿵쿵쿵. 발자국 소리로 들리는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땅이 작게 울렸고, 나무가 쓰러졌다.

모습을 드러낸 무언가는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칫! 1급 산귀(山鬼)다!”

마르코가 혀를 찼고, 비교적 전투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꽁지가 빠져라 달아났다. 1급. 영단의 단법사도 자칫하면 위험할 수 있는 상대를 뜻한다. 괜한 욕심으로 자리에 있다간 비명횡사하는 수가 있었다.

페이를 포함해 다섯이 자리에 남았다.

“페삼. 죽지 마라.”

“사냥꾼이 이런 데서 죽겠냐. 너희 다 죽어도 난 산다.”

“그래, 그놈 걱정하기보단 자기 걱정부터 하는 게 어때. 설.”

“하, 내가 죽을 상황이면 여기 있는 놈들은 다 죽어.”

남들보다 머리 두 개는 큰 근육질의 대머리 남자가 설이었고, 옆에서 그에게 타박 주는 사람이 대마법사인 이윤선이었다.

“놀고 있지 마라. 산귀라는 것들은 지능이 높다.”

구부정한 노인이 가래 낀 목소리로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20년 넘게 마수의 산에 살고 있는 노인으로 이름은 알렉. 단법사였다.

다섯이 산귀를 둘러쌌다. 산귀는 다섯이 발하는 살기에 움직이지 못하고 눈동자만 굴렸다.

마르코가 페이에게 말했다.

“우리끼리 충분할 것 같은데, 넌 빠지는 게 어때?”

“누가 다치면 난 공작에게 달려갈 거야. 그리고 너 때문이라고 일러바칠 거고.”

“치사한 놈.”

마르코는 악의 없는 욕설을 뱉으며 산귀에게 눈을 고정했다. 페이는 그가 이러는 이유를 알았다. 페이가 잡은 마수는 대부분 가죽이 타거나 장기가 익어 팔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상태가 된다.

돈을 벌기 위해 여기 있는 마르코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설이 알렉에게 물었다.

“영감, 뭘 하면 돼?”

“덩어리 넌 가서 고기방패나 해. 이윤선은 방어 마법을 철저히 두르고.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

알렉의 지휘 같지 않은 지휘에 넷이 움직였다.

고함을 지르며 설이 산귀에게 달려들었고, 산귀와 설, 두 거한의 주먹이 충돌했다.

콰앙! 지면에 금이 가며 파편이 튀어 올랐다. 설은 영단으로 가는 벽에 막힌 단법사였다. 그의 특기는 힘. 힘 하나는 영단의 단법사와도 비견되었다.

설과 산귀의 주먹이 충동할 때마다 내장을 울리는 충격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러는 사이 마르코가 산귀의 등을 찔렀고, 겉모습에 맞지 않게 날렵한 동작으로 땅을 기듯 달려간 알렉이 산귀의 발목 인대를 끊어놓았다. 산귀는 그걸로 쓰러지지 않았다. 산귀가 마수로 불리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놈들은 인간과 근본부터가 달랐다.

“크아아!”

포효와 함께 산귀가 팔을 떨쳐냈다. 거대한 힘이 사방으로 퍼졌고, 설이 뒤뚱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산귀는 일행 중 가장 약해 보이는 알렉을 노렸다.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한 전형적인 실수였다. 알렉은 이들 중 가장 노련하고 경험 많은 맹호였다.

아름드리나무도 박살 내버릴 주먹을 허리를 뒤로 숙여 피하며, 알렉은 산귀의 팔에 올라탔다. 그리고 팔의 상박과 하박을 팔과 다리로 고정하고, 허리에 힘을 주었다.

“읏차.”

긴장감이 전혀 없는 기합. 그러나 그 기합은 산귀의 팔꿈치 관절을 박살 냈다. 산귀는 포효와 함께 어깨를 움직여 알렉을 떨쳐냈다. 알렉은 사뿐히 땅에 착지해 끌끌 혀를 찼다.

그 뒤로는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설의 주먹이 산귀의 몸에 꽂히고, 알렉과 마르코의 검이 산귀의 급소를 파고들었다.

세 사람에게 실컷 얻어맞던 산귀가 목청껏 포효했다. 설을 덮치는 척하다가, 방향을 바꿔 페이에게로 달려들었다.

