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star or Gaju's Regression

145 Ch 48. Across the Dream

아득하게 멀어진 정신.

그리고 부유하는 듯 떠다니는 느낌.

그 기묘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을 때,

‘…….’

로안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알테어를 구하고 나서 안젤리나를 찾아간 이후, 그의 의식은 완벽하게 소실되어 버렸다.

이미 극한까지 내몰린 상황이었으니 그게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 전혀 기억이 없다가 다시 정신이 든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은, 끝도 없는 검은 바다를 유영하듯이 떠다니고 있는 듯한 기분.

아니, 사실 바다보단 밤하늘과 같아 허공을 떠다닌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만.

‘오랜만이네…….’

하지만 이게 처음은 아니었다.

이건 로안이 전생에도 몇 번이나 경험을 해 본 바 있는 장면이니까.

죽기 직전까지 내몰린 상황에선 언제나 이런 이상한 꿈을 꾸곤 했다.

이것이 정확히 꿈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쿠오오오오.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떠다니다 보면,

‘드디어…….’

깨어나기 직전의 순간에 항상 마주하는 뭔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로안도 바짝 긴장하고 말았다.

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와 싸워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쿠우우웅.

그 누구든 그것을 본다면 그리 되고 말 테니까.

‘왔군…….’

그것은 크기를 가늠하기도 힘든 거대한 공간.

아니, 이걸 공간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무한한 공허라고 해야 할까?

바다보다 더 깊고 거대하게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존재는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로안 자신뿐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제국은 물론 대륙조차도 먼지만큼 작게 느껴지는 거대한 존재감!

쿠오오오오오오!

그 덕분에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아, 아아아…….‘

아니, 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오감(五感)을 압도하며 본능적 공포를 전가했다.

마왕.

그것은 마왕이었다.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 존재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오직 그것뿐.

그리고 그것은 모든 공포의 정점이었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각!

그리고 끊임없이 귓가를 자극하는 뭔가를 갉아 먹는 듯한 소리.

그 소리에 온몸이 덜덜덜 떨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리니,

샤가이

공허의 틈 속에서 기이하게 생긴 벌레 인간들이 뭔가를 감지한 듯 고개를 내밀었다.

마치 저 거대한 마왕을 모시고 있는 듯한 벌레 인간들의 시선이 닿은 순간.

샤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각.

로안은 소름 끼치는 느낌과 함께 무한대의 눈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에는 그 어떤 생각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너무나도 압도적인 공포 그 자체였으니까.

절망감마저 들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공포!

‘크윽!’

이런 압도적인 존재를 두고 미치지 않는 것이 용하단 생각이 들었을 때,

ㅡ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어서 돌아가렴, 로안.

언제나 그를 돌려보내 주던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사합니다.’

시간을 거슬러 온 이후 그를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덕분에 왠지 모를 반가움과, 아련함이 공존하는 것을 느끼며 로안이 고마움을 전하자,

ㅡ네가 명심할 게 있어.

그는 전과 달리 로안에게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해왔다.

‘네?’

그리고 로안이 유영하듯이 고개를 들었을 때,

ㅡ더 이상 인과율이 흐트러져선 안 돼.

온 사방이 검은 터라 얼핏 검은 윤곽만 비치는 그가 보였다.

ㅡ니알리를 반드시 막아야 해.

마치 거울을 보는 듯 새카만 눈동자를 하고서,

ㅡ지금 끝내지 않으면 정말 거대한 고통과, 괴로움이 찾아올 거야. 반드시 지금 끝내야 해.

그는 로안에게 말했다.

‘……더 거대한 고통과 괴로움.’

그 말에 로안은 더 이상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니알리라는 새로운 괴물의 등장만으로도 막막한데, 이보다 더 거대한 고통과 괴로움이 찾아온다니?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절대로.’

아니, 없어야만 한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

절실한 만큼 절절한 로안의 대답에,

ㅡ극복하지 못한 모든 과거가 가장 큰 적이 되는 법이야. 특히 니알리를 상대할 때는 그걸 조심하도록 해.

