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ac

Quartermaster of Quantum Entrance (1)

“보충 병력이라고 온 게 이 애들이라고?”

“……예.”

“우리 중대가 그래도 꽤 정예군 아니었나? 쪽발이 놈들한테 나름 유명하지 않아? 취재도 나오고 그랬는데?”

“그래서 이 정도 인원이라도 배정받은 겁니다. 다른 부대는 대대 통틀어 한두 명이 다인 곳도 있습니다.”

“미치겠군.”

준영은 혀를 차며 군복조차 입지 못한, 아무리 높게 쳐도 중 3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애들을 바라보았다. 두려운지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보는 애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학도병이라니……. 보나 마나 인근에서 총 들 수 있는 남자란 남자는 죄다 강제징집해서 끌고 왔을 게 뻔했다. 저 애들 중 과연 지원해서 온 애들은 몇 명이나 되려나.

준영은 불쾌한 듯 가래침을 한번 내뱉곤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이미 피난민들이 다녀갔는지 깨끗하게 털린 슈퍼에서 간신히 건진 담배였다.

“헤헤, 중대장님…….”

1소대장인 민원후 병장이 손바닥을 비비며 자신을 부르자 준영은 민원후 병장에게 담뱃갑째 던져 주었다. 이미 보급이 끊긴 지 오래였다. 모든 것은 자체 조달로, 식량과 의복마저 근처 민가와 가게를 털어야 했다.

“오! 잘 피우겠습니다!”

“꼬불치지 말고 소대 애들이랑 마지막 순간에 나눠 피워라.”

마지막이라는 준영의 말에 민원후 병장은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이내 다시 웃음 지었다.

“마지막입니까?”

준영은 턱으로 지원병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애들 데리고 싸우라는 윗대가리들밖에 안 남았어. 더 이상 도망갈 데도 없고 사령부 애들 소문 들어 보니까 이미 우리는 반란군으로 규정됐다는군. 그나마 항복한 군대를 동원했다가 되레 합류할까 봐 일본 애들이 직접 나선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준영의 말에 민원후 병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욕설을 내뱉다가 준영을 따라 담배를 한 개비 물곤 불을 붙이며 말했다.

“언제입니까?”

“조만간.”

준영은 새 담뱃갑을 뜯으며 말했다. 그의 품에서 나온 담뱃갑을 노리는 듯 민원후 병장의 눈이 반짝였지만 슬쩍 무시한 준영이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북쪽의 위대하신 수령님이 급사한 직후 북쪽 애들이 일제히 남쪽으로 밀고 내려왔다. 중국 애들은 동맹을 이유로 참전했고, 일본 애들은 남한 지원을 명목으로 상륙했다.

기습이었지만 뭔가 약조가 되어 있었던 듯 쌀나라 애들은 대한민국을 버렸다. 주한 미군은 저희 대사관만 보호하며 망명 신청을 하는 정치인과 부자 양반들만 골라잡아 본국으로 보내 버렸고 몰려든 피난민들에겐 오히려 사격을 가했다.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전쟁이 터지자마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한나라로 망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애국자와 매국노를 선명하게 구분해 냈다.

소수의 정치인들과 항복 결정에 반발한 군 장성들을 중심으로 임시정부가 구성되어 전선을 유지했다. 초반엔 그럭저럭 몇몇 전투에 승리도 하며 저력을 보였으나 그게 다였다.

계속되는 공격에 전선을 유지하기는커녕 후퇴하기 바빴고 전 국민이 일치단결해도 모자랄 판국에 정치판은 항복과 결사 항전으로 분열되어 전쟁 와중에도 투덕거려 힘을 모을 수 없었다.

한국을 떠나려는 자들이 항구와 공항에 북새통을 이루고, 도와 달라는 정치인들의 피 토하는 절규를 강대국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외면하는 사이 홀로 외롭게 싸워야 하는 한국군으로선 북한과 중국, 일본이라는 세 개의 전선을 유지할 만한 여력이 없었다.

병사들은 지원병과 징집을 통해 어느 정도 충당이 가능했으나 고급 인력이라 할 수 있는 군 장교들은 대부분 전사했다. 더 이상 갈 곳도 작전목표도 없다. 각지에서 모여든 잔여 병력을 재편하는 와중에 현역 중사에 불과한 준영이 중간 간부의 부족으로 인해 임시로 대위 계급장을 달고 중대장을 맡을 정도였다.

방어선을 펼친 엑스포 광장은 간간이 이어지는 폭격의 여파로 멀쩡한 건물들은 볼 수 없었고 포탄 구덩이가 바둑알처럼 즐비했다.

“웁! 우웩!”

