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on Blood Earl Riccianne

Chapter 2. Inclusion (5)

아쉬운 표정을 짓는 라이너스를 보며 리카이엔이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라이너스의 어깨를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원래 훌륭한 남자가 되려면 어쩔 수 없이 참아야 되는 일도 있는 법이랍니다. 라이 님의 부모님 때문만이 아니라도, 지금 저는 아주 급한 일이 있습니다. 오래 머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지요. 대신, 일이 끝나면 찾아와서 오랫동안 지내다가 가겠습니다.”

라이너스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그리고 씩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대신 나중에 놀러 오면 라이하고 오래 놀아줘야 돼요!”

“알겠습니다. 대신 라이 님께서도 훌륭한 남자가 되서 제로니 님과 부모님을 잘 지켜 주셔야 합니다. 그럼 약속한다는 의미로 악수할까요?”

리카이엔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라이가 재빨리 리카이엔의 손을 맞잡았다.

“알았어요. 약속할게요.”

“하하, 네.”

“근데 리크 형 손바닥이 되게 딱딱해요.”

“수련의 결과입니다. 훌륭한 남자가 되려면 절대 수련을 게을리하면 안 되거든요.”

“헤에, 그럼 리크 형은 훌륭한 남자네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고 노력 중이랍니다.”

“응, 알았어요!”

그 대화를 끝으로 리카이엔과 카이스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조엘은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씁쓸한 것 같기도 한 표정을 지으며 제로니, 라이너스와 함께 저택으로 걸어갔다. 슬쩍 보니 조엘을 보는 제로니의 얼굴이 원래보다 한층 더 부드러워져 있었다.

***

“흐음, 여기인가?”

카이스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사방이 절벽으로 둥그렇게 둘러싸여 있는 커다란 분지 안이었다. 거대한 원통의 내부와 같은 지형이었다. 외부에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길은 철저하게 숨겨져 있기에, 들어오려면 절벽을 타고 내려와야 하는 곳.

아트룸 길드의 수십 은거지 중 하나였다.

“괜찮네요. 여기라면 절대 못 찾을 것 같은데요?”

프리엘라의 말이었다.

그리고 함께 온 테하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버르장머리 저놈이 이상하게도 친구 복이 있는 것 같단 말이야.”

그리고 리카이엔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상한 게 아니고 당연한 거요. 나 정도 되면 친구들도 원래 능력이 좋은 법이거든.”

“쯧쯧, 자기가 되게 잘난 줄 아는 버르장머리 같으니라고.”

“크흐흐, 아무튼 조엘. 잘도 이런 곳에다가 은거지를 만들어 놨구나.”

그 말에 조엘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후후, 내가 좀 대단하기는 하잖냐.”

“큼, 뭐 그렇다고 인정해 주마.”

“저 자식, 말하는 거 하고는. 아무튼 이제부터 한동안은 조용히 지내야겠구나.”

“그래야지. 뭐 좀 준비할 것도 있고.”

리카이엔의 말에 조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준비는 밖에서 하는 거 아니냐? 넌 그냥 여기서 시간이나 죽이는 게 전부잖아.”

하지만 리카이엔은 고개를 저었다.

“가만히 있는다고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수련이나 해야지.”

“헉! 수련? 지금 니 수준에서 또 수련할 게 남아 있냐?”

조엘이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항상 티격태격하지만 리카이엔의 실력에 대해서 만큼은 인정하고 있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리카이엔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상대해야 될 놈들이 괴물이니,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수준이 되어 줘야지.”

원래부터 그럴 작정으로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외부에서의 준비는 따로 지시를 해 두었으니, 더 이상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수련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 리카이엔이 슬쩍 테하스를 향해 말했다.

“할망구가 좀 도와주쇼.”

“뭐? 내가?”

“할망구도 한 번 겪은 적 있지 않소? 그걸 좀 제대로 써먹어 봐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아, 그것 말이구나.”

테하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바로 임페티스 폭포에서 싸울 때 갑자기 튀어 나왔던 기묘한 힘이었다. 당시 혼향을 느끼며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정복전쟁 당시 로바인 후작, 지금은 승작하여 기병 장관이 된 로바인 공작이 리카이엔에게 묘한 기운이 섞여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리카이엔은 그때부터 그 힘을 끌어 올릴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테하스가 그것을 도와줄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그래, 그건 한 번 해 봐야겠구나.”

