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star or Gaju's Regression

162 Ch 55. That it varies (1)

“다 왔습니다, 필스타인 경.”

다시 마차를 타고 와서 도착한 베이커 6 거리의 빨간 벽돌집.

“여기에 정말 엘프가 있다 이거지?”

마차가 멈춘 순간 세드릭은 다시 한 번 더 로안에게 물음을 던졌다.

“엘프가 꽤 보고 싶었나 봐?”

여러 가지 일이 또 다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터라, 피로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니, 별로. 난 나보다 더 아름다울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싫어.”

그들에게 딱히 관심 없다고 단호하게 고개를 흔드는 세드릭.

그 모습에 로안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럼 왜?”

“엘프랑 얘기하는데 난 그렇게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지.”

아무래도 세드릭은 도착하자마자 바로 튜더에게 갈 생각인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막 엄청난 고급 정보를 입수한 참이니까.

“아아.”

제국이 들썩이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가장 가까운 곳의 약소국 호른 왕국뿐.

그렇기 때문에 그 심정을 이해한다고 로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류시아만 있으면 돼. 오해의 소지가 있는 건 검은 머리란 부분이니까.”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지만 위험해지면? 이 바보가?”

류시아가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세드릭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미 세드릭은 몇 차례 위험에 빠진 바 있으니까.

“튜더네 집은 바로 옆 블록이야. 너무 걱정하지 마.”

하지만 지금 튜더는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소드 마스터 공인 이후 하위 클래스의 대부분은 한나가 구입한 건물에서 세를 얻어서 살고 있고, 튜더 역시 그들 중 하나.

“하긴. 질러, 비명. 무슨 일 있으면.”

세드릭의 말에 곧 수긍해 버린 류시아가 그래도 혹시나 하고 당부하자,

“그건 내 주특기지.”

후후 웃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세드릭.

“치워! 이거!”

그러자 류시아가 꽤나 앙칼진 목소리로 그의 손을 쳐내 버렸다.

“……오리엔탈 드래곤, 다크 플레임 드래곤은 되는데 나는 어째서?”

그게 꽤나 섭섭하다고 세드릭이 처량한 눈빛을 보내자,

“망가지잖아, 머리!”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는 류시아.

“큽!”

그 모습에 로안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머리가 망가지는 걸 싫어하는 모습이 꽤나 귀여워 보였으니까.

“머릿결대로 했었어야지, 세드릭.”

“훗, 알고 있다.”

“뭐?”

“하지만 난 남들과 같은 길을 걷고 싶지 않아서 말이지!”

그렇지만 상대는 바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럴 거란 그의 당찬 외침에,

“휴.”

류시아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외모의 이점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바보를 보고 있자니 답답할 수밖에.

“아무튼 그럼 나 먼저! 돌아와 보니 셋은 안 된다!”

그 사이 마냥 해맑은 세드릭이 마차에서 내리며 소리치자,

“무슨! 셋!”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목소리를 높이는 류시아.

“정말…….”

이런 민망한 말을 잘도 넙죽 내뱉는단 말인가?

[그 짧은 시간에 그게 될 줄 아나. 멍청이.]

동방어를 내뱉으며 뚱한 표정 짓고 있는 그녀에게로,

“그럼 우리도 가자, 류시아.”

로안은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넸다.

“……그래.”

그러자 류시아가 꽤나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그와 단둘이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까.

언제나 세드릭이나 데이모스 같은 바보들이 껴 있어서 그다지 어색한 분위기가 없었다지만, 이렇듯 단둘만 남으니 어색하기 그지없을 수밖에.

“류시아?”

“아니, 아무 것도!”

곧 그녀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동안 로안이 먼저 마차에서 내려 문을 붙잡고 있자,

“…….”

조금 망설이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는 류시아.

루비 궁에서부터 줄곧 할 말이 있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할 말 있어?”

안으로 들어가기 전 듣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로안은 다시 물음을 던졌다.

“……으음.”

그러자 류시아는 다시 한 번 더 망설이는 얼굴을 했다.

“괜찮아.”

그 모습에 로안은 다시 한 번 더 차분하게 그녀를 다독였다.

뭐든 괜찮다는 그 눈빛 덕분일까?

“……만약에.”

그녀는 천천히 운을 뗐다.

“언젠가 도와줄 수 있어? 나를?”

