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Skill

Skill Emperor 23 Coins

산채 공략 (1)

“나 참, 돌겠네. 이거.”

황당함을 넘어 어처구니가 없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최혁수는 세븐 쓰론에 징집된 이례로 처음 진심으로 당황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진짜 뭡니까? 당신.”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무열에게 물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모습에 그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뭐긴, 사람이지.”

“하…… 장난해요?”

시답잖은 대답에 최혁수는 인상을 찡그렸지만 무열은 그런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쓱.

저벅저벅.

“계획을 망친 거라면 미안하지만. 이런 진법을 설치해 놓은 걸 보면 딱히 너도 녀석들을 죽이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던 거 같은데.”

무열은 부러진 가지들을 쓱 만지면서 말했다.

그 모습에 최혁수는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다른 것도 아닌, 자신이 기대고 있는 나무의 가지를 딱 골라서 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쳐 놓은 진법을 나한테 쓸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아. 너도 목적이 있을 테니까. 서로 체력 낭비할 필요 없겠지.”

“……설마, 그쪽 목적도 이 녀석들?”

최혁수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자신과 목적까지 같을 거라고는 생각 못한 일이니까.

툭.

무열은 부러져 꺾여 있던 나뭇가지를 잡아 뜯어 바닥에 던지며 몸을 돌렸다.

“하…….”

알고 있으니 따라오라는 듯 성큼성큼 숲을 향해 걸어가는 무열.

그 모습에 최혁수가 인상을 팍 구겼다.

“젠장, 아오……!!”

자존심이 상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최혁수는 황급히 무열의 뒤를 쫓았다.

* * *

두 사람은 한동안 대화 없이 숲길을 걸었다.

‘……허.’

숲길을 따라 걸으면서 최혁수는 놀람을 뛰어넘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무열을 바라봤다.

‘도대체 뭐야? 저 인간. 무슨 지도라도 있는 거야? 어떻게 저렇게 갈 수 있지.’

자신도 길을 잃었던 곳이다.

하지만 무열은 고민도 하지 않고 길을 걷고 있었다.

‘진법을 알고 있는 E랭커? 있을 수가 없어. 랭크 업이 뭔지도 모르는 놈들이 수두룩한데……. 게다가 첨탑에 다녀왔어도 환술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실력을 숨기고 있는 상위 랭커?

‘아냐.’

이제 겨우 반년이 흘렀을 뿐이다. 시기적으로 D랭크 이상 나올 수 없다고 최혁수는 생각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영역 이상의 강자?

인정할 수 없었다.

아마도, 천재의 자존심.

“…….”

아이러니하게도 최혁수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도무지 가늠을 할 수 없는 무열에게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바스락.

길게 자라난 풀을 옆으로 젖히자 저 멀리 안쪽에 목책으로 둘러싸인 산채가 보였다.

거침없이 더 걸어가자 거대한 산채가 점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원수야 훨씬 못 미치겠지만 산채만큼은 300여 명이 거주하던 3거점보다 더 커다란 모습.

우습지만 살인자들의 집단이 오히려 이곳에서 더 적응을 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크크……. 여기도 살 만하잖아?”

“사, 살려주세요!!”

“꺄아악!!”

“이 씨발! 안 닥쳐!!”

산채 안에 있는 건물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규모가 제법 크다. 저 녀석들을 모두를 상대하는 건 어렵겠군.’

무열이 산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 결국은 E랭크.’

그와 동시에 최혁수 역시 무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줬지만 이렇다 할 스킬을 쓰지 않았다.

게다가 사용하는 무기는 도검류.

‘행여나 D랭커라 해도 전사 클래스라면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뻔해.’

좀 전에 자신과 함께 파티를 맺었던 남자.

그 사람이 전사였으니까.

‘기껏해야 베기나 찌르기에 국한된 스킬로는 저 많은 인원을 상대할 수 없어.’

그렇게 생각한 최혁수는 머리에 쥐가 나는 기분이었다.

‘쳇, 전력이 차이가 나도 너무 차이가 나잖아.’

주위를 살펴본다.

울타리 앞에 보초는 겨우 두 명.

비명 소리와 웃음소리가 안쪽에서 들리는 것을 봐서는 아마도 대부분 건물 안에 흩어져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한 삶.

제각각 여러 의미로 정신없이 바쁘겠지.

게다가 지금껏 습격을 당해본 적이 없을 테니 방어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씁…….”

다행이라면 다행.

하지만 결코 침입이 쉬운 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산채 안에 있는 녀석들에게 둘러싸일 수 있다.

순간, 무열의 눈빛이 빛났다.

‘단번에 우두머리를 노린다.’

