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Up

< Chilsung 3 >

검은 불꽃 벌, 이름은 무시무시하지만 사실 그렇게 무서운 마수는 아니었다.

단, 한 마리씩 만난다면 말이다.

한 마리를 상대하는 건 레벨 30 언저리의 플레이어가 적당한 장비만 갖고 있다면 얼마든지 해치울 수 있었다.

40레벨이 넘어가면 한 번에 두세 마리를 동시에 상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검은 불꽃 벌의 수는 수백 마리나 된다.

그걸 제대로 상대하려면 함께 싸운 경험이 많은 플레이어 수십 명이 필요했다.

최소 열 명은 있어야 공방을 적절히 맞추면서 벌떼를 상대할 수 있었다.

이곳에 들어온 플레이어의 수는 수십 명에 달했다. 게다가 레벨도 제법 높았다.

문제는 플레이어가 아닌 자들이 훨씬 많다는 것과, 플레이어들도 함께 전투를 벌인 경험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저것들 뭐야!”

“전투준비!”

플레이어들은 기겁해서 장비를 착용하고 무기를 꺼냈다. 그래도 싸움 좀 하는 플레이어를 상대한다고 해서 장비를 챙겨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위이이잉!

벌떼가 사방으로 흩어져 공격을 시작했다. 검은 불꽃 벌은 빠르고 강했다. 무엇보다 온몸이 검은 불꽃으로 휩싸여 있기에 그저 단순히 돌진해 몸통으로 들이받는 공격만으로도 위험했다.

퍼퍼퍼퍼펑!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들은 사방에서 몰려드는 벌떼를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레벨이 좀 낮거나, 플레이어가 아닌 조직원들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크아악!”

“으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울렸다. 그리고 검은 불꽃이 몸에 옮겨 붙어 온몸이 검게 타오르는 사람들이 속속 생겨났다.

“으아아아아아악!”

그들은 폐를 뽑아내 버릴 것 같은 비명과 함께 몸부림치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젠장! 방해 된다! 저리 꺼져!”

레드독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칠성파에 속한 길드답게 성향이 거칠고 잔인했다.

그들은 검은 불꽃에 휩싸여 몸부림치는 조직원들을 거침없이 무기로 날려 버렸다.

그놈들이 근처에서 움직임을 방해하는 바람에 벌떼를 상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신이 당하느니 이미 당한 놈을 죽이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에 일말의 죄책감이나 망설임도 없었다.

따악! 따악! 따악!

그 와중에도 손가락 튀기는 소리가 계속 울렸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력 파동이 건물을 휩쓸고 지나갔다.

벌떼를 상대하던 플레이어들이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저 소리 어디서 나는 건지 찾아!”

사실 그들을 진짜 거슬리게 만든 건 마력파동이었지만, 그들은 그걸 알지 못했다. 그저 소리가 신경을 거슬리고 있는 거라고 여겼다.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들이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 곳곳에 상처가 생겼다. 더는 혼자 버티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움직인 것이다.

처음에는 손발이 맞지 않아 모인 게 더 위험했다. 하지만 몇 번 당하고 나니 서서히 손발이 맞으면서 벌떼를 훨씬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었다.

“그 새끼 내가 진짜 가만 안 둔다. 감히 마수를 던전에서 빼와?”

“근데 마수를 빼내는 게 가능하긴 한 건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잡담을 나누면서도 다들 손발을 분주히 놀리고 있었다. 사방에서 돌진을 감행하는 벌떼를 막는 건 아무리 그들이 뭉쳐 있다고 해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나마 다들 레벨이 50 이상이고, 그들을 이끄는 플레이어의 레벨이 63이나 되기에 이 정도 하는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다들 다른 놈들과 마찬가지로 저기 바닥에 사이좋게 누워 있었을 것이다.

따악! 따악! 따악!

연이어 들려오는 딱 소리에 다들 인상을 썼다.

“저거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냐?”

“동감.”

“아까부터 생각해봤는데, 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놈들이 날뛴 거 같아.”

“그랬나?”

