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Double Track Recovery Log

Episode 79. Dragon Sword (3)

6.

용마교주 하겔 빈테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성공적으로 호적을 옮긴 이 녀석은, 놀랍게도 대륙 전면에서 활동해도 ‘천벌’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역은 성립한다.

본가인 슈니펠트 가문이 삽질하면 하겔도 페널티를 받는다는 소리다.

이전에도 설명했지만, ‘천벌’에서 비롯되는 페널티는 인식 기반이 9할, 실재 기반이 1할이다. 따라서 ‘빈테르’라는 성으로 ‘슈니펠트’의 성이라는 ‘인식’을 덮은 하겔에게는 혈족들이 받는 페널티의 10%만이 주어진다.

태양 성당 파괴 사건을 생각해 보자.

원작에서 그 목격자는 전원 죽었다.

따라서 태양 성당 파괴 건으로 인한 ‘인식’ 페널티는 0이 되고, ‘실재’에 기반을 둔 1할만 남게 된다.

빈테르 가문 소속인 하겔이 받는 페널티는 1할의 1할, 결과적으로 1%가 된다. 어지간하면 그냥 무시해도 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가주인 이리스가 직접 나섰는데도 목격자를 둘 남겼다.

거기에다 내가 양념을 치면 페널티의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아무리 천벌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해도, 그 정도면 하겔조차 일시적으로 행동 불능에 빠질 거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 이득을 볼 생각이다.

“홀로그램에 표시된 노란 점은··· 여전히 일정한 속도로 지도 위를 가로지르고 있군.”

“저번 눈꽃의 늪 사건에서 부교주 루시안을 잃은 후, 하겔은 쭉 ‘멜키나’ 안에 틀어박혀 있어.”

이동 요새 멜키나는 용마교단의 본거지.

교주인 놈은 철저히 호위 되고 있을 거다.

아무리 천벌로 인한 페널티가 있다 한들, 우리 측 전력으로 녀석의 목숨을 노리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노리는 건 하겔의 신변 따위가 아니었다.

“···조만간 놈들 밑천을 아예 탈탈 털어버릴 수 있겠군.”

나는 낮게 웃었다.

7.

‘레대연’의 파워 인플레는 2부 극 후반부터 급격하게 진행된다.

주인공 일행이 용마교단을 대충 무찌른 뒤, 마침내 전면에 나선 슈니펠트 가문.

2부 최종 보스인 이리스는 그 시기를 전후로 뜬금없이 등장했다.

그녀는 당시 최상위권으로 취급받던 준십이걸급 여럿과 50레벨대 강자 세 명을 한꺼번에 갈아버리며 화려한 데뷔를 했다.

80레벨이 넘는─ 흔히 애독자들 사이에서 ‘초월자’ 티어라고 일컬어지는 무지막지한 강자의 편린을 보여준 기념비적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은 말 그대로 벙쪄버렸다.

플루드 : ??? 머임? 대체 머임?

물리마법사 : 드X곤볼인가?

킵크로 : 슈니펠트 토벌대 핵심 전력 세 명이 난데없이 한 명한테 갈렸네. 쟤 레겐샤우어 아내 맞죠? 진짜 뜬금 없네ㅋㅋ

흑염(黑炎) : 하겔이 쓴 게 퍼스트보이드였는데, 저 서드보이드라는 주문은 바이스 볼프처럼 병기에다 기 한가득 모아서 쏘는 기술일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전개를 지켜보죠.

그리고 이리스의 시트가 공개되었을 때.

댓글란은 불에다 기름을 부은 듯 타올랐다.

【BEST 댓글】 분노조절X : 미쳤냐고작가새기개패버린다무슨얼굴도안비치던방구석유부녀가대륙최강검사보다훨신강하냐고진자뒤지고싶냐게속뇌절치면느그집찾아가서죽방어깨빵헤딩다갈군다

하트리 : 이봐요 노네임씨

└ 트루블루 : 이봐요 언더더씨

니쿠 : 야 이제 대륙십이걸이 전투력 측정기냐? 말세다 말세야 좀 있음 99레벨짜리도 나오겠다ㅋㅋ

‘레대연’을 수도 없이 재독한 나로서 돌이켜 보면, 사실 이리스의 강함을 암시하는 복선은 꽤 치밀하게 뿌려져 있었다.

