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star or Gaju's Regression

109H41. Her Heart (1)

“왔나요, 로안?”

황성에 있었다고 하지만 소드 마스터 공인의 소식은 이미 안젤리나에게도 전해져 있었다.

그런지라 루비궁 초입부터 안젤리나가 호위 기사들을 대동한 채 기다리고 있자,

“조금 늦었습니다, 황녀님.”

로안이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인사했다.

“아니, 아니에요. 기쁨을 누릴 시간도 없이 달려와 준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죠.”

아주 당연한 일이었지만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로안을 일으켜 세우는 안젤리나.

“이제 소드 마스터 필스타인 경이 내 호위를 맡을 테니 이만 물러가 보도록 하세요.”

곧 그녀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호위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자,

“알겠습니다, 황녀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로안에게 동경 섞인 눈빛을 보내고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안젤리나의 호위 기사들이었다.

“그럼 궁까지 함께 걸을까요?”

“네, 그러지요.”

그리고 함께 루비 궁을 향해서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안젤리나이다 보니 로안에게 거의 기대다시피한 모습인지라,

“혹시 전하께서 로안 필스타인을 마음에 두고 계시나?”

물러나던 기사들이 힐끔 그들을 쳐다보며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젤리나는 처음부터 로안을 자신의 호위로 삼겠다고 그를 지목했고, 몇 번이나 그와 독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거 부러워 죽겠네. 소드 마스터에, 안젤리나 전하의 남자까지 된다면 정말 이보다 더한 탄탄대로는 없겠구만.”

만약 그게 정말이고, 로안이 안젤리나의 배필이 된다면 정말 이보다 더 큰 신분 상승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링귀니 가문을 능가하는 신분 상승의 케이스가 등장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쳇, 소드 마스터만 아니면 내가 꼬시는 건데.”

그런지라 호위 기사 한 사람이 아쉽다는 얼굴로 투덜대자,

“안젤리나 님을? 미쳤어?”

옆에 있던 기사가 혹시나 그 말을 안젤리나가 들었을까 싶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니, 내가 미쳤어? 황녀님을 꼬시게?”

그 말에 더 화들짝 놀라며 소리치는 호위 기사!

“어?”

동료가 잠깐 의문에 빠진 가운데.

“……아무래도 앞으로는 이상한 소리들이 필히 들려올 것 같네요.”

귀가 밝은 로안이 그들의 수군거림을 들은 듯 꽤나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니 크게 개의치 않아요.”

하지만 안젤리나는 그와 달리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로안과 달리 그녀가 기사들의 수군거림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시선들을 모를 리 없으니까.

“나와 달리 로안은 누군가 듣는 사람이 있어 곤란할 수도 있겠지만요.”

도리어 그걸 가지고 장난을 치듯이 로안을 놀릴 뿐이었다.

에밀리아를 염두에 두고 있는 그녀의 말에,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로안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튼 마하라자는 처리를 끝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업무!

금방 화제를 돌린 로안의 말에,

“마하라자를 단칼에 없애 버렸단 이야기는 전해 들었어요. 쉽지 않은 상대였을 텐데, 정말 대단하네요.”

안젤리나도 그의 소식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무리한 건 아니죠?”

그리고 그녀가 조심스럽게 건강을 챙기자,

“네, 무리하지 않았습니다.”

로안도 옅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당신은 몸을 정말로 아끼지 않는 타입이니까.”

그리고 지금 그 어떤 사람보다도 로안을 잘 알고 있는 안젤리나의 말에,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로안도 조금 쑥스러운 얼굴이 되어선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집안의 혈통이 평범한 혈통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정말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 재차 말을 잇는 로안.

“물론 그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아무래도 로안은 필스타인 가문의 혈통에 대해서 뭔가를 알고 있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필스타인 가문의 근원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지 못해요. 그래서 지금 로안이 왜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는지도 말이죠.”

그리고 다른 세계의 존재의 피가 흐른다는 그들이기에, 야드 타타그의 화신인 안젤리나마저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로안은 왼손을 한 번 쥐었다 펴며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극복할 때마다 신체가 더욱 더 강해지더군요.”

전생의 로안은 아주 많은 사선을 넘었다.

“이그에서 알을 암살하고 난 이후 저는 사경을 헤맸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나 힘들었던 것이 한교의 마술사들로부터 보호받던, 서쪽의 폭군 알의 암살 건이었다.

지금은 샤미드가 우스꽝스럽지만, 실제로 그는 굉장한 실력자.

“보통 사람이라면 재기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덕분에 중상을 입었던 로안이었지만,

“하지만 저는 그 이후에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 또다시 암살행에 올랐다.

