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Skill

Skill Emperor 64 Coins

푸른 사자

진아륜은 무열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무슨 말이지? 거래?”

“말 그대로 거래. 당신을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식인수의 덩굴에서 빠져나온 뒤 언덕 아래에 위치한 임시 거점에 도착하고 나서야 진아륜은 무열에 대해서 찬찬히 살필 여력을 가질 수 있었다.

‘조금 전에 덩굴을 막는 것도 그렇고……. 뭔가 알긴 아는 것 같은데. 우리가 오기 전에 여길 왔던 녀석인가?’

자신들보다 이곳을 먼저 발견한 사람이 없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이곳에서 최소한 생존을 하려면 1차 전직을 하고 난 D랭커여야 할 것이다.

‘강무열이라……. 딱히 이름을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는 첨탑에서 전직을 했다면 충분히 이름을 남길 수 있을 만큼의 강자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칸 라흐만처럼 랭크 업 던전이 아닌 토착인에게서 전직을 한 케이스였다.

게다가 그의 클랜원들 역시 마찬가지.

나중에는 최대의 정보 조직이 될 이클립스의 단장이지만 아직은 소규모 클랜의 마스터일 뿐인 그였다.

“식인수를 잡으려고 하는 걸 봐서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러는 건 아닐 테고. 아마도 퀘스트겠지. 어때, 서로 돕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무열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진아륜으로서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그의 모습이 믿을 수 없었다.

“너무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쉬운 일이면 우리가 여태 이 개고생을 안 했겠지.”

식인수를 잡기 위해서 도대체 몇 번이나 도전을 했던가.

처음에는 멋모르고 덤볐다가 클랜원 열 명을 잃었다. 그들의 죽음 때문에 진아륜은 두 번째는 혼자서 도전을 하기도 했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

아니, 오히려 그땐 자신이 죽을 뻔했다.

그러기를 몇 번 더.

클랜의 서브 마스터이자 자신의 연인인 천륜미가 그동안 클랜을 꾸리지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없을지도 몰랐다.

“내가 한 달 동안 이곳에서 식인수를 잡기 위해 도전한 횟수만 열 번이 넘는다. 그런데 잡기는커녕 상처 하나 내는 법도 못 찾고 있다.”

이제는 포기하려고 했다.

이 지랄 맞은 퀘스트 때문에 더 이상 사람들을 희생시킬 수 없었다.

차라리 사냥을 하면 마석이라도 더 모을 수 있을 텐데 이 시간 동안 이곳에 발이 묶였으니 말이다.

지금도 다른 사람들은 강해지고 있을 것이다. 점차 벌어지는 격차에 포기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진아륜은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욕심에 지금까지 붙들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포기가 되지 않았다.

그게 욕심이라면 욕심이겠지만.

“그렇겠지.”

“……뭐?”

“방법이 잘못됐으니까.”

머리를 굴리고 굴려서 겨우 찾아낸 방법들이었다.

그런 자신의 수고를 단번에 결정짓는 무열의 태도에 진아륜은 인상을 구겼다.

“그러는 넌 방법을 알고 있다?”

포기하려고 하는 순간에 자신에게 내민 손.

저걸 다시 붙잡는 것도 어쩌면 자신의 욕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식인수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너를 도와주는 조건으로 우리 쪽에서 귀찮은 일을 너희가 대신 해줬으면 하는 게 있어.”

“우리가 만일 우리 일만 끝내고 사라진다면?”

“그땐 그때 가서 생각해야지.”

무열은 거점 안에 서 있는 클랜원들을 한 번씩 쓱 훑어보면서 말했다.

“정말로 튄다면 끝까지 뒤져서라도 찾아 죽이든가.”

“……뭐?”

“이 새끼가……!”

“농담. 하지만 너희가 진짜 거래를 불이행했을 땐 생각을 해봐야겠지.”

도발적인 그의 말에 클랜원들이 당장에라도 달려들듯 노려봤다.

“진짜 성공할 수 있나.”

“……마스터.”

그의 옆을 지켜보던 천륜미가 불안한 듯 말했다. 여기서 또 실패하면 이제는 따르던 클랜원들의 신뢰까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성공한다. 다시 말하지만 여긴 우리에겐 그냥 통과하는 장소에 불과하니까. 그 이후에 난 네가 필요하고, 넌 지금 내가 필요한 것뿐이다.”

