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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사라는 두 눈을 깜박거렸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 순간에 의식을 잃어서가 아니라,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무너트린 길 너머에서 어둠이 흘러넘치고. 그 순간에...
‘등 뒤에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백현의 기척이었다.
“나한테 뭘 한 거야?”
사라는 홱하고 고개를 돌렸다.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말투 역시 험했다.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드레이브가 서있었다. 그는 쓰고있던 투구를 벗으며 사라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입니까?”
“방금 전에. 나한테 뭔가를 했잖아.”
“아. 당신을 지키려고 했던 것 말입니까?”
드레이브는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로 중얼거리면서 눌린 머리를 손으로 헤집었다.
“지키려고 했다고?”
“예. 방금 전에... 당신도 보지 않았습니까? 어둠이 터진 것.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꽤 위험해 보였어요. 그리고 저와 당신은 가장 앞에 있었고, 피할 수 없었지요.”
쿠웅. 드레이브는 자신의 방패, 말브론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어떤 공격에도 흠집 하나 생기지 않는 신의 방패가 바로 말브론이다. 그런데... 정면에서 터진 어둠을 받아낸 것 뿐인데 작은 흠집이 나있었다. 드레이브는 말브론의 흠집을 내려보며 쯧쯧 혀를 찼다.
“그 순간에 제가 무엇을 해야 했겠습니까? 피한다? 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피했다면?”
“나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어.”
“예, 물론 그랬을 겁니다. 당신이 백현씨와 아주 똑같지는 않아도, 엇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피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피해서는 안 되었어요.”
드레이브는 그렇게 말하면서 바닥에 털썩 앉았다. 사라는 뚱한 눈으로 드레이브를 쳐다보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천장이 막힌 지하. 허나 이곳은 동트기 전의 새벽처럼 푸르스름한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와 당신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뒤에 있던 이들은 피할 수 없었어요. 그러니 막아야만 했던 겁니다.”
“네 덕분에 나까지 휘말렸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 바로 곁에 당신이 있었으니까. 설마 이렇게 같이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거야? 백현은?”
“모르죠. 어둠은 막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으니까. 아마 어딘가에 있지 않겠습니까? 이곳은 꽤 넓어 보이니까요.”
말브론의 흠집을 어루만지던 드레이브가 대답했다. 직전까지 외길에 있던 그들은, 어느새 넓은 도시 한 가운데에 떨어져 있었다. 이곳은 마치 오래 된 도시의 폐허처럼 보였다.
“그럼...”
“백현씨는 당신의 도움 없이는 안 될 정도로 약한 사람입니까?”
사라가 움직이려는 순간, 드레이브가 그렇게 물었다. 그 질문에 사라는 눈썹을 찡그리며 드레이브를 돌아보았다. 그때까지도 드레이브는 말브론의 흠집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하? 그게 뭔 개소리야? 그럴 리가 없잖아. 백현은 나보다 훨씬 세.”
“그걸 어떻게 압니까?”
“엄청 많이 싸워봤으니까 알지! 백현은 나보다 훨씬 강해. 물론 나도 강하지만, 내가 도와줄 필요까지는 없다는 거야. 그래도 언젠가는 내가 더 세지겠지만.”
사라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 섞인 흥분은 방금 전 드레이브와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눌 때와는 노골적일 정도로 차이가 심했다. 드레이브는 큭큭 웃으면서 건틀릿을 벗었다. 사라는 그가 맨 손으로 말브론의 흠집을 어루만지는 것을 보며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셈이야? 막으라고 있는 방패에 흠집 좀 날 수도 있지.”
“이건 신에게 받은 방패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뚫을 수 없는 방패. 절대로 흠집이 나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네가 모시는 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 삐친거야?”
“아니오. 그럴리가요.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절대로 뚫을 수 없는 방패? 그런게 존재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물론 말브론은 그런 물건에 근접할 테지만, 흠집이 난 것은 제가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드레이브는 그렇게 말하고선, 자리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사라는 그런 드레이브를 어처구니가 없어서 바라보았다.
“...그래서, 네가 섬기는 신이 뭐라는데?”
“아무 말씀도 없으시군요.”
드레이브는 감은 눈을 뜨고서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연결되어 있는 것은 확실한데... 그 분도 나를 볼 수 없고, 저 또한 그 분을 느낄 수 없어요. 왜 생존자들과 연결이 끊어졌는지 알겠군요.”
