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Me Be Reborn

631. Idol vs Return24

미소가 망측한 상상을 떠올렸다.

린다와 제희가 발가벗고 도훈을 사이에 두고 뱀처럼 얽혀 있는 모습이었다.

사실 그녀는 철없던 시절 가출 팸에서 혼숙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적으면 열다섯, 많아야 스물이 넘지는 않는 청춘들은 늘 그렇듯이 성욕이 넘치고 충동적이었다.

모든 것이 노출된 공간에서 단둘이라는 사적인 영역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다 남녀 둘이 눈이 맞으면, 그 욕망의 덩어리가 들불처럼 번지며 이내 사방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 짐승의 소굴 속에서 미소는 고등학생 나이에 덜컥 임신을 하고 말았

다.

그룹섹스까지 경험했던 미소에게 쓰리썸을 떠올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내 억측이라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미쳤지. 내가 지금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둘도 아니고 셋? 그것도 처음 만난 날?”

미소가 한숨을 푹 쉬며 거실 소파에 드러누웠다.

‘요새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나? 욕구 불만인 것 같기도.’

이제 데뷔까지 이틀.

긴 연습을 끝내고 마침내 대중에게 선보이기 직전이다.

기대와 설렘, 긴장과 두려움이 맞물리면서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었다. 젖먹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번 데뷔를 성공적으로 치러야 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그룹의 리더인 미소에겐 막중한 책임이 걸려 있었고, 그것이 그녀를 짓눌렀다.

“정신 차리자, 이미소!”

어려서 막살 땐 몰랐는데, 이른 나이에 사회에 진출해보니 세상은 온통 가시밭길이었다.

자기보다 잘난 여자.

자기보다 똑똑한 여자.

노래를 잘 부르는 이도 많고, 춤을 잘 추는 이들은 쌔고 쌨다. 중고등 시절에 지역을 주름잡으며 잘나갔던 일진 출신이래봐야 결국 우물 안 개구리 수준. 특출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그녀에겐 남모를 아픔이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아기.

누구보다 소중한 보물이지만 아이돌 생활을 막 시작하는 그녀에겐 발목을 잡는 족쇄이자, 터지면 인생이 한방에 끝장날 수 있는 뇌관이기도 했다.

미소가 촉촉이 젖은 눈으로 핸드폰을 켰다.

그리곤 남들에겐 조카라고 소개한 갓난 아기의 사진첩을 열었다. 지금은 사정상 만날 수 없지만, 늘 보고 싶은 아기였다.

‘희성이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해. 한눈팔 시간같은 거 없어. 후회는 단 한 번으로 족하니까.’

미소는 힘들 때마다 몰래 아이 사진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

애 엄마는 더 이상 세상에 무서울 게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이번 데뷔를 성공적으로 이끌겠다는 각오를 품었다.

남자고 뭐고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

“아직 누나랑 할 얘기가 더 남은 것 같아서요.”

미영은 새삼 달라진 도훈의 분위기에 움찔 놀랐다.

‘뭐, 뭐지? 나 방금 살짝 쫀 건가?’

미영은 당찬 여인이었다.

30대 중반의 나이로 업계에서 알아주는 영업직 사원에 올랐다. 특유의 사근사근한 말투와, 남자를 유혹하는 행동으로 남성 고객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은근한 터치 후 큰 가슴을 모아주면 남자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계약서에 도장 찍어댔다. 마치 잘만 하면 따로 만나주기라도 할 것처럼.

물론 딱 거기까지였다.

주 고객인 3040대 남성들에게 맛보기만 보여주고, 차량 인도만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어떻게 유부녀랑 한 번 잘해볼 생각을 품었던 고객들은 씁쓸한 입맛을 다셔야 했다.

나쁜 년. 줄 듯 말 듯 결국 안주는 년.

그녀를 상대한 고객들의 대체적인 평이었다.

물론 그녀가 늘 거리를 두었던 건 아니다.

