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dnapped Dragons
Chapter 10. The Guardian (3)
“······.”
유지태는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하나둘씩 몸을 일으키는 수호자들. 불안정하게 일렁이는 마나는, 그들이 불안해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늘 무소불위의 힘으로 둥지를 지키며 세상을 오시했을 터였다. 그런 존재가 힘으로 꺾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태세를 뒤집어 존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디 리빙아머가 마계의 존재인 탓이었다.
강자존(强者尊).
마계의 존재들은 강한 이를 경외한다.
“이곳은··· 그대의 통치 아래에 있는 세계입니까?”
그건 오해지만, 바로잡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는 대답 없이 수호자들을 바라보았다.
이전 회차를 미루어보자면. 아마 지금 이 시점에, 녀석들에게 변화가 찾아올 터였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정확했다.
수호자들은 죽을 때가 다가오니 살고자 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그것은 생을 영위하고자 하는 존재로서의 본능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보통은 생존 욕구가 생겨나더라도, 종속의 마법이 저주처럼 생존 욕구를 씻어내기 마련이었다. 수호자는 죽더라도 상관없으니 적을 물리치고, 드래곤을 보호해야 한다. 그것이 드래곤이 그들에게 채운 목줄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수호자들은 살고 싶다는 열망이 치솟음을 느꼈다. 기나긴 차원의 방황에서 종속의 저주가 풀린 탓일까. 다시 말해, 그들에게는 수백 년 만의 자유가 찾아온 것이다.
이 순간 몇몇 수호자는 공통적인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 이 자리에서, 피해야 한다.
그러한 그들의 심리를 꿴 유지태가 입을 열었다.
“이제야 대화가 되겠네.”
그린 드래곤의 수호자에게 다가간 유지태가, 그 상체를 밀어 찼다. 덜컹! 부서진 판금 갑옷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직후, 보이지 않는 날붙이가 놈의 가슴에 닿았다. 리빙아머의 코어가 자리한 곳이었다.
“차원에서 문제가 생겼을 텐데, 너희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대답한다면, 우리는 생명을 부지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날붙이가 갑옷을 파고든다. 카가각······. 금속이 마찰한다. 마치 부드러운 나무판이 파이듯, 판금 갑옷이 파이기 시작했다.
“······말하겠습니다. 해당 현상은 차원의 비틀림이라 합니다. 주군께서 시도하셨던 것은 가까운 차원 간의 이동이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차원이 비틀렸고, 우리는 확정되지 않은 차원의 밖으로 튕겨 나갔습니다.”
여기까진 유지태도 아는 이야기였다.
“차원의 비틀림이라는 것에 관해 설명해 봐.”
그는 아는 것을 한 번 더 물었다.
다른 회차들과의 대답을 비교하기 위한 장치였다.
“저도 정확히 아는 바는 없으나······.”
잠깐 침묵하던 수호자가 말을 이었다.
“과거 주군께서 하셨던 말씀 가운데 ‘섭리의 지평선’이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지평선은 세계의 시간 선에서 벗어나 있다고요. 차원의 비틀림은 그 섭리의 지평선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힘에 의한 일이라고 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그런데 이번 회차의 설명은, 다른 회차와는 달랐다.
섭리의 지평선? 유지태는 그런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이때까지 그를 찾아왔던 드래곤 가운데, 그린 드래곤의 수호자는 없었다.
눈앞의 수호자가, 섭리를 읽을 줄 안다는 그린 일족의 수호자이기 때문일까.
「천칭안(SS)」
유지태의 눈으로 푸른 기운이 맺혔다.
떠오른 진위는 진(眞)이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
차원은 비유하자면 바다와 같다.
바다는 넓지만, 가까운 섬에 가는 건 어렵지 않다. 유지태 또한 지금 마음을 먹는다면 차원을 열고 마계로 향할 수 있었다. 마계는 가까웠고, 그는 비유하자면 쪽배 정도를 다룰 수 있었다.
물론 차원 여행에는 제물이 필요하지만, 어쨌든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드래곤들의 세계인 ‘아스칼리파’는 먼 차원이다. 쪽배를 타고서 아시아에서 아메리카로 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녀석들의 유희는 쪽배를 타고 나오다 해일을 만난 격이었다.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그러한 비틀림에서는 드래곤들조차 방향을 찾을 수 없어.”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어떻게 함께 오게 되었나? 유지태의 의도를 파악한 수호자는, 말을 이었다.
