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quis' Express Butler

195. Assault (2)

주변은 금방 정리되었다.

우리가 머무는 방으로 다시 침투한 아서스는 적들을 훌륭히 베어내었다. 거기에 엘루나는 옆 건물 지붕에서 훌륭한 궁술을 선보였다.

“대장이 당했다. 모두 퇴각!”

“어딜?”

촤아악!

내 검이 자객의 몸을 갈랐다. 피는 튀지 않았지만 살갗을 태우며 치명상을 입혔다.

놈의 몸이 그대로 허물어졌다.

“사정 봐주지 말고 모조리 없애!”

내 외침에 아서스와 엘루나가 더욱 바빠졌다.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놈들은 엘루나의 화살에 맞아 바닥으로 처박혔고, 안에 있던 놈들은 아서스의 검을 피하지 못했다.

확실히 경지가 올랐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아서스의 검은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큰 부상으로 끝난 놈들은 독단을 깨물고 자결했다. 그래서 결국 생존자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나는 이놈들을 다시 역으로 추적할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한 번은 당해도 두 번 당할 놈들은 아니니까. 오히려 그걸 이용해서 우리를 함정에 빠트릴 수도 있다.

나는 마지막으로 저항하는 놈의 심장에 칼을 박아넣었다. 치이익, 고기 익는 소리가 나며 검이 놈의 심장을 그대로 태워버렸다.

출혈은 크지 않지만, 장기에 박히면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모두 처리한 것 같은데, 다들 괜찮냐?”

“다행히.”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아서스는 멀쩡했고, 뒤이어 멀쩡한 모습으로 엘루나가 나타났다. 크리스는 힘에 부쳤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서스가 팔을 슥슥 문질렀다. 피부가 덴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다친 데는 없는데 피부가 좀 따갑긴 하네. 해독단이 불량이었나?”

“네 오러가 약한 거겠지. 깨끗한 물로 씻는 게 좋겠어. 엘루나. 회복술로 치료해 줘.”

“예.”

틈틈이 엘루나에게 치료 마법을 익히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엘루나에게 치료를 맡기고 상황을 살피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모조리 독연에 당했는지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독연의 피해는 크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마 수면독에 당한 것이리라.

해독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쓰려고 했던 독이니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깨어날 것이다.

하지만 아예 피해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일부 맹독에 노출된 사람들은 피를 토한 채 절명했다. 우리가 머물던 2층에 있는 사람들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죽은 것 같다.

“……개새끼들.”

나를 노리는 건 상관없다. 내가 그럴만한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정도 위협은 감수해야지.

하지만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을 이렇게 몰살시켰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내가 착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괜히 내가 이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놈들이 비밀결사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고 행동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예상은 정확히 빗나가고 말았다.

놈들은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는다.

나와 사피엘라 영애, 그리고 하멜 공자를 노릴 때는 정말 진심전력을 다할 것 같다.

그래서 기분이 더러워지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짚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크리스가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너무 마음에 두지 마라.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어. 놈들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설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곱게 다뤄선 안 되겠는데. 이 새끼들, 악질이야.”

“그린의 목을 베었으니 놈들도 가만히 있진 않을 거다. 아마 총공세를 해오겠지.”

문득 나는 크리스와 상의도 없이 그린의 목을 벤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그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그가 웃으며 선수를 쳤다.

“그린의 목을 자른 건 잘한 일이야. 만약 놈을 사로잡으려다 함께 죽으려고 했다면 골치 아파졌겠지. 비장의 한 수가 있었을 테니까. 무엇보다도 놈의 머리는 활용도가 커.”

“그럼 다행이고. 일단 놈의 머리를 흑도 놈들에게 보내야겠어.”

크리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곧 경비대가 들이닥칠 거야. 우리도 우리를 보호할 만한 옵션은 하나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머리를 경비대에 넘기자는 거야?”

“당연하지. 비밀결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임무에 실패해서 죽는 게 아니야. 자신들의 비밀이 드러나는 걸 가장 무서워하지.”

그의 말뜻이 뭔지 알 것 같다.

우리를 습격한 그린의 시신을 넘기고, ‘흑도’라는 비밀결사의 정보를 경비대에 넘기는 것이다.

예상대로 곧 경비대가 들이닥쳤고, 나는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면담을 청했다. 어차피 우리가 피해자라는 걸 입증해야 하니 꼭 필요한 절차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경비대는 우리에게 협조적이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의 무죄를 입증해야 했다.

* * *

“경을 의심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이 열 명이나 죽었으니, 이건 큰일이지요. 귀족이 없어서 망정이지…….”

경비대장은 한숨을 내쉬며 불만을 토했다. 이곳은 상업의 중심지인 바리스탄이다. 그 한가운데에서 사람이 열 명이나 사망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소식은 전서구를 타고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상인들의 심금을 울리겠지.

즉, 치안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상인들이 방문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차분한 어조로 심문에 응했다.

“대장의 심경은 이해합니다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앞서 증명했듯 우리는 피해자입니다. 왜 가해자 취급을 하시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아니, 가해자 취급이 아니라 답답하다는 거지요. 놈들이 모조리 죽었다고 해도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 아닙니까?”

“그 부분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답답하다.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하는 건지.

놈이 소속되어 있는 비밀결사의 이름이 ‘흑도’고, 흑도는 델피노 가문이 사적으로 부리고 있는 조직이라고도 설명했다.

당연히 경비대장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비밀결사는 말 그대로 비밀스러운 조직이다. 행정상으로 인정되거나 증명할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후방의 상황은 잘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문은 현재 전쟁 중이나 다름이 없지요. 그래서 본대는 바하무트 가문의 비호를 받고 있고요.”

