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ac

Battle Preparation (4)

마젤란의 항변에 녹스빌은 등을 돌리며 불쾌감이 역력한 태도로 쏘아보며 말했다.

“내가 싸우기가 무서워서 철수하자는 건 줄 아나! 자네랑 저 불청객 때문에 철수하려는 걸세! 자네와 리블리아가 이 제국의 중요 인물임을 잊었나! 만약 일이 잘못돼서 저 잔인한 놈들에게 사로잡히기라도 하면 제국은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왜 모르나! 그리고 더 중요한 게 바로 저 불청객이야! 제국과 센트럴의 중요 정보를 죄다 가지고 있는 놈인데 투항이라도 하면 어떻게 할 건가!”

녹스빌의 말이 일리가 있는지 마젤란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통제실의 사람들은 철수한다는 말에 안도하며 지시받은 대로 바삐 움직였다. 그 모습에 아이작은 새 담배를 하나 입에 물며 말했다.

“이봐, 영감.”

우뚝!

순간 모든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추고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녹스빌은 아이작의 말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아이작을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 나한테 한 말인가?”

저릿저릿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아이작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기를 한 모금 내뱉으며 녹스빌의 시선을 무시한 채 말했다.

“사령관이 높아? 국장이 높아?”

뿌드득!

아이작의 말에 녹스빌은 부서져라 이를 갈며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원리 원칙을 평생의 신념으로 삼은 녹스빌로서는 마음에 안 든다고 신념을 꺾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일부러 자리를 피하기까지 했는데 게이트가 열리는 황당한 사태 덕분에 결국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꾀를 내어 기선을 제압해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는데 저렇게 직설적으로 물어보면 어쩔 수가 없다.

“……당연히 국장의 직위가 더 높다.”

“그런데 말이 짧다?”

“으득!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닙니다. 어서 철수 준비를…….”

씩씩거리며 국장이라고 고개를 숙이는 녹스빌을 향해 아이작은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왜 그리 난리야? 어차피 철수한다 해도 게이트 열리고 원정군 놈들이 넘어와서 부대를 전개시킬 시간까지 따지면 급할 거 없잖아?”

아이작의 말에 녹스빌의 시선이 마젤란에게 향했다. 설명 안 했냐는 듯한 책망 어린 시선에 마젤란은 억울하단 표정으로 대꾸했다.

“지금 상황에서 한가하게 설명할 시간이 있었을 거 같습니까?”

개입할 타이밍을 재느라 통제실 밖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판국에 한가하게 질의응답이나 하고 있는 상황에 조급해져 일찍 끼어들었던 녹스빌은 마젤란을 향해 아까까지만 해도 잘도 떠들고 있더구먼, 하고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저 건방진 애송이 새끼한테 빌미를 주기 싫어 꾹 참으며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게이트가 열리면 원정군은 먼저 정찰을 시도합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죠.”

“……공중 정찰을 시도한다는 겁니다.”

그 말에 아이작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인기?”

“그렇습니다. 비행선은 마나 폭풍을 타기 위해 최대한 가벼운 재질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무인기가 가진 빈약한 무장조차 비행선엔 위협적이란 겁니다.”

“게이트가 열리고 정찰기가 뜨면 퇴로가 완전히 막힌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어서 철수를…….”

녹스빌이 이걸 대체 누구한테 화풀이해야 하나 머릿속으로 그 대상을 하나하나 짚으며 끓어오르는 울화통을 꾹 참은 채 아이작에게 철수를 종용할 때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더니 통제실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음? 선장? 자네가 여긴 왜…….”

마젤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비행선의 선장이 분노 섞인 음성으로 외쳤다.

“주둔군의 일부가 내 비행선을 탈취했소!”

“소레스! 네놈이 감히!”

청천벽력 같은 선장의 외침에 다들 하는 일을 멈추고 일제히 선착장을 향해 뛰어갔고 아이작도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여겼는지 좋아라 하며 뒤따라 걸어갔다.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 수단은 비행선밖에 없다. 아이작이 후려쳐서 기절시켰던 소레스는 깨어나자마자 부하들을 선동해 비행선을 탈취했다.