“섭리의 지평선··· 그 근처에는 어떠한 존재가 있었습니다.”
“존재?”
“예. 그 존재는 섭리의 지평선 밖에서. 저에게 말을 걸더군요···.”
이 또한 처음 듣는 말이었다.
유지태의 미간에 약간의 짜증이 맺히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했는데.”
“언어를 통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어떠한 의지가 방향을 제시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의지는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었고, 저는 그 길을 따라 수호자들을 한 데에 모으고, 해츨링들이 있는 방향을 찾았을 뿐입니다.”
무형검을 흩은 유지태가, 제 이마를 짚곤 고갤 숙였다.
그는 지금 심기가 굉장히 불편해지고 있었다.
네 번째 회차를 넘기면서, 회차마다 변하는 요소를 제외하면, 그는 이 사태에 관하여 모르는 게 거의 없어졌다.
단지, 등잔 밑이 어둡다고 드래곤 개인에 관하여 무지할 뿐이었다. 그때까지 그는 드래곤들을 인격체로 두려 하지 않은 탓이다.
모르는 게 있으면 안 된다.
이 세계는, 그리고 이 시간 선은, 모든 것이 그의 손바닥 위에 있어야 한다.
반드시, 그랬어야만 했다.
그런데 천칭안에 그려지는 진위는 명백한 진(眞)이었다.
그가 모르는 요소가, 발생했음을 의미했다.
“그 의지는 무언가를 향해 불만을 품은 것 같았습니다. 마치 저주한다는 느낌처럼요. ···어쩌면 제가 그린 드래곤의 힘으로 만들어진 코어를 품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린의 수호자가 계속해서 지껄여댔다. 유지태는 그 말을 단어 하나까지 정확하게 기억해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자신을 돌아보았다.
왜 나는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까? ‘섭리의 지평선’과, 그 ‘지평선 밖의 존재’라는 것. 다른 회차에서도 있었는데 파악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다. 차원 간의 이동을 하며, 마계 대공의 머리통을 깨부수며, 블랙 드래곤의 모가지를 비틀며, 삼도 수라의 지옥을 거닐며, 그는 ‘차원’에 관하여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알아냈었다. 아귀가 들어맞음을 몇 번이고 검수하며 확인했던 정보들이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무엇인가. 시간선 전체를 두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들이닥쳤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그가 침묵하며 생각을 이어갈 때였다.
“···아, 그리고 제 코어의 일부에, 그 존재의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저로서는 어떤 흔적인지 알 수 없으나···.”
그 말에, 그의 고개가 들렸다.
그는 대뜸 수호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헤집어진 판금을 두 손으로 잡고 힘을 주어 위아래로 벌렸다. 그러자 쇠가 엿가락처럼 휘어지기 시작했다. ‘······끄헉!’ 수호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 속에 담긴 마나 코어. 물질이 아니기에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유지태에게는 선명히 보였다.
그가 코어에 손을 밀어 넣었다. 강철의 갑옷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유지태의 눈에 상태창이 떠오른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가 가진 유일무이한 권능.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모든 차원의 시간 선을 되감았던 힘.
유지태는 상태창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추측대로, 그의 회귀에 불만을 품은 존재가 있는 모양이었다.
저 멀리 ‘섭리의 지평선’이라는 곳의 밖에서.
어떤 불안요소가 있을지는 그로서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곤 해도 당장에 흥분할 일은 아니었다.
상태창에 의하면, 「괘종시계」가 그보다 한 걸음 앞서서 ‘시간 선 밖에서 찾아온 적의’를 파악할 터였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유지태는 기분을 털어내었다.
“···일단은 알았다.”
공간 전체를 옥죄던 무게감이 풀려났다. 그제야 수호자들은 한숨을 돌렸다.
“그러면 이제는 너희의 처우에 관해 이야기할 차례구나. 유감스럽게도 드래곤은 너희에게 줄 수 없어.”
철갑옷들의 안광이 조금 더 선명해진다. 수호자들은 기대감을 품었다.
“그러니, 너희가 가고 싶다면 보내줄게. 밖에 나가서 사고만 치지 않으면 돼. 누구 갈 사람 있나?”
“···저, 저는 가고자 합니다.”
가장 먼저, 골드 드래곤의 수호자가 의사를 표시해왔다.
드래곤이 제작한 코어를 품은 수호자들은 신체를 수복할 수 있다. 구부러진 갑옷이 펴지며, 떨어진 육신이 붙고 있었다.
