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Skill

Skill Lord 39 Coins

퀘스트

“……뭐?”

엘리젤 일족 아이의 말에 무열은 살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히 그가 가지고 있는 무기는 곡도가 맞다.

그 사실이 놀라운 게 아니다.

‘이 녀석, 내가 소드 스킬(Sword Skill)을 익힌 걸 알고 있는 건가?’

노련한 검사라면 혹시라도 그럴 수도 있다.

움직임, 보폭, 자세.

이런 것들에서 흘러나오니까.

특히, 그가 회귀를 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해온 훈련법 역시 검병부대 시절에 익힌 것들이었으니까.

그러나 눈앞에서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는 그런 노련하고 경험이 많은 자가 아니다.

외모로 봐선 기껏해야 열 살짜리 여자아이.

뜨거운 남부의 기후를 이겨내고 자라난 그녀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워진 게 아니라 어린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튼튼해 보였다.

장난기 가득해 보이는 얼굴로 무열을 바라보고 있는 수상쩍은 아이를 향해 무열이 말했다.

“내가 왜 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헤에, 딱 보면 알죠. 경기장 서판에 등록하는 걸 봤어요. 제 감이 맞다면 승리하기 위해선 딱! 아저씨한테 필요할 것 같은데. 어때요? 절 따라오시겠어요?”

“마치 네가 얘기하는 그 검이 없으면 내가 질 거라는 말로 들리는데?”

무열의 도발에도 아이는 마치 능숙한 상인처럼 그의 주변을 한 바퀴 휘리릭 돌면서 말했다.

“에이, 좀 전의 모습만 봐도 알겠는데요. 단지 아저씨에게 어울릴 만한 무기가 있어서 그렇죠. 좋아요. 안 사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일단 물건이나 한번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이 세계는 분명 규율이란 시스템이 적용되는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마치 게임처럼 정해진 무기가 아니면 스킬을 사용할 수 없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익힌 스킬의 위력을 100% 끌어내기 위해선 거기에 맞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무열이 익힌 강검술과 비연검은 도법이 아닌 검술.

지금까지 획득한 무기 중엔 그나마 ‘라이칸스로프의 발톱’이 유일한 레어 웨폰.

대체할 수 없는 가장 좋은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지금껏 사용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나중에 거점 상점이 생기면 그때 거기에서 검을 사려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거점 상점은 앞으로 몇 개월은 더 지난 뒤에나 나온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지만 만에 하나 이 아이가 D급 레어 이상의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충분히 거래해 볼 만한 일이었다.

‘특히 엘리젤 일족은 손재주가 좋으니까.’

무열은 생각을 굳혔다.

행여나 이 일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최악의 상황에서 고유 스킬인 ‘룰 브레이크(Rule Break)’라는 비장의 한 수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좋아, 네 말도 일리가 있군. 어디 한번 물건이라도 보지.”

“그렇게 나와야죠!! 히힛!!”

무열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는 기분이 좋은 듯 손가락을 탁! 튕기면서 말했다.

“참! 제 이름은 리앙제입니다요.”

씨익 웃으면서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무열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 *

“자네로군.”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하는 낮은 목소리.

커다란 천막 안에 앉아 있는 노인이 양옆의 부축을 받으면서 일어섰다.

‘흐음.’

리앙제를 따라 경기장 뒤에 있는 마을을 통과한 뒤에 거의 반나절을 걸어왔다.

도전자들의 휴식을 위한 이름 없는 작은 마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남부 일대는 아무도 살지 않는 황폐한 사막의 모습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표식도 없는 길을 리앙제는 신기할 정도로 잘 찾았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이곳.

마치 몽골족의 전통 가옥인 게르(Ger)처럼 천장이 둥근 형태의 천막은 뜨거운 남부의 열기외도 불구하고 내부는 시원했다.

서늘하게 코끝을 자극하는 냉기.

‘마법……?’

가운데 보글보글 끓고 있는 냄비 안에 정체불명의 액체를 보면서 무열은 생각했다.

‘아니, 주술이겠군.’

액체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새하얀 연기가 피부에 닿을 때마다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딱 잘라서 나눌 순 없지만 대체적으로 북부는 마법, 남부는 주술에 뛰어났다.

