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id Breaker

< [Chapter 88] Soul Chain (1) >

@ 영혼 족쇄

다크는 자신이 원했던 타이밍에 그림자 감옥을 발동시키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림자 감옥에 크로우를 가두는 건 성공했다. 아무래도 크로우 역시 대소멸탄의 폭발 여파를 견디기 위해 죽은척하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빠르게 반응하게 힘들었다.

그림자 감옥은 다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 기술이었다. 물론 다크는 이걸 대부분 힘이 빠질 때로 빠진 상대에게 사용했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런 상대가 아닌 팔팔하게 날뛰고 있는 상대에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크는 설사 상대의 상태가 정상적이라고 해도 자신의 ‘그림자 감옥’이라면 충분히 상대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다크의 그림자 감옥은 총 세 가지 능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세 가지 중 공격과 방어에 해당하는 ‘그림자 낫’과 ‘그림자 방패’는 그림자 감옥을 발동시키지 않은 상태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대신 위력이 살짝 줄어들었다.

사실 그림자 낫과 그림자 방패가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세 번째 능력인 ‘그림자 안개’가 필요했다. 지금 크로우와 다크의 몸을 동시에 휘감아 세상을 완벽한 어둠으로 만든 힘…… 이게 바로 그림자 안개였다.

그림자 세상을 굳이 기술 종류로 구분하자면 다크 본인에겐 버프 기술이자 상대에겐 디버프 기술이었다.

다크는 적어도 그림자 감옥 안에선 그 누구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생채 정보에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로 기록되어 있는 ‘초월자’란 존재와도 한 번 붙어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

물론 초월자까지는 분명 다크의 ‘오만’이었지만 어쨌든 그 정도로 다크가 그림자 감옥에 대해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다크는 크로우가 그림자 감옥에 완벽하게 걸려든 순간 조금 전 당한 뜻밖의 일격을 충분히 되갚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드드드드드득.

그림자 감옥 안에선 ‘그림자 안개’가 요동치고 있었고 그 안개는 곧 크로우에게 달라붙어서 크로우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이건 마치 사방에서 끈적거리는 액체 쏟아져 몸 전체를 휘감은 느낌이었다.

당연히 움직임은 느려지고 동시에 외장갑 전체에서 천천히 부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장 외장갑이 녹아내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최소 30분만 이곳에 갇혀 있어도 외장갑이 전부 녹아서 사라질 것처럼 느껴졌다.

‘얀, 상황 보고 해줘.’

-둔화 효과는 30% 정도이고 부식성 물질 때문에 외부장갑이 정확히 28분 후에 완전히 소멸할 것 같습니다.

‘망할…….’

수혁은 자신이 단순히 폭발의 여파를 피하려고 너무 쉽게 죽은척하기를 사용했다는 걸 깨달았다.

다크의 그림자 감옥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능력이었고 그것에 완벽하게 걸려든 수혁은 당연히 인상이 절로 찡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츠츠츠츳!

그런데 더 최악인 건 크로우의 앞에 커다란 검은색 낫이 다시 나타났다는 점이었다. 검은색 낫은 이미 수혁이 경험해 본 공격이었다. 적어도 수혁의 경험에 의하면 지금 상태에서 검은색 낫을 피하거나 막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 같았다.

‘이대로는 당한다.’

다크의 그림자 감옥은 생각보다 훨씬 더 수혁에게 위협을 가했다. 그리고 위협은 곧 위험이 되었다.

스아아앗! 콰과과과과광!

그림자 낫이 한 번 휘둘러지자 크로우가 서 있던 공간 자체가 갈라졌다. 수혁은 재빨리 그림자 이동으로 갈라지는 공간에서 빠져나왔지만 아쉽게도 그림자 이동을 통해 그림자 감옥을 빠져나가진 못했다.

그림자 감옥은 단순히 공간 개념으로 걸리는 게 아니라 대상 개념으로 걸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공간을 이동해서 그림자 감옥을 빠져나갈 순 없었다.

‘젠장, 저번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잖아?’

수혁은 일곱 정의 데몰리션을 박살 낸 검은색 낫보다 지금의 검은색 낫이 더 강력하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 얘긴 다시 검은색 낫이 휘둘러지면 이번엔 정말 피하거나 막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모든 상황이 최악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수혁이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봉인을 푼다! 초월거신 아수라의 힘!!’