수호자가 몸을 일으켰다.
“또, 갈 사람.”
눈치를 보던 다른 수호자들도 손을 들었다. 애초에 좋아서 드래곤의 수호자를 자처한 적 없는 이들. 그들은 자유를 갈망했다.
레드 일족의 수호자와 블루 일족의 수호자가 서서히 일어선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린 드래곤의 수호자는 반응이 없었다.
“너는 안 가나?”
“······.”
“묻잖아. 안 가냐고.”
“저는 갈 수 없습니다.”
유지태는 뒤도 볼 것 없이 수호자를 걷어찼다.
카앙!
어마어마한 위력에, 수호자가 수십여 미터를 날아가 아공간에서 굴렀다.
드러난 흉부 갑판은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채였다.
“······커윽.”
단순한 일격이 아니다. 마나의 근원을 뒤흔드는 충격.
유지태는 서서히 걸어가 그의 앞에 섰다. 그리곤 다시 물었다.
“다시 말해 봐. 안 가나?”
“···저는 가지 않습니다.”
무형검이 수호자의 투구를 가르고 지나갔다. 크그극! 투구의 뿔이 베여 떨어졌다. 그 또한 근원에 타격을 주는 일격이었다.
“안 가나?”
“저는, 인과의 역사를 지키는 자···.”
존재의 생명이 서서히 꺼지기 시작하는 상황에서도, 그린 드래곤의 수호자는 버텼다.
그래서 유지태는 여상한 표정으로, 무형검을 그의 목에 비집어 찔렀다. 카드득 정면을 파고든 살기는 뒷덜미로 삐져나왔다.
“안 가나?”
“가··· 없······.”
마나의 흐름이 어디에선가 끊긴 탓에, 음성조차 끊어지는 상황.
그런데 안광은 여전히 서슬 퍼렇게 빛난다.
그래서 유지태는 수호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쾅! 쾅! 쾅!
일격이 들어갈 때마다, 「흑정(黑睛)」이 흔들린다. 단 세 방에 리빙아머의 투구는 걸레짝처럼 구겨졌다.
혼에 이만한 충격이 전해진다는 것. 유지태가 아는 바로는, 인간이었다면 머리뼈가 부서질 만한 통증이 있을 터였다.
“안 가나?”
“······.”
놈은 그래도 버텼다.
그는 다가가 쓰러진 수호자의 가슴팍을 발로 짓눌렀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안 가나?”
“그··· 럴··· 수는 없······.”
“미친놈이네, 이거.”
유지태는 입술을 슬며시 핥았다.
이런 반응은 의외였다. 그는 솔직히 네 기가 전부 자유를 갈망하리라 생각했다.
천칭안이 점멸하는 눈을 마주한다. 호오(好惡)에 떠오른 것은 오(惡). 놈은 진심으로 이 상황을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버틴다는 뜻이다.
“그자는 본디 아둔한 자입니다.”
그때 다른 수호자가 첨언 해왔다.
다른 일족끼리는 데면데면하다 했었는데, 그런 탓일까.
“자유를 코앞에 두고서도 쟁취하지 못하는 미련한 자이니, 뜻대로 하십시오.”
그것은 기회를 잡지 못하는 동료 마족에게 향한 비웃음이었다.
그래서 유지태는 수호자를 조금 더 궁지로 밀어 넣었다.
쾅! 쾅! 쾅!
그 생명의 불이 꺼지기 직전까지. 쇠망치보다 강력한 주먹이 계속해서 날아들었다.
“······.”
곤죽이 되어 쓰러진 그린의 수호자.
하나 남은 안광은, 점멸하면서도 유지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른 수호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건, 그들이 어떤 과거를 지나와 지금이 되었건, 유지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는 고장 난 인간이었다. 필요하다면 죄 없는 사람 한둘 죽이는 것에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것은 악한 일이겠으나, 그는 어떠한 기준에서는 이미 악인이었고, 선악 따위의 가치를 잊은 지 오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수호자를 살려두어야 한다면. 그 이유는 딱 하나.
드래곤들을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가.
그리고 지금. 넷 가운데 딱 하나가 그의 기준을 통과했다.
이래야 ‘수호자’로 적합하지 않겠나.
게다가 섭리의 지평선 너머에 관한 정보도 필요했다. 데리고 있다면 나쁘지 않을 터였다.
생각한 유지태가 고갤 돌려 다른 수호자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남은 건 쓸모없는 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