“엘프 장로 말인가요?”

이미 알고 있다는 안젤리나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때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해냈다.

“그 전보다 제가 훨씬 더 강해졌단 것을요.”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의 능력이 아주 뛰어나단 것도 있겠지만,

“특히나 회복력과 내구력이 말도 안 되게 좋아졌습니다.”

그 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회복력과 내구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순간 에그베르트와 가문의 배반을 당하고, 다하크 수백여 체와 싸웠을 때도 그 힘의 도움이 컸다.

“그건 소드 마스터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닌가요?”

“물론 소드 마스터는 남들보다 많은 단련을 거치기 때문에 체력이나 회복력 면에서 유리할 수 있지만, 제 경우는 그 수준을 완전히 뛰어넘었습니다.”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고 하더라도, 마을 하나를 몰살시킬 수 있을 만큼의 독약을 들이켜고도 그리 싸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소드 마스터의 몸도 강철은 아니니까.

“그게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어쩜 사람들의 말대로 정말로 악마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그게 가능했던 것은 분명히 로안의 신체가 보통 인간과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 로안이 어깨를 으쓱하자,

“……확실히 보통 인간과는 다르군요.”

안젤리나도 그럴 수밖에 없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건 로안의 선조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원리는 알 수 없지만 필스타인 가문의 피가, 죽음에 준하는 시련이 로안을 더욱더 강하게 만드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듯 했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지 않은 건가요?”

그리고 그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존재인 안젤리나에게도 흥미로운 내용인 듯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신기한 듯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그녀가 물음을 던지자,

“죽음은 저도 두렵습니다.”

로안도 후후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사선을 넘을수록 강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초탈할 수 있는 거죠. 더 강해져야 더 많은 것들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그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전과 달리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제 목숨은 제 것이 아니기도 하니까.”

그리고 이번에는 바른 일을 위해서 바칠 목숨이다.

웃고 있지만 묵직한 그의 대답에,

“……그런 태도가 사실은 정말로 무서운 거죠.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안젤리나가 핀잔을 주듯이 말했다.

멋지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감도 있으니까.

“그건 황녀님도 마찬가지잖습니까?”

하지만 핀잔이라면 사실 로안도 뒤처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긴 하네요.”

달리 부인할 수 없는 그의 말에 안젤리나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이제 소드 마스터 공인은 끝났으니 남부로 떠나는 일만 남았습니다.”

곧 그가,

“남부에 간다면 다시 황녀님의 수명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가요?”

진지하게 물음을 던졌다.

안젤리나의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남부에 있다.

지나가며 짧게 나눈 이야기였지만 로안은 그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30년 전에 죽은 마하라자가 다시 부활할 수 있으니 분명히 그런 방법이 있겠지요.”

그리고 막상 대화의 주제가 자신이 되자 조금 쑥스러웠던지 어색한 웃음을 띤 채 대답하는 안젤리나.

“……그 말은?”

“아마도 남부에 있는 신수(神獸)가 알고 있을 거예요.”

“신수?”

암살자인 만큼 대륙 전역의 정보에 해박한 것이 필스타인 가문이다.

가주였던 만큼 대륙 곳곳의 소식을 알고 있었던 로안이었건만, 남부에 신수가 있다니?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실에 그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자,

“신수는 수천 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온 태고의 존재. 잊혀진 고대 신들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죠.”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그 정도 거리에서는 파악이 가능하다고 안젤리나도 미소 지었다.

“그 신수가 문제를 일으키는 겁니까?”

하지만 로안은 웃을 수 없었다.

지금부터 진짜 고난이 시작된다고 했던 제노베제의 예언이 자꾸만 머리를 맴돌았고, 그 대상이 신에 근접한 존재인 신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남부에서 일어났던 거대한 재앙의 원인이 신수라면, 안젤리나가 남부로 향하는 이유가 재앙을 막기 위해서라면 신수와의 싸움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건 또 다른 차원의 싸움이 될 확률이 높았다.

“안심해요. 신수는 현명한 존재예요. 이유 없이 싸우거나,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을 괴롭히지 않아요. 대체로 잠들어 있고, 깨어 있는 시간은 그 기나긴 시간 중 손에 꼽을 정도.”

긴장하고 있는 로안을 안심시키려는 듯 안젤리나가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다만 아리만 교단은 이 신수의 힘을 빼앗으려 하고 있어요.”

곧 그녀가 왜 남부로 가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드디어 꺼냈다.

