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gem's Paladin

LV.42 Holy Knight Oh Seung Hun [3]

모두 정지 신호와 함께 멈춰섰다. 건욱이 주문을 외웠다.

“천상이여.”

차원문이 열리더니, 전투 천사가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전투 천사는 건욱을 향해 고개 숙여 예를 표하더니 물었다.

「이번 임무는? 전투인가?」

“아니. 정찰입니다.”

「그럼 보고 오겠다」

흔쾌히 말하더니 전투 천사는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에는 어둠 속에 도사리는 괴물들을 보고 돌아와 알려줄 것이다.

사냥에 함께 할 수 없는 전투 천사의 주요 임무 중 하나였다. 다른 임무로는 경비 일이 있었는데, 성기사 콜린이 소환한 전투 천사가 승강기 앞에서 그 임무를 맡고 있었다.

두 임무 모두 충분히 믿고 맡길 만했다. 전투 천사라면 무슨 적과 마주치든 충분히 생존하여 목격한 것들을 보고해올 수 있을 것이었다. 전투 천사는 성기사의 모든 주문을 최고의 위력으로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비행까지 가능하므로.

과연 어둠 속에서 귀가 먹먹해지는 굉음이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전투 천사는 무사히 생존하여 돌아왔다.

그리고는 심각한 어조로 보고를 올렸다.

「위험하다」

“뭘 봤는데?”

「각기 구 미터를 넘는 푸른 거인이 여섯 개체, 모두 거대한 바위를 들고 던지는데 그 밑에는 각자 무기를 준비했다」

설명만 들어도 무엇이 저 앞에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김선우가 신음했다.

“서리 거인 여섯 마리라······.”

서리거인 한두 마리는 거대화 주문을 받은 황건욱이 맡아서 처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섯 마리 모두를 맡을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서리거인 몇 마리가 무리에 당도할 것이요, 진형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전멸이 예상되는 사태였다.

그리고 이런 위험과 마주할 경우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의 대응은 간단하다. 원래 사냥터로 되돌아가서 레벨을 더 올리고 장비를 더욱 강화하여 전력을 가능한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그 상식에 기초하여 이태동이 말했다.

“그럼 돌아가야지?”

그러나 김선우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핀잔했다.

“어느 세월에 다시 옵니까?”

“그럼 기어이 상대하겠다고?”

“그래야죠. 당연한 것 좀 묻지 마십쇼.”

이태동은 무안함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며 다른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저 정신 나간 말에 누군가가 반대해주길 바라며.

그러나 아무도 이태동의 편을 들어 김선우의 결정에 반박해주지 않았다. 이태동은 황당함을 느꼈다. 어째서? 공격대장의 말에 복종하려고? 아니면 한시라도 빨리 레벨을 올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

둘 다인 모양이었다. 몇몇 기사들은 꺼림칙해 하면서도 김선우의 곁에 모여 전술 토론을 시작했다.

약 이십 분 후에 전술 하나가 짜였고, 기사들은 실행에 옮겼다.

모두 전투할 준비를 한 가운데, 김선우가 말했다.

“황건욱이, 김정흠이, 둘이서 잘 해야 해. 알지?”

김정흠은 두 명의 이름이 불렸지만 사실은 자기한테 하는 말임을 알 수 있었다. 황건욱이야 알아서 잘 할 테니까.

김정흠은 손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예, 맡겨주십시오.”

“믿는다.”

그와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세 명의 탱커가 먼저 달려나갔다. 죽음의 기사 김선우, 성기사 콜린과 마검사 트레시.

마법사들이 세 명의 탱커를 거대화 주문으로 부풀렸다. 점차 몸이 커지는 것을 느끼며 김선우가 외쳤다.

“조명 밝혀!”

사수들이 쏜 조명탄이 저 앞의 위치를 밝혔다.

어둠이 사라지자 전투 천사가 경고했던 서리거인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여섯 마리. 모두 갑옷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다.

그들의 뒤에 계단으로 통하는 입구가 있었는데, 바위가 쌓여 막혀있었다.

단순히 그러기 위한 용도만은 아니었다. 서리거인들은 침입자들을 향해 예의 바위를 던져왔다. “꺼―져―라!”