드레이브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신이 저를 볼 수 없고, 저 역시 신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지만. 영원한 것도 아닐 터이니, 지금은 오히려 잘 되었군요.”
“그게 무슨 말이야?”
사라는 자신을 보는 드레이브를 경계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드레이브는 그 시선을 마주하며 선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신은... 당신을 볼 때마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알 수 없는 감정은, 바로 ‘그리움’입니다.”
처음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때? 아니, 그때부터가 아니다.
생각해 보면, 퓨어세인트가 탐색대에 드레이브를 보낸 것부터가 특별한 의도가 섞인 것이었다. 그만큼 그 신명神命은 갑작스러웠다. 바로 오늘, 드레이브가 섬기는 신은 갑자기 그에게 탐색대에 참가하라 신명을 내렸다. 그리고 캠프에 들어 간 순간. 드레이브의 눈을 통해 사라를 보았다.
“그리움?”
“그럼에도 제 신은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지 않아 해요. 정확히 말하자면, 당신과 가까이 하고 싶어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고자 하는 질문 역시, 제 신은 명하지 않은 것입니다.”
드레이브의 눈이 가늘어졌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왜 신은 당신을 본 순간 동요한 겁니까?”“왜 당신을 보면서, 신은 신답지 않은 감정을 보인 겁니까?”
“왜 신은 당신을 특별히 여기는 겁니까?”
연이어 묻는 질문의 끝에, 드레이브는 천천히 숨을 삼켰다.
“당신은 신을 알고 있습니까?”
추궁하는 것만 같은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드레이브가 쭉 입에 달고 있는 ‘신’이라는 말이었다. 아니, 그건 굳이 드레이브 뿐만이 아니었다.
사라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지구’가 마음에 들었다. 지구는 그녀가 이전에 살았던 17차원 프로아와 비교하면 모든 면에서 좋은 곳이었다.
이 세계에는 전쟁도 없었고, 오염되어 죽어가는 땅과, 그 땅에서 배회하는 마물도 없었다. 먹을 것은 풍족했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다들 각자 나름의 행복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전부 다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몇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있었다. 백현의 주변에 있는 여자들 또한 사라에게 있어서는 아주 사소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 포함되었다. 이 멀쩡하고 건강한 몸으로 돌아오면서 따라 붙게 된, 정욕에 눈이 먼 시선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신?”
이 세계에 뿌리 깊게 박힌, 다수의 신앙들이었다.
“내가 그딴 것을 어떻게 알아?”
사라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내뱉었다. 그녀는 신에 대해 알지도, 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 감정은 틀림없이 혐오에 가까웠다. 프로아에 살았을 적부터 그랬다. 그 세계에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라가 태어나고 자랐던 ‘교회’는 사교의 마녀를 성녀라 말하며 언젠가 이 죽어가는 세계를 정화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 것이라 가르쳤다. 하지만 사라에게 있어서 성녀는 마녀였고, 그 세계를 자기 손으로 직접 멸망시킨 장본인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당신은 알고 있을 겁니다.”
드레이브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 목소리는 타인의 이해 따위는 용납하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확신만으로 차있었다.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의 존재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알아요. 제가 섬기는 신이 당신을 특별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도!”
드레이브의 언성이 높아졌다. 가장 용납할 수 없는 일은 바로 그것이었다. 신은 신다워야 한다. 그 누구도 차별해서는 안 된다. 만약 신이 특별하게 여기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저 뭔지 모를 인간이 아닌. 사도인 드레이브 자신뿐이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사도는 사도使徒인 것이다.
“못 알아 처먹을 소리하지 마!”
사라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공기는 차갑게 얼어붙었고 그녀의 몸은 뜨겁게 달아올라 증기가 뿜어졌다.
“신? 하! 그게 정말 신인지도 모르겠지만, 정 모르겠거든 나한테 지랄하지 말고 네 신에게 직접 물어 봐!”
“말을 조심하십시오.”
드레이브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인지. 그는 섬기는 신과 마찬가지로 자비로웠으나, 그렇다고 해서 신에 대한 모욕을 계속 받아 넘겨야 하는가? 드레이브는 허리춤의 검을 잡았다. 신을 모르는 인간에게 전도를 행하는 것 역시 사도의 역할일 터. 허나 지금은...
