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ac

College is Back (3)

“아이작, 그 작자는 대체 저쪽 세계에서 뭐 하고 지냈대?”

“군인이었다나 봐.”

“군인? 우리랑 비슷한 직업이었단 거야?”

“동기 말로는, 원래 평범했는데 전쟁을 오랜 시간 경험하다 보니 지금의 성격으로 변했다고 분석했어.”

“와! 그거 무서운데?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변하나?”

안면이 있는 요원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알고 있는 정보를 교환할 때, 칼리지 졸업을 앞둔 신입 요원들은 싸늘한 교관들의 시선과 복잡한 동기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연병장 구석에 삼삼오오 모여 하늘 같은 선배 요원들을 힐긋힐긋 바라보며 수군거리거나 반드시 합격하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저기 봐. 7년 전 아리오덴 지방의 ‘마’급 변절자 격멸 작전 참가자들이 받은 로데츠 휘장이야.”

“그뿐인 줄 알아? ‘천’급 변절자 진압 작전에 참가한 요원들만 받을 수 있는 라플라워 휘장도 봤다고.”

“세상에, 전부 팀장급 이상의 고참 요원들만 참가한 거야?”

“우리 버틸 수 있을까?”

현장 요원들의 화려한 경력을 나타내는 각종 휘장들을 훔쳐보며 신입들은 점점 불안해졌다. 그때 한 신입이 탄성을 지르며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저기 봐! 리블리아 님이야!”

지원자들이 모여 있는 연병장에 리블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센트럴 정복을 입고 허리에 검을 찬 리블리아의 아름다운 모습에 신입이건 베테랑이건 할 것 없이 전부 시선을 빼앗겼다.

리블리아는 단상에 올라가 사방에 흩어져 모여 있는 자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입소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전원 집합.”

리블리아의 말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모여 오와 열을 이루었다. 이미 몸에 배어 있는지 맞춰 보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레 각이 딱딱 나온다.

리블리아는 단 아래에서 흠모에 찬 시선을 듬뿍 보내오는 지원자들을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들 중에는 자신보다 훨씬 선배인 요원들도 있다.

이들 중엔 어쩔 수 없이 지원한 이들도 있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새로운 기회를 찾아 도전한 이들도 있다. 특히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는 저 병아리들의 시선을 받고 있자니 점점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때 갑자기 시선들이 확 돌변하더니 딱딱한 차렷 자세를 한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나타났는지 로페즈를 비롯한 교관단이 등장해 있었다.

입소식을 빛내기 위해 참석한 건 아닐 테고, 보나 마나 그놈의 내기 때문에 얼마나 훈련을 잘 시키는지 두고 보겠단 심사였다.

리블리아가 살짝 로페즈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할 때 노스베어족 몇 명이 나타나더니 후다닥 단상에 테이블을 배치하고 그 위에 이계의 무기들을 죽 늘어놓기 시작했다.

처음 교육받을 때 영상으로만 본 물건을 직접 보게 되자 신입들은 술렁였고 고참들도 어째서 이 물건이 이곳에 있는지 몰라 수군거렸다.

“쯧!”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지 로페즈가 혀를 차자마자 장내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요원들에 대한 교관단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다들 모였군.”

그때 아이작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나자 모두의 시선이 아이작에게 쏠렸다. 사람들은 입에 담배를 문 채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터덜터덜 걷는 아이작의 한량 같은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고, 뒤따라오는 레이샤의 아름다운 미모에 눈을 부릅뜨고, 아장아장 쫓아오는 크네트의 귀여운 모습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 뒤로 노스베어족이 뒤따랐는데 리즐리는 커다란 종 하나를 들고 있었다.

단상으로 올라가던 아이작은 로페즈를 비롯한 교관단의 싸늘한 시선에 피식 미소 지으며 무시하곤 리블리아의 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단상엔 아이작과 리블리아, 크네트와 레이샤가 앞에 서고 그 뒤에 노스베어족이 일렬도 도열해 있는 가운데 리즐리는 가져온 종을 단상 옆에 기둥을 세우곤 걸었다.