아무리 좌천당했다고는 하나 전투 요원인 주둔군과는 달리 비행선의 선원들은 준요원이기에 전투 능력 자체가 차이가 나서 순식간에 제압당했고 소레스가 도망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주둔군은 너도나도 구명줄을 붙잡기 위해 비행선에 달라붙었다.

소레스는 자신도 태워 달라는 동료들의 애원조차 무시한 채 급히 출항 준비를 마쳤고, 끝까지 달라붙는 동료들을 발로 차 떨어트리며 선체에 달라붙을 수 없을 만큼 높이 떠올랐을 때 분노에 찬 사령관의 목소리를 듣고 혼비백산했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다시 착륙해 봤자 죽은 목숨이란 걸 강조하며 어차피 저들은 죽은 목숨이니 사령관이 옥쇄를 각오하고 긴급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우리를 보냈다고 하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대로 마나 폭풍을 통과한 뒤 도망치면 된다는 말로 흔들리는 부하들을 다잡았다.

센트럴의 정보력과 수사력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부하들은 그 말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한배를 탄 입장이고 지금 용서를 구해 봤자 원리 원칙의 화신인 녹스빌이 자신들을 용납할 리 없다. 적전 도주는 저쪽 세상이나 이쪽 세상이나 마찬가지로 사형이다.

“참 좋은 꼴 보여 주십니다그려. 센트럴은 대단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네요? 평가를 좀 수정해야겠는걸? 사령관은 자리를 비우고 놀러 다니질 않나, 부사령관이란 작자는 저만 살겠다고 도망치질 않나, 여태껏 원정군은 어떻게 막았데요?”

“감히!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명예를 모독하지 마라!”

녹스빌이 발끈하며 외치자 아이작은 가소롭다는 듯 비행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몇 마디 하는 게 모독이면 행동으로 실천하는 용기가 아름다운 저것들은 뭔데?”

“크윽…….”

아이작의 비아냥거림에 녹스빌은 치욕에 물든 얼굴로 입을 다문 채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아이작은 녹스빌과 마찬가지로 눈을 감은 채 처참한 기분에 빠진 마젤란을 향해 말했다.

“저것들은 센트럴에 들어올 정도의 능력이 있기는 한 거예요? 아니면 잘나신 가문의 힘이 대단해서 받아 준 거예요?”

“하아! 용맹으로 이름 높던 케이지 백작가에서 어떻게 저런 놈이…….”

선원들을 전부 내쫓아 조종이 미숙한지 곤돌라 안의 인원들이 머뭇거리고 있는 걸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마젤란이 조종실의 소레스를 보며 절망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다들 공감하는지 고개를 푹 숙였고, 아이작은 그 모습에 한심하다는 듯 둘러보며 슬금슬금 몰래 뒷걸음질 쳐 가장 뒤로 물러났다.

“가져왔습니다…….”

리블리아가 세인츠와 함께 아이작의 지시로 창고에서 꺼내 온 물건을 아이작에게 건네며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고 아이작은 대답 대신 행동으로 보여 줬다.

“히, 히익!”

세인츠가 기겁을 하자 가장 뒤에 있던 몇몇 요원들이 뒤를 돌아봤다가 똑같이 기겁을 하고 도미노처럼 돌아보고 기겁을 하며 일으키는 소란에 녹스빌과 마젤란도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가 아이작을 발견하곤 뜨악한 표정으로 외쳤다.

“잠깐!”

“뭐, 뭐야?”

녹스빌과 마젤란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조준을 마친 아이작이 방아쇠를 당기자 ‘쏴악!’ 하는 공기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추진체를 내뿜으며 날아간 로켓이 비행선의 곤돌라 부분을 들이박았다.

‘콰쾅!’ 하는 폭염과 함께 비틀거리던 비행선은 곧 연쇄 폭발이 일어나더니 화염에 휩싸여 추락하기 시작했다. 비행선의 선원들은 비명을 질렀고 선장은 뒷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다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 가운데 마젤란과 녹스빌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말도 안 나오는지 형용하기 힘든 표정을 하며 아이작에게 다가왔다.