날아오는 바위들에 맞서 거대화한 탱커들은 피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뒤에 있는 이들이 맞을 테니까.

바위가 갑옷에 부딪쳐 굉음을 울렸다.

그렇게 거대화 탱커들은 몸으로 부딪쳐 막아내고는 계속 전진했다. 후방에 위치한 사제들의 치유로 우그러진 갑옷을 복구하며.

그렇게 거대화 탱커들이 충분히 접근하자 서리거인들은 비로소 바위가 아닌 각자의 무기를 주워들었다. 곤봉과 철퇴, 양손검 따위 거대한 흉기들.

거대화 탱커들과 거인들의 몸과 몸, 무기와 무기가 부딪쳤다. 그 주변으로 충격파과 돔처럼 퍼져나갔다.

접전이 시작되었다.

한편 한 명의 거대한 날짐승이 그 거대한 전사들의 옆으로 날고 있었다. 흑룡으로 변신한 김정흠이었다. 그 11미터에 달하는 몸은 지금 어둠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물론 김정흠 또한 어둠을 꿰뚫어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 시야는 온통 어둡기 그지없었지만 그 비행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좀 더 아래.”

흑룡의 앞발에 붙잡혀있는 건욱이 방향을 지시해주고 있었다.

지금 건욱은 후광을 꺼둔 탓에 그 역시 어둠에 갇혀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전장의 소음과 예지를 통해 내리는 건욱의 지시는 실제와 다를 바 없이 정확했다.

“다시 위로.”

흑룡이 망설임 없이 솟구쳤다. 건욱이 연이어 말했다.

“좌측······ 앞으로 날아.”

그리 비행지시를 내리면서도 건욱으로서는 착잡했다.

김정흠은 지금 아주 훌륭히 비행하고 있었는데, 원래 용이었던 것처럼 날갯짓마저 숙달되어 있었다. 그 사실은 김정흠이 용으로 아주 여러 번 변했으며 그 결과 여러 번 죽었음을 의미했다.

언젠가는 저 변신을 그만두게 해야 하리라.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건욱은 침착하게 어둠을 가리키며 지시했다.

“좋아, 던져.”

미사일을 발사하는 전투기처럼, 흑룡이 잡고 있던 건욱을 던졌다.

건욱은 갑옷을 입지 않고 있었기에 비교적 가벼운 상태였다. 그리고 흑룡의 괴력으로 맹렬하게 발사되었다.

그리 날려지던 중에 인벤토리에서 갑옷을 장착하고, 후광을 발하며 외쳤다.

“신성이여!”

신성 날개가 펼쳐졌다. 그러자 방금 발사되었던 건욱은 이제 비행을 시작했다. 서리거인의 목을 향해 강렬한 속도로 날아가 성검의 칼끝을 찔러넣었다.

신성으로 번쩍이는 성검이 그 목동맥을 불태웠다. 끔찍한 고통에 서리거인은 비명지르면서 쓰러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볼 때 그것은 빛이 번쩍이더니 거대한 괴물이 힘없이 쓰러지는 광경이었다.

건욱은 쓰러지는 서리거인의 어깨를 밟고 도약했다. 그리하여 다음 서리거인을 향해 날개를 펼치고 활공했는데, 탱커들과 맞붙던 서리거인들은 지금 측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건욱은 그 빈틈에다 성검을 찔러넣어주면 되었다.

그렇게 빛의 번뜩임과 함께 차례차례 거인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그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며 이태동은 휘파람을 불었다.

“건욱이 저 친구 혼자 딴 겜 하는데?”

이태동은 나름 칭찬을 한 것이었지만 인천 기사 그 누구도 말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태동은 무시당한 굴욕감에 이를 악물었다. 그 분노를 총을 통해 표출했다. 소리를 듣고 몰려온 크고 작은 거인들을 향해 총을 갈겼다······.

그 와중에 서리거인 중 한 마리는 아직도 살아남아 있었다. 유독 강력한 한 마리, 보스였다.

[LV.114 보스 대전사 유드문터스]

“14미터는 되겠는데.”

이제 와서 그 사실에 겁을 집어먹는 인원은 없었다.