사람들의 호기심 섞인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아이작은 오랜만에 보는 광경에 새삼 감상에 젖었다. 평화로운 시절 당직 근무를 끝내고 아침점호를 할 때마다 모여 있던 중대원들이 떠올랐다.

바짝 군기 든 신병, 적당이 짬이 찬 일병, 상병, 연신 하품을 하며 지겨워하던 병장까지.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일상적이던 광경. 이제는 다시 볼 수도 만날 수도 없고 얼굴이나 이름마저 기억이 안 나는 그들을 머릿속에서 털어 낸 아이작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경비국에 지원한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아이작의 말에 지원자들은 무덤덤하게 넘어갔으나 오랜 시간 아이작에게 시달려 온 자들은 갑작스러운 아이작의 공대에 소름이 끼치는지 두려운 표정으로 아이작을 훔쳐보았다.

그러건 말건 아이작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지원자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경비국의 정예 요원이 되기 위한 훈련에 들어갑니다. 만약 훈련이 힘들고 정 못 견디겠다 싶으면 언제든지 저기 있는 종을 치셔서 훈련을 포기하고 퇴소하시면 됩니다. 간단하죠? 혹시 질문 있으십니까?”

“질문 있습니다!”

아이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장 선두에 있던 이가 번쩍 손을 들었고 자연스레 시선이 향하던 아이작의 눈이 황당한지 휘둥그레 떠졌다.

“……넌 거기 왜 있냐?”

아이작은 지원자들의 면면에 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관심도 없었고. 그런데 도열해 있는 지원자들의 가장 선두에 생각지도 못한 이가 서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급 변절자들과 손을 잡았단 누명을 벗고 가문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섭니다. 이제 가문의 후계자는 저밖에 없으니까요.”

깍듯이 경어를 붙이며 존대를 하지만 말투 하나하나에 찬바람이 휭 불며 시선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허어. 대찬 놈이로세. 좋아. 너 합격.”

“……예?”

아이작이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당황한 카이넨은 멍청한 표정으로 되어 물었다.

“합격이라고 열외 해.”

“그, 그건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아이작의 말에 다른 지원자들이 불공평하다며 항의하자 아이작이 리블리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요원 선발의 기준이 뭐지?”

“……아이작 국장님의 허가입니다.”

“들었지? 내가 합격이라고 하면 합격인 거야.”

“그런…….”

아이작의 말에 다들 억울한 표정으로 원망 어린 시선을 카이넨에게 듬뿍 쏟아 냈다. 카이넨은 아이작의 결정에 불쾌한지 아이작을 노려보며 말했다.

“거부하겠습니다. 전 지원자들과 동등한 조건하에 경쟁을 거쳐 당당하게 합격할 겁니다. 쓸데없는 당신의 호의 따윈 필요 없습니다.”

“그러든가.”

카이넨의 날 서린 외침에 아이작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곤 관심을 끊었다는 듯 리즐리를 향해 말했다.

“나눠 줘.”

아이작의 지시에 노스베어족들이 지원자들에게 보급 나온 코트를 하나씩 나눠 주기 시작했다.

“고작 훈련하는 데 요원용 코트를 지급한다고?”

“아냐. 이거 인공이야.”

“그럼 방어력은 형편없다는 거잖아?”

베테랑 요원들은 코드를 살펴보며 수군거렸고 신입들은 말로만 듣던 센트럴의 상징이기도 한 방어코트를 실물로 받았다는 사실에 다들 설렌 듯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지원자들이 전부 코트를 착용 완료하고 대열을 가다듬자 아이작은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궁금하시죠?”

아이작의 말에 다들 집중했다.

“경비국 요원이 되면 받는 혜택에 대해선 다들 잘 아실 겁니다.”