미영의 남편은 소방직 공무원.

들쑥날쑥한 출퇴근 시간에 현장이라도 한 번 나가는 날엔 야근은 고사하고 철야가 기본이었다.

그나마 집으로 돌아와도 늘 피로감에 먼저 잠들기 일 수.

30대 중반에 들어서면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미영의 뜨거운 몸을 식혀주기엔 남편은 너무 바빴다.

그렇게 욕구불만이 쌓일대로 쌓이자 미영은 결국 바깥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상대하는 고객들의 대부분이 남자였고, 중고차 구매라는 게 연락을 자주 주고받기 마련이라 그녀는 남편 모르게 손쉽게 남자들과 어울렸다.

그러다 마음에 들면 재미도 보고 돈도 벌었다.

그것이 그녀가 영업왕에 오른 비결이었다.

그런 미영이었기에 자신이 도훈에게 살짝 움츠러들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쫄아? 고작 스무살 겨우 넘긴 애송이한테?’

도훈은 쉽게 말해 호구였다.

차라고는 인생에서 처음 구매해 볼 법한 나이.

그것도 돈이 부족해, 겨우 중고차부터 알아보는 풋내기다.

굳이 유혹이고 말 것도 없이, 사실상 가지고 놀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방금전 도훈이 보여준 모습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자신감이 넘쳤다. 어리숙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슨 얘길 더 하자는 거지?”

“저 방금 알바 소개시켜 준다지 않았어요? 그런 얘길 따로 만나서 할 데가 없을 것 같아서.”

“아···.”

결국 그 얘기였다.

호빠를 운영하는 정마담과는 중고 수입차를 팔면서 만났다.

화류계에서 일하는 여자들이란 어쩔 수 없이 허영이 넘칠 수 밖에 없다. 옷도 명품, 화장품도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것들로만 샀다. 차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고급스러워야 그만큼 장사도 잘된다는 반증이니까.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제돈 주고 살 순 없었다.

특히 초기 구매가에 비해 감가가 빠르게 떨어지는 수입차라면 더욱 그랬다.

정마담은 출고가가 비쌌던 외제차 중에서도 사고 등으로 감가가 확 떨어진 모델을 원했고, 박미영은 거기에 부응해 적절한 차량을 제공해 주었다.

정마담 한 명을 보고 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운영하는 호빠 선수들까지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녀의 계산대로 호빠 선수들은 영업(?)을 목적으로라도 중고 수입차를 많이 팔아 주었다. 서로 동업자 관계가 된 두 사람은 언니 동생하며 가끔 어울렸다. 그때 우연히 선수로 뛸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소개시켜 달라는 말이 떠올라 도훈에게 제안해 본 것이었

다.

와꾸도 훌륭하고, 무엇보다 젊었다.

바람기 가득한 사모들이 좋아할 스타일이었다.

도훈의 속셈을 파악한 미영이 다리를 꼬아 앉으며 물었다.

“왜? 진짜 해보게?”

“생각해 보니까 과외로 돈 버나 그렇게 돈 버나 다를 건 없을 것 같아서요.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도 있잖아요.”

‘개처럼 벌면 개처럼 쓰던데···.’

정마담을 통해 알게 된 화류계 동생들 대부분이 그랬다.

하룻밤에도 수십만원을 우습게 벌어서 그런지, 돈을 우습게 알았다. 몸 팔아 번 돈이라 그런지 흥청망청 날렸다.

도박이니, 계집질이니, 술이니···.

수입 중고차 구매도 마찬가지였다.

가진건 쥐뿔도 없으면서 몸에 허세가 배었다.

영업을 위한 것이라곤 해도 한심한 인생들이었다.

미영은 처음 보는 도훈을 그런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이 찜찜했지만, 어차피 그것은 도훈의 선택이었다. 자신이 강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 그렇게 학비도 벌고 용돈도 받으면 좋지. 좋은게 좋은 거 라잖아. 돈은 더 좋고.”