모두 착실하게 그 거대한 몸을 포위한 다음 화력을 투사했다. 마침내 거대화 주문이 풀린 탱커들이 막는 가운데, 건욱이 달려와 그 오금을 성검으로 난도질하여 무릎 꿇렸다.

무력화된 거인 보스는 이후로도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했다.

보스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승리로 끝났다. 그 결과 몇몇은 레벨이 올랐지만, 즐길 여유는 없었다.

모두 다음 층으로 내려갔다. 381층으로 통하는 계단.

이 새로운 계단은 누군가가 발 디딘 흔적 따윈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기사들은 환호하면서도 제 할 일을 시작했다.

승강기 앞에 두 전투 천사가 호위하는 가운데 사수들이 센트리건을 설치했다. 그리 방어 준비를 마치고서야 휴식을 시작했다.

“다들 고생했고, 이제 내일 있을 전투에 대비해서 각자 공략 정보 다시 되새기도록”

김선우의 말에 이태동이 반문했다.

“내일 바로 싸우자고? 안 쉬나?”

“못 쉬죠. 우리 전쟁 중인 거 모릅니까?”

“난 아닌데.”

“그럼 빠지셔도 됩니다.”

물론 이태동은 빠지겠노라 주장하지 못했다. 이 사냥이 힘든 만큼 레벨링 또한 비정상적으로 빠르다는 것은 분명했으니까.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모두 계단을 빠져나가 어둠 속으로 향했다.

*******

전쟁 시작 전 인천의 지휘관들은 서울의 군대가 전차를 앞세우리라 예상했다. 그 돌파력과 화력을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일단 버텨내고 나면 기름 잡아먹는 전차를 오래 쓸 수는 없을 테니 서울의 공세는 순식간에 힘이 빠지리라고, 그러니까 일단 초기 공세만 막아내면

적의 우위는 사라지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그 예상이 틀렸다. 고연무는 전차 따윈 사용하지 않았다. 서울의 참모들은 플레이어 탱커들이 충분히 전차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LV.100 탱커들은 중전차, LV.59 탱커들은 경전차의 역할을 수행하는 식이다.

화력이야 실제 전차에 미치지 못하지만 플레이어 탱커들은 전차가 기동할 수 없는 지대에서도 움직일 수 있으며 보급 또한 쉽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전차보다 나은 면도 있으리라 예상되었다.

그리고 실제 탱커들을 감당하는 병사들로서는, 도저히 그들이 전차보다 ‘조금 낫다’고 표현할 수 없었다.

오승훈은 참호에 몸을 숨기고 바깥을 바라보았다.

폭풍과 지진을 일으키며 거대한 기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법사의 거대화 주문을 받은 서울의 탱커들.

모두 10미터를 넘는 그들은 일렬로 전진해오고 있었다.

그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멀리서 볼 때 거북이처럼 느려 보이지만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보통 사람의 다섯 걸음을 저 거인들은 한 걸음만에 좁혀오는 것이다. 서로 보폭을 맞추느라 조금 느려졌음에도 여전히 그들은 보통 사람의 달리기만큼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미지의 금속으로 이루어진 쓰나미 같았다. 저 육중한 물결에 휩쓸리면 이런 참호 따위는 흙과 살점이 섞인 평탄한 지대가 되고 말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이 병력으로 어찌 될 게 아닌데······’

이쪽도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대전차 화기가 있기는 했다. 큼지막한 관절부에 제대로 맞히면 무력화가 가능하다던데, 그래봤자 저 물결을 막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다행히 저 거인들이 모두 동시에 들이닥치기에는 길이 좁았다. 참호 주변으로 빽빽한 건물들이 가로막고 있는 덕이었다.

거대화 탱커들이 건물들의 틈새를 통과하느라 애쓸 때 화력을 집중시키면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리 믿고 이 위치에 병력을 배치했는데, 오판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거대한 기사들이 계속 다가오는 와중에 그 뒤에서 죽음의 기사 하나가 뛰쳐나왔다. 모습을 숨긴 마법사가 걸어준 거대화 주문이 죽음의 기사의 몸을 부풀렸다. 끔찍하게 압도적인 크기로.

정확히는 14미터 크기로 부풀렸다.

그 정체를 알아본 인천의 병사들은 비명 질렀다.

“마르스다!”