“하긴 채현석이라는 놈도 한가락 한다고 했으니 아무 대비 없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겠지.”

무려 6개월을 감쪽같이 숨어 지냈다. 그런데 이렇게 난데없이 모습을 드러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 쯤은 유추해 냈어야 한다.

“큰형님은 어쩌고 계셔?”

“아직 건물 밖에 계신 모양이야. 우리가 일 다 처리하면 느긋하게 들어올 생각이셨겠지.”

결과적으로 그것이 그의 목숨을 살린 셈이 되었다. 아마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누가 가서 큰형님한테 알려야 하는 거 아냐?”

“그보다는 저 위에 있는 채현석을 잡는 게 먼저야. 저놈이 저 소리를 못 내게 해야 한다고.”

아직도 남은 검은 불꽃 벌의 수가 엄청났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결국 마력이 바닥 나서 다들 쓰러지고 말 것이다.

그나마 이들이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레벨이 높아 다른 놈들에 비해 마력이 많기 때문이었으니까.

“뚫을 수 있나?”

한 명이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보며 물었다.

“안 돼도 해야지. 여기서 이러다가 죽는 것보다는 뚫다가 죽는 게 훨씬 나아.”

“그럼 다들 뚫고, 한 놈만 반대로 뛴다.”

“미끼?”

“미끼 반 보고 반.”

벌떼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더불어 칠성파의 보스인 강중태에게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하는 임무였다.

선뜻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가장 위험한 임무였기 때문이다. 모두의 시선이 한 명에게로 향했다.

이 중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사내였다.

그는 손에 든 검을 몇 번 휘둘러 달려드는 벌을 후려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가지. 돌진 신호도 내가 낸다. 다들 준비해.”

그제야 마음이 좀 놓인 플레이어들이 눈을 빛내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생사가 달렸다.

“달려!”

사내의 외침과 동시에 다들 우르르 벌떼를 뚫고 돌진했다. 이미 그들 외에는 살아남은 사람이 없기에 모든 벌떼가 그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반대방향으로 달려나가는 사내가 있었다.

벌떼의 일부가 그를 향해 날아갔다.

“으악!”

“저리 가!”

비명이 연이어 울렸다. 돌진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오히려 벌떼가 공격하기 좋게 만들어 주었다.

차라리 진형을 유지한 채 천천히 이동하는 편이 나았다.

반대 방향으로 도망친 사내는 처음부터 그걸 알았지만 굳이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저들의 목숨보다는 자신이 살아남는 게 훨씬 중요했으니까.

다행히 그는 무사히 피할 수 있었다. 이제 저 창문을 통해 밖으로 뛰어내리기만 하면 된다.

제법 높긴 하지만 그래도 죽진 않을 것이다.

‘난 플레이어니까.’

레벨이 63쯤 되면 이미 모든 면이 인간의 한계를 넘었다고 보면 된다.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져도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니, 잘만 하면 다치지 않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사내는 그럴 생각이었다.

그가 막 뛰어내리려는 순간 누군가 어마어마한 힘으로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쿠와아악!”

사내는 볼썽사나운 괴성을 지르며 뒤로 휙 딸려갔다. 그리고 거칠게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쿠당탕탕탕!

“크으윽!”

어찌나 오지게 패대기쳤는지 온몸이 부서질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여기서 뛰어내려 바닥에 그냥 떨어졌어도 이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본 사내는 바로 앞에 서 있는 현석을 발견하고는 이를 갈았다.

“너냐? 지금 나 끌어당긴 거?”

사내는 그러면서도 주위에 대한 경계를 잊지 않았다. 그렇게 날뛰던 벌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현석이 보내던 마력파동이 사라져 다들 부서진 것이다.

검은 불꽃 벌이 이곳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특정한 파동의 마력으로 온몸을 계속 씻어내는 것뿐이었다.

그게 아니면 몸이 말라비틀어지면서 부서진다.

현석은 아주 적절하고 정확한 시점에 마력을 끊어 검을 불꽃 벌을 모두 없앴다.

