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ac

College Freshmen (1)

아이작이 시범 케이스로 세 사람을 바보로 만든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이제 보름 뒤면 캠퍼스의 공식적인 방학이 시작돼 다들 들떠 있었다.

갑자기 여성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세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경멸 어린 시선에 참지 못한 슈렌은 한 여학생에게 손찌검을 해 퇴학당하고 그런 불명예를 참지 못한 가문에서도 쫓겨났다. 루이스와 보르덴은 슈렌이 퇴학당한 후 전전긍긍하다 자퇴하곤 도망치듯 캠퍼스를 벗어났다.

세 사람이 갑자기 망가진 원인이 아이작 때문이란 건 금세 소문이 났고 그 이후 남자들은 아이작만 보면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듯 거리를 둔 채 못 본 척 외면했다. 아이작은 그사이 여성들의 지지를 확고히 하는 데 노력했다.

물건을 사고 싶어도 구매 능력이 없는 여성들이나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평민 여성들에게 접근해 선물 형식으로 강제로 떠넘겼다.

딱 잘라 거절하는 여성들도 어차피 내 사정 알지 않느냐, 캠퍼스 졸업하면 넌 성공 가도를 달리지만 난 시골 행정관이 다다, 나중에 도와 달라, 지금 말고 여유가 될 때 달라는 식으로 말하면 죄다 못 이기는 척 받았다. 어차피 지지가 목적이지 돈을 벌려는 게 아니기에 차용증이나 외상 장부 따윈 만들지도 않았고 그래서 더욱 절대적 지지를 얻어 냈다.

캠퍼스의 여성들 중엔 학생뿐 아니라 강사와 교수진도 있었다. 비록 소수이지만 그 영향력은 막강하다. 아이작은 마젤란을 통해 고가의 화장품과 향수 등을 선물했다.

형평성을 이유로 학생을 가르치는 강사와 교수 들도 오직 보급품만을 사용해야 했다. 그간 여학생들이 갑자기 화장을 하고 다니는 모습에 대체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보고 싶은 걸 체면 때문에 꾹 참고 있었는데 선물 형식으로 알아서 챙겨 주니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제는 여학생들뿐 아니라 구애하려는 남학생들이 주문하는 물건까지 늘어났다. 물론 남자들에겐 폭리에 바가지를 듬뿍 뒤집어씌웠다. 항의하는 자에겐 ‘좋아하는 여자에게 주려는 선물을 가격을 깎아서 사려는 거냐?’란 말 한마디면 끝이었다. 아이작이 슬쩍 지나가는 말투로 그놈 참 짠돌이더라. 말 한마디만 흘려도 순식간에 소문은 확대 재생산되어 퍼져 나가니까 눈물을 머금고 살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대로 편안한 일상을 손에 넣은 아이작이 지루함을 즐기며 하루하루를 보낼 때 마젤란이 찾아왔다.

“손님이 오신다고요?”

“응. 그래서 말인데 지금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빈방들을 몇 개 비워 놔야 해.”

“캠퍼스가 손님도 받을 줄은 몰랐는데요?”

“좀 특별하거든. 사실 내가 해야 할 일이지만 알다시피 졸업논문 준비하느라 요즘 시간이 없어서. 내가 너 도와준 것도 있으니까 이 기회에 신세 한번 갚으라고.”

“쩝. 어쩔 수 없죠. 설마 안내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니겠죠?”

“아하하…….”

말을 얼버무리며 난처하게 웃는 마젤란의 모습에 아이작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얼마나 귀한 분이 오시기에 외부인은 들어올 수 없다는 전통을 깨고 손님을 받는 거예요?”

“엄밀히 따지자면 외부인은 아냐.”

“음?”

“칼리지 입학생들이거든.”

“칼리지가 캠퍼스를 거치지 않고도 입학이 가능한 거였나요?”

캠퍼스의 전체 학생 수는 삼만가량이다. 많아 보이지만 대륙 전체로 봤을 땐 10%도 되지 않는 소수다. 칼리지는 더욱 희귀해서 1%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말했잖아, 조금 특별하다고.”

“흐음?”

“오랜만에 엘프족과 수인족에서 칼리지로 학생을 보낸다고 하더라.”

“엘프? 수인족?”

미녀의 대명사 엘프. 동양권과 서양권은 엘프의 이미지가 상당히 다르지만 이 동네 엘프는 다행히도 동양권 이미지의 엘프 같았다.

“응. 그것도 엘프 자치구 장로의 딸과 노스베어족 족장의 딸이라고 하더라고.”

“엘프는 알겠는데 노스베어족은 뭐죠?”

“말 그대로 눈 돌아가면 곰으로 변신하는 종족이야. 엄밀히 따지자면 맹수족이지.”

“그러고 보니 전 이종족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네요.”

