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 Breaker
< [Chapter 81] Northern Sea Ice Sword Interest Association (2) >
* * * *
“정말 이러실 겁니까?”
수혁은 진심 난감한 표정으로 이자연을 향해 물었다.
“어쩔 수 없어요. 전 오늘 아저씨와의 비무에서 제가 도달하고자 했던 무(武)의 끝을 봤어요.”
수혁 앞에는 엄청나게 큰 배낭을 메고 있는 이자연이 있었다. 그녀는 쌀 수 있는 모든 짐을 싼 후 수혁을 따라나선 상태였다.
“솔직히 이자연님을 떨쳐버리는 건 제게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이자연님에게 신세를 진 게 있어서…….”
“에이, 아저씨 올마스터인 거 걸려서 강제로 날 떨쳐버리지 않는 거잖아요. 선수끼리 왜 그래요.”
이자연은 수혁의 말을 끊으며 웃었다. 이자연의 미모가 워낙 대단하다 보니 그녀의 미소는 ‘살인 미소’란 말이 어울릴 정도로 완벽했다.
하지만 수혁에겐 그녀의 이런 아찔한 미소보다 비수처럼 파고드는 그녀의 말이 더 무서웠다.
“글쎄 난 올마스터가 아니라니까요.”
수혁은 일단은 아까부터 계속 부정을 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이미 눈치 빠른 이자연은 수혁이 올마스터라는 걸 거의 100% 확신하고 있었다.
“과연 그럴까요?”
싱글싱글 웃으며 얘기하는 이자연. 수혁은 분명 그녀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적어도 지금 그녀의 모습은 그런 정보와는 완전히 반대처럼 보였다.
확실히 그녀는 평소와 달라 보였다. 그런데 그녀가 평소와 다른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수혁과의 비무를 통해 생각보다 많은 걸 깨달았고 그 순간 수혁이야 말로 자신을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줄 아주 중요한 스승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자연의 성격은 차가운 게 아니라 귀찮은 걸 극도로 싫어하는 것이었다. 평소엔 귀찮은 게 싫어서 인간관계를 거의 맺지 않았지만, 지금은 전혀 귀찮지 않았다. 자신을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줄 스승과 같은 이에게 귀찮음을 느낄 순 없었다.
-주인님, 이자연님의 어투와 눈빛을 다각적으로 심층 분석한 결과 주인님의 정체를 거의 확실히 눈치챈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주의를 드렸어야 했는데…… 여자의 감(感)이란 걸 너무 무시했습니다.
‘아니야. 내가 너무 멍청했어. 이럴 바엔 차라리 바이크 헬멧을 쓰고 다닐 걸…… 에휴.’
“아저씨 근데 너무 안 좋게만 생각하시지 마세요. 제가 아저씨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미안하지만 누구의 도움을 받을 정도로 부족한 게 없습니다.”
이자연의 말에 수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정말요? 그렇지 않을 텐데…… 아저씨에게 지금 가장 부족한 걸 제가 채워드릴 수 있거든요. 솔직히 모자와 마스크라는 그런 어설픈 방법으로 절대 아저씨의 정체를 숨길 수가 없어요. 아마 다른 나이트들도 전부 아저씨의 정체를 눈치챌 걸요? 하지만 제가 도와드린다면 얘긴 달라지죠!”
지금까진 한결같이 어떻게 하면 이자연을 아무런 잡음 없이 떨쳐버릴까를 고민하던 수혁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자연의 말에 갑자기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거죠?”
“제가 가진 능력 중에 얼굴은 물론이고 외형까지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그게 가능한가요?”
“솔직히 제 능력을 누군가에게 까발리는 것 같아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만큼 제가 아저씨를 생각한다는 걸 알아주세요. 제가 가진 능력 중에 피부나 옷 위에 아주 얇은 얼음 막을 입힐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이 능력을 활용하면 빛의 굴절 각도를 교묘하게 조절해 원래 가지고 있는 외모와 전혀 다른 외모로 꾸미는 게 가능해요. 몸의 외형은 얼굴처럼 크게 변형시키는 건 힘들지만 적어도 덩치를 좀 더 커보이게 만드는 건 충분히 가능해요.”
“그 얼음 막이 안 녹고 유지할 수 있어요?”
“제가 옆에 없으면 대략 세 시간 정도 유지되겠지만 제가 옆에 있으면 무한히 유지될 수 있어요.”
