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gem's Paladin

Lv.? dm pluto [2]

건욱은 자신을 절대자라 소개한 소년을 바라보았다.

이률이 말해준 바에 따르면 저 소년은 VIP라는 초월적 존재일 터였다. 이 지하 끝에 다다른 플레이어의 소원을 들어주는 자.

소년의 옆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다가온 노인이 건욱에게 예를 표했다.

“축하하네. 황건욱이. 내가 활동할 적에 자네는 암살 당했는데, 그때는 정말 내 맘이 찢어질 것 같았더랬지. 이렇게라도 다시 보니 기쁘군.”

건욱이 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고연무 씨?”

“지금은 아폴로지.”

고연무 왕이 아폴로의 화신이란 말이 사실임이 증명된 순간이었지만 새삼 놀랄 것은 없었다. 그 사촌 동생마저 우승한 마당 아닌가.

아폴로는 조용히 웃으며 소년을 가리켰다.

“자, 황건욱? 이제 소원을 빌게. 이 분께서 아까부터 자넬 오매불망 기다리고 계셨거든.”

허언이 아닌 것 같았다. VIP, 소년은 건욱을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건욱이 소년을 바라보았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그것만으로도 소년은 기분이 좋았다. 좋아하던 TV 속 연예인을 눈앞에서 마주한 기분, 정말로 오랜 세월이 지나 눈앞에서 마주한 것이다.

정말이지 행복했다.

소년은 말을 가다듬고는 애써 권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앞에서 최대한 근사하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우승자, 어서 소원을 말해. 그대는 무슨 소원이든 이룰 자격이 있어.”

자살하라느니, 이 우주에서 썩 꺼지라느니 하는 소원만 빼고 웬만하면 다 이루어줄 작정이었다. 다행히도 지금 건욱은 그런 무리한 소원을 빌러 온 것이 아니었다.

조금 주저한 끝에 건욱의 입이 열렸다.

“부디, 세상의 시간을 고정해주십시오.”

소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이 세상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년의 생각은 그 즉시 우주에 반영되었다.

일을 마친 소년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좋아······ 자, 이제 회차는 반복되지 않아. 축하해, 네 소원은 이루어졌어. 이제 김정흠도, 오승훈도, 네가 보살폈던 뉴비들도 시간의 물결에 사라지지 않아.”

그리 말하면서 소년은 건욱이 소원을 이루어줘서 감사하다고 말해주길, 칭찬해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건욱의 얼굴을 보고 소년은 당황했다.

왜 표정이 어둡나? 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지? 기껏 우승하여 소원을 빌어놓고 왜?

‘아······.’

뒤늦게 소년은 이 엔딩이 완벽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노멀 엔딩 아닌가.

그 고생을 하여 지하 끝에 다다른 지금, 건욱은 예전부터 간절하게 소망해온 소원을 모두 이루지 못했다. 최악의 사태는 아니었지만 최선의 사태도 아니었다.

허무할 것이다.

소년은 이런 엔딩을 원하지 않았다. 황건욱을 지켜보는 열렬한 관중으로서 소년은 해피 엔딩을 소망했다.

소년은 이 성기사의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 보았다. 그 모든 시련을, 그 모든 웃음을, 그 모든 배신과 우정, 그리고 신념과 사랑을 보았다. 이 성기사의 여정을 지켜보면서 소년은 즐거웠다. 그러니까 당연히 저쪽도 즐거워야 했다.

이 여정의 끝은 당연히 행복한 것이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 허무함을 없애고 해피 엔딩을 이끌어내려면 어째야 하는가? 황건욱은 이대로 집에 터덜터덜 돌아가서는 안 되었다.

위대한 절대자로서, 그 바라는 바를 온전히 이루어줘야겠다.

소원을 하나 더 들어주어야겠다. 그런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니, 아니다. 소원을 하나 더 들어줄 만한 핑계가 마침 있었다. 방금 플루토가 이상한 짓을 벌였더랬다.

소년이 말했다.

