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ac

Garrison (3)

아이작의 물음에 세인츠는 다들 알고 있는 상식을 모르는 자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아이작을 쳐다보았고 그 시선에 불쾌해진 아이작이 한 대 때리려 할 때 리블리아가 끼어들며 말했다.

“금지된 땅에는 마나가 없습니다. 하지만 게이트가 열리고 나면 게이트를 중심으로 점점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뭔 소리야? 마나가 없는데 무슨 수로 마나를 빨아들여?”

리블리아의 말에 아이작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리블리아는 방어코트에 박힌 마정석과 가슴께를 툭툭 치며 말했다.

“여기 있잖습니까.”

“흠, 그러니까 게이트가 열리고 나서 점점 마나를 빨아들이는 지역이 커지는데, 그 지역에 있으면 마정석은 물론 몸 안에 보유한 마나도 쪽쪽 빨린다는 거냐?”

“예. 여왕께서 그 사실을 알아내기 전인 초창기 전투 때는 센트럴의 전투 요원이 아닌 일반 병사들과 군을 동원했습니다.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물량을 틀어막은 거라 끔찍할 정도의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 아줌마도 안 끼는 데가 없네. 그러면 전투 자체가 불가능한 거 아냐?”

“대략 1킬로미터 정도가 영향권에 들어가며 이틀 정도 지나면 사라집니다.”

“그사이 아무 작전도 없고?”

“예? 무슨 작전요?”

“어처구니가 없군.”

적이 얌전히 기어 들어와 방어 준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 준다니. 동원 가능한 모든 원거리 투사 무기를 이용해 견제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전 세상의 지식 대부분을 가진 센트럴이라면 당연히 군사지식도 가지고 있을 테고 이런 병신 짓을 벌일 이유가 없다.

“그러면 게이트가 닫힐 때까지의 시간은?”

“열릴 때마다 차이가 있지만 제가 알기론 보통 사오일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세인츠의 말에 아이작은 고개를 돌려 연료가 보관된 창고를 바라보며 담배를 하나 입에 물었다.

역시 계산이 안 맞는다. 후방 보급부대까지 전개를 마친다고 쳐도 어차피 게이트가 닫히면 철수해야 하는데 이 정도 연료와 식량은 너무 많다. 아무 생각 없이 원정군이 넘어와 전투를 벌이고 철수할 리 없다. 머리 좋은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무의미한 소모전을 반복할까? 특히 대충 돈으로 계산해 봐도 억 소리 나는 금액인데 이걸 그냥 버리고 간다고? 한두 번이 아니라 여태껏 계속? 무작정 낭비할 정도로 예산이 남아돌 리도 없는데?

“다른 창고도 좀 보지.”

아이작의 말에 세인츠는 군말 없이 다른 창고의 문도 열었다.

“여긴 중장비들이 보관된 곳입니다.”

“헐.”

연료나 식량뿐만이 아니었다. 시트의 비닐도 뜯지 않은 다양한 용도로 제작된 차량이 수십 대나 죽 늘어서 있다. 거기에 장갑차량뿐만 아니라 탱크에 자주포와 견인포까지. 무기 전시장을 방불케 했고 개인 전투 장비를 보관한 창고에 들어간 아이작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전투용이 아니잖아?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사용하지도 않은 신품이 깔끔하게 나무 박스에 담겨 있는데 종류별로 대형 파렛트 하나씩 해서 창고를 가득 메우고 있다. 적어도 수천 명은 무장시킬 수 있는 장비다. 개인이 다루는 무기를 보급품으로 이렇게 많이 가져올 이유는 절대 없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자신이 도착하자마자 바람이 분다고 난리 난 것조차 의심스러운 판국에 일개 사단을 무장시킬 수 있는 무기와 연료, 식량을 보고 있자니 어처구니없어서 웃음만 나온다. 포장조차 뜯지 않은 신품들이다. 이건 철수하면서 미처 챙기지 못했다기보단 그냥 넘겨준 거다. 그 대상이 누굴까? 그 대가는? 아이작은 힐끗 자신이 입은 코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투에 동원되는 요원들은 전부 이 방어 장비를 착용하는 건가?”

“예. 그 방어구가 없으면 원정군의 화력을 뚫을 방법이 없습니다.”

“사망자도 있겠지?”

“허용량 이상의 강한 충격을 받으면 방어구의 기능이 잠시 작동을 멈춥니다. 그사이 집중사격을 받으면 총알을 피할 방법이 없어 전사합니다.”

“착용자가 죽어도 남은 마정석들은 그대로지?”

아이작의 물음에 세인츠는 분노를 드러내며 말했다.

“잔인한 원정군 놈들은 철수할 때 전사자들의 시체까지 같이 가져갑니다!”

‘그런 거군.’

게이트에 관한 정보를 듣고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게이트가 계속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는데도 무리하게 계속 시도를 한다는 거였다.

아무런 자원도 없고 폭풍으로 폐쇄된 지역이다. 게이트가 고정되어 보급이 원활하지 않은 이상 단순한 탐사대가 아닌 정규군이 넘어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이곳에 주둔할 수 없는데도 줄기차게 게이트를 열고 들어오는 이유가 뭘까?