이자연은 이 기술을 빙백역용(氷白易容)이라 불렀는데 이걸 사용하면 그 누구도 그녀를 알아보질 못했었다. 사실 이자연은 이 능력을 이용해 그동안 다른 사람들 모르게 많은 일을 했었다.
세상에는 그녀가 흑룡강 상류에 틀어박혀서 혼자만의 세상을 살아간다고 알려졌었지만 실제로 그녀는 얼굴을 바꾸고 하얼빈콜로니에 자주 놀러 갔었다.
쇼핑은 물론이고 클럽까지 놀러 가 봤을 정도로 생각보다 자신의 나이인 25살에 맞게 잘 살아가고 있었다.
‘얘 말이 진짜일까?’
-제가 볼 땐 진짜일 가능성이 98% 이상입니다.
‘흐음…….’
-여러 징후를 토대로 유추해 봤을 때 이자연님은 주인님에게 확실한 호의(好意)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볼 땐 그녀가 있어서 불편한 점보다 편한 점이 더 많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실 필요 없어요. 전 순수하게 아저씨가 비무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더 많은 깨달음을 얻고 싶을 뿐이에요. 뭐, 그러다 시간이 남으셔서 저랑 비무를 또 해주신다면 그거야말로 삼생(三生)의 영광이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전혀 상관없어요.”
한 번 뚫린 이자연의 입은 정말 청산유수(靑山流水)였다.
수혁은 보면 볼수록 그녀에게 붙은 북해빙검이란 별호가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좋습니다. 그럼 같이 다닌다고 치죠. 하지만 저랑 같이 다니면 불편한 게 상당히 많을 텐데 괜찮겠습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비무를 보여드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대신…… 시간이 남을 때 비무를 해드리죠.”
“영광스러운 비무행의 현장을 직접 보지 못한다는 건 안타깝지만 대신 비무를 해주신다면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수혁의 말에 이자연은 고개를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아, 그리고…… 앞으로 최소 몇 달은 같이 지낼 텐데 계속 존댓말을 하는 건 좀 그러니 말은 편하게 할게.”
“얼마든지 그러세요. 아, 그리고 굳이 발음하기도 힘드신 중국어 말고 한국어로 말씀하셔도 돼요.”
“어? 한국어를 할 줄 알아요?”
“말할 줄 모르고 들을 줄만 알아요. 어머니가 조선족이셨거든요. 대신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니라서 말은 거의 못해요. 아저씨가 중국어를 제법 잘하시니까 아저씨는 한국어로 얘기하고 전 중국어로 얘기하는 게 더 수월하게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야 그게 편하긴 하지.”
아무리 얀이 동시통역을 해준다고 해도 익숙하지도 않은 중국말을 억지로 하는 것보단 아무래도 익숙한 한국말을 하는 게 훨씬 좋았다.
“그럼 잘 부탁합니다.”
이자연은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수혁에게 인사를 했다. 표정과 행동만 봐서는 마치 사부를 대하는 제자의 모습과 비슷했다.
수혁도 그걸 느꼈지만, 일단은 모른 척했다.
여러 가지로 수혁도 이자연과 함께 하는 게 불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 많은 것들은 앞으로 생활하면서 맞춰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 * * *
이자연이란 혹이 생겼지만 대신 모자와 마스크라는 엉성한 변장이 아닌 빙백역용이라는 완벽한 변장을 얻은 수혁은 그녀와 함께 곧장 선양콜로니 쪽으로 이동했다.
신창 주자성은 선양콜로니의 지배자와 같은 존재였다. 이자연이 경고했듯이 그는 권왕 친지후나 빙백신검 이자연과 같이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이끌고 있는 선양백호(瀋陽白虎) 기사단은 중국 삼대기사단 중 하나로 손꼽히는 기사단이었다.
비록 최근 분위기는 삼대기사단 중 최고를 흑협으로 치고 그다음으로 선양백호와 오룡문(五龍門)을 쳐주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해도 선양백호의 힘은 중국을 넘어 세계 탑클래스 수준이었다.
수혁이 노리는 신창 주자성은 바로 그 선양백호의 리더였다. 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히어로급 나이트라고 소문났었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은 슈퍼히어로급 나이트가 되었다고 알려졌었다.
이자연은 솔직히 수혁의 실력이 진짜 엄청난 건 알겠지만 그래도 주자성과 비무를 하려는 건 여전히 무리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수혁에게 무리일 것 같단 얘긴 절대 하지 않았다.
수혁을 따라다니기로 한 이상, 그리고 그를 거의 스승처럼 모시기로 한 이상 절대 수혁의 말에 토를 달 생각이 없었다.