남부의 신수를 아리만 교단이 노리고 있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막강한 신수를 아리만 교단이 무슨 수로 쓰러뜨리려고 하는 거죠……?”

그렇지만 신수가 고대 신과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아리만 교단 따위는 감히 상대가 되지 않을 터.

그런지라 그 방법에 대해서 로안이 의문을 품자 안젤리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놈들은 잠든 신수를 강제로 깨워 폭주하게 만들 생각이에요. 그 후에 폭주한 신수가 지쳤을 때, 바로 그때 신수를 쓰러뜨리고 힘을 가져가려고 말이에요.”

한숨 섞인 그녀의 말에 로안은 직감할 수 있었다.

“설마 그게 남부의 재앙?”

일찍이 에밀리아가 예언을 했던 남부의 재앙이 바로 이것이라고 말이다.

이제야 모든 일을 알아차리게 된 로안의 모습에 안젤리나도 진지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신수가 폭주하기 전에 놈들을 막아야 해요.”

*

*

*

마하라자의 시신은 볼로네즈 지하 감옥의 시신 안치소로 이동되었다.

“이 시체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이미 목과 몸이 분리된지라 더 돌아볼 것도 없었지만, 근래 황도에서 출몰하고 있는 괴물들이나 지난번의 챠드 마이어스를 생각한다면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덕분에 전쟁이라도 나가는 듯 완전 무장한 병사들이 물음을 던지자,

“더 살펴볼 게 있겠습니까?”

에밀리아와 동행한 미하엘 주교도 더 살펴볼 게 없노라고 그녀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미 이자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일 텐데 말입니다.”

“사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뭔가 단서가 나올지도 몰라요. 직접 살펴보고 싶군요.”

하지만 에밀리아는 생각이 다른 듯했다.

그냥은 넘길 수 없으니 직접 확인을 하겠다는 그녀의 말에,

“그렇다면 그건 저희들이…….”

병사들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죽은 자들이 괴물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일 때문에 무섭긴 하지만, 감히 로열티에게 어찌 그런 일을 하게 할까?

상부에서 이 일을 알게 되면 호되게 혼이 날 게 틀림없었다.

아무리 그녀가 빈 수레 같은 황녀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아니, 내가 직접 살펴보도록 하겠어요.”

그렇지만 당사자가 이리 나온다면 방법이 없었다.

“황녀님, 그러지 말고 이 일은 병사들에게 맡기시는 게 어떨는지?”

“여러분들을 못 믿는 게 아니라 확실히 해 두고 싶은 게 있어요.”

그리고 에밀리아가 힐끔 뒤를 돌아보자,

“데리고 왔습니다.”

프레이야가 방긋 웃으며 누군가를 데리고 왔다.

“목격자를요.”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목격자는…….

“안녕하세요.”

텅 비어 버린 듯한 인형 같은 눈빛을 한 카라.

“목격자가 있었단 말입니까?”

“지난번 세드릭 사건의 목격자예요. 그 사건의 범인과 동일인인지 검증을 할 필요가 있어요. 검기를 구사했다는 자체가 소드 마스터란 증거고, 소드 마스터는 30년 전 죽음을 당했던 마하라자 한 사람뿐이죠. 세드릭도 이자를 마하라자라고 이야기했구요.”

“하면?”

“정체를 확인한 이후에 배후를 추격해야겠지요. 아리만 교단이 배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아직 확정적인 건 아니에요. 또 다른 뭔가가 있을 수도 있죠.”

그 말에 미하엘 주교도 타당한 생각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확실히 그자가 맞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카라에게로 쏠렸다.

“…….”

인형같이 예쁘장한 외모지만 생동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기묘한 얼굴이다.

“……어째 좀.”

그런지라 미하엘 주교는 물론, 병사들도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하자.

“카라는 남자들이 무서워요…….”

금방 두려움 섞인 얼굴로 고개를 돌리는 그녀.

극도로 불안해 보이는 그 모습에,

“……으, 으음. 그리 겁을 먹을 필요가 없소.”

미하엘 주교가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달랬다.

“무서워!”

하지만 패닉 상태에 빠져든 것처럼 프레이야에게 안겨 얼굴을 감추는 카라.

“아, 아앗!”

이 여자가 갑자기 왜 이런담?

프레이야가 적잖게 당황한 가운데,

“……아무래도 잠시만 자리를 비켜 주시는 게 어떨까요?”

에밀리아가 운을 뗐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이미 시신이고, 저도 아카데미에서 검술을 배우고 있는 입장입니다. 큰일은 없을 거예요.”

당차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말에,

“……뜻이 그러하시다면.”