그리고 그녀가 꺼낸 의외의 말에,

“……언젠가?”

그게 뭘까?

조금 생각하던 로안은,

“물론이지.”

이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엄청 길지도 몰라! 힘들고!”

그의 흔쾌한 승낙을 예상치 못했던 걸까?

깜짝 놀란 얼굴로 그녀가 좀 더 말을 이었지만,

“괜찮아. 언제가 되든,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네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모른 척하지 않을게.”

그는 여전히 한결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과거가 아니다.

현재 처음으로 만난 사람.

그렇기 때문에 어쩜 다른 이들보다 배로 충실히 대하고 싶은지도 몰랐다.

과거는 자꾸만 어그러지고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그녀는 타인을 위할 줄 아는 상냥한 사람.

아주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기꺼이 돕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에반젤린 영지에서 목숨 걸고 함께 싸운 동지인데 기꺼이 해야지.”

그런 로안의 모습에,

“……고마워.”

류시아도 무척이나 감동받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건 말할게. 언젠가 내가.”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야기하겠단 그녀의 말에,

“기다리고 있을게.”

로안도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전보단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좋은 친구들이란 게 생겼으니까.

왠지 모르게 애틋해져 버린 그 눈빛에,

“그거야.”

류시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응?”

“그러니까 듣지, 유혹마 소리.”

조금 부끄러웠던 걸까?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그녀의 모습에,

“진짜 해 버릴까 보다.”

로안도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눈썹을 까딱했다.

“으, 으응?”

생각지 못한 모습에 류시아가 크게 당황해 버리자,

“정말 그럴 수도 있으니까 앞으로 조심해.”

다시 피식 웃으며 손을 내미는 로안.

에밀리아에게 차이긴 했지만, 그래도 고백을 했단 게 그에겐 큰 변화를 야기시킨 게 틀림없었다.

이런 말을 이전보다 부담 없이 할 수 있게 된 것을 본다면 말이다.

“……능글능글해졌어. 어쩐지.”

안젤리나도 그렇고, 어째 로안도 달라진 것 같다.

그리 생각하며 그녀가 얼굴을 붉힌 채 마차 밖으로 나왔다.

“살다 보니까 그런 게 좀 필요하긴 하겠더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단숨에 바뀔 수 있을까?

아직까지도 공허한 마음으로 로안이 허공을 바라보고는,

“가자.”

먼저 걸음을 내딛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돌아오는 베이커 6 거리의 붉은 벽돌집으로 말이다.

“알았어!”

곧 류시아가 그 뒤를 따랐고,

달칵.

그렇게 두 사람이 문을 열었을 때.

“야옹!”

그들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냥!”

고양이 소리를 내며 바스텟트의 꼬리를 열심히 쫓는 알마였다.

“자, 이쪽이야. 아이, 귀여워.”

그리고 장난감 마냥 탐스러운 꼬리를 흔들며 알마에게 장난을 치는 바스텟트까지.

“……어.”

보통은 반대가 되어야 할 텐데?

그 광경에 크게 당황해 버린 로안이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동안,

“귀엽잖아!”

류시아가 알마와 바스텟트를 보고 반색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이고, 귀여운 장면인가?

그녀는 그게 정말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외견상 알마와 그렇게 나이 차이가 나 보이지 않는 류시아인지라, 덩달아 귀여워 보이는 걸 어떻게 할까?

“……역시 다들 귀엽네.”

이내 로안도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빠!”

그리고 그제야 로안을 발견하고 안겨 드는 알마!

그 모습에,

“아, 아빠?”

“스승님이 유부남?!”

그를 맞이하기 위해서 걸어 나왔던 쥬피와 젠이 화들짝 놀라며 그를 쳐다봤다.

“아저씨랑 오빠의 중간이라서 아빠야. 오해는 없도록 해. 특히 쥬피.”

그러자 자연스럽게 설명을 이어 가는 로안.

“앗, 어째서 저만!”

망상회로 가동 직전에 중지를 당해 버린 그가 꽤나 시무룩해진 가운데,

“드디어 돌아왔구나, 로안.”

거실에 있던 윌리안과 라다도 그를 맞이하기 위해 나왔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라고 하지만, 고난도 있었던 데다, 어쨌든 한 달 만에 집으로 돌아온 로안이었으니까.