그는 진중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 순간 로안은 그가 자신의 먼 조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여태 그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니알리가 했던 말이 머리를 스쳤으니까.

그런 그를 뒤로한 채,

ㅡ놈들이 오는군.

그는 뒤돌아서서 날아드는 벌레 인간들을 막아섰다.

ㅡ그럼.

그리고 그는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ㅡ부디 우리가 다시 만나는 일이 없길.

로안에게 인사를 남겼다.

‘……부디.’

마지막 인사는 언제나와 같이.

번쩍!

그리고 환한 빛이 로안을 감쌌다.

그 다음은 그도 잘 알고 있다.

다시 눈을 뜨면 엄청난 고통과 함께 현실이 다시 시작된다.

차라리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고통이 말이다.

아마 시간은 3일 정도가 지나 있을 것이다.

보통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나면, 3일 정도 사경을 헤맨 뒤였으니까.

스륵.

그리고 다시 시야가 회복되었을 때.

“……음?”

로안은 조금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눈을 뜨면 엄습해야 할 고통은 온데간데없이,

“……뭐야?”

처음 보는 장소가 눈앞에 펼쳐졌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처음 보는 장소는 아니었다.

“……어째서?”

왜냐하면 그곳은 로제스타 제국의 황성.

“……에밀리아.”

그것도 에밀리아가 거주하고 있는 크리스탈 궁이었으니까.

이런 경험은 로안도 처음인지라, 상당히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봤다.

아직까지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꿈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참, 불쌍도 하지.”

그리고 바로 눈앞에 있는 로안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고개를 흔드는 시녀들의 모습을 본다면 더더욱.

“불쌍할 게 뭐가 있어? 그래도 황족으로 태어났는데.”

“참 내, 황족이라고 다 같은 황족인 줄 알아? 후궁의 자식이라 모실 사람도 없지, 심지어 폐하께서 자기 딸인지도 모르는데, 죽은 사람이랑 다를 게 뭐 있어? 그러니까 오늘도 다른 전하의 생일이니 돌볼 사람도 없이 거기 혼자 있는 거잖아.”

“그래도 부족할 게 없잖아? 아직 어려서 그렇지, 나이 들면 다 누릴 거 누리고 산다니까. 다른 전하들도 동생이라고 예쁘다 잘 챙겨 주는 편이고, 커서는 귀족 가에 시집가서 잘 먹고 잘 살 게 뻔한데. 외로워도 좋으니까 차라리 내가 그랬으면 좋겠다!”

마치 유령이 된 듯 로안을 스쳐 지나가는 시녀들의 대화에,

“……에밀리아.”

로안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그녀의 이야기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동시에 당혹감이 스쳤다.

어째서일까?

어째서 평소와 달리 이런 꿈을 겪고 있는 것일까?

이조차도 뭔가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의문이 가득 차오른 가운데,

“잠깐만.”

시녀 두 사람 중 하나가 멈칫했다.

“……방금 누가 여기 있는 것 같지 않았어?”

그리고 힐끔 로안을 돌아보는 시종.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해? 귀신이라도 있단 말이니?”

하지만 여전히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

옆에 있는 시종이 채근하자,

“기분 탓인가?”

그녀 역시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뒤돌아섰다.

“아무튼 서둘러 가자! 오늘은 레온 전하의 생일이니까!”

“알았어!”

그리고 뒤돌아서서 제 갈 길 가는 시녀들.

그 뒷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보던 로안은,

“……에밀리아.”

꿈치고는 지나치게 생생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다시 크리스탈 궁으로 몸을 돌렸다.

이미 에밀리아와 자신은 인연이 아닌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

그래도 그녀를 그렇게 쉽게 놓고 싶진 않았다.

에밀리아가 달라진 이유를 알게 된다면, 그렇다면 다시 그때처럼 그녀를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젠 내가 대체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어.”