“이종족 대부분은 폐쇄적이라 자치구를 벗어나지 않거든. 캠퍼스 입학은 자치구 재량이라서 전통에 따라 캠퍼스 입학은 거절하는 편이지만 종족 내에서도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은 예외야. 칼리지에도 이종족들은 많아. 다만 폐쇄적이라 자기들끼리만 모여 다녀서 우리도 얼굴 보기가 쉽지 않을 정도지.”

“그 대단하신 분들이 내년 입학할 때나 오지 왜 벌써 온답니까?”

“거리상의 문제라고나 할까?”

“거리요?”

“응. 자치구 대부분이 대륙 각지에 산재해 있다 보니 가벨린으로 오는 데 걸리는 시간만 해도 장난이 아니야. 그건 알지?”

“동력차를 이용하는데도요?”

“응.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긴 거야. 동력차가 상용화된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말했다시피 이종족들은 폐쇄적이라 자치구를 잘 벗어나지 않거든. 예전과 같이 입학 날짜에 맞춰 도착 시간을 계산해 출발했는데 동력차 덕분에 이동 시간이 대폭 줄어든 거지.”

“너무 일찍 도착했다는 거네요.”

“응. 캠퍼스도 아니고 칼리지의 학생을 입학 시즌까지 가벨린에 대기하라고 방치해 둘 수도 없어서 일단은 손님 형식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거야.”

“하아, 알겠습니다. 그럼 방 두 개 비우고 준비하면 되는 거죠?”

한마디로 내년 입학할 때까진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종족이라지만 같이 산다는 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마젤란은 아이작이 수락하자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는 듯 손을 잡고 흔들다가 갑자기 주위를 둘러보더니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소문인데 말이야, 두 사람 다 성격에 문제가 좀 있다고 하더라.”

“…….”

이 양반 졸업논문은 핑계고 귀찮아서 떠넘긴 게 틀림없다. 정상적이라도 껄끄러운데 특이하다는 이종족들 중에서도 성격이 이상하다니 재수 없이 걸리면 무슨 고초를 겪을지 몰랐다.

캠퍼스는 방학도 강압적이라 남아서 공부를 하겠다고 해도 쫓아낸다. 물론 칼리지는 예외다. 특이한 건 여행 지원비라고 해서 약간의 금전을 지원해 주는데 말 그대로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이었다.

다만 여행 지원비를 포기하면 배를 타는 데 우선권이 부여된다. 있는 집 자식들은 그딴 푼돈 따윈 한시라도 빨리 자유를 맛보기 위해 기꺼이 포기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모인 금액은 가난한 평민들에게 몽땅 배분되었다. 무작정 쫓아내는 게 아니라 형평성을 고려하고 맞춰 주는 캠퍼스의 교육 시스템은 확실히 명문이라 불릴 만했다.

학생이 없으면 강사와 교수도 없다. 말 그대로 캠퍼스는 텅텅 빈 무주공산으로 변한다. 학생들을 한 번에 수송하기 위해 대함대가 편성된다. 처음 방학을 맞이했을 때 거참 효율적이라 생각했다.

캠퍼스의 방학은 대륙의 명절날과 마찬가지였다. 수도 가벨린은 대목을 맞는다. 학생들을 마중 나온 가족들이 몰리며 왁자지껄하다. 제국 해군은 아예 방학 날에 맞춰 대규모 함대 기동을 연습한다. 기동훈련에 수송작전, 상륙작전까지. 그렇게 모인 학생들과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가며 뿌리는 돈만 해도 엄청나다.

수도에 몇만이나 되는 학생들을 한 번에 풀어놓으면 그 혼란을 대체 어떻게 감당할 생각인지 의아했는데 그것도 훈련의 일환이란다. 피난민들이 몰려와 혼란스러운 상황을 가정해 수도 경비대의 치안 강화와 군중 통제를 실제로 체험하며 훈련한다니 거참 제대로 이용해 먹네란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그렇게 대륙이 떠들썩할 동안 캠퍼스에 남아 있는 아이작은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기에 딱 좋았다. 항구 밖을 벗어나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여자들을 상대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학생 식당도 문을 닫는지라 방학 동안 먹을 식자재들을 충분히 쌓아 놓고 자취를 해야 하는 게 아쉬웠다. 밥 먹는 건 좋지만 요리와 설거지란 과정은 귀찮았다.

“으하암! 오늘은 몇 마리나 잡히려나?”

요즘은 낚시가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열정적인 취미가 아닌 그저 있으면 하고 아니면 마는 수준이지만 시간 때우기엔 좋은 일이었다.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자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과거도, 추억도……. 그래서 낚시가 마음에 들었다.

“음?”

수평선 너머로 한 점이 아른거리다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에 아이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캠퍼스가 비어 있으니 보급선이 올 리도 없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오는 배는 익숙한 정기 보급선이었다.

“아! 이제야 오는 건가?”

올 사람이 있음을 깨달은 아이작이 주섬주섬 낚시 도구를 정리할 즈음 배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