죽음의 기사 서포터 마르스가 되지 못한 자. 이름이 너무 긴 나머지 그냥 마르스라 불리는 저 거대한 서포터는 각 전선에 나타날 때마다 모두의 악몽이 되었다. 끔찍하게 강력하고 쓰러뜨리기도 힘들며, 연대 규모의 화력을 집중하여 어찌어찌 처치하더라도 서포터답게

카드로 돌아가 부활해서 곧장 다른 전선에 투입되어 버리는 괴물.

인천의 지휘부는 이제 저 괴물이 나타난 전선은 아예 포기해버리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었는데, 그마저 요새는 한계에 봉착했다. 이 전선마저 밀리면 전략적으로 끝장이라고 했다.

‘아무리 피해가 크더라도 사수해야 한댔지······.’

그러나 오승훈이 보기에는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마르스’가 땅을 박차고 돌격했다. 그 크기로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질주, 그 앞을 웬 건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거대화한 마르스는 그놈의 건물이 자신보다 크다는 사실에 분노했고, 파괴에 나섰다.

마르스가 달리던 힘으로 창을 쑥 내찔렀다. 창날이 앞을 가로막던 건물의 밑에 박혔다. 그리고 마르스가 적절하게 체중을 실어 창대에 힘을 주자, 지레의 원리로 빌딩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쓰러진 빌딩은 그 너머 건물에 부딪쳐 연쇄충돌을 일으켰다. 그것을 본 병사들 모두가 비명 질렀다.

도시의 콘크리트 숲을 형성하는 콘크리트 나무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한편 다른 거대한 기사들도 예의 ‘벌목’ 작업을 시작했다. 거대화 탱커 둘이서 한 채의 빌딩을 향해 거대한 창칼을 휘둘렀다.

거대한 창칼이 건물을 지탱하던 기둥을 파괴했다.

건물은 하중으로 인해 스스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탱커들이 몸으로 부딪쳐 건물이 반대편으로 쓰러지도록 했다.

그리하여 순식간에 열한 채의 건물은 언덕이 되었다. 울퉁불퉁한 언덕.

이 거대한 이족보행 전차들은 삼십 년 전 전차들과 달리 고르지 않은 건물들의 잔해를 밟고 올라올 수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했다.

건물들의 잔해로 이루어진 언덕 위에 거대한 기사들이 발 디디고 섰다.

파괴의 여파로 먼지 폭풍이 자욱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분쇄된 콘크리트와 흙먼지로 이루어진 먼지 폭풍, 마치 화산이 폭발한 것 같은 재앙의 현장 속에서 거대한 기사들의 모습은 검은 실루엣으로 보였다.

흐릿해진 형상이 상상력을 자극했다. 마치 신화 속 티탄들을 묘사한 그림 같다. 그러나 신화와 달리 저들은 현실적인 파괴와 재앙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언덕 위에 올라섰으니 이제 내려오는 힘으로 돌격해올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간석동의 뉴비 누군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린 거대화 탱커 없어?”

“없어 씨발!”

유사시 건물에 들어가 시가전답게 게릴라 전술을 펼친다는 계획이 있었지만, 방금 건물들의 붕괴를 보고서는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과연 거대한 기사들이 지축을 울리며 달려오자 병력의 상당수는 참호 바깥으로 몸을 내밀더니 무작정 도망치기 시작했다.

“돌아와! 돌아오라고!”

지휘관의 외침은 공허하게 사라졌다. 저편에서 울리는 비명과 굉음에 가려져 잘 들리지 않았다.

병사들이 빠져나간 참호가 짓밟히기 시작했다.

그리 지옥같았던 일 분 하고도 수십초가 지나고서야 거대화했던 탱커들은 하나둘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거대화 주문을 쓸 수 있는 LV.100 마법사의 수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거대화 주문을 연이어 받은 마르스만은 여전히 14미터짜리 재앙으로서 다른 참호에 달려들어 날뛰고 있었다. 인천의 어느 용맹한 대전차 사수가 마르스의 무릎 관절에 만들어낸 흠집은, 그 거대한 몸에서 퍼져나간 죽음의 오라가 주변에 흐르는 피를 빨아들여

HP로 전환함으로써 복구되었다.

그렇게 흡수할 피가 많았다. 아주 많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