무열은 지금까지 만났던 상대들과는 달리 진아륜에게는 고자세를 유지했다.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사람에 성향에 따라선 이 모습이 더 확신을 줄 수 있었다.

‘진아륜의 성격.’

사람이 좋다는 건 알지만 그건 때때론 우유부단함을 만든다.

암살자로서나 마스터로서는 절대로 좋은 게 아니다.

‘클랜원들 때문에 퀘스트를 포기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는 절대로 강해지지 못한다.’

이클립스를 설립할 때도 책사인 바이칼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성장할 수 없었을 테니까.

‘지금 그의 마음을 잡아놓는 게 중요하다. 어차피 갈까마귀들과는 계속해서 함께할 수 있진 않으니까. 나중에 다시 조우할 때를 대비해서라도.’

무열의 태도에 이미 진아륜은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싫다면 관두고. 애초에 이곳에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굳이 없어도 조금 귀찮을 뿐 문제없다. 딱히 손해 보는 제안도 아니었고.”

잠시 뜸을 들이는 모습에 무열은 기다리지 않고 막사를 나서려고 했다.

“자, 잠깐!!”

그 순간 진아륜이 황급히 그를 불렀다.

“한 가지만 묻자. 너는 왜 식인수를 잡으려는 거지? 혹시 너도 퀘스트를 받은 거냐.”

“아니.”

진아륜은 적어도 이것만큼은 확실히 하고 싶었다.

무열이 식인수를 잡는 목적이 자신과 겹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

하지만 이미 그런 그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듯 무열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냥.”

“……뭐?”

“사람 몇 명 좀 살릴까 싶어서.”

뜬금없는 말에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무열을 바라봤다.

“거기엔 너희들도 포함되어 있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그러니까 너도 우리를 좀 돕는 게 어때?”

‘……우리?’

그때였다.

“마, 마스터!!!”

다급하게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클랜원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무슨 일이야?”

“그, 그게…….”

무열은 부하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당혹감의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걱정 마라. 일행이니까.”

[크르르르르르…….]

불타는 화염을 내뿜는 서펀트가 공중을 몇 번 선회하더니 막사의 앞으로 떨어지듯 내려왔다.

“주군.”

클랜원들은 하늘을 날고 있는 서펀트 위에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말도 안 돼……. 저걸 테이밍한 건가?”

“어떻게?”

“아직 살아 있는 말도 찾지 못해서 제대로 탈것을 타는 사람도 없잖아.”

“하지만 타고 있잖아.”

갈까마귀의 클랜원들은 도적 특유의 민첩 스킬로 남들보다 1.5배 가까운 속도로 질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 덕분에 현존하는 클랜 중에서도 가장 기동성이 뛰어나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건 완전 반칙인데.”

아무리 열심히 달려봐야 날아다니는 사람을 이길 수 있겠는가.

무열은 서펀트에서 세 사람이 모두 내리자 손가락을 튕기면서 인벤토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쪽은 내 동료들이다.”

진아륜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 사람의 조합에 못미더운 눈빛으로 그들을 훑다가 한 사람에게서 시선이 멈추었다.

“……!!”

“음?”

의도치 않은 반응에 무열이 그를 바라봤다.

“너희들, 설마 푸른 사자냐?”

“뭐?”

진아륜의 시선이 멈춘 곳.

바로 칸 라흐만이었다. 진아륜은 그와 무열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차앙!!!

그와 동시에 클랜원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갑작스러운 그들의 변화에 오르도 창이 리앙제를 보호하며 무열의 옆에 붙었다.

칸 라흐만은 푸른 사자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기를 거두게. 우린 아니니까.”

“웃기지 마.”

무열은 진아륜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우린 식인수의 껍질이 필요해서 왔을 뿐이다. 푸른 사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모르겠다고? 바로 앞에 푸른 사자 단원을 두고?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냐? 내가 녀석들하고 저 사람이 있는 걸 봤다. 빌어먹을 놈들. 냄새를 맡고 여기까지 쫓아온 거군.”

“……음?”

무열이 칸 라흐만을 바라봤다.

당장에라도 격돌할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

하지만 여기서 서로 힘을 빼봐야 아무런 이득도 없다.

‘처음에 칸 라흐만을 만났을 때도 그 이름이 나왔었지.’