일본 애들 자주포에 직격당한 병사의 시체 조각을 수거하는 모습을 보던 신병 꼬맹이가 헛구역질을 하자 준영은 입맛이 썼다.

나라를 위해 이 한목숨 바친다 노래 부르던 장교들이 그 말대로 목숨을 바치고 죽어 나가니 남은 건 분위기상 빠져나가지 못하고 눈치만 보다가 제 한목숨 챙기기 급급한 놈들뿐이었다.

제2의 독립 전쟁을 부르짖으며 일어섰던 군대는 소모되는 물량의 확보를 위해 약탈에 가까운 물자 징발과 강제 징병을 벌이며 어느새 강도와 같은 무리로 변질되었다.

“탄은 좀 남았냐?”

준영의 질문에 민원후 병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씻지 못해 떡진 머리를 긁적였다.

“죽은 놈들 시체 조각까지 뒤져서 탄약을 회수하고는 있지만 전투 한 번 하면 총검 들고 싸워야 합니다.”

“수류탄이나 유탄은?”

“마찬가집니다. 분대별로 한 세 발 근근이 돌아갑니다.”

“대전차무기는?”

“무거워서 버린 지 꽤 오래됐죠?”

“미치겠군.”

민원후 병장의 말에 준영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이제는 탄약 보급마저 끊긴 지 오래였는데 위에선 결사 항전만 부르짖고 있다. 그나마 먹는 건 아직까진 잘 나오지만 점심때 먹은 내용물이 얼마나 잘 소화가 됐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신병 꼬맹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패배가 확정된 전투였다. 최신 첨단 무기로 무장한 일본 애들이 장갑차와 전차를 앞세우고 공중 지원을 받으며 진격해 올 텐데 딸랑 소총만 가지고 상대하라는 건 말 그대로 덴노 헤이카 반자이였다. 준영은 절대 그 꼴을 볼 생각이 없었다.

“애들 정리해라.”

준영이 한 말의 속뜻을 알아챘는지 민원후 병장이 굳어진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디까지요?”

“너처럼 미친놈이나 나처럼 정상적인데 나이 좀 되는 놈들 빼고 앞날이 창창한 새 나라의 어린이들만. 나머지 놈들은 알아서 튀라고 해.”

“그럼 중대 병력이 확 줄어들 텐데요? 대대장이 싫어할 겁니다.”

“나도 모르는 대대장을 네가 어떻게 알고 있냐? 도망쳐서 일본 애들한테 투항한 대대장 대신 새로 내려온 대대장이 있어?”

“저도 본 적 없는데요.”

“그럼 가서 시키는 대로 해. 아! 소대장들한테 이것도 주고.”

준영은 품에서 담배 두 갑을 꺼내 민원후 병장에게 던졌다. 민원후 병장은 어디서 그리 담배가 계속 튀어나오는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준영을 바라보다가 후다닥 방어진지로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른 명가량의 중대원들이 머뭇거리며 준영에게로 다가왔다.

청바지에 회색 면 티를 입고 방탄모만 쓴 고등학생부터 크기가 맞지 않는지 여러 겹으로 접은 전투복에 운동화를 신은 중학생까지. 살아온 날보단 살날이 더 많이 남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은 표정으로 준영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전시 탈영병은 즉각 사형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 탈영병에 대한 처우는 더욱 가혹했다. 그걸 직접 목격해 온 병사들이니 아무리 중대장의 명령이라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준영은 그중에서도 그나마 고참이라고 제대로 차려입은 고 3이라던 학생에게 대충 만든 백기를 건넸다.

“이거 들고 저 다리 건너가라. 어린놈들만 모여서 항복하면 일본 애들도 양심이 있으면 살려 줄 거다.”

“주, 중대장님…….”

“왜? 남아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헛소리는 하지 말고 빨랑 꺼져.”

“하, 하지만…….”

“확! 빨리 안 가!”

준영이 머뭇거리는 고등학생에게 소리칠 때 부루릉! 차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려 보니 지휘관용 차량이 준영과 병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뭐야? 새로 온 대대장인가?”

병사들은 불안해하며 어찌할 줄 몰랐지만 준영은 태연스레 중얼거렸다.

준영의 앞까지 다가온 차량이 멈추더니 조수석에서 무궁화 견장을 두 개 단 한 중령이 화난 얼굴로 차에서 내리자마자 소리쳤다.

“지금 전투준비하지 않고 모여서 뭐하는 건가! 중대장 누구야!”

“접니다.”

준영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중령에게 다가갔다. 아직까지 고급 지휘관이 남아 있다니 희한한 일이었다. 한차례 훑어보니 군복과 전투화는 물론 견장까지 비까번쩍한 신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