“신이 당신을 아끼고 있음을 감사히 여기십시오.”
드레이브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도.”
짙은 어둠 너머에서 시선들이 불빛이 되어 켜지고 있었다.
*
‘일부러?’
츠츠츳.
끊어진 은사가 힘없이 돌아왔다. 백현은 흔들리는 어둠 너머를 노려보았다. 어둠은 백현의 눈으로도 꿰뚫어 볼 수가 없었다. 이런 종류의 어둠을 백현은 한 번 마주한 적이 있었다.
철혈궁.
무령의 왕좌가 있던 방.
신격을 잃은 무령이 웅크리고 있던 방의 어둠이, 이것과 똑같았다. 백현은 끊어진 은사의 끝을 노려보았다. 어둠이 덮쳐오기 직전... 사라에게 쏘았던 은사다.
‘우연이었나?’
솔직히 애매했다. 그 순간에 드레이브가 한 행동이 옳지 않았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폭발해 덮쳐 온 어둠은 틀림없는 폭력이었고, 사라나 드레이브는 괜찮더라도 그 바로 뒤에 있던 헌터들은 어둠이 내포한 위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직전에 드레이브가 방패를 들어 올리지 않았더라면. 놈이 휘황찬란한 백광에 휘감겨, 뭔지 모를 권능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놈의 바로 뒤에 있던 헌터들 상당수가 죽었을 것이다.
덕분에 사라를 잡으려 했던 은사가 뚝 끊겨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민식과 정수아를 붙잡은 은사가 끊기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백현은 천천히 왼손을 당겨보았다. 둘과 이어진 은사는 어둠 너머로 뻗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거리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은사가 파르르 떨린다. 그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여기는 어디야?”
백현이 있는 곳은 사라와 드레이브가 떨어진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폐허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 은 오직 어둠 뿐이다. 백현은 작게 혀를 차면서 파천신화공을 끌어올렸다.
파츠츳! 부푼 호신강기가 어둠을 밀어낸다. 함께 확장 된 기감이 은사가 이어진 곳으로 쏘아졌지만, 여전히 기감에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다.
양자택일, 아니, 삼자택일이다. 어디에 있는지 모를 사라를 찾으러 갈지. 아니면 은사가 이어진 정수아나, 서민식을 찾으러갈지.
선택은 쉬웠다. 백현은 사라의 힘을 믿었다. 정수아는 재생의 뱀의 예비사도다. 둘 다 백현이 챙겨줄 만큼 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민식은 아니다.
그는 사라처럼 도원경에서 무공을 배운 것도 아니고, 정수아처럼 군주의 예비사도인 것도 아니다. 지켜줘야 한다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백현은 은사가 이어진 곳으로 움직였다.
*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고약한 악취였다. 마치 몇 년은 묵은 것 같은 썩은 내가 코를 파고들고 속을 뒤흔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토악질을 하고 싶었지만, 그 정도로 개념이 없지는 않았다. 서민식은 아랫입술을 씹으며 욕지기를 삼켰다.
움직여야 하나? 아니면 그대로 있어야 하나...? 눈만 뜨고서 주변을 둘러본다. 정령을 불러내지도 않았다.
그는 시체더미의 위에 누워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체와, 머지않아 죽을 반 시체가 골고루 섞인 곳의 위에.
그 아래에는 몬스터들이 발을 질질 끌며 배회하고 있었다. 그들은 가끔씩 칼날처럼 날카로운 손톱으로 시체더미를 푹푹 찔러댔는데, 그럴 때마다 작고 큰 비명이 들리곤 했다.
‘확인사살.’
서민식은 숨을 죽였다. 어둠이 터지고, 그 뒤에...
‘씨발, 재수 좆도 없네.’
언제나 시끄럽게 떠들던 템페스트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이런 최악의 상황임에도 그의 머릿속에는 템페스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었다.
“우와악!”
널브러진 시체들 한복판에서 누군가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냅다 뛰기 시작했다. 누군가 했더니 탐색대에 참가했던 헌터였다.
헌터의 사지가 찢겨 죽는 것을 보고서, 서민식은 더욱 숨을 죽였다.
“흡.”
하지만.
대뜸 발목을 잡는 손에,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키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끝
ⓒ 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