그 생각에 로안은 저도 모르게 크리스탈 궁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마치 불어오는 바람처럼 잔디를 흔들면서, 황성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크리스탈 궁 안으로 말이다.

“……흐흑.”

그곳에서 그는 보았다.

아주 큰 궁 안에서 홀로 울고 있는 작은 소녀를 말이다.

크리스탈 궁이 제일 작은 궁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린아이 혼자 지내기엔 정말로 넓은 궁전이다.

그곳에서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토끼 인형을 끌어안고 울고 있는 것은…….

“에밀리아…….”

분명히 그녀가 틀림없었다.

그건 로안이 평생 본 적 없는 아주 작디작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녀를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에밀리아니까.

새하얀 머리카락과, 눈물에 젖어 있는 파란 눈동자는 그녀 말고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왜 아무도 없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괴로워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

로안은 저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고 뭔가가 솟아오름을 느꼈다.

아니, 망치로 머리를 때려서 ‘뎅’ 하고 소리가 울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 역시 언제나 크게 흐트러짐이 없었다.

다소 감정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속내를 쉽게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무섭단 말이야……!”

그래서 그런 그녀에게 이런 과거가 있을 거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게 사실이니까.

“나 무섭다구!”

그런데 눈앞에 인형이 찢어지도록 꽉 끌어안은 채 앙앙 울고 있는 그녀가 있다.

너무나도 서럽게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비단 로안이 아니라 하더라도 충분히 함께 슬퍼할만한 모습이었다.

이제 겨우 4살, 5살 정도뿐.

혼자 이 큰 궁에 있기에 그녀는 너무 작고 어렸으니까.

“…….”

그런지라 로안도 무어라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 되고 말았다.

자기 일인마냥 가슴이 시큰거리고, 울컥해서 안타깝게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왜 아무도 안 와……!”

화가 난 듯 울며 소리를 친대도 그건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처연하다고,

“……에밀리아.”

로안은 안타까운 얼굴로 그녀의 작은 등으로 손을 뻗었다.

스윽.

하지만 지금 그는 유령과도 같은 상태.

닿을 수 없기 때문에 아무런 위로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흐흑…….”

그저 울고 있는 자그마한 등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할 뿐.

“에밀리아…….”

설마 그녀에게 이런 과거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녀가 아무리 배경이 없는 황족이라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홀대 받고 자랐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심지어 카라와 형태만 다를 뿐, 느끼고 있는 고통의 깊이는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대체 이게 무슨.”

안타까운 마음이 자꾸만 울컥울컥 솟아올라서 덩달아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로안은 그녀의 옆에 주저앉았다.

스윽.

닿진 않지만 어떻게든 위로를 해 주고 싶었다.

어떻게든 그녀의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에밀리아.”

그게 그의 바람이자 희망이었고, 그건 지금 역시 마찬가지니까.

제발 지금 이 손이 닿기를!

로안이 그것을 간절히 바란 순간,

“…….”

울고 있던 에밀리아도 뭔가를 느낀 듯,

스윽.

로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눈물과 콧물로 엉망진창이 된 어린아이의 얼굴이라지만, 타고난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에밀리아…….”

그 모습마저 정말로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며 로안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르륵.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안타까운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결국은 눈가로 뜨거운 뭔가가 흐름을 느꼈을 때.

“……너는 누구야?”

에밀리아는 비로소 그를 보며 물음을 던졌다.

“……왜 울어?”

그리고 그녀가 희고 자그마한 손으로 로안의 눈가를 훔쳤다.

마치 그가 그곳에 있단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스륵.

그 순간 마법처럼 에밀리아의 손가락 끝에 머문 눈물 한 방울.

“……에밀리아를 위해서 울어 주고 있는 거야?”

그리고 그녀는 물었다.

눈앞에 있는 로안이 유령이든 뭐든 사랑이 절실한 그녀에겐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은 듯, 너무나도 감격한 얼굴로 말이다.

“……넌 혼자가 아니야, 에밀리아.”

