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킬 다 눌러서라도 지금 끝내야겠죠?”

“네. 길게 끌어봤자… 갑자기 렉 풀리지 않는 이상 가망 없어요.”

(햄스텨: 저희는 모할까요ㅠㅠ???ㅠㅠㅠ???)

오들오들 떨던 햄스텨가 말했다. 성차현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최대한 본좌 쪽으로 스킬 난사하세요.”

(허리디스코: 본좌가 어딨는줄알고요??????)

“하나 하면 갈게요. 셋, 둘, 하나.”

(허리디스코: 저기여??????)

성차현의 오더와 함께 파티 내 유일한 탱커인 직살이 덤벼들었고,

(직살: ♡♡)

그들은 아스타 연대기 인생 처음으로 직살의 욕을 보았다.

물론 성차현 역시 이미지 관리를 때려치고 쌍욕을 뱉었다.

“아니 씨발, 드래곤 대가리 좀 돌려봐! 화면 다 가리잖아!”

(직살: 드래곤 불꽃 때문에 화면 안 보임;)

(Hx: 햄님 화살 반대로 쏘세요!)

(머상추협회장: 디스코 지금 본좌쪽으로 다이브치는데)

(머상추협회장: 저거 살려 말아?)

[CH.1] 불가리용꽃슛: 용가리 트롤 지리쥬?

[CH.3] 내가사랑한: 아 세명 첩자아님?ㅋㅋㅋㅋㅋㅋㅋ

[CH.2] 용곰용: 지적 야마돌았고ㅋㅋㅋㅋㅋㅋㅋ

[CH.7] 말이야조랑말이야: 저♡♡들 내일 헤이스트 짤릴 각ㅋㅋㅋㅋㅋㅋ

[CH.2] 옥만: 아니 갑자기 왜 던짐?;;;;;;

[CH.2] 백만골만줍쇼: ???: 용가리불꽃슛 햄스텨 허리디스코 제명합니다

[CH.8] 불가리용꽃슛: 용가리피셜 그래픽과부화 걸렸답니다ㅋㅋㅋㅋㅋㅋ

[CH.7] 깡통로봇: 용가리불꽃슛 햄스텨 허리디스코 제명합니다

[CH.1] 김치의찰진맛: 미1친놈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H.4] 프리허니: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찐 등판했고

눈을 감고 PvP 맵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머상추협회장이 그저 광인이었던 거다. 평범한 범인인데 말만 잘 듣는 삼인방은 일단 스킬을 난사했고, 그 결과 각종 스킬 이펙트가 헤이스트 길드원들의 모니터를 뒤덮었다. 설상가상으로 허리디스코는 본좌 쪽을 향해 캐릭터를 들이박았다. 이건 뭐 거의 ‘나 죽여 주쇼.’ 하는 꼴이었다.

물론 스킬들이 헤이스트 쪽을 향한다고 해서 체력이 깎이는 건 아니다. 아군의 스킬이니까. 하지만 안 그래도 본좌가 깔아놓은 블리자드 때문에 움직이기도 힘든데, 스킬 효과 때문에 화면까지 가려진다면? 하드 모드도 이런 하드 모드가 없다. 진작 스킬 이펙트를 꺼놓은 성차현만 멀쩡했다.

《룰 브레이커!》

《크리티컬 샷!》

《소드 댄싱!》

본좌 길드원들의 공격이 쉴새 없이 날아왔다. 성차현은 다급하게 데미지 감소 물약을 만들어 던졌다. 최수빈 또한 바쁘게 힐 스킬을 돌렸다.

《약화 물약Ⅴ!》

《천사의 손길!》

전략도 수 싸움도 없는, 속된 말로 개판이었다.

《블러드 혼!》

《불의 가호!》

《압도 님이 허리디스코 님을 KILL!》

그래도 짬이 있고 실력이 있어서인지 일방적으로 말리진 않았지만, 진작 전멸하지 않은 게 기적일 정도로 본좌가 우세했다. 적진 한복판으로 용감하게 뛰어 들어간 허리디스코가 가장 먼저 죽었고,

《데가즈망!》

《배척 님이 햄스텨 님을 KILL!》

아무 데나 화살을 뿌리던 햄스텨가 두 번째로 죽었다.

(힐줄랑말랑: 아)

(힐줄랑말랑: 이건 안될거같은데요)

“어떡하죠, 직살 님도 이제 못 버틸 것 같은데.”

Hx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 직살의 HP는 이미 50% 밑이었다. 열심히 빨던 포션도 슬슬 바닥나는 중이었다.

“하…….”

