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ac

The Queen's Purpose (2)

아이작의 중얼거림을 들은 듯 눈동자가 아이작을 향했다가 돌아갔고 네 사람은 황급히 자세를 바로 한 채 종족 간의 인사법으로 정중히 삼안족에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

무시당한 아이작은 입을 다문 채 허허거리다 담배를 입에 물었다.

툭!

불을 붙이자마자 끝자락이 잘려 나갔다.

“건방지다. 까불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톡톡. 아이작은 담배를 자르고 자신의 뺨을 두들기는 날카로운 손톱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황금색 털에 검은 줄무늬가 새겨진 짧은 털의 호랑이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킬킬킬. 겁먹어서 얼어붙었나 보군.”

옆에서 들려오는 비아냥거림 소리에 힐긋 보니 언제 나타났는지 검은색 늑대도 한 마리 서 있었다.

다들 삼안족의 눈치를 살피며 아이작이 폭발할까 봐 전전긍긍 어쩔 줄 몰라 했는데, 크네트와 리즐리는 호인족과 랑인족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아이작은 잠시 고민하다 활짝 웃으며 끝이 잘린 담배를 부러트려 바닥에 버리곤 말했다.

“죄송합니다. 못 배운 놈이라 예의가 없네요. 주의하겠습니다.”

“흥! 그래도 주제는 아는군.”

아이작이 숙이고 들어가자 저 양반이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저러나 싶어 긴장을 하는데 호인족과 랑인족은 의기양양하게 콧방귀를 끼며 아이작을 깔봤다.

“자, 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일단 들어가죠.”

콜린스의 중재에 호인족과 랑인족은 도발하듯 아이작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지나갔고 아이작은 웃음을 멈추지 않은 채 그 뒤를 따랐다.

전용선의 집무실. 회의를 위한 공간이다 보니 모든 게 잘 갖춰져 있다. 삼안족은 자연스레 아이작이 앉으려던 상석에 앉았고 자리를 빼앗긴 아이작은 웃으면서 삼안족의 왼편에 자리 잡자 뒤따라 들어온 네 사람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옆에 있는 것처럼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고 그 맞은편에 호인족과 랑인족, 콜린스가 자리 잡았다.

“그래서 감찰반이 갑자기 등장한 이유가 뭡니까? 얘기는 이미 다 끝난 걸로 아는데 최고위원회에서 저에게 무슨 용건이 있는 겁니까?”

다들 자리 잡자마자 아이작이 말문을 열었으나 감찰반은 아이작의 말을 무시했다. 아예 존재 자체가 없는 것처럼 구는 감찰반의 행동에 리즐리가 테이블을 쾅 내려치며 외쳤다.

“예의를 갖춰라! 아이작 님은 뉴포트시의 영주님이시다!”

“킥! 인간한테 사육당하다 보니 종족의 긍지마저 잊어버렸나? 인간의 영주 따윈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텐데? 하긴 인간들이 던져 주는 부스러기나 먹고살 거라고 인간으로 변신해 지내는 종족한테 긍지 따위가 있을 리 없지.”

늑대의 도발에 리즐리는 살기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건 검은늑대족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봐도 되겠지?”

“얼마든지 덤벼라. 고작 인간한테 사육당하는 종족에 질 정도로 우리 부족이 나약한 건 아니니까.”

늑대는 지지 않고 리즐리를 노려보며 어금니를 드러냈다. 참지 못하겠다는 듯 리즐리가 곰으로 모습을 변환시키며 당장이라도 한판 벌일 듯이 살벌한 공기가 감돌았고 아이작은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아이작의 말에 리즐리는 화를 삭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고 늑대는 그런 리즐리의 모습에 거 보라는 듯 콧방귀를 뀌며 도발하듯 비웃었다.

그 모습에 리즐리가 다시 발작하듯 으르렁거렸으나 크네트의 제지에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만. 너도 하지 마.”