수혁은 최악의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후의 한 수를 꺼내들었다.

초월거신 아수라!

이것은 수혁이 꺼낼 수 있는 최강의 패이자, 최후의 패였다. 이것을 사용했다는 건 결국 1분 안에 모든 걸 마무리 짓겠다는 뜻이었다.

지든 이기든 승부는 무조건 1분 안에 날 수밖에 없었다.

고오오오오오.

미지의 공간에서 튀어나온 미증유(未曾有)의 거력(巨力)이 크로우의 몸을 휘감는 그 순간. 크로우에 탑승하고 있던 수혁의 뇌리에 한 줄기 음성이 들려왔다.

‘나의 힘을 원한다면…… 주겠다!’

콰드드득!

아수라의 힘이 크로우에 깃드는 순간 수혁은 너무나도 간단히 자신의 몸을 휘감고 있던 끈적끈적한 기운을 떨쳐버릴 수가 있었다.

쩌저저정! 콰과광!

그뿐 아니라 자신을 향해 휘둘러진 낫을 데몬 슬레이어를 휘둘러 가볍게 쳐냈다. 아수라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아수라의 힘이 있는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그림자 낫을 쳐낼 수가 있었다.

단 한 순간에 상황이 바뀌었다. 그림자 감옥에 수혁을 가두는 데 성공한 다크는 이제는 차분히 상대를 제압해서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림자 감옥에 가득 차 있던 ‘그림자 안개’에 완벽하게 휘감겼던 상대가…… 몸을 휘감은 그림자 안개를 힘으로 찢고 나왔을 뿐만 아니라 그림자 낫을 정면으로 막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하는 것도 벅차 보였던 상대였는데 한순간에 모든 게 뒤바뀌어 버렸다.

크로우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세는 다크에게 전해졌고 다크는 그 기세를 통해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의 어둠을 느꼈다.

‘위, 위험하다.’

크로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어둠의 기운은 다크가 지닌 어둠의 기운보다 더 크고 강대했다. 어둠의 기운은 특성상 강한 놈이 약한 놈을 너무나 쉽게 잡아먹었다.

그렇기에 다크는 이대로는 자신이 오히려 상대에게 잡아먹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이익!’

당연히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 없었던 다크는 한껏 자신의 기세를 부풀리며 그림자 낫과 그림자 방패를 동시에 꺼내 들었다.

지금 상황에선 먹히지 않으려면 반대로 먹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다크는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올린 후 자신을 향해 달려든 크로우를 향해 똑같이 달려들었다.

꽈과광! 쩌저저저정!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정!

아수라의 힘이 깃든 크로우와 모든 그림자의 힘을 끌어올린 다크가 허공에서 충돌하며 굉음을 내뿜었다.

절망의 어둠을 품은 아수라가 강할 것인지 아니면 어둠보다 더 진한 그림자를 한껏 긁어모은 다크가 더 강할 것인지…… 정확한 결과는 붙어봐야 알 것 같았다.

그림자 낫이나 방패가 데몬 슬레이어가 충돌할 때마다 그림자 감옥이 무너질 것처럼 마구 요동쳤다. 아니, 실제로 그림자 감옥에 균열이 생겨났다.

그만큼 충돌 한 번 한 번이 엄청난 파괴에너지를 내뿜고 있다는 뜻이었다.

둘 다 똑같은 어둠의 힘이었기 때문에 힘의 공명은 더욱 강렬하게 일어났고 그 결과 한쪽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릴 수밖에 상황에서 승기를 잡은 쪽은…….

세상의 모든 어둠을 끌어당기는 절망의 어둠을 지닌 아수라였다. 정확히는 아수라의 힘을 강림시킨 수혁이었지만 어쨌든 승기를 잡은 수혁은 자신의 모든 힘을 데몬 슬레이어에 쏟아 부으며 사정없이 다크를 밀어붙였다.

이제 남은 시간은 겨우 20초 정도…….

20초 안에 이 승기를 승리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무조건 20초 후엔 수혁이 잡아먹힐 수밖에 없었다.

콰과과과과과! 콰지지직!

수혁은 있는 힘껏 데몬 슬레이어를 휘두르며 그림자 낫과 방패를 깨부쉈다. 그리곤 망설이지 않고 다크의 몸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촤아악! 드드드드득!

