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Skill

Skill Emperor 43 Coins

경기장 출전

다음 날.

돌아온 무열은 리앙제와 함께 경기장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사람으로 주변이 북적거렸다.

“여기서 기다려라.”

“저, 저기……!!”

“응?”

“……아니에요.”

뭔가 말을 하려다가 머뭇거리는 리앙제를 보며 무열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라. 이길 테니까.”

그 말에 아이는 당황한 듯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무, 무슨! 걱정 안 했거든요?”

“가서 지켜보고 있어라.”

리앙제의 투정에 무열은 그녀의 머리를 쓰윽 한 번 문지르면서 웃었다.

경기장에 참가한 모든 도전자를 환영합니다.

커다란 경기장 안.

도전자의 수는 모두 오십 명.

제각각 자신의 무기를 들고서 서로를 경계하며 그들은 앞으로 싸울 적의 역량을 가늠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다. 룽가를 묵사발 만든 놈. 무슨 일이 있어도 저 녀석만큼은 죽여 버리겠어!!”

“이번 도전은 포기해도 좋다. 상품 따윈 상관없어!!”

무열은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피식 웃었다.

‘머저리들. 그런 말은 들리지 않는 곳에서 하라고. 마렉 일가 녀석들…… 보기보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나 보지.’

그들의 타깃이 누구인지는 정해져 있었다.

지금 경기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한 사람. 관객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남자.

‘조태웅.’

“하하하!! 이거 오늘도 많이도 모였는데? 재밌겠구만!!”

거대한 철퇴를 자신의 어깨에 턱 얹고서 걸어 들어온 조태웅은 주변의 도전자들과는 분명 다른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그는 경기장의 분위기에 익숙한 듯 보였다.

‘어디 있는 거지? 카토 유우나.’

무열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위를 살폈다. 여성 도전자의 수는 많지 않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가린 도전자가 둘.’

그렇다면 복면 혹은 히잡을 쓰고 있는 저 두 명 중에 한 명일 가능성이 높았다.

“흐음…….”

지금부터 명예를 건 검투(劍鬪)가 시작됩니다. 누군가는 부족의 명예를, 누군가는 개인의 명예를 위해 이곳에 출전한 여러분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저는 경기장의 중계인, 아콘입니다.

처음 경기장 입구에 들어왔을 때 들렸던 목소리였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큰 목소리에 관객석에 있는 사람들과 도전자들 모두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쿠우우웅……·!!!

그 순간, 태양이 가려지면서 생긴 그림자.

마치 커다란 암석이 떨어진 것처럼 바닥이 진동했다.

“모…… 몬스터?”

도전자들은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천히 허리를 펴자 2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엄청난 거구의 남자는 위 아래로 날카로운 송곳니가 삐쭉 튀어나와 있었다.

게다가 머리 위엔 작은 돌기 같은 뿔이 양쪽으로 솟아 있었다.

하하하하!! 저는 5대 부족 중 하나 이매(魑魅) 부족의 아콘입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를 제가 진행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확성기라도 달고 있는 것처럼 아콘의 목소리는 엄청났다.

생긴 모습만 봐서는 오히려 도전자에 가까운 그는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지금 경기장 안에는 5대 부족 이외에도 강력한 외지인들, 그리고 소수 부족의 대표들까지 모두 모였습니다! 그러나 승리는 단 한 명!!! 오직 용감한 자만이!! 진실에 도달하리……!!

아콘은 양손을 펼쳐 하늘을 떠받치듯 쫙 펴면서 소리쳤다.

바로!! 검의 구도자!!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

경기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마치, 피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하나의 숭고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광적으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

관람석의 대부분은 5대 부족이 경계를 나눠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소속된 소수 부족들 역시 자신들의 일가를 대표해 출전한 전사들을 향해 응원을 했다.

부이족의 전사!! 오르가!!!

“와아아아아아―――!!!!

5대 부족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원을 보유하고 있는 부족답게 아콘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울림이 들렸다.

탄탄한 근육과 태양 아래에서 멋들어지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 그리고 거대한 베틀 엑스를 등에 메고 있는 남자는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이겨라!!!”

“이번 승자는 바로 너다!! 오르가!!”

“모두 짓밟아버려!!!”

마치, 승리자가 예견된 것처럼.

부이족의 전사 오르가는 당당히 경기장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앙……!!!!

그때였다.

“……!!!”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희뿌연 먼지가 솟구쳐 올랐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상황인지라 관객도, 도전자들도, 그리고 진행자인 아콘 조차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스으으으…….

솟구쳤던 먼지바람이 사그라지며 남겨진 광경에 모두가 경악하고 말았다.

조금 전 계단을 오르던 오르가가 머리를 경기장 바닥에 처박은 채로 뻗어 있었기 때문이다.