“플루토를 쓰러뜨렸던데, 장해. 아주 장해. 히든 보스를 상대하고 이겼으니 그 보상은 따로 줘야겠지?”

건욱이 눈을 크게 떴다. 소년이 말을 이었다.

“소원 하나를 더 들어주겠어.”

건욱은 순간 그 말을 의심했다. 놀리는 것인가? 아닌 것 같았다. 소년의 표정이 진지했다.

건욱은 반사적으로 세상을 원래대로, 어쩌고 말하려다 말았다.

막상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된 지금, 건욱은 망설임이 없을 수가 없었다.

건욱은 자신의 친구를 생각했다. 김정흠. 그는 건욱과 함께 하며 애써 올린 자신의 레벨을 자랑스러워 했다.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릴 경우 김정흠은 그 레벨을 잃을 것이다. 지금까지 고생한 대가를 잃어버릴 것이다. 자기가 힘겹게 그 여정을 도와준 친구의 손에 의해서.

자신의 파트너, 마녀를 생각했다. 그녀는 건욱이 사람들의 증오를 받길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건욱이 행복하길 바랐다. 그리고 건욱이 애써 외면한 사실이지만, 서포터는 게임 요소였다. 세상을 원래대로 되돌리면 사라져버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말 형제처럼 가까워진 김선우를,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이률을, 레벨 하나 올리겠다고 빚까지 져가며 땅굴로 기어 들어가는 간석동 뉴비들을 떠올렸다. 자신이 기어이 신념을 이룬다면 상처 입을 자들을 생각했다.

건욱의 턱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민의 시간이 길어졌다. 소원을 더 들어주기로 한 소년은 재촉하지 않았다. 잠자코 그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로부터 한참 지나, 건욱은 마침내 마음을 정했다.

건욱이 말했다.

“저는······ 신이 되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VIP는 환희했다. 신? 정말?

그렇다면 이제부터 황건욱을 자기 옆에 둘 수 있다! 허겁지겁 말했다.

“좋아! 지상 최강의 전사니까 당연 마르스······”

그러나 건욱은 이미 무슨 신이 되어야 하는지 정한 바였다. 자신이 바라는 신의 이름을 말했다.

“플루토.”

소년은 잠시 입을 다물고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했나? 플루토라고?

건욱이 다시 말했다.

“플루토가 되기를 원합니다.”

소년은 잠시 그 요청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가 몸소 그 꼴불견이던 플루토를 직접 때려잡아 놓고서 대체 왜?

어째서냐고 물어보지는 않기로 했다.

소년은 일순 자신의 인지력 및 통찰력을 초월적인 수준으로 강화했다. 그러자 소년의 사고 능력은 시공을 넘나드는 수준으로 화했다.

소년은 미래를 보았다······.

평소라면 절대 이러지 않았을 것이다. 초월하는 이 느낌, 인간의 지성을 벗어나 생물조차 아닌 무언가가 되어버리는 이 이질적인 감각이 소년은 싫었으니까.

그러나 지금만큼은 예외였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것이 소년들의 본능 아닌가. 소년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황건욱 앞에서 최대한 전지전능해 보이기를 소망했다.

소년의 권능은 절대적이었다. 그 강화된 통찰력으로 건욱이 왜 그런 소원을 빌었는지 알아내기까지는 찰나의 순간도 걸리지 않았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소년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자신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지만, 기꺼이 굽혀주기로 했다.

소년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건욱이다운 소원이네.”

“절 잘 아십니까?”

“물론, 잘 알지. 아주 잘 알고말고.”

“그래서 들어주실 건가요?”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누구 소원인데 안 들어줘? 좋아, 우주의 절대자가 선언하노니, 이제 그대는 플루토다.”

그 선언과 동시에 우주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이제 건욱은 지하의 지배권과 모든 죽음 및 영혼에 대한 권능이 그 영혼에 새겨졌음을 알았다. 그 권능이며 지배권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권능을 사용했다.

죽음의 신, 지하의 주인. 플루토 신이 말했다.