그러니 가족이 맞이하는 게 맞다고 나란히 선 두 사람의 모습에,

“라다, 잘 지냈죠? 알마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네요.”

로안은 후후 웃으며 말했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는 묘한 안도감이 들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네,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꼭 남매처럼 다정한 그들의 모습에 라다가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자,

“말 편하게 하세요, 라다 씨. 아니, 이제부터는 어머니라고 불러야 할지.”

로안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으, 으음!”

그 말 듣기 무섭게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라다와 윌리안.

특히 로안이 에밀리아와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윌리안은, 민망한 와중에도 그가 걱정된다는 듯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파르비티랑 뷔샤는요?”

그러자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는 로안.

남들 앞에선 그리 티를 내고 싶지도 않았고, 굳이 이야기할 만한 것도 아니었고.

당연히 지금 없는 그녀들을 찾게 되자,

“난 여기 있고, 파르비티는 알테어랑 같이 있어.”

뷔샤가 이에타를 부축해오며 말했다.

“알테어가 낯을 많이 가려서요! 그래서 파르비티 언니가 챙겨 주시고 있어요!”

그리고 젠도 이야기를 거들자,

“아아.”

그 말에 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냥한 파르비티라면 그러고도 남을 테니까.

“저 엘프는 괜찮아?”

역시 그녀는 달라지지 않았다.

자꾸만 달라지고 있는 것들 가운데 한결같이 남아 있는 그녀의 존재감에 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로안은 뷔샤에게 물음을 던졌다.

오른 발목과 복부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고,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아까 전 육박전에서 상당한 데미지를 입은 게 틀림없었다.

사실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저리 다치게 할 필요 없이 제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저질러 버린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덕분에 꽤나 미안해져 버린 그의 눈빛에도,

“자업자득이다. 네 잘못이 아니다.”

이에타는 크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검은 머리가…….”

되레 그보단 로안의 옆에 있는 류시아를 보고 많이 놀란 눈치였다.

이미 바스텟트를 만나서 다소 의혹이 풀린 데다 완벽하게 쐐기를 박은 셈이었다.

“……네 말은 모두 사실이었군. 신수의 존재부터 또 다른 검은 머리까지.”

이제야 완벽하게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그녀가,

“네게 무례를 범한 것을 사죄한다.”

바로 무릎을 꿇었다.

“아니, 그럴 것 없어. 나라도 그 상황이면 날 가장 먼저 의심했을 테니까.”

곧 로안이 괜찮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남부 우림에서 벌어진 모든 상황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어쨌든 일단 오해는 풀린 셈인데, 넌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리고 로안은 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그녀와의 오해가 풀렸으니 이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

그랑피아 연합보다도 더 남쪽인 엘프의 땅에서 벌어진 일은 그가 알아보기 힘드니, 그녀와 협업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난 남부로 돌아가서 놈을 처음부터 다시 추적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역시나 예상대로 이에타의 한숨 섞인 대답이 들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을을 몰살시킨 상대를 찾아서 어떻게든 없애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일 테니까.

“몰살당한 마을은 아이오타 하나뿐이야?”

곧 로안이 다시 물음을 던지자,

“아직까지는 그곳 하나뿐이래. 그 이후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에타도 알 수 없으니까…….”

곧 뷔샤가 이에타 대신 조심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끔찍한 과거를 떠오르게 할 수도 있으니 그게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조심스러운 그녀의 대답에,

“그렇게 해 주지 않아도 된다.”

이에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건 이미 벌어진 사실이니까.”

속상하긴 해도 그것과 이것은 별개의 문제.

사실은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란 그녀는 분명히 인간들과는 조금 다른 종임에 틀림없었다.

“……굳이 사서 마음 아파 할 필욘 없잖아.”

그 말에 뷔샤가 입술을 삐죽이자,

“……그런가.”

이에타도 조금 울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군.”

그리고 꺼낸 그녀의 말에 뷔샤가 귀를 쫑긋하며 말했다.

“……벼, 별로.”

부끄러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넌 정말 귀여운 아이로군. 나의 피앙새로 삼고 싶을 만큼.”

이에타가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을 꺼냈다.

“……어?”

같은 여자끼리?

크게 당황해 버린 뷔샤의 눈이 커지자,

“엘프들은 모든 감정에 솔직하니까. 흔한 일이다.”

이에타는 별거 아니란 듯 대답했다.

“아빠, 나 고양이랑 놀래!”