그리고 로안은 자꾸만 터져 나오는 눈물을 좀처럼 참지 못하고 에밀리아를 끌어안았다.

그녀를 안을 수 있는지, 만질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떻게든 그 작은 마음에 난 상처를 달래 주고자 말이다.

스륵.

하지만 결국 닿지 않고 그녀를 통과해 버리는 투명한 몸.

그게 그렇게 아쉽고 안타까울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로안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응, 에밀리아는 혼자가 아니야! 네가 있으니까!”

방금 전까지 울고 있던 것을 잊고 에밀리아가 되레 그를 위로했다.

“아…….”

진심은 진심에 닿는 법이라고 했던가?

몸이 닿진 않아도, 마음은 충분히 에밀리아를 향해 전해진 것 같았다.

이게 꿈인지, 실제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로안은 에밀리아가 행복하길 바랐으니까.

더 이상 고통을 겪지도, 슬퍼하지도 않길 바랐으니까.

“이제 혼자가 아니야! 다행이다!”

그래서 그런 게 아닐까?

어쨌든 그 마음이 전해져서,

“기뻐!”

어쨌든 에밀리아가 웃고 있으니 다행이란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가 그리 생각하는 동안,

“에밀리아!”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에,

“언니다!”

에밀리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형을 안아 들고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세상 그 누구보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 듯 말이다.

“아.”

곧 그녀가 달려가던 걸음을 멈추고 로안을 돌아봤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그리고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순수한 얼굴로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그녀.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꽉 죄어 와서, 울컥 하고 다시 눈물이 솟아오른 로안은…….

“응, 기다리고 있을게.”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을 듣기 무섭게,

“언니!”

다시 에밀리아는 뒤돌아서서 달렸다.

“안젤리나 언니!”

그녀를 찾아온 안젤리나를 향해서.

바로 그 순간이었다.

번쩍!

다시 환한 빛이 일어난 것은 말이다.

그와 동시에 로안이 잊고 있던 고통도 다시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완벽하게 의식이 회복되었단 증거일 터.

“……기다린다고 했는데.”

하지만 그 순간에도 로안은 슬픔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것이 꿈인지, 정말인지 알 겨를이 없었지만 그녀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그녀를 혼자 두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주르륵.

눈가를 흐르는 눈물과 함께 로안은 눈을 떴다.

온몸을 엄습하는 통증보다도, 마음 한구석의 아릿함이 더 커서 도저히 눈물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로안!”

그리고 그 순간 귓가로 들려온 목소리들.

“……카라.”

얼마나 오랜 시간 의식을 잃은 것인지, 참을 수 없는 갈증을 느끼며,

“……뷔샤.”

로안은 무척이나 오랜만에 보는 듯한 그녀들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에밀리아의 어린 모습뿐이었다.

그 어떤 색에도 물들지 않은 듯 순백색의 웃음을 짓고 있던 그 앳된 얼굴만이 아른거릴 뿐이었다.

“……로안, 울어?”

“아직 많이 아픈 거예요?”

그리고 들려온 뷔샤와 카라의 물음에,

“…….”

로안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몇 번이나 경험해 봤고, 사실 아주 큰 고통이라 하더라도 참을 만했다.

하지만 도저히 가시지 않는 슬픔을, 안타까움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뇌리에 박힌 듯 자꾸만 맴돌고 있는 에밀리아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는 말했다.

“지금 목이 너무 말라서…….”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잠시만요!”

“기다려!”

카라와 뷔샤가 경쟁하듯이 밖으로 뛰쳐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두 사람이 사라지고 다시 찾아온 정적 속에서…….

“…….”

그는 두 눈을 감고 마른 침을 삼켰다.

애써 떨쳐 보려 했지만 그 모습은 잔영처럼 자꾸만 아른거려 사라지지 않았다.

또한 자연스럽게 떠오른 건 지금 에밀리아의 모습.

진짜 원하고 있는 것은 그녀가 아니었을까?

어쩔 수 없는 마음을 향방에 로안은 깊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네가 지금 너무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