아이작은 유라가 말한 한 번 왔다 가면 얻는 게 많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한바탕 싸우고 나서 전사한 자의 방어코트를 수거해 멀쩡한 마정석 서너 개만 건져도 남는 장사다. 시체까지 가져가는 이유야 모르겠지만 뭐, 해부하기 위해서겠지. 아마 포로도 상당수 잡혀 가, 상상하기도 불쾌한 고초를 겪을 테지.

그렇다면 그 마정석을 대가로 이 보급품들을 넘겨준 거라고 봐야 하나? 그렇다면 그 주체는? 센트럴? 아니면 펜들턴? 유라? 아니면 천계? 마계? 그마저도 아니면 제삼의 세력? 아니, 이 가설을 확신할 수 있나?

“젠장!”

아이작이 갑자기 짜증스레 소리치자 리블리아와 세인츠가 화들짝 놀라며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아이작은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빨아 내뱉으며 창고를 둘러보았다. 어쩌다 이런 판에 엮여서 피곤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짜증이 몰려온다.

아이작은 여기서 이러고 있어 봤자 답이 없다는 걸 느끼곤 고개를 흔들며 상념을 털어 냈다. 누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건 뒤집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다 무심코 가까이 있는 상자를 하나 뜯었다가 기도 안 찬다는 듯 중얼거렸다.

“알라의 요술봉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구먼.”

이전 세상에서 끈질긴 전투 당시 부족한 보급으로 인한 화력을 메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무기를 긁어모으던 와중 무기상들에 의해 대량으로 들여왔던 RPG-7.

일명 알라의 요술봉이라 불리는 이 로켓탄을 보급 받았을 때 진짜 테러리스트가 됐다며 부하들과 낄낄거리던 기억을 떠올린 아이작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싸고 성능 좋은 RPG-7 덕분에 몇 번 재미를 봤지만 결국 이마저도 부족할 정도로 허덕이며 밀리고 밀렸던 기억은 그리 좋은 추억은 아니었다.

하지만 테러리스트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걸까? 미군 놈들이라면 이걸 쓸 리가 없는데? 미군 놈들과 연합할 나라라고 해 봐야 뻔하게 서방국가들이 대부분일 텐데 이 물건을 사용하는 건 구공산권 국가들과 중동 쪽이다.

서방국가들이 이 좋은 기회를 구공산권 국가들이나 중동 쪽과 사이좋게 나눠 먹을 리 없다. 아니면 자신이 죽어 나자빠진 사이에 세계정세가 변했나?

“저, 저기 아이작 님, 그렇게 열어 보시면…….”

아이작이 나무 상자를 뜯어내 내용물을 확인하고 다니자 세인츠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했다. 무기의 특성상 당연히 엄중히 다뤄진다. 이 물건들 중 하나라도 반출됐다간 당장 자신에게 날벼락이 떨어진다.

“그냥 기념품 몇 개 챙기려고.”

“그, 그게…….”

“내가 너 하나 안 챙길 거 같냐?”

“아닙니다.”

아이작의 말에 세인츠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세인츠도 아이작의 말만 믿고 굽실거리는 게 아니었다. 비상사태가 벌어진 이상 당연히 대피를 할 테니 어떻게든 잘 보여야 아이작을 따라 비행선을 얻어 탈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거였다. 그러니 아이작이 뭘 얼마나 챙겨 가건 그저 모른 척해야 한다. 아이작은 몇 가지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챙긴 후 다른 창고들도 둘러보았다.

“이상하네? 탄약은 이게 다야?”

“예. 이 창고 한 채분이 전부입니다.”

“……너무 적은데?”

창고 한 채에 보관된 탄약은 소총류뿐만 아니라 전차와 자주포 등에 들어가는 탄약 등이 탄 박스와 탄 통에 고이 모셔져 있었지만 이 정도 양이면 대대급이면 전투 이삼 회분, 연대급이면 한 번의 전투에 전부 소모될 정도로 적은 양밖에 없다.

“연료나 장비 들은 많은데 실전투에 소모되는 자원들만 턱없이 부족하다라…….”

이제야 감이 온다. 누군가, 아니면 어떤 세력이 원정군과 손을 잡았다. 그 대가로 무기와 장비 들을 공여받았으나 거기에 소모할 탄약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 탄약들을 제공할 수 있는 건 원정군뿐이니 결국 원정군의 지원에 목을 매게 된다. 이건 우월한 장비로 무장한 강대국이 식민지를 분열시켜 내전을 일으킬 때 즐겨 쓰던 방법이다.

“이걸 어떻게 이용해야 하려나…….”

센트럴에서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는 상관없다. 이 카드를 어떻게 사용해야 좋을지가 문제지.

“다 보셨으면 이제 슬슬 돌아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리블리아가 점점 거세지는 바람을 확인하며 건의했다. 그 말에 상념에서 깨어난 아이작은 고개를 들어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들을 무심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볼 건 다 봤으니 마젤란 선배한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