미래에 한순간 강력한 병기로 등장했던 마수였지만 곧장 대응법이 나오는 바람에 쓸모없게 변해버린 것이 바로 검은 불꽃 벌이었다.

현석은 마계에서 마침 그걸 구할 수 있었고, 이번에 아주 적절하게 써먹었다.

아직 남은 알이 좀 있었지만 그건 나중에 써먹기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어쨌든 벌이 없으면 현석에게 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사내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이럴 때는 기습하듯 공격하는 게 최선이었다. 상대가 대처할 틈도 주지 않는 것이 승리의 지름길이었다.

사내의 몸이 빠르게 현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주먹이 현석의 턱을 후려쳤다.

그는 주먹이 현석의 턱에 닿는 걸 분명히 느끼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력이 가득 담긴 주먹질이었다. 누가 와도 이런 주먹에 맞으면 골로 간다. 설사 자신보다 레벨이 훨씬 높은 플레이어라도 마찬가지다.

후웅!

‘어라?’

소리가 이상하다. 뻑 소리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퍽 소리라도 나야 하는데, 바람 가르는 소리만 나지 않는가.

그 순간 손맛도 사라졌다. 분명히 닿은 것 같은데 손에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사내의 의문은 길지 않았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충격이 찾아왔으니까.

꽈앙!

사내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의 몸에 난 구멍이란 모든 구멍에서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왔다.

현석은 주위를 슥 훑어봤다. 자신이 만들어낸 참상을 지켜보는 그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이제 뒤처리를 할 시간이 되었다.

* * *

강중태는 눈살을 찌푸리며 건물을 노려봤다.

“너무 오래 걸리는 거 같지 않아? 고작 한 놈인데. 게다가 여긴 우리 구역이잖아.”

저 건물이 짓다 말고 폐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칠성파 때문이었다.

아니, 애초에 저 건물 공사 자체에 칠성파가 개입했다. 건물주는 차일피일 미뤄지는 공사일과 자고 일어나면 늘어나는 공사비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해 버렸다.

이쪽에선 흔한 일이었다. 칠성파가 자주 써먹는 방법이기도 했다.

칠성파는 이쪽 땅 대부분을 매입한 상태였다. 조만간 이 근처가 개발될 거라는 정보를 얻었다.

그래서 그 전까지 이런 지저분한 일을 처리할 때 종종 이곳을 써먹었다.

강중태 주변에는 칠성파 조직원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온몸을 던져 보스를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김상우가 있었다.

“제가 가서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형님.”

강중태가 대답이나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김상우가 득달같이 건물 쪽으로 달려갔다. 아니, 달려가려했다.

한데 그 순간 풀썩 쓰러졌다.

“뭐야!”

“누구야! 나와!”

다들 긴장하며 사방을 둘러봤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욕설을 쏟아냈다.

그들의 시끄러운 목소리를 뚫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렇게 떠들 필요 없어. 어차피 다들 같은 꼴이 될 테니까. 그러니까 서둘지 마.”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강중태 뒤에 병풍처럼 늘어서 있던 사내들이 하나씩 푹푹 쓰러지기 시작했다.

툭툭툭툭.

비명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 무너지듯 넘어지는데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에 공포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곳에 강중태와 함께 있던 사람은 서른 명이 넘었다. 한데 고작 잠깐 사이에 열 명이 쓰러진 것이다.

“도, 도망쳐!”

누군가가 그렇게 소리치며 뒤돌아 달렸다.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가장 먼저 도망치려고 돌아선 자가 그대로 쓰러지며 나뒹굴었기 때문이다.

달려가던 힘을 이기지 못해 제대로 굴러 온몸에 상처까지 났다.

툭툭툭툭.

얼어붙은 듯 멈춘 사람들이 다시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다들 공포를 못 이기고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물론 한 명도 도망치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렇게 모두 쓰러지고 강중태 혼자 남았다. 강중태는 의자에 앉은 채 저 멀리 건물에서 나와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현석을 보고는 침음을 삼켰다.

현석의 모습은 너무나 멀쩡했다. 안에 들어간 놈들과 치열하게 싸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 칠성파 3 > 끝

ⓒ 김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