불과 5분 정도 전에 대소멸탄의 폭발에 휘말려 20%에 정도나 소멸하였던 다크의 몸이 이번엔 아수라의 힘에 휘말려 사정없이 마구 소멸하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데몬 슬레이어가 몸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다크가 오랜 세월 동안 악착같이 모았던 그림자들이 최소 5%씩 날아갔다.7%, 6%, 9%, 5%…….

계속 소멸하는 다크의 몸.

다크는 이 공격을 어떻게든 막거나 피하고 싶었지만 이미 절망의 어둠에 완벽하게 사로잡혀 도망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 안 돼!!!’

다크는 있는 힘껏 발버둥치며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다. 하지만 다크가 발버둥치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크로우가 휘두르는 데몬 슬레이어는 빠르게 다크의 몸을 난도질하며 다크를 절망 속으로 끌어당겼다.

그런데…… 분위기 좋은 수혁에게도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불과 7초 후에 아수라의 강림이 끝난다는 점이었다.

아수라의 힘이 사라지면 그 즉시 크로우는 거의 사용 불가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아무리 수혁이 지금 신을 냈다고 해도 단번에 다시 상황이 뒤집어질 수도 있었다.

물론 7초 안에 완벽하게 마무리를 할 수 있다면 문제가 될 게 없었다. 하지만 7초 안에 마무리할 수 없어 보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다크가 절박함을 느낀 것처럼 수혁 역시 똑같이 절박함을 느꼈다. 서로 정반대되는 상황에 부닥쳐 있었는데 똑같이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아이러니했지만 어쨌든 둘 다 당장 이 절박함을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다크의 선택은 도주였다.

놈은 자신의 모든 걸 벗어놓고 가장 중요한 그림자 핵만 가지고 탈출을 할 생각이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쌓아올렸던 공든 탑이 모두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정확한 예측은 힘들지만 다크는 대략 4등급 괴수 수준까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초월의 경지에 근접한 9등급 괴수에서 흔하디흔한 4등급 괴수까지 격이 떨어져 버리는 건 진짜 죽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었지만 확실한 건 이대로 소멸되어 사라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점이었다.

결정적으로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성장한 경험이 있던 다크는 다시 탑을 쌓아올려 지금의 경지로 돌아올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과감히 도주를 결정했다.

파아아앗!

자신의 몸을 버리고 재빨리 그림자 감옥을 빠져나가려는 다크. 하지만 다크의 이런 선택은 오히려 수혁에게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다크만큼이나 커다란 절박함을 느끼고 있던 수혁은 온 정신을 집중해 다크를 쓰러트릴 방법을 찾고 있었다. 아수라까지 강림한 상태였기 때문에 수혁의 집중력은 과거 진 크로노스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래서일까?

수혁은 다크의 탈출 시도를 아주 정확하게 포착해냈다.

남은 시간은 이제 불과 3초뿐.

수혁은 찰나의 순간 다크를 마무리는 짓지 못해도 거의 준 마무리 수준으로 끝장낼 방법을 떠올렸다.

‘잡는다!’

파파팟!

수혁은 탈출하는 다크를 향해 그림자 이동을 연속해서 사용하며 달려들었고 동시에 앞쪽에 커다란 문짝 하나를 소환했다.

순간 자신의 거의 모든 걸 버리고 그림자소 스며들려고 했던 다크는 크로우에게 뒷덜미를 잡혔다. 그리곤…… 크로우에게 끌려서 앞쪽에 생긴 커다란 문 안쪽으로 끌려들어 갔다.

콰직! 콰과과광!

크로우가 문을 박살 내며 문 안쪽으로 파고드는 그 순간 아수라의 힘도 사라졌다. 정말 간발의 차이였다. 대략 0.01초만 늦었어도 다크를 끌고 들어오는 데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다크 입장에선 억울했겠지만 어쨌든 마지막까지 웃을 수 있었던 건 수혁이었다.

다크와 수혁 둘 다 똑같이 절박했는데 결국 먼저 움직인 다크가 나중에 움직인 수혁에게 카운터를 얻어맞은 꼴이 되었다.

“크아아아아!”

크게 울부짖으며 문 바깥쪽을 향해 팔을 뻗는 다크.

하지만 이미 그의 몸은 문을 통과해 수혁만의 공간인 ‘도어 앤 룸’의 4차원 공간에 내동댕이쳐졌다.

< [88장] 영혼 족쇄 (1)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