미하엘 주교나 병사들도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암살자의 시신과 황녀를 함께 두는 것이 좀 꺼림칙하긴 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죽은 자인데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무슨 일이 있으면 불러 주십시오.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주교님. 감사합니다.”

달칵.

그리고 주교와 병사들이 시체 안치소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끼익.

조심스럽게 문이 닫혔고,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은 이제 세 여자와 마하라자의 시신뿐.

“……가증스럽긴.”

그리 정리가 되고 나자 에밀리아가 카라를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앗! 정말 놀랐다구요!”

갑자기 안겨든 카라 때문에 당황해 버린 프레이야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자,

“그렇지 않으면 저자들이 자리를 비켜 주지 않으니까요. 죽일 수는 없잖아요?”

무서워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섬뜩한 얼굴로 피식 웃음 짓는 카라.

“……그래도 너한텐 정말로 어울리지 않아서 말이지. 여기서 제일 무서운 게 너잖아.”

팔짱을 낀 채 까칠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에밀리아.

“난 정말로 남자들을 무서워해요. 카라한테 나쁜 짓을 잔뜩 했다구요.”

그 모습에 카라가 후후 웃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비틀비틀 힘없는 걸음걸이가 연약함과 위태로움을 풍기고 있었다.

“……너만 그런 줄 알아?”

그리고 그 뒷모습에 뭔가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듯 에밀리아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히 알아요. 당신도, 나도, 저 여자도, 그리고 이 남자도 모두 괴물이잖아요. 우리는 모두 괴물들이니까요!”

그러거나 말거나 후후 웃으며 마하라자의 시체로 다가간 카라는 떨어져 나간 그의 머리통을 부드럽게 안아 들어올렸다.

마치 보물처럼 소중히 머리를 안아드는 모습은 역시나 기괴함을 전해 줬다.

“이게 로안이라면 좋을 텐데.”

“행여라도 로안에게 손끝이라도 대기만 해. 네 머리통을 수백 조각으로 나눠 버릴 테니까.”

그런 탓일까?

카라의 말이 나오기 무섭게 가시 돋친 에밀리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할 수 있겠어요?”

그러자 고장 난 인형처럼 고개만 돌린 채 에밀리아를 응시하는 카라.

“……으으.”

너무나도 섬뜩한 모습에 프레이야가 조금 겁을 먹은 가운데,

“여기서 보여 줄까?”

전혀 물러섬 없이 에밀리아가 받아쳤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기대할게요!”

정말로 즐거운 듯 방긋 웃음 지어 보이곤,

“하지만 지금은 할 일이 있잖아요.”

마하라자의 머리를 몸통으로 가져가는 카라.

“자, 이제 일어나요.”

그와 동시에 마하라자의 절단된 단면으로 스며들었던 검은 덩어리들이 꿀렁이며 뒤섞이기 시작했다.

스륵.

그리고 놀랍게도 절단면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잘려 나간 적 없이 말끔했던 것처럼 분리되었던 마하라자의 몸과 머리가 다시 붙자,

“케엑!”

잠시 끊어졌던 숨을 토해 내며 마하라자가 꿈틀댔다.

“……빌어먹을.”

그리고 그가 완벽하게 재생되지 않은 듯 잔뜩 쉬어 버린 목소리를 내뱉으며 목을 어루만졌다.

“이미 겪어 봤대도 죽는 건 적응이 안 되는구만.”

그렇지만 그에게 위로 같은 걸 해 줄 이가 어디 있을까?

“어때요? 내 말이 맞죠?”

또다시 로안이 마하라자의 목을 날려 버린 순간을 떠올리며 들뜬 아이처럼 신이 난 카라의 모습에,

“……인정.”

마하라자도 쓴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있는 카라의 예언 그대로 자각도 하기 전에 살해당해 버렸다.

평생 져 본 적이 없는 마하라자이건만, 이 정도로 압도적인 패배는 처음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능력 이외의 힘까지 동원했는데도 말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로안의 실력에 그가 헛웃음을 터뜨리자,

“시간 없으니까 적당히 해.”

뒤에 있던 에밀리아가 눈치를 줬다.

“……하.”

그러자 그제야 그녀의 존재를 파악한 마하라자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로제스타 황가는 엉망진창이로군.”

설마 카라의 배후에 있는 것이 에밀리아였다니!

그 사실 덕분일까?

그의 일침에,

“……당신의 시체는 지하도 수로에 버려질 거야. 그것만 알아 둬.”

굳은 얼굴로 다음 행동을 설명하는 에밀리아.

“……지하도라.”