다만 혹시라도 수혁이 곤경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만약을 대비하며 탈출 경로 같은 걸 먼저 숙지해놓았다.
하지만 수혁은 그녀가 걱정하는 것처럼 막무가내로 무모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 역시 신창 주자성이 얼마나 대단한 세력의 리더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친시후나 이자연을 상대할 때처럼 아무생각 없이 달려들지 않았다. 솔직히 주자성은 수혁의 주목표도 아니었기 때문에 여기서 굳이 무리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수혁이 선택한 방식은…… 던전 난입이었다.
신창 주자성은 종종 감을 유지한다는 명목 아래 6등급 차원 던전에 혼자 들어가곤 했었다. 주자성 정도 되는 나이트에게 6등급 던전은 그리 어려운 곳이 아니었다. 사실 주자성의 이런 6등급 던전 솔로 클리어와 관련된 정보는 선양백호기사단에겐 특급 비밀이었다.
주자성 정도 되는 인물이 호위도 없이 혼자 던전에 들어가는 게 노출되면 굉장히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선양백호기사단은 주자성이 6등급 차원던전을 공략할 땐 온 신경을 집중해 던전의 위치를 숨겼다.
비밀이란 건 결국 아는 사람들이 적으면 적을수록 확실히 지켜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딱 두 사람만 주자성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솔직히 그들은 주자성에게 이젠 6등급 던전 솔로 클리어를 조금은 자제하는 게 어떻겠냐고 얘기했었지만 주자성은 여전히 자신의 실력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절대 6등급 던전 솔로 클리어를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럼 수혁은 도대체 어떻게 주자성의 이런 비밀을 알게 된 것일까? 그건 바로 주자성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선양백호기사단의 부단장 ‘왕정봉’ 덕분이었다.
주자성이 솔로 클리어할 6등급 차원문을 구하는 일을 도맡아 하는 이가 바로 왕정봉이었는데 문제는 그가 최근에 자신이 최근에 구한 6등급 차원문에 관한 정보 일부를 휴대전화에 남겨두었다는 점이었다.
솔직히 보안이 확실한 휴대전화이기도 했고 여러모로 차원문을 관리하려면 정보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었는데 이런 약간의 안일함이 수혁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정확하진 않은데 주자성이 던전에 들어간 지 대략 이틀이나 사흘 정도 된 것 같더라. 위치는 따로 전송을 해줬으니 가서 잘 찾아봐. 걔들이 사용하는 던전 은폐 장치가 굉장히 비싼 거라 찾기가 쉽진 않을 거야.]
“위치만 안다면 찾는 거야 별로 어렵지 않지. 어쨌든 고마워.”
[고마운 줄 알면 들어올 때 제대로 공물을 준비해 와. 이거 해킹한다고 무려 그동안 모아놨던 천공성의 에너지를 다 써버렸어. 앞으로 최소 3개월은 주요 기능 몇 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고.]
은서는 왕정봉의 휴대전화를 해킹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었다. 특히 왕정봉의 휴대전화는 최신 마도공학 보안 기술이 적용된 기기였기 때문에 더더욱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해킹에 성공했고 그 결과 수혁에게 주자성의 위치를 알려줄 수가 있었다.
“걱정하지 마. 돌아갈 때 두 손은 무조건 무거울 거야.”
[오케이, 그럼 조심하고 또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해.]
수혁은 은서와의 전화 통화를 끝낸 후 그녀가 알려준 위치로 곧장 이동했다.
이자연은 약속한 대로 수혁의 비무를 관전하진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빙백역용만 다시 한 번 손봐준 후 선양콜로니 근처에서 조용히 수혁을 기다렸다.
은서가 보내 준 위치로 이동한 수혁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차원문을 찾아냈다. 아무리 최신 기술로 만들어진 던전 은폐 장치가 있다고 해도 얀의 탐색 기능을 능가할 순 없었다.
참 편한 건 주자성 측이 비밀을 철저히 지킨다는 명목아래 던전을 지키는 병력도 배치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수혁은 아주 편안하게 차원문을 통과해 던전에 난입할 수가 있었다.
바깥세상과 철저히 차단된 던전은 정말 완벽한 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한 링에 오른 두 선수(?).
신창 주자성과 올마스터 강수혁.
물론 주자성은 아직 자신이 링에 올랐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지만 이제 곧 알게 될 예정이었다.
수혁은 괜히 주자성과 오래 엮여봤자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비무(?)를 끝낸 후 인도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 [81장] 북해빙검 이자연 (2)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