“혹시 누님도 거기 가보셨어요?”

도훈이 훅 치고 들어왔다.

“나?”

“네. 소개해 주신 분이랑 친한 것 같아서요.”

“아니, 뭐 내 돈주고 가 본적은 없는데. 가보긴 했지.”

“어때요?”

“뭐가?”

“호빠 다니는 남자애들.”

“잘생겼지. 몇 명은 당장 연예계 데뷔해도 충분하겠던데? 실제로 호빠 출신 연예인들 제법 있는 거 알지?”

“그래요? 그럼 제가 좀 꿀리겠는데···.”

도훈이 미남이긴 하지만, 빼어날 정도로 잘생긴 편은 아니었다. 미남과 훈남의 중간 정도랄까?

미영이 말했다.

“선수를 얼굴로만 하는 건 아닐걸?”

“그럼요?”

“거기 오는 여자들이 잘생긴 애들 보러 오는 것 같니?”

“아니에요?”

“전혀. 그냥 위로받고 싶어서야.”

“위로요?”

“그렇지. 꼭 돈 많은 사모님들만 오는 건 아니래. 그냥 평범한 직장인들도 월급 털어서 많이 가. 대화도 나누고, 일에 지친 영혼을 달래러.”

미영이 하는 얘기는 전적으로 정마담이 술자리에서 들려준 이야기였다.

“아···.”

“뭐 또 다른 걸 기대하는 손님들도 있으니까.”

미영의 목소리가 묘하게 톤이 바뀌었다.

살짝 늘어지는 느낌. 끈적거리고 속삭이는 말투였다.

도훈은 대번에 그녀가 19금으로 넘어갔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거요? 가령···.”

“뭐, 그런 거 있잖니.”

미영의 손이 장난스럽게 운전 중인 도훈의 허벅지 위로 올라왔다. 그러면서 천천히 도훈의 허벅지를 쓸어내렸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싶어하는···.”

그녀는 도훈의 말같은 허벅지에 속으로 무척 놀랐다.

‘아까 팔뚝 만질때도 느꼈는데 얘는 정말 몸이 단단하구나. 하여간 젊은 애들이란···.’

“그럼 그것도 잘해야겠네요?”

“그렇지. 기왕이면 못 하는 것보단 잘하는 게 낫지. 왜? 자신 없니?”

도훈이 미영의 손길을 내버려 두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 모르겠어요. 해본 여자들은 다 잘한다고 하는데···.”

“후훗. 그거 다 립서비스야. 그럼 대놓고 면전에다 못 한다고 할 까봐.”

“그러니까요. 혹시 테스트 같은 것도 있나요?”

“무슨?”

“그러니까 면접이요.”

“풉 무슨 대기업 입사하니?”

“네?”

“너 호빠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네. 가본 적이 없어서요.”

“하긴 남자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네. 너가 궁금해 하는 것 같으니까 내가 아는 데까지 말해줄게.”

“네.”

미영은 정마담에게 주어들은 얘기를 도훈에게 전했다.

사람들이 대체로 착각하는 게 호빠엔 무조건 잘생긴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직접 가서 보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있고, 엄밀한 의미로 못생긴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장기가 있다.

얘기를 재밌게 한다거나, 노래나 춤을 잘 춘다거나, 밤일을 기가 막히게 잘한다거나. 하도 못해 술이라도 잘 마신다.

그렇게 어중이떠중이들까지 모두 모여 호빠를 구성한다.

“쉽게 말하면 물량공세야. 여자들이 남자보다 초이스 까다로운 거 알지? 심하면 다섯 박스까지 모두 보고 고르는 손님도 있데.”

“박스요?”

“12명에 한 박스. 그런 규모의 팀이 대충 5팀 이상이 상주하고 있어. 호빠 하나에 몇 명이 선수가 있는 지 알겠지?”