그 말에 지원자들의 눈에서 다들 기이한 열망이 감돌았다. 그 조건이 아니었다면 여기 이 자리에 서 있을 리도 없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선 여러분 모두에게 혜택을 주고 싶어 하셨으나 제국의 현실상 그게 불가능함을 참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래도 최대한 제국의 역량을 쥐어짜 낸 결과 오십여 명의 합격자들은 폐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래서 칼리지 출신의 1급 기사이자 뉴포트시의 행정관이자 영주 대리이며 센트럴 경비국 국장인 저는 최대한 합격자를 줄여 제국의 부담을 덜어 내는 걸로 황제 폐하의 은총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아이작의 말에 지원자들은 물론 뒤편에 서 있던 사람들도 황당한 표정으로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훈련은 간단합니다.”

아이작은 테이블에 늘어놓은 무기들을 훑어보며 적당한 놈을 골랐다.

“전 여러분을 죽일 겁니다. 여러분은 살아남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간단하죠?”

“그게 무슨!”

아이작의 말에 리블리아가 나서려 할 때 아이작이 한발 빨랐다.

“그럼 훈련을 시작합니다.”

틱,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이 아이작의 손에서 벗어나 모여 있는 지원자들의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신입들이 우두커니 서서 포물선을 그리는 수류탄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때 베테랑 요원들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모두 피해!”

동심원이 퍼지듯 사방으로 움직이며 폭발 반경에서 벗어나려 할 때 ‘콰광!’ 소리와 함께 수류탄이 터져 나갔고 몇몇 동작이 굼뜬 신입들이 폭발에 그대로 휩쓸렸다.

“아악!”

순식간에 찾아온 패닉에 신입들이 공황상태에 빠져 허둥거릴 때 경험의 차이를 말해 주듯 베테랑들은 순식간에 신입들을 지휘해 상황을 수습했다.

“치료술을 배운 자들은 어서 부상자들을 치료해!”

그걸 가만히 구경만 할 아이작이 아니었다.

“자, 다음 갑니다.”

철컥!

라이플에 탄창 하나를 끼워 넣은 아이작은 노리쇠를 당겨 장전한 뒤 흩어진 지원자들을 향해 총구를 겨눴고 설마설마하며 경계하던 고참 요원들이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다들 피해!”

타타타탕!

갑작스러운 총소리에 지원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려는 찰나 아이작은 장난을 치려다 방해받은 악동처럼 심술이 난 표정으로 리블리아를 향해 말했다.

“방해하면 곤란한데?”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이작이 사격하려던 찰나 다급히 다가가 총구를 하늘 위로 들어 올린 아이작과 리블리아는 찰싹 달라붙은 형태였지만, 리블리아는 그런 모습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진짜 공격을 하다니, 효율이 떨어진다지만 방어코트가 없었다면 사장자가 나왔을 게 분명했다.

“네놈…… 정말 미친 건가?”

충격을 받은 건 교관단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로페즈는 분노를 감추지 않은 채 천천히 단상으로 올라왔다. 리블리아는 로페즈가 정말 아이작을 죽이기로 작정했다는 걸 깨닫곤 황급히 아이작의 손에서 소총을 빼앗아 던지곤 로페즈의 앞을 막았다.

“잠깐! 스승님, 진정하세요!”

“이게 진정할 일이라고 보느냐! 감히 내 눈앞에서 제자들을 공격하다니!”

분노한 로페즈의 모습에 아이작은 한숨을 내쉬곤 담배를 하나 입에 물었다.

“끼어들려고? 그러면 내기는 내가 이긴 건가?”

아이작의 말에 로페즈는 움찔거렸고 교관단과 리블리아의 표정도 창백하게 변했다.

‘이거구나!’

리블리아는 그제야 아이작이 어째서 내기를 걸었는지 이해가 갔다. 끼어들 경우 아이작의 행동을 고스란히 따라 해야 한다. 지켜볼 경우 저 지원자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 아이작은 교관단이 개입할 여지를 원천 봉쇄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