산귀는 파악했다. 셋은 하나하나가 자신과 비슷한 놈들이고, 다른 하나는 몸에 겹겹이 이상한 것을 두르고 있다. 그나마 만만한 게 저놈이었다.

걷는 것만으로 나무가 쓰러지는 산귀의 덩치 앞에 페이는 어른 앞의 어린애와 같았다. 그러나 누구도 페이를 걱정하지 않았다.

“쯧. 가죽을 건지기는 글렀군.”

마르코가 혀를 찼고, 산귀의 발아래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강철도 우습게 녹일 불꽃이 산귀의 살을 태웠고, 코와 입을 타고 들어간 열기가 기도와 폐를 익혔다.

세 명의 단법사와 싸우며 힘을 소모한 산귀가 버틸 수 있는 열기가 아니었다. 한참이나 타오르던 불꽃이 사라지고, 검게 탄 산귀가 앞으로 쓰러졌다.

“언제 봐도 무시무시한 화력이야.”

고개를 저으며 산귀에게 다가간 이윤선이 산귀의 사체에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산귀의 손이 빛살처럼 뻗어지며 이윤선의 목을 노렸다.

챙! 방어 마법 하나가 깨어지며 충격을 받은 이윤선이 뒤로 물러났다.

“썅것이!”

욕설을 내뱉으며 그가 손으로 가리키자 튀어나간 번개가 산귀의 몸을 지졌다. 엎어진 산귀의 몸이 덜덜 발작했다.

“그러게 방어 마법을 펼쳐두라 했지.”

걸걸한 목소리로 걸어 온 알렉이 산귀의 맥을 짚었다.

“죽었다. 쯧. 가죽은커녕 장기도 못 건지겠군. 덩치 들어라.”

“왜 맨날 나한테 지랄이야.”

불평하면서도 설은 산귀의 사체를 가뿐히 어깨에 짊어졌다.

산귀의 시체를 최전방 요새에 가져가, 마탑에서 산을 치르면 오늘 일도 끝난다. 그리 됐어야 했다.

페이의 어깨에 앉아 있던 벨이 죽은 산귀에게 날아갔다.

“뭐야, 아가씨도 이놈한테 관심 있어?”

설의 말을 무시하며 벨은 산귀의 사체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바로 페이에게 말을 걸었다.

-큭큭. 파트너. 일이 재미있게 됐어.

벨이 저렇게 웃을 땐 대체로 일이 꼬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랬다.

-어둠의 씨앗이라는 거, 마수의 몸에도 들어가는 거였구나.

페이에게 날아온 벨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손을 펼쳐 보였다. 손안에는 어둠이라고 밖에 표현되지 않는 검정 덩어리가 들려 있었다.

벨이 손을 꾹 쥐었다가 펴자 어둠의 씨앗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벨이 만족했다는 듯 배를 쓰다듬었다.

-파트너의 성장도 멈췄는데, 오랜만의 포식이었어.

페이가 벨에게 무어라 말하려 하는데, 요새로 내려가던 설이 페이를 불렀다.

“뭐해? 안 올 거야?”

“간다, 가.”

다섯 사람은 아래에 보이는 거대한 요새를 향했다. 산귀의 출현에 아래로 내뺐던 사람들이 그들과 교대하듯 위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가며 페이와 벨은 대화를 나눴다.

-산귀의 몸에 어둠의 씨앗이 있었다고?

-보여줬잖아?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벨이 보여준 어둠의 씨앗을 보면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일이 엄청 귀찮아질 것 같은 느낌인데.

페이가 확인한 어둠의 씨앗의 가능성은 3개. 남에게 힘을 보태주는 것. 발아해 숙주의 힘을 키우는 것. 또 새로운 능력을 개화하는 것이다.

이것만 해도 성가신데 생물, 마수에게도 어둠의 씨앗을 넣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일이 수십 배는 더 귀찮아질 것 같다.

독심술을 쓰는 마수라거나. 통상의 마수보다 수십 배는 더 강한 마수라거나.

-나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아져서 좋긴 한데. 어쩔 거야?

-좀 더 여기 있어 봐야지.