단단한 바위로 만들어진 경기장 바닥이 단 한순간에 수십 갈래로 갈라졌다.

“이봐, 도깨비. 도전자가 50명이라면서. 언제 일일이 다 설명하려고? 그러다 해 떨어지겠다.”

“……에?”

그 위에 서 있는 남자.

귀찮은 듯 귀를 후비면서 도전자들을 향해 손짓을 하는 그는 다름 아닌 조태웅이었다.

단 일격으로, 부이족의 대표를 쓰러뜨려 버린 그의 모습에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귀가 아프게 열광하던 관객들의 함성 소리가 단숨에 사라져 버렸다.

“이봐, 너희들.”

꾸욱.

“컥…… 커컥!!”

지그시 밟은 발에 힘을 주자 부서진 바위 틈 사이로 오르가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는 경기장 위에서 도전자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말했다.

“다 들어와.”

* * *

“죽여!!!”

“크아아아아―――!!!”

도전자들의 외침과.

촤아악……!!

서걱!! 스카카가가……!!!

날카로운 날붙이가 살을 베는 소리와.

“아아아악!!!!”

그만큼의 비명 소리까지.

경기장은 서로 뒤엉켜 아비규환이 되어 흩뿌려지는 피로 바닥이 붉게 변하고 있었다.

어느새 살아남은 사람은 스무 명.

절반 이상이 죽었다.

바닥에 너부러진 시체조차 치우지 않고서 저마다 자신들의 부족을 외치며 그들은 싸우고 있었다.

8명이 남을 때까지.

이 살육은 계속될 것이다.

“크하하하하!!!”

조태웅은 자신을 향해 덤비는 마렉 일가의 사람들과 싸우며 즐거운 듯 연신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마치, 자신의 투기를 모두 발산해 산화시키는 사람처럼.

그는 무투 자체를 즐기는 사람 같았다.

현실에서의 그의 직업이 궁금해질 정도로 그는 피에 익숙했다.

퍼억―!!

그의 철퇴가 움직일 때마다 족히 한 사람씩은 바닥으로 꼬꾸라지며 쓰러졌다.

경기장은 마치 전장을 방불케 했다.

“…….”

하지만 이런 난장 속에서 반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기척을 감추고 살기를 흘리면서 조용히 묻혀 자신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감추고 있는 사람들.

무열은 그들을 주시했다.

“아아아악!!”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피하면서 그대로 주먹으로 전사의 턱을 올려쳤다.

휘청거리면서 중심을 잃은 그의 팔을 가로 꺾으면서 곡도의 옆 날로 회전하면서 다리를 후려쳤다.

우드득―!!!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양다리가 그대로 부러졌다.

그들의 공격은 무열의 눈엔 멈춰 있는 것처럼 느리게 보였다.

‘아무리 신체를 단련했다 하더라도 결국 토착인들은 극의를 익히지 않는 한 스킬을 익힌 우리들에게 이길 수 없다.’

무열은 조금 전 자신을 공격한 전사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제압하며 생각했다.

‘저 둘, 그리고 조태웅과 나.’

그 이외에 남을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 순간, 무열은 리앙제의 말이 떠올랐다.

부족 간의 자웅을 겨루던 경기가 외지인으로 인해 더럽혀졌다는 것.

‘우리에게 있어서 경기장은 그저 랭크 업을 위한 곳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저렇게 날뛸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처럼 토착인들을 사냥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무열은 전말 검무덤에서 본 검상을 떠올렸다.

그가 내렸던 하나의 가설.

그의 눈빛이 빛나는 순간.

그만――!!!!!

아콘의 거친 외침과 동시에 경기장의 살육도 멈췄다.

50명의 혈투 속에서 살아남아 경기장에 서 있는 8명의 전사가 정해졌습니다!!!

“와아아아아!!!!”

어느새 스무 명 중 절반이 또 죽었다. 그중의 거의 대부분은 조태웅에 의해 결과가 만들어졌지만…….

아콘의 외침과 동시에 무열은 주위를 살폈다.

“쳇! 끝났나!!”

조태웅의 아쉬운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예상대로 얼굴을 가린 도전자 두 명과 조태웅은 살아남았다.

‘나머지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간신히 살아남은 한 사람은 조금 전 조태웅의 손에 모가지가 잡힌 채로 죽기 바로 직전 아콘의 중재로 목숨을 구한 마렉 일가 중 한 사람이었다.

‘저 녀석은 글렀군. 다음 경기까지 못 버티겠어.’

그리고 남은 세 명.

놀랍게도 그 셋은 토착 부족의 전사였다.

외지인과 토착인을 가리지 않은 조태웅의 광기 어린 공격도 이유가 있었지만 남은 셋은 생각보다 강한 실력자인 듯싶었다.