“어, 어째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조차 제대로 끝맺지 못하는 두 사람을 보며 아이작은 빈 발사체를 버리곤 담배를 입에 물며 맛나게 한 모금 피우곤 멍하니 서 있는 리블리아를 향해 말했다.

“내가 있던 세상은 전시에 도망치다 걸리면 즉결처분인데 이 동네는 다르냐?”

“……똑같습니다.”

리블리아가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작은 맞다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녹스빌과 마젤란을 쳐다봤고 결국 두 사람은 이성을 잃었다.

“야! 이 자식아! 그걸 누가 모르는 줄 알아!”

마젤란이 달려들어 아이작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녹스빌은 갑자기 검을 뽑아 들더니 허공을 향해 검강을 뿌려 대며 외쳤다.

“보이냐! 비행선을 파괴할 거였으면 네놈이 안 나서도 나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켁켁! 아니, 그런데 왜 보고만 있었던 거야!”

숨이 막힐 정도로 흔들리는 와중에 아이작이 투덜거리자 마젤란과 녹스빌이 추락해 불타오르며 검은 연기를 피어오르는 비행선의 잔해를 가리키며 동시에 외쳤다.

“이곳의 정보를 전달한 유일한 수단이라서 그런 거였다!”

“……아!”

아이작은 막 깨달은 듯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비행선이 금지된 땅을 벗어나야만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센트럴에 알릴 수 있다. 통신기도 망가진 와중에 유일한 철수 방법마저 제 손으로 망가트린 거다.

“기나긴 시간 동안 수많은 피를 흘리면서 지켜온 곳인데 이렇게…… 이렇게 허무하게 빼앗기다니…….”

녹스빌은 허탈한 표정으로 힘이 빠진 듯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중얼거렸고 마젤란도 잡고 있던 아이작의 멱살을 풀고는 힘 빠진 표정으로 아이작에게 손을 내밀었다.

“청연초 말고 그 담배라는 거 하나 줘 봐.”

“진짜 피우려고요?”

“이 상황에 뭔들 못 할까.”

마젤란의 말에 아이작은 차마 버리기엔 아까워 들고 다니는 진짜 담배 한 개비를 마젤란에게 건네곤 불을 붙여 줬다.

“콜록! 콜록! 우웨엑!”

니코틴이 몸속으로 들어가자 바로 반응이 오는지 마젤란은 헤롱거리다 어지러운지 바닥에 주저앉고는 연신 기침을 하면서도 담배를 계속 피워 댔다.

“피울 만해요?”

“이 끔찍한 걸 대체 뭐가 좋다고 피워 대는 거지?”

“그쵸? 그래서 내가 청연초만 피우는 거예요.”

아이작의 말에 마젤란은 왠지 억울한 느낌이 들어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어깨를 으쓱이는 걸로 응수한 아이작이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자포자기했는지 힘 빠진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새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일 때 리블리아가 다가와 물었다.

“어쩌긴 뭘 어째! 싸워야지!”

아이작이 입을 열려는 찰나 마젤란이 벌떡 일어서며 부르짖었다.

“애들 데려와. 싸우긴 싸울 건데 저 양반이랑은 좀 다른 방식으로 할 거다.”

“……알겠습니다.”

아이작의 지시에 잠시 아이작을 빤히 바라보던 리블리아가 고개를 끄덕이곤 경비국 요원들을 데려오기 위해 사라졌다.

그런 리블리아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볼 때 마젤란이 희망 어린 눈으로 다급히 아이작의 어깨를 붙잡아 시선을 마주치며 외쳤다.

“다른 방법으로 게이트를 막겠다고? 자신 있으니까 비행선을 추락시킨 거지! 그렇지?”

아이작은 아슬아슬한 거리까지 바짝 붙인 마젤란의 얼굴에 부담감을 느끼곤 슬쩍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음…… 아마도?”

(7권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