하지만 딱히 기억에 있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었지만 진아륜의 반응을 봐서는 그게 아닌 듯싶다.

“칸 라흐만,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

“흐음…….”

그는 살짝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푸른 사자는 북부에서도 북동부 쪽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단체네. 그곳에 리더가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지.”

“그게 뭡니까?”

“소문으론 찾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퀘스트가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단번에 안다더군.”

무열은 칸 라흐만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초능력……?’

아니, 뭔가 이상했다.

“그 리더가 누굽니까.”

그의 물음에 칸 라흐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라엘 스탈렌이란 여자라네.”

“……!!!”

순간, 무열이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푸른 사자……. 그 녀석들이었군.’

10년도 더 지난 뒤의 미래의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 무열로서는 놓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가 알지 못하는 이름이었으니까.

“라엘 스탈렌…….”

하지만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모든 게 정리되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름이었다.

푸른 사자.

확실히 시간이 흘러 미래엔 사라진 이름이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갈까마귀가 이클립스의 전신이었던 것처럼.

바로, 청기사라고 불리던 라엘 스탈렌이 만든 단체.

‘블루 로어(Blue Roar).’

그들은 단순히 클랜도 아니고 권좌를 노리는 연합도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독자적인 노선을 개척한 사람들.

세븐 쓰론에 징집된 인류의 모두가 권좌를 노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류 중엔 오히려 자신들을 이곳으로 보낸 락슈무를 섬기는 이들이 있었다.

광신도(狂信徒).

보통의 사람들의 눈엔 그들이 그렇게 보였지만 정작 그들은 세븐 쓰론이야 말로 자신들이 신에 축복을 받아 새 땅에 도달한 것이라 믿었다.

“그들은 오직 신을 위해서 움직이네. 자신들이 생각하는 기준에서 신의 뜻에 위배되는 사람들을 처단하는 것이 오히려 구원의 길이라고 믿지.”

“미친놈들.”

진아륜이 칸 라흐만의 말을 들으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래, 정말 미친놈들이지.”

무열은 그 말에 동의했다.

놈들 때문에 죽어간 사람의 수는 셀 수도 없었으니까.

인간들끼리 단합이 되도 어려운 판에 오히려 그 인간이 인간을 적으로 돌렸으니 말이다.

“칸 라흐만은 푸른 사자가 아니다. 그건 내가 보장하지.”

“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네. 푸른 사자의 리더는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말이야.”

초능력이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상위의 능력.

‘신탁(神託).’

무열도 잘 아는 능력이다.

락슈무를 섬기는 청기사단의 직업 퀘스트에서 얻을 수 있는 유니크 클래스.

라엘 스탈렌이 그 능력을 받아 푸른 사자를 만들었고, 그 뒤에 대륙에 존재하는 나머지 4개의 교단까지 통합하여 블루 로어를 만든 것이다.

‘그때 이름을 바꿨던 것이로군. 어쩐지…….’

“나는 그 소문에 딸을 찾기 위한 정보를 수집하려고 들어간 것뿐이었다. 현재 북부에서 가장 큰 단체니까.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서 건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 나와 버렸지. 아니, 솔직히 내가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칸 라흐만은 지금도 그들의 광적인 모습이 생생한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순간, 진아륜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직도 그 미친 짓들을 하고 있나, 그놈들은.”

그의 물음에 칸 라흐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물…….’

묻지 않아도 무열은 그들이 하는 짓거리가 무엇인지 잘 알았다.

“너희도 그 녀석들과 뭔가 원한이 있는가?”

“대답해 줄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하지만 놈들이 너희들 때문에 이곳에 온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푸른 사자 놈들과 너희를 모두.”

진아륜은 마치 철천지원수를 보는 것처럼 푸른 사자의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변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유연한 성격인 그가 이 정도이니 확실히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걱정 마라.”

“뭐?”

“진짜 그놈들이 이곳에 나타나면 네가 할 것 없이 내가 먼저 놈들을 죽여 버릴 테니까.”

굳은 얼굴의 진아륜만큼 무열의 얼굴 역시 차가워져 있었다.

시종일관 평정을 유지하던 그의 변화에 오히려 진아륜이 이번엔 놀란 듯 그를 바라봤다.

“……너야말로 뭔가 있군?”

진아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시간이 없을 것 같군.”

하지만 무열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돌리며 말했다.

“따라와라. 식인수를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