크네트는 무시할 수 없는지 늑대는 움찔하며 크네트의 눈치를 살피다 아이작을 죽일 듯이 한차례 노려보곤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귀하신 몸께서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아이작의 물음에 삼안족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하세요. 곧 출발합니다.”

할 말만 하곤 나가는 삼안족을 따라 호랑이와 늑대도 호위하듯 뒤를 따랐고 갑자기 휑해진 회의실에 아이작은 허허거리며 웃었다.

“개가 짖는구나…… 멍멍.”

“아하하.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삼안족 입장에선 인간과 한자리에 잠시 같이 있는 거로도 예의는 다 갖췄다고 여기니까요.”

콜린스는 사람들의 반응에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이작은 그 말에 수긍하는 네 사람이 더 신기했다.

“삼안족이 그렇게 대단한 놈들이야?”

“대단하기보다는…….”

아이작의 물음에 리즐리가 설명하기 곤란한 듯 말을 얼버무렸고 콜린스가 대신 설명했다.

“그보단 삼안족 자체가 개체 수가 얼마 안 되는 멸종 위기종이라 그렇습니다.”

“멸종 위기종?”

“예. 종족을 다 합쳐도 100여 명이 채 될까 말까 한 종족입니다. 재앙의 7일 당시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은 종족이죠.”

“그래서 애지중지한다?”

“후손을 교육시키는 데 삼안족만 한 종족이 없으니까요.”

콜린스의 말에 다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번째 눈으로 대상이 어떤 재능과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맞춤 교육을 할 수 있는 삼안족은 가정교사로서 최적화된 종족이다.

컬리지에 이종족들이 별로 없는 이유도 바로 삼안족의 교육이 컬리지보다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특출 난 재능에 집중시켜 교육시킬 수 있는 만큼 소모되는 시간도 줄일 수 있으니까.

“다만 성격이 워낙에 보수적이고 깐깐한 데다 인간을 싫어하다 보니…….”

“그런데 아가씨는 아는 눈치던데?”

“황족과 펜들턴의 직계까지는 삼안족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콜린스의 말에 리블리아는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는지 창백한 안색으로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렇게 끔찍한 기억인가 싶어 신기해할 때 콜린스가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킨 후 말했다.

“자,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전달하겠습니다. 아이작 님은 경비국 국장으로서 이번에 발견된 천족 토벌 임무를 수행하셔야 합니다.”

“갑자기 웬 천족이 튀어나오냐?”

아이작은 물론이고 네 사람도 뜬금없는 천족의 존재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콜린스를 바라보았다.

“……천족이 나타났단 소리는 들은 적 없어.”

크네트가 콜린스를 노려보며 말하자 콜린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저희가 갑자기 여기에 나타난 거랑 연관이 있습니다. 아이작 님이 암살당할 뻔한 사건으로 원정군과 마족이 손을 잡았다는 정황증거를 발견했죠. 감시국은 당시 안톤의 몸에서 빠져나온 마기를 추적하는 데 실패했습니다만 저희 감찰반은 성공했습니다.”

“감시국도 추적에 실패한 마기를 추적했다고?”

“감찰반은 독자적인 정보망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다 치고 그게 왜 나랑 연관이 있다는 거지?”

“사실 추적했다기보다는 우연히 걸려들었다고 봐야죠. 감찰반은 밀로스 백작가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마기가 밀로스 백작가로 스며들었으니까요.”

“……내가 아는 그 밀로스?”

“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대꾸하는 콜린스를 바라보며 아이작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면 천족은?”

“감찰반이 주시하던 게 바로 밀로스 백작가의 천족에 의한 감염 여부입니다.”

“그것도 감시국에서는 몰랐다?”

“거짓말!”

크네트는 발딱 일어서더니 콜린스를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그런 크네트의 시선에 콜린스는 과장되게 양손을 펼쳐 억울하다는 몸짓을 하며 말했다.

“저야 중간에서 말만 전달하는 입장일 뿐입니다.”

“뭐. 좋아. 어차피 천족이건 마족이건 내가 처리하기로 합의가 된 사항이니까. 그런데 감찰반이 왜 날 감시한다는 거지?”