“날 찾은 건가?”

“후훗……. 자넬 찾았다기보다는 자네 같은 사람을 찾은 것이라고 해야겠지.”

언뜻 듣기에는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부족장은 자신의 옆으로 달려온 리앙제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검…… 이로군.”

“맞네.”

무열은 부족장의 말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정확히는 ‘검을 쓰는 뛰어난 자’라고 하는 게 옳겠지.”

무열이 고개를 아래로 내리며 리앙제를 바라봤다.

손재주가 뛰어난 엘리젤 일족.

비록 소수민족이긴 하나 그 능력이 거의 드워프와 맞먹는다는 소문이 있다.

아니, 소문은 실제로 이미 증명이 되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염신위가 남부의 절반을 통일하면서 엘리젤 일족을 흡수하면서 이들을 공방의 일원으로 합류시켰었지.’

그 뒤에 생산되는 무기들은 북부 이강호의 거점 대장간에서 만들어지는 것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염신위가 그나마 이강호보다 나은 점이 있었다면 바로 이 세계의 주민들까지도 자신의 세력에 포함시켰었다는 것.’

이강호는 철저하게 지구인만을 받아들였다.

세븐 쓰론에서 살고 있던 이종족들 중에 특히 그의 권세가 닿는 북부 같은 경우엔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몰살했다.

오직 권좌를 향하는 길에 인간만이 믿을 수 있다.

‘그때는 그 말이 오히려 신뢰를 쌓고 멋지게 들렸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강호가 다른 이들을 믿지 않아서였다고 생각되는군.’

카스테욘숲에서 그의 본 모습을 봤으니까.

‘이미 지나간 일이다.’

더 이상 이강호라는 존재는 없다. 무열은 앞으로의 일만을 생각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저 꼬마가 괜찮은 물건이 있다고 하던데.”

끄덕.

부족장이 고개를 움직이자 천막 안에 있던 사람들이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우린 대대로 무구보다는 조각품을 만드는 일족이네. 적어도 섬세한 작업이 요하는 조각술에 우리만큼 뛰어난 손재주를 가진 일족은 없을 걸세.”

자부심이 가득 담긴 말이었다.

최고임을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건방져 보일 수도 있겠지만 무열은 달랐다.

“알고 있다. 소수민족이기도 하지만 다른 일족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전투 인원이 부족하지.”

“크흠…….”

무열의 말에 부족장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다지 우린 외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놀랍군. 북부 출신의 자가 우리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말야.”

“왜 내가 북부 출신이라고 생각하지?”

부족장은 손가락을 펼치며 무열의 곡도를 가리켰다.

“라이칸스로프. 남부엔 존재하지 않는 몬스터니까. 굳이 따지면 우린 샤벨리거의 송곳니를 대신 사용하거든.”

저들에겐 아이템 명칭은 보이지 않는다.

이쪽 세계의 사람이 아닌 이(異)세계인이자 도전자인 우리들에게만 주신 락슈무의 안배로 아이템의 능력치, 상태창, 인벤토리 같은 시스템이 보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장은 잘도 무열의 곡도를 보고 단번에 그 재료를 알아맞혔다. 대단한 눈썰미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당신들 제안이 어떤 건지도 모르는데 말야.”

“아는 게 아니에요. 아저씬 필요할 수밖에 없으니까예요.”

“리앙제!”

두 사람의 대화 도중에 끼어든 그의 행동에 깜짝 놀라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를 황급히 말렸다.

“괜찮네. 그냥 두게나.”

하지만 아이의 무례함보다는 오히려 무열의 발언이 맞다는 듯 부족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이 아이의 눈이 틀린 적은 없었답니다.”

“꼬마, 넌 지금 나에게 뭐가 보이지?”

“전 꼬마가 아니에요. 뭐, 딱히 이상한 건 없는데요. 단지 그냥 느낌에 아저씨는 검이 있을 때 더 잘 싸울 것 같아요. 조금 묵직한 게 어울릴 거 같긴 한데……. 또 한편으론 가벼운 게 필요한 것도 같고.”

리앙제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이상한 듯 고개를 좌우로 까닥거렸다.