「나 지하의 주인 플루토가 명하노니 그 권세에 닿는 것들은 내 명을 받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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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의 지하감옥, 간수 역할을 하던 죽음의 기사는 문득 신의 명령을 전해들었다. 그리고는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 말했다.

“위대한 지하의 주인께서······ 너흰 이제 자유라 하신다.”

서요한을 포함한 죄수들은 잠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간수가 그 철창의 자물쇠를 풀어주고서야 지금 일어난 일을 이해했다.

*******

울산, 전 영주 나현태의 집에서 김정흠은 멍하니 앉아있었다. 차원문을 넘은 지 벌써 일주일이 흘렀지만 차마 혼자서 지상으로 나갈 기분이 아니었다.

지하 끝으로 향한 친구는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뒤늦게 생각해보니 힐러 없이 성기사와 마법사 둘이서만 지하 끝까지 닿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그때 같이 탈출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괜히 혼자 차원문을 넘은 것은 아닐까?

정말이지 속이 쓰릴 지경이다.

나현태는 그런 자세한 생각까진 알지 못했다. 그래도 황건욱이 지금 지하 끝으로의 여정을 진행하고 있음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울산의 죄수이자 옛 플레이어로서 나현태는 그 여정의 끝을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김정흠이 눈을 크게 떴다. 불쑥 입을 열었다.

“나현태 아재?”

김정흠이 불쑥 말을 걸자 나현태는 놀랐다. 김정흠은 지난 일주일 동안 거의 말이 없었다.

이제 김정흠의 레벨이 훨씬 더 높았으므로 나현태는 조심스럽게 말을 받았다.

“뭐야, 건욱 씨한테 말투 옮았어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건물 안 흔들려요?”

“건물 흔들리는 거? 잘 모르겠······”

잠시 후, 나현태도 이상을 감지했다. 모두가 알 수 있는 진동이 시작되었다. 창문이 흔들리고, 탁자가 요동쳤다.

“뭐야, 지진이야?”

이 지하에 그런 자연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다. 플레이어가 지나치게 많이 모이면 그런 보복이 따른다고는 들었지만 여긴 울산이었다. 플레이어가 아무리 많이 모여도 괜찮은 비전투 지역.

나현태와 김정흠은 황급히 창가에 붙어 바깥 풍경을 살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이 지진과 비교할 수 없이 놀라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삼십 년 하고도 몇 년 전, 세상이 게임으로 화했을 때, 울산은 무한 던전의 중간거점으로 쓰이고자 그 땅덩이째로 지하에 가라앉았다.

지금은 벌어지는 일은 그 반대였다.

울산의 휘황한 빛이 주변 지형을 비추고 있었다. 지금 그 지형들이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나현태는 어느 성기사가 지하 끝에 내려갔음을 알았고, 그 사실과 지금 일어나는 현상을 조합해보았다. 결론은 간단했다.

[LV.150 NPC 나현태]

나현태가 외쳤다.

“울산이 부상한다! 울산이 부상해!”

[LV.150 마법사 나현태]

“울산이 부상한다고!”

지금 이 순간, 나현태는 어느 성기사가 약속을 지켰음을 깨달았다. 약속을 이행하도록 강제할 힘이 없으니 굳이 지킬 필요가 없었던 약속을 말이다.

환희에 가득 차 나현태가 울부짖었다.

“우리는 자유다! 황건욱 경 만세에에에!”

잠시 후, 상황을 알아차린 울산 주민들이 다 함께 뛰쳐나왔다. 모두가 지금 벌어지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챈 것은 아니었다. 다들 불안 반, 설렘 반의 심경으로 주변 단단한 사물을 붙잡고는 갑작스러운 땅의 상승에 대응했다.

그러는 사람들 중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섞여있었다.

몬스터, 흑요정은 멍하니 저 멀리서 울리는 미지의 명령을 들었다. 새로운 죽음의 신의 명령을.

몬스터들은 지하에 갇힌 죄수였다.

이제부터는 아니었다.

지금 죽음의 신은 그녀의 영혼이 자유라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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