“크흐흐, 고맙수. 그럼 오늘부터 죽었다고 생각해야겠구만. 어, 카이스 너도 마찬가지다. 괜히 딴청 피우지 마.”

순간 괜히 먼산을 보고 있던 카이스가 뜨끔한 표정으로 외쳤다.

“내, 내가 왜?!”

“넌 그놈들하고 안 싸울 거냐?”

“그, 그런 건 아니지만!”

“잔말 말고 해!”

Chapter 3. 1년 후 (1)

“놈들은?”

두 눈에 잔뜩 살기를 머금은 채 묻는 크로한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는 달리 꽤나 신경질적이고 조급한 감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크로한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세 사람 중 가장 오른쪽에 있던 로반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크로한이 이런 감정을 보일 때 그 앞에 있는 이들이 어떻게 죽어 갔는지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요, 용서를!”

다른 말은 생각나지도 않았다. 아니, 사실 그 말조차 할 필요가 없었다. 어떤 말을 하든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한 자는 온몸이 완전히 짜부라져 한 줌의 먼지가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저벅!

귓가에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묵직한 발소리에 로반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반항을 한다거나, 기습을 해 이 자리를 벗어나겠다는 따위의 일은 생각도 할 수 없다. 그래 봐야 더욱더 처절한 고통 속에서 죽어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끄윽!’

소리도 없이 짙은 신음을 집어 삼킨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더욱더 몸을 웅크린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더욱더 고개를 조아리고 몸을 웅크린 채, 크로한이 잠깐의 변덕으로 자신을 살려 주기로 마음먹기를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찰나의 시간이 영겁보다 길게 느껴졌다. 이대로 숨을 쉬는 것을 잊어 질식해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로반의 머리를 스칠 쯤이었다.

“마지막이다.”

크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이제 곧 죽을 인간에게 말을 하는 비효율적인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다시 말해 죽이지 않겠다는 의미. 로반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아주 잠깐의 변덕이 생긴 것이었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쿠웅!

참았던 숨을 토해낼 겨를도 없이 로반이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외쳤다.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바닥을 찧은 이마에 뜨뜻한 무언가가 흘렀지만 고개를 들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크로한이 또 한 번 변덕을 부리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의 변덕은 없는지 크로한의 시선은 두 번째 부복하고 있는 이에게로 옮겨 갔다.

“아론, 진행은?”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습니다.”

“황제는?”

“예, 그것이 최근 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에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묘한 움직임?”

“묘하다기 보다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아주 난잡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난잡?”

크로한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밤마다 서너 명의 여자들을 침실로 불러들인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이더냐?”

크로한이 불신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국의 크리온테스 황제는 독선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이기는 하지만, 주색을 즐기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난잡한 생활을 하고 있다니 생각도 해 보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낮에는 정상0적으로 정사를 보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밤만 되면 술과 여자에 빠져 지내고 있습니다.”

아론의 대답을 들은 크로한의 얼굴에는 짙은 의구심이 떠올랐다.

“그 붉은 머리의 황제가 여자라…….”

사람의 행동이 변하는 이유는 생각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의 변화라는 것은 꼭 눈에 보이는 방향으로만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장본인이 그로니스 제국의 크리온테스 황제라면 더욱더 의심을 해 봐야 했다.

‘무얼 숨기려는 거지?’

그런 크로한의 생각을 읽었는지 아론이 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그렇지 않아도 뭔가를 감추기 위한 연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깊이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도 놓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파헤쳐라.”

“명심하겠습니다!”

아론의 대답이 끝나고 크로한의 시선은 가장 끝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로 향했다.

“루디아, 브렌 왕국쪽은?”

잔뜩 움츠리고 있던 루디아가 부르르 어깨를 떨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것이…….”

“문제가 있느냐?”

“다름이 아니라, 폴덴바인 백작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폴덴바인? 리몬 백작의 세력을 그대로 흡수했던 폴덴바인 백작을 말하는 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그가 무슨 문제라도?”

“최근 들어 우리쪽에 포섭된 귀족들의 움직임에 상당한 견제를 가하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실력 행사라도 할 기세입니다. 그 탓에 움직이기가 조심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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