30년 저의 사람이지만 지하도의 명성은 마하라자도 익히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로안 필스타인의 세력이 지하도를 지키고 있을 텐데. 그건 위험하지 않나?”

그리고 최근 다시 정보를 습득한 바도 있고 말이다.

꽤 신중한 마하라자의 말에,

“로안은 곧 남부로 떠날 거야. 그때에 알아서 빠져나가.”

에밀리아가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로안이 워낙 압도적으로 그를 쓰러뜨렸기 때문에 그렇지, 실제로 마하라자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여기 있는 사람들 정도뿐일 것이다.

그러니 그가 이그로 가거나, 아니며 남아서 뭘 하거나 큰 상관은 없을 터.

“그렇다면 안심해도 되겠군.”

이내 마하라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배님의 실력은 정말로 경이로웠다고 전해 주게.”

그리고 로안에게 별다른 감정은 전혀 없는 듯, 아니.

오히려 그에게 호감이 있는 듯 말을 전해 달라는 마하라자.

그 모습에 에밀리아가 피식 웃음 짓고 말았다.

“……그러도록 할게.”

검을 다루는 자라면, 강함을 추구하는 자라면 로안을 싫어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의 강함은 진짜이고 감히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경지니까.

그러니 여태 유지해 오던 냉정한 얼굴과 달리 이번만은 정말로 기쁜 얼굴이 되고 만 그녀였다.

“이제 너희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날 이그의 세력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건 정말로 감사할 만한 일이지만……. 특히 황녀, 당신은 자기 손으로 제국의 적을 만들고 있는 거라고.”

그 덕분이었을까?

마하라자가 꽤나 진지한 얼굴로 충고했다.

현재 에밀리아의 행태는 그럴 수밖에 없을 터.

마하라자뿐만 아니라 그 앞에서,

“……로안은 정말 멋지다니까요.”

또다시 황홀한 얼굴이 되어 버린 카라 역시 마찬가지다.

이 둘 모두 통제가 불가능한 존재들이며, 제국에는 강력한 적이 될 수 있는 인물들이란 말이다.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제국 따위가…….”

그 말에 쓴웃음을 머금은 채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대며 대답하는 에밀리아.

“어쨌든 이제 약속을 지켰으니 이대로 조용히 사라져 주길 바라.”

금방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듯,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녀가 말하자,

“뭐, 그러도록 하지.”

자신이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마하라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다시 뗄게요.”

그리고 카라가 후후 웃으며 다시 그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빌어먹을……. 정말 다시 떼야 하는 건가? 이대로 끝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 사실에 마하라자가 조금 당혹스러운 얼굴을 하자 카라가 찡긋 윙크를 했다.

“이대로 끝날 리가 없잖아요……? 그렇죠……?”

의미심장한 그 말과 함께,

“……그래.”

마하라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둑.

다시 한 번 더 그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었다.

츠악!

그와 동시에 다시 피가 튀자,

“……아이 참, 다 튀어 버렸네.”

얼굴과 옷이 피에 젖은 카라가 마하라자의 머리를 내려놓고는 손으로 피를 닦아 냈다.

“너, 설마 다른 꿍꿍이를 꾸민 건 아니겠지?”

그리고 그녀를 여전히 신뢰하고 있지 않는 에밀리아가 조심스럽게 물음을 던졌다.

방금 전 카라와 마하라자가 뭔가 신호를 주고받은 듯했으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을 터.

“꿍꿍이라뇨? 그건 거짓말쟁이 황녀님이나 꾸미는 거잖아요. 카라는 그런 거 몰라요.”

피로 얼룩덜룩해진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카라.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절대로 웃지 않는다.

실이 끊어진 인형 같은 모습에,

“……쟤 너무 무서워요.”

프레이야가 겁에 질려 에밀리아의 등 뒤로 숨고 말았다.

“……무슨 짓거리를 꾸미기만 해 봐.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그 말에 그녀가 방긋 웃음 지었다.

“그래요!”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걸까?

고개를 끄덕인 카라의 모습에,

“확인 끝났어요! 안으로 들어와도 괜찮아요!”

에밀리아가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피를 닦을 수 있는 것도 함께 좀 챙겨 줘요!”

그사이,

“아, 아앗!”

프레이야와 눈이 마주친 카라가 빙그레 웃음 지었다.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가득이나 무서운데 피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꿈자리에 나올까 봐 무서울 지경이었다.

잘못한 것도 없이 사과하며 황급히 뒤돌아서는 프레이야를 보며 카라가 조용히 속삭였다.

“……결국 당신도 좋아하게 될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