“거의 60명이네요?”

“그래. 거기에 잘생긴 애들? 몇 안 돼. 아니 손에 꼽지. 너 정도면 적어도 중상이상은 될 거야.”

“아···.”

‘몸으로는 거의 1등일 거고.’

미영이 뒷말을 아꼈다.

“암튼 그래서 면접 이런 건 필요없어. 어차피 실전이 면접이라더라고. 가서 여자들한테 초이스 받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드니까. 마이깡 뜯겨서 빚만 지는 애들도 수두룩해.”

“마이깡요?”

“처음 일 시작할 때 옷 한번 근사하게 맞춰야 하잖아. 구두도 사고, 헤어도 출근할 때마다 손질해야지. 그런 비용이 어디서 나겠어? 처음엔 다 빚이야. 잘 적응한 애들은 몇일 만에 다 털고 돈 벌기 시작하지만, 못하면 뭐···. 알지?”

도훈이 심각한 척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돈 벌러 가서, 빚만 지고 올 수도 있는 거네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잘 할 수 있을까요?”

“글쎄.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대신 내가 볼 땐 넌 충분히 먹힐만한 외모야.”

“저보다 잘생긴 애들도 많다면서요.”

“아니··· 외모가 꼭 얼굴만 말하는 게 아니니까.”

미영의 손이 허벅지 안쪽으로 조금씩 들어왔다.

단단한 도훈의 몸을 만지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살짝 흥분한 탓이었다.

“여긴 쓸만한 거 맞지?”

“아앗!”

도훈이 놀란 것처럼 핸들을 살짝 틀었다.

갑작스러운 조향에 차량이 흔들리며 타이어가 슬립이 났다.

“조, 조심해!”

“죄송해요. 놀라가지고.”

“이런 거 가지고 놀라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니? 안 되겠다. 그냥 없던 일로 하자.”

도훈이 미영의 밀당에 속으로 씩 웃었다.

‘어쭈, 튕기기도 하네. 그럼 적당히 넘어가 줄까?’

“저, 누, 누나.”

“안 돼, 안 돼. 사실 너무 순진해 보여서 말하기 망설였거든. 그런 일은 마음 독하게 먹어야 해. 거기 오는 손님들 태반이 유부녀야. 너 남편 있는 여자 건드리는 데 죄책감 안 느낄 자신 있어? 그거 못하면 시작을 안 하는 게 좋아.”

“유부녀···.”

“그래. 유부녀. 나 같은.”

미영이 넌지시 자신의 신분을 재확인했다.

그것은 도훈에 대한 도발이나 마찬가지였다.

도훈은 심각한 고민에 빠진 척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 도훈에게 손을 뗀 미영이 폰을 쳐다보며 속으로 입맛을 다셨다.

‘하, 고놈 참. 맛깔나게도 생겼네. 크기 좀 한 번 확인하려고 했는데···.’

미영은 나이가 어린 도훈을 자신이 가지고 논다고 생각했다.

잘하면 호빠 소개를 빌미로 한 번 따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물론 모든 것은 도훈이 의도한 데로 였다.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고, 계속 그쪽으로 화제를 유도하면서 바람기 다분한 유부녀의 욕망을 조금씩 부추기는 것이다.

이쯤 물이 올랐다고 판단한 도훈이 긴 침묵을 깨고 미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 실례가 안되면···.”

“응. 말해.”

“저 좀 테스트 해 주실 수 있나요?”

“뭘?”

“그러니까···.”

일부러 으슥한 곳으로 차를 몰고간 도훈이 갓길에 차를 멈추며 말했다.

“제가 그 일을 잘할 수 있는지 누나가 한 번 봐주세요.”

“호호호호!”

도훈의 깜찍한 제안에 미영이 깔깔 웃으며 물었다.

“너 지금 나 유혹하는 거니?”

< 631. 아이돌 vs 돌아이2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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