“최고위원회는 아이작 님을 의심하는 중입니다.”

“의심?”

“예. 우연이 계속되면 우연이라 보기 힘드니까요. 밀로스 백작가를 감찰반이 주시만 하고 있던 이유는 밀로스 백작가에 잠입했다고 여겨지는 천족이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어서입니다.”

“천족이? 그놈들한테는 여기가 지옥이라고 그러지 않았나? 숨 쉬고만 있어도 고통스럽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개입을 못 한 겁니다. 밀로스 백작가는 1급 영지로 치안과 경제사정이 안정적인 영지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어떻게?”

“전염병을 퍼트렸더군요.”

“전염병이라…… 당연히 천족만 치료할 수 있는 병이겠지?”

“그렇습니다. 아파 죽을 거 같은데 살려 주면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까요. 거기다 아무것도 못한 치료사들과 정부엔 반감을 가질 테고요. 거기서 우리가 건드려 봤자 환자들이 천족을 보호할 겁니다.”

“상당히 지능적이네. 그게 날 의심하는 거랑은 무슨 상관이지?”

“밀로스 백작가에 숨어 있는 천족은 백작가의 대공자가 여기 뉴포트시에서 데려온 푸른장미로 밝혀졌습니다.”

“아. 기억난다. 결혼한다고 난리 쳐 가지고 기사단이 들이닥치네 마네 시끄러웠었지? 그거 어떻게 됐냐?”

아이작이 기억을 떠올리며 묻자 리블리아가 말했다.

“밀로스 백작가의 후계자는 순순히 푸른장미를 데리고 영지로 돌아갔습니다. 그 뒤 대공자의 고집을 꺾지 못해 첩실의 형태로 가문에 들였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만…… 그 푸른장미가 천족이라고요?”

“예. 뉴포트시에서 일을 꾸미다 실패하고 도망쳤던 바로 그 천족입니다. 그래서 최고위원회에선 아이작 님을 의심하는 겁니다. 밀로스 백작가는 아이작 님의 외가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아이작 님을 이곳 뉴포트시에 보내는 데 힘을 쓴 것도 밀로스 백작가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마족과 손을 잡았다는 정황증거가 드러났고요. 그 이후의 일은 말 안 해도 아시겠죠?”

“고작 그걸로?”

“고작이 아닙니다. 결과를 보세요. 일개 불청객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아이작 님은 벌써 공작 위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광대한 영지와 자금을 손에 넣었죠. 거기다 센트럴 경비국 국장의 직위까지 가지고 있고요. 최고위원회에선 아이작 님을 처음부터 천족과 마족이 이 세상에 잠입시킨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암살 시도 또한 센트럴의 전력을 약화시키려는 음모라고 보고 있고요.”

콜린스의 설명에 아이작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자작극이다?”

“아직은 의심뿐입니다. 그래서 감시 및 관찰을 위해 저희가 파견된 거죠. 아이작 님께서 밀로스 백작가의 사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최고위원회는 판단할 겁니다.”

오랜만에 들어 본 참신한 개소리였다.

삼안족은 같이 이동할 인원을 선별했다. 크네트와 리즐리, 레이샤는 허가했지만 리블리아의 참여는 반대했다. 리블리아는 경비국 부국장 신분임을 들먹이며 항의했으나, 삼안족의 시선에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남아야만 했다.

불만 가득한 리블리아의 배웅을 받으며 아이작은 비행선에 탑승했는데 전용선은 아이작이 뉴포트시에 남아 있다는 증거이므로 움직이기 힘들어 일반 비행선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삼안족은 비행선이 출발하자마자 교육을 다시 시킨다며 질색을 하며 도망치려는 크네트와 리즐리, 레이샤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고 아이작은 담배를 태우며 비행선의 전망창을 통해 지상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여기 계셨군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콜린스가 웃으면서 다가왔다. 말없이 다시 고개를 돌리자 콜린스는 뭔가 말이라도 붙여 보고 싶은지 아이작의 주위를 알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