어둠의 씨앗이란 미지의 물건에 대한 정보 자체가 없다. 한 번 있었던 일이 두 번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검은 형제단에서도 별다른 정보가 들어오지 않고 있는 이상 저 산귀의 사체가 어둠의 씨앗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단서인 셈이다.

-찬성.

페이의 머리를 타고 놀며 벨이 대답했다.

***

일행은 마수의 숲에서 내려오는 마수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최전방의 요새. 일명 최전방 요새에 도착했다.

“나는 정산부터 할 생각인데. 아니라면 그거 내놔.”

“자, 가져가라 이 돈 귀신아.”

설이 마르코에게 산귀의 사체를 던졌고, 마르코는 그걸 받아들었다.

“정산금은 언제나처럼.”

그 말을 끝으로 마르코는 마탑으로 향했다.

“어쩔 텐가?”

알렉이 물었다.

“우리야 다음까지 밥이나 축내야지.”

다음에 마수가 습격해올 때까지 수련을 하겠다는 설과 이

윤선의 간접적인 표현이었다. 알렉이 페이에게 어쩔 거냐는 눈빛을 보냈다.

“영감님은 공작님과?”

“그럴 생각이다.”

“같이 갑시다. 보고도 해야 하고.”

“그럼 가자.”

알렉과 페이는 성으로 가는 길을 나란히 걸었다. 둘은 최전방 요새에서 공작에게 인정받은 사냥꾼이었다.

사냥꾼. 동물을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지만, 최전방 요새에서 그 의미는 같으면서 달랐다.

공작에게 인정받은 사냥꾼이란 마수의 산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사냥꾼을 자처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중에 진짜 사냥꾼이라 인정받은 사람은 둘뿐이었다. 사냥꾼은 최전방 요새에서 준귀족 대우를 받으며 여러 혜택을 누렸다.

대신, 마수의 산을 수시로 정찰하고 그 동향을 보고해야 하는 의무도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공작과 바로 만날 수 있었다.

“알렉 영감과 페삼인가.”

날선 얼굴에 정감 있는 눈매를 하고 있는 산체 공작이 말했다. 부드럽고 용맹한 산체. 그게 바로 산체 공작의 이름이었다. 산악 부족이 주축으로 만들어진 테진 왕국은 산악국이라고도 불리며 외교를 위해 귀족제를 따왔지만 내부로는 산악 부족 특유의 풍습을 유지하고 있는 등, 여러모로 독특한 국가였다.

공작이라는 작위도 마수의 산을 지키는 그에게 왕이 내려준 명예직 정도에 불과했다. 명예직이라고 권한이 적은 건 결코 아니었지만.

“요즘 산은 어떻지?”

“마수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영감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두 사냥꾼의 의견이 일치했다. 산체 공작이 미간을 좁혔다.

“어떤 식으로?”

“성난 바람이 지상에 몰아칠 것 같다.”

부족민들 특유의 표현으로 알렉이 상황을 설명했다. 알렉은 테진 출신은 아니었지만, 테진에 거의 평생을 테진에서 지내온 사람이었다.

“영감님이 저렇게 말하면 저도 말을 맞춰야죠. 산들바람이 성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미풍.”

“두 사냥꾼의 의견이 똑같은가.......”

“대대적인 마수의 이동이 있을 수 있다.”

알렉이 말했다. 사냥꾼으로서의 경험이 적은 페이는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산이 심상치 않다는 것만 알았다.

“더욱 주의를 부탁하지. 저녁을 먹고 갈 텐가?”

“사양하겠다.”

“저도 바로 산으로 들어가 봐야 해서.”

산체 공작은 두 사람을 잡지 않았다. 대신 페이에게 한 마디 던졌다.

“사냥꾼 페삼. 그 제안은 아직 받아들일 생각이 없나?”

“아쉽게도 없습니다.”

“언제든 환영하겠다. 느긋하게 생각해보도록. 산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에 말이야.”

죽기 전에 생각해보라는 말이었다. 사냥꾼이라 인정받고 산을 드나들고 있지만, 마수의 산은 녹록한 장소가 아니었다. 대답을 내리기 전에는 죽지 말라는 공작 나름의 인사였다.

“그러도록 하죠.”

성을 나온 페이는 요새에서 간단하게 먹을 것과 일회용품들을 보충하고, 마수의 산을 올랐다.

12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