공작가의 이름은 가급적 꺼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네. 역시나 경비대장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 시신이 몸담은 조직이 ‘흑도’라고 했지요? 이름이 그린이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델피노 가문이 있고?”

“맞습니다.”

경비대장이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해도 델피노 가문에서는 이번 일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할 거요. 헛소문이라고 떠든다면 어떻게 하실지.”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나는 참고인 자격이라 묶여 있지는 않았지만, 무장은 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몸을 그에게 한껏 가까이 들이밀 수 있었다.

“나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지. 우리가 독공을 하지 않았다는 건 이미 입증된 바 아닙니까? 오히려 여관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제 동료가 아니었다면 독연을 밖으로 배출할 수도 없었을 거고.”

“그렇다고 해도 이번 사건은 가벼이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경이 사건에 연루되었으니,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 이곳에 머무르셔야겠습니다.”

“누구 맘대로?”

문이 벌컥 열리고, 뜻밖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근엄한 표정을 지은 하멜 공자였다.

나는 정말 깜짝 놀라 나도 모르는 사이 벌떡 일어났다.

본대가 도착할 만한 시간이 아닌데?

“공자님? 어떻게 벌써 오셨습니까?”

“어떻게 오긴. 쉬지 않고 달렸지. 엘라 녀석, 그렇게 고집을 피우더니만…….”

하멜은 혀를 찼다. 가만 들어보니 사피엘라 영애가 재촉한 모양이다. 내가 적잖게 걱정되었던 모양이지.

경비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귀공은 누구신지?”

“나는 아델라인 가문의 하멜이다. 그러는 너는 누구냐?”

“공자님을 뵙습니다. 이곳의 경비대장입니다.”

군례를 취한 경비대장이 자신을 소개했다. 그도 기사 작위가 있고 부친이 남작인 귀족이었지만, 하멜은 콧방귀를 꼈다.

“어떤 멍청한 놈이 우리 귀여운 막내의 수행비서를 구류시키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너였군.”

“멍청한 놈이라니, 말이 지나치신 거 아니오?”

“네가 하는 일이 더 지나치다!”

그렇게 일갈한 하멜이 손에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경비대장에게 던졌다. 그것을 확인한 경비대장이 움찔 놀랐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딜렌 경, 이제 나가보셔도 됩니다.”

뭔데 갑자기 태도가 이렇게 변해?

궁금하긴 했지만 나중에 물어도 되니 일단 이 답답한 공간에서 좀 빠져나가야 할 것 같다. 나는 하멜 공자와 밖으로 나왔다.

밖엔 작은 마차 한 대가 놓여 있고, 기마대가 앞뒤로 호위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덕분에 복잡한 절차가 생략됐군요. 그런데 아까 그 두루마리는 뭡니까?”

“메이어의 친서다.”

“메이어라면…….”

“바리스탄의 시장이지. 왕도에서 돈 좀 먹인 게 효과가 있었어. 당장 너를 풀어주라는 명령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왕녀의 생일파티에서 하멜 공자가 얼마나 큰 수완을 발휘했는지 피부로 느껴질 지경이다.

“이야기는 대강 아서스 경에게 들었다. 놈들을 시원하게 혼냈다지?”

“그 과정에서 민간인의 희생이 있다는 것 빼고는요.”

“망할 새끼들.”

하멜 공자가 인상을 썼다. 그의 가치관은 상태창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매우 선함’인 그는 민간인이 희생당한 것에 불쾌감을 표했다.

“그래도 네놈이 적장의 목을 잘랐다니 안심이 되는군. 앞으로 네 명이 더 있다지?”

“하나같이 실력이 만만찮은 놈들입니다. 이번 놈은 방심하기도 했고, 크리스가 도와준 덕에 쉽게 물리쳤습니다만 앞으로가 문제지요.”

“우리 전력도 무시 못 할 거다. 이곳에서 지원군을 얻었으니까.”

“지원군이요?”

콧방귀를 뀐 하멜 공자가 잠시 말을 끊고 마차에 올랐다. 나도 그의 뒤를 따라 마차에 탔다. 곧 마부가 마차를 움직였다.

“작센 가문에서 호위병을 빌렸다. 아주 잘 훈련된 기사들이지.”

“다행이군요. 작센 가문이라면 저도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작센 가문은 이곳 상업도시 바리스탄을 기반으로 하는 백작가다. 바하무트 가문의 청룡기사단만큼은 아니지만, 이곳도 실력이라면 꽤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기사를 파견해 주었다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잖아.

“사실 내가 손을 쓴 건 아니고, 왕녀가 선수를 친 것 같아.”

“왕녀님이라면, 오필리아 왕녀님 말씀입니까?”

“그래.”

그건 좀 의외였다.

하지만 왕녀가 얼마나 사피엘라 영애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분명 그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하다.

“기왕 선심을 쓸 거면 왕실근위대를 파견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라. 아무튼, 오필리아 왕녀는 엘라를 보러 올 생각이긴 한 모양이다. 돌아가는 즉시 전령을 보내야겠어.”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런데 메티스에선 뭐 소식 없냐?”

아마 남은 두 공자들의 정보가 들어왔냐 하는 것이리라.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보를 받을 만큼 한가롭지 않습니다. 둘째 공자님이 요청하신 재료 수급에 별문제는 없으니, 도착하면 일이 마무리되어 있을 것 같군요.”

“쯧, 아무튼 서두르자. 엘라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예. 공자님.”

우리의 대화는 끝났고, 마차가 조용히 바리스탄의 밤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