“잉? 뭐지? 처음엔 무거운 느낌이 더 강해서 아저씨한테 ‘그걸’ 가져오라고 했는데……. 할아버지, 지금 보니까 가벼운 것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네 말은 ‘두 번째’까지도 저 사람이 사용할 수 있을 거란 말이냐.”

“아마도요.”

무열은 자신을 유심히 살펴보는 리앙제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를 감정하듯 찬찬히 위에서 아래로 훑고 있었다.

무겁고 가벼움.

무슨 말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바로.

강검술과 비연검.

‘훔쳐보기(Snooping)……?’

아니다.

조금 다르다.

도적 클래스(Thief Class)를 얻은 사람들 중엔 상대방의 인벤토리 내의 아이템 목록을 볼 수 있는 스킬인 훔쳐보기를 가진 자들이 있다.

그들 중의 일부는 스킬의 숙련도가 높으면 상대방의 능력치의 일정 부분을 알 수 있기도 하다.

‘엘리젤 일족이 도적 스킬을 가지고 있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템 감정(Item Identification).

무기나 방어구 등의 내구도 및 성능, 그리고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스킬.

주로 아이템을 제작하는 제작자들이 습득할 수 있는 생산 스킬이지만 손재주가 뛰어난 엘리젤 일족이라면 리앙제의 나이에도 충분히 고(高)랭크의 스킬을 보유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태생적으로 그 수치가 높을 수도 있지.’

그렇게 되면 자신이 제작한 무기가 어떤 사람에게 어울리는가, 혹은 상대방에게 어떤 아이템이 상성이 좋은가를 판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어른들보다도 더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순간, 무열의 눈빛이 빛났다.

‘아이템 감정 스킬은 배우는 것도 어렵고 배우는 사람도 거의 없다.’

15년 뒤, 트라멜 무기고에 있던 수석 대장장이조차도 겨우 감정 스킬은 B랭크에 머물렀을 뿐이다.

‘그런 시점에서 이 아이 정도면…….’

무열은 리앙제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 순간, 천막의 문이 열리면서 조금 전 나갔던 사람들이 커다란 상자를 가져왔다.

쿵.

내려놓은 상자에 무게감이 느껴졌다.

무열은 상자 옆에 작은 또 하나의 상자를 바라보다가 부족장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리앙제의 눈이라면 우리도 믿을 수 있겠지.”

탈칵.

그는 두 개의 상자의 잠금쇠를 풀고 커다란 나무 상자의 문을 열면서 말했다.

“자네가 진정 경기장에 출전하는 도전자라면…… 우리의 제안을 들어줄 수 있겠는가?”

각각의 상자 속에 들어 있는 두 개의 검.

무열의 눈동자가 그것을 본 순간 놀라움과 경악, 그리고 의문이 가득했다.

‘이건……?!’

기다란 롱소드 한 자루.

그리고 짧은 소검 한 자루.

두 자루 모두 날카롭게 번뜩이면서 연노란 빛을 띠고 있다.

검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이 자리에 그가 알고 있는 두 자루의 검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번개 군주, 안톤 일리야가 썼던 뇌전(雷電)과 뇌격(雷擊)이잖아?! 이 검이 여기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안톤 일리야.

인간군 4강 중에 한 명.

다른 것보다 그는 이미 불꽃 첨탑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전직과 상관없이 이곳에 들렀다?’

부족장은 무열의 안색을 살피면서 자신의 앞에 있는 두 자루의 상자를 그의 앞에 밀면서 말했다.

“어떤가. 우리와 거래를 하겠는가?”

“거래? 조건이 뭐지?”

혼란스러운 도중에도 무열은 부족장이 하는 말을 주시하며 물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단순히 금액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그런 거래가 아니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도전자 중 한 명.”

부족장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무열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는 그에게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열의 예상대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 역시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그를 죽여주게.”

단호한 한마디.

“……!!”

지겹도록 피가 난무하는 경기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누군가를 정확히 노리고 살인 청부를 하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 일을 내가…….”

무열이 대답을 얼버무리려 하는 순간, 놀랍게도 하나의 메시지창이 그의 앞에 생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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