‘하긴 아직은 모두가 전직도 하지 않은 상태니까.’

첫 번째 경기가 끝났습니다!! 살아남은 도전자들은 내일부터 치러지는 일대일 격전에서 최후의 승자를 가릴 것입니다!

아콘의 외침과 동시에 경기장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시체를 치우기 시작했다.

“쳇, 아쉽군!!”

조태웅은 자신의 무예를 더 뽐내지 못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스물이 넘는 사람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음에도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결코 광기 어린 살인마는 아니다.

‘순수하게 무(武)를 즐기는 사람. 마치 과거 속 무장(武將)들처럼. 도무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라곤 이해가 되지 않아.’

그래서 이강호가 조태웅을 특별하게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잔혹한 경기장의 첫날이 끝나는 듯싶었다.

* * *

어스름이 깔린 밤.

부서진 경기장의 복구를 위해 분주하게 사람들이 바위를 나르고 있었다.

5대 부족에 소속된 소수 일족들과 경기장의 중계인인 아콘이 지휘를 하고 있었다.

“자, 빨리 빨리 움직이라고!! 내일 경기를 위해서 오늘 중으로 모두 치워야 해!!”

툭.

그때였다.

“음……?”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쿡쿡 두들기는 느낌에 그가 뒤를 돌아봤다.

“이봐.”

“뭐야? 당신…… 아!!”

눈을 부라리는 아콘은 자신을 부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 화색이 돌았다.

“어이쿠, 2차전 도전자이신 무열 님 아닙니까? 왜 이런 밤중에…….”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굽실거리며 그가 허리를 숙이자 무열은 가볍게 웃었다.

“왜긴.”

그러고는 그가 말했다.

“당연히 경기장에 도전하기 위해서지.”

“하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경기는 내일이지 않습니까.”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콘은 커다란 송곳니를 보였다.

“적어도 중계인인 넌 알 텐데.”

“……네?”

“내가 도전하려는 경기장이 뭔지.”

그 순간, 송곳니를 보이던 아콘의 입가가 기묘하게 올라갔다.

무열은 그런 그를 바라봤다.

열화검사(烈火劍士).

이강호가 연사검과 열사의 소검을 얻은 경기장 마지막 층의 투사.

리앙제는 이 마지막 층의 주인을 모른다.

그 말은, 그녀는 단 한 번도 보스를 본 적이 없다는 말.

어쩌면 그건 당연할 수 있다.

지금껏 경기장의 우승자는 오르도 창이었으니까.

만약 열화검사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오르도 창이 그를 이기지 않고서야 어찌 우승자가 될 수 있고 그런 결투를 리앙제가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분명 그녀는 모른다.

‘만약 내가 남부 경기장의 존재를 몰랐다면 쉽게 풀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아직은 남부 경기장에서 직업을 얻은 사람이 이강호 단 한 사람뿐이라 알지 못하지만 15년 뒤엔 다르다.

‘흑괴(黑怪) 이대범, 고스트 바인드(Ghost Bind) 김인호, 용단화(龍斷花) 윤선미…….’

이강호 이후 흐른 시간 동안 제법 많은 사람이 남부 경기장에서 전직을 했다. 그만큼 베일에 감춰졌던 경기장에 대한 정보도 많이 풀렸다.

‘그 정보를 공개한 사람 중 이강호의 다섯 제자 중 한 명인 윤선미도 있었지…….’

잠시, 불현듯 추억을 떠올리며 윤선미의 얼굴을 생각하던 무열은 이내 그 기억을 떨쳐 버렸다. 어쨌든 그들의 과거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랭크 업 던전인 남부 경기장의 주인은 열화검사다.’

토착인들이 자웅을 겨루는 실존하는 경기장.

거기엔 열화검사가 없다.

자신들이 랭크 업을 위한 경기장.

그곳의 보스는 오르도 창이 아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바로.

“경기장은 두 개다.”

무열이 아콘을 보며 말했다.

“아셨습니까?”

기묘하게 올라간 입꼬리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게 되자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크…… 크크.”

마치 저택에 손님을 맞이하는 집사처럼 거대한 체구가 어울리지 않게 아콘은 손을 가슴에 얹고 허리를 굽히면서 무열에게 말했다.

“도전하시겠습니까?”

무열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

새하얀 빛이 그의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요란스럽게 움직이던 사람들도, 부서진 경기장도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그 빛과 함께 오전의 경기장이 랭크 업 던전이 아님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났다.

[남부 경기장에 입장하였습니다.]

바로.

던전의 입장을 알리는 붉은 메시지창.

“밤의 경기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도전자여.”

빛과 함께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자, 무열의 앞에 새로운 경기장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