그리고 최혁수 역시.

‘금적금왕(擒賊擒王). 역시 적을 제압하려면 왕을 잡는 수밖에 없지,’

놀랍게도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했다.

‘그렇다면…….’

‘역시…….’

방법은 하나다.

‘환술.’

‘첨탑에서 얻은 힘.’

그걸 사용해야 한다.

불의 초열(焦熱).

바람의 풍진(風塵).

그리고 안개의 연하(煙霞).

언뜻 보기에는 원소 마법과 같아 보이지만 환술은 마력과 달리 오직 환술사만이 쓸 수 있는 직업 고유 스킬이다.

그 이유는, 환술은 마력이 없어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히든 스테이터스 없이 첨탑에서 얻을 수 있는 직업.

게다가 위력 역시 뛰어나다.

그것만 놓고 본다면 무척이나 효율적이라 생각되지만 오히려 세븐 쓰론에서 환술사는 마법사보다도 더 드물다.

아니, 기피 대상 1순위의 직업 중 하나라고 봐도 무관했다.

환술사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

바로, 진법이 필요하다는 것.

소위 A랭크 이상의 대규모 마법을 쓸 때 필요한 마법진과 비슷하지만 환술은 최하급 랭크의 것도 사용하기 위해서 진법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동급의 마법을 상회한다.

‘그럼 뭐해. 맞출 수가 없으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진법(陣法).

마치 덫을 깔고 그곳으로 유인을 해서 싸워야 하는 형국이었기 때문에 혼자서는 더욱더 사냥을 하지 못해 환술사는 랭크를 올리기도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택하는 사람이 없었지. 가성비로 따지면 최악의 클래스니까.’

무열이 최혁수를 바라봤다.

단 한 명.

눈앞에 이자를 제외하고 말이다.

‘항간에는 최혁수가 환술사라는 직업을 얻은 게 처음이라 몰라서라기까지 했지.’

하지만 그 말을 그는 보기 좋게 뒤집어버렸다.

덫과 유인.

소규모 사냥에서 그 힘은 그다지 큰 효용성이 없는 능력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10만, 100만의 규모가 되었을 땐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책략과 전술.

‘아직은 그 능력이 대단한 건지 모르겠지.’

그가 단명하기 전, SS랭크에 도달하여 대규모 환술진으로 만들어낸 세 개의 극의(極意).

초열의 극의, 업화(業火).

풍진의 극의, 선풍(旋風).

연하의 극의, 농무(濃霧).

불멸자라 불리던 중국의 염신위의 100만 군세를 단번에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힘이었다.

무열이 그를 바라봤다.

마치 이미 생각을 이미 읽고 있는 것 같은 표정.

“환술을 정문에 두 개, 그리고 좌우로 한 개씩 만들면 산채를 가두기 충분하겠지.”

“……!!!”

최혁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신과 똑같은 생각.

순간, 그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 사람…….’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자신의 전략마저 눈치채다니.

마치 어려운 문제의 답을 풀 아이처럼 최혁수는 들뜬 마음으로 소리치듯 무열에게 말했다.

“그렇죠! 아무래도 불로 주의를 끌어서 그 틈에 몰래…….”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같은 생각.

그리고 전혀 다른 방법.

“시선을 돌릴 필요 없다. 그냥 걸어 들어가도 충분해.”

“……에?”

꽈악.

“불꽃이 아니라, 안개.”

그 순간, 무열이 곡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무…… 무슨.”

정작 당사자인 최혁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직 자신의 힘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지. 환술의 진짜 힘은 네가 직접 공격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다.”

당연히 이해 못 할 거다.

아무리 천재라 할지라도 평온의 시대에 살았으니까.

전장(戰場).

그건 겪어보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천재가 그런 세계를 겪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를 최혁수가 보여줬지만.

저벅저벅.

무열의 말에 충격을 받아 멍했던 최혁수는 어느새 저만치 망설임도 없이 산채 안으로 걸어가는 그를 바라보며 화들짝 놀랐다.

‘진짜로? 정말이야? 도대체 무슨 생각을…….’

자신을 믿는 건가?

최혁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아무런 망설임 없이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묘한 심장의 고동을 느꼈다.

지금껏 대륙에서 제법 많은 사람을 봤지만 이런 사람은 처음이다.

무모해 보인다.

하지만 목숨을 내버리는 것도 아니다.

“하…….”

최혁수는 자존심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인간…… 재밌는데?’

순수한 한 존재에 대한 호기심.

그 순간.

“이봐요. 죽어도 난 몰라.”

조금 더 보고 싶다.

최혁수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기대감에 처음으로 품 안에서 작은 보옥을 꺼내며 타인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