성차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으며, 패배가 확실해 보였다. 이대로 그냥 죽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성큼 다가온 패배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진마광 님이 용가리불꽃슛 님을 KILL!》

《쌔신을신고 님이 머상추협회장 님을 KILL!》

《머상추협회장 님이 쌔신을신고 님을 KILL!》

《배척 님이 Hx 님을 KILL!》

《지적 님이 배척 님을 KILL!》

이후로도 킬을 알리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본좌 길드원이 헤이스트 길드원을 죽였다는 메시지가 올라오더니, 마지막까지 버티던 탱커 직살이 눈밭 위로 고꾸라짐과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길드가 길드전에서 승리하였습니다!》

헤이스트 길드 채팅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아무도 이런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의 일이라며 지켜보는 관중들이나 ‘꿀잼’을 외치며 웃었다.

한참의 침묵 후,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성차현이었다.

[지적: 용가리랑 햄님은 재부팅 하시고]

[햄스텨: 넵ㅠ]

[지적: 디스코는 재부팅 해도 안되겠지?]

[허리디스코: 네…♡♡ ㅠㅠㅠㅠㅠ]

[허리디스코: 똥컴때문에 아스타 접고싶음 ㅠㅠㅠㅠㅠ]

[격신: 조립컴 싸게 견적 내줄게 ㅁ;;]

[허리디스코: 아재ㅠㅠㅠㅠㅠㅠㅠㅠ]

사실 허리디스코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랭킹으로 따지면 절대 참여하지 못할 랭킹이니, 허리디스코를 빼고 다른 길드원을 넣으면 된다. 허리디스코보다 랭킹이 높은 레타와 깡통로봇이 있으니까.

그보단 분위기 문제가 심각했다. 이길 것 같은 팀이 한 번 진 후, 그 흐름이 그대로 다음 판까지 이어져 연패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이다.

쉬는 시간이 반쯤 지나고, 성차현은 레타와 깡통로봇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힐줄랑말랑이 슬그머니 지적의 옆에 섰다. 지적은 습관적으로 힐줄랑말랑의 머리를 쓰다듬다 멈칫했다. 그때였다. 어느새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렸다.

“음, 형.”

[머상추협회장: ? 누구?]

[Hx: 어… 말랑님인 것 같은데요?]

[머상추협회장: 형이라고 불러?]

[Hx: 그런가봐요 ㅎㅎ]

성차현이야 자주 들어 익숙하지만, 길드원들과 단체로 음성 채팅을 할 때는 거의 말을 하지 않던 최수빈이다. 성차현은 저도 모르게 뒷목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응? 왜.”

“꼭 이겨야 하죠?”

“응.”

“다 드셨어요?”

“…….”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말이지만, 성차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덮어둘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최수빈의 얼굴을 보고 싶기도 했다. 성차현은 모니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응.”

“좋아요, 형. 잠깐만요.”

최수빈이 낮게 웃더니, 들으라는 듯 한 마디 덧붙였다.

“이번에도 화 안 내셨으면 좋겠는데….”

《힐줄랑말랑 님이 접속을 종료하셨습니다.》

[용가리불꽃슛: 오잉???]

[북한산치즈버거: 뭔데뭔데 몬일몬일]

[머상추협회장: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짐?]

[직살: 말랑님이 엄청 맘에 들었나봄]

[레타: ㄷㄷ]

[북한산치즈버거: 띠용~~~~~]

성차현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길드전 재개까지 2분 정도 남은 상황에서, 갑자기 접속을 종료한 최수빈은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길드원들도 여전히 의문을 숨기지 못한 채 물음표만 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길드 가입 신청이 1건 존재합니다.》

화면에 길드 알림창 하나가 떠올랐다.

이 상황에? 헤이스트 길드는 길드 가입을 따로 받지 않았다. 깡통로봇이 데려온 뉴비나, 기존 길드원들의 추천으로만 새 길드원을 받았다. 이상한 어그로가 꼬이거나, 유명인사와 친해지고 싶은 관심 종자들이 계속 가입 신청을 넣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스타 연대기는 비공개 길드 기능도 없어서 하나하나 거절해야 했다. 최근엔 [길드 가입 신청 넣으면 PK] 라는 문구를 넣어 그나마 덜했지만…….

헤이스트가 진 것을 기뻐하는 어그로가 가입 신청을 한 건가? 만약 어그로라면 본좌와 한데 묶어서 바다에 던져버릴 것이다. 죽도록 후회하게 될걸. 성차현은 이를 악물고 알림창을 눌렀다.

하지만 그런 분노도 잠시, 알림 메시지를 세 번 읽은 성차현은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 진짜…….”

《zl존쌔신k 님께서 길드 가입을 요청하였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