그 사이 무거운 분위기를 감지한 알마가 다시 바스텟트와 놀려고 하자,

“응, 알았어.”

곧 로안이 알마를 내려다 주며,

“우리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집 안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가족들과의 재회도 중요하지만, 남부에서 벌어질 일을 파악하는 것 역시 중요했으니까.

“나는 이 녀석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내 앞에 나타날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로안이 이에타의 앞에 마주서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 앞에?”

“하지만 동방인이라면 그럴 이유가 없을 텐데?”

곧 뷔샤가 그 옆에서 신기한 얼굴로 이에타를 쳐다보고 있는 류시아를 보며 말하자,

“……없어, 동방인은.”

그녀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여기에 없어. 나 말곤.”

이유는 달리 밝히지 않았지만 확신이 담겨 있는 그 말에,

“나도 동방인은 아닐 것 같아.”

로안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좀 과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날 겨냥했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거든.”

모든 정황이 로안을 가리키고 있는 이 사건의 가장 유력한 배후는 니알리.

그녀의 고약한 성격을 생각한다면 이런 오해를 사기 충분한 ‘검은 무엇’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굳이 풍마 엘케인을 가져간 것도 로안을 자극하기 위함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니알리?”

그 말을 듣기 무섭게 뷔샤와 류시아도 상대가 누구인지 알 것 같다고 그를 쳐다봤다.

“……니알리?”

그게 누군지 모르는 이에타도 그게 복수의 대상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한결 매서워진 눈빛을 보내자,

“아이오타는 새로운 검을 얻었기 때문에 실험을 거친 장소에 불과할지도 몰라.”

로안은 보다 냉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실험?”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이에타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난 이런 정신병자들에 대해서 잘 알거든. 남을 해치는 데 거부감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녀석들은,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으면 반드시 실험을 하려고 하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익히고, 그로 인해서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파악해야 하니까.”

로안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풍마의 성지와 가장 가까이 있는 엘프들의 마을, 아이오타를 노린 걸 거야.”

상대가 상대적으로 강력한 엘프들을 실험 대상으로 선정했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로안!”

이내 그런 말은 자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뷔샤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그 다음은 자명하지.”

하지만 로안은 멈추지 않았다.

“더 강한 무엇인가를 노릴 거야. 자신의 강함이 세계 최고라고 믿고 있을 테니까.”

그저 상대의 행적을 예측할 뿐이었다.

“……그건 바로 너로군.”

하지만 그건 이에타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뷔샤와 달리 인간적인 감정을 크게 가지지 않은 그녀도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듯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될 확률이 아주 높겠지. 나는 명성을 가지고 있으니까 타깃이 되기 적절한 사람이지.”

로안도 남부에 일을 벌인 그것이 곧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내가 무얼 하길 원하는 거지?”

이에타가 그의 의도를 찾기 위해서 물음을 던졌다.

“너한테 특별히 바라는 건 없어. 하지만.”

“……음.”

이내 로안은 본론을 꺼냈다.

“만약 네가 남부로 돌아가서 놈을 추격하려 한다면, 공조를 하자고 제안을 하려고 해.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타깃이 될 수도 있고, 난 내 주변 사람들이 휘말리는 걸 원하지 않거든. 그리고 풍마 엘케인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는 상대라면, 너 하나로는 복수를 이루기 쉽지 않을 테니까.”

다분히 현실적인 그의 말에,

“……그렇군. 그렇겠지.”

이에타도 혼자서 복수를 완수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요약하자면, 그놈을 죽여서 복수하고 싶다면 나라는 검을 잘 이용해 보란 이야기야.”

곧 로안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엘프의 눈과 귀를 피할 수 있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잖아?”

찾는 건 네가.

“그리고 필스타인 어쌔신의 검을 피할 수 있는 존재 또한 어디에도 없어.”

죽이는 건 내가.

니알리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욱 더 진지해진 그 눈빛에,

“……좋아.”

이에타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아름다운 용모와 달리 복수에 있어서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엘프의 방식 그대로 말이다.

꾹.

곧 신뢰를 나누기 위해서 손을 꽉 움켜쥔 로안은 그녀의 페리도트 색 눈을 보며 말했다.

“놈을 찾아내. 나는 그동안 놈을 단숨에 없애 버릴 수 있게 칼을 갈고 또 갈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