하지만 작가 NonameC는 작중에서 일부러 레겐샤우어와 에드발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해, 그런 복선에서 관심이 멀어지도록 유도했다.

일종의 서술 트릭이라고 해야 할까?

본편 2부 시점의 이리스는 81레벨이었는데, 등장 시기를 고려해 보면 그녀는 정말 여러 가지로 규격 외인 캐릭터였다.

당장 3부의 주적인 5영웅들만 해도 평균 레벨은 70대 중후반 정도다. 영웅들의 리더인 벨리포트 역시 이리스보다 반 수 아래이며, 따라서 4부 이전까지 단일 개체로서는 그녀보다 강한 인물이 없다.

이런 밑바탕에도 불구하고 종장인 4부에서 엄청난 파워 인플레가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랜 시간 대륙 간 교류를 가로막고 있던 바다의 ‘대장벽’이 가라앉았고, 이로 인해 3대륙 중 가장 거대한 시엔시아와도 접점이 생겼다.

기심법과 경의 발원지인 그곳은 프리마보다 인구가 많았으며, 수백 년을 살아갈 수 있는 환상종들로 가득한 마경이었다.

세계관 최강자 라인에 나란히 서 있는 ‘쌍괴(雙魁)’를 예외로 두더라도, 그쪽 대륙의 십이걸 같은 존재로 ‘십추(十樞)’가 있다. 십추에 속한 열 명은 전원 60레벨 이상, 즉 기본적으로 트리플 스타급이다.

십추에는 인간이 아닌 환상종들도 몇몇 섞여 있었으며, 빠릿빠릿하게 세대교체가 되는 대륙십이걸과 달리 이들 중 몇몇은 몇백 년을 상위권에 눌러앉아 있는 상태였다. 파워 인플레의 심각함과는 별개로, 십추의 강함에는 충분한 개연성이 갖춰진 셈이다.

사실 이 세계관에서 순수 인간이 타고날 수 있는 정상적인 잠재 레벨은 70레벨 이하이며, 그 이상이면 대부분 후천적으로 잠재 레벨이 올라간 사례다.

71레벨 레겐샤우어 역시 블리스피엘 소속이었던 당시에는 잠재 레벨이 60대 중후반부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정신] 수치가 상승한 거다.

한마디로 천인살은 정상적으로 도달 가능한 경지에서는 인류 최고봉에 올랐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대를 막론하고 60레벨대 중후반 정도면 프리마 대륙의 일절을 다툴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드물게나마 70이 넘는 레벨을 타고나는 예도 있으나, 전자 이상으로 드문 사례다. 이는 신의 축복을 받았거나 태생 자체에 비범함이 있는 경우니까.

이리스에게 붙은, 슈니펠트 가문의 1,000년 역작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본편에 직접 등장한 인물 중 이리스 이상의 잠재 레벨을 가진 자도 극소수 있으나, 선천적으로 그녀보다 높은 잠재력을 타고난 건··· 직접 등장한 인물 중에는 단 둘뿐이다.

그리고 양쪽 다 대장벽 너머에 있다.

심지어 한쪽은 아직 깨어나지도 않았다.

용신 성당의 무녀로서 축복을 받고 태어난 클라라는 둘째 쳐도, 쌩으로 80에 달하는 잠재 레벨을 타고난 에피오의 정체가 여러모로 수수께끼인 이유다.

이리스의 무시무시한 마력.

그것을 떠올린 체샤가 몸을 떨었다.

“내 식견이 그리 깊지는 않지만, 프리마 대륙을 전부 돌아다녀 봤자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아니. 꼭 그렇게 단정 짓긴 힘들어.”

“···정말?”

개인적으로 프리마 대륙에도 이리스를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후보가 둘··· 어쩌면 셋 있다.

다만 마지막 후보는 설정상으로만 그 대단함이 언급되었으며, 설정집에 캐릭터 시트도 기재되지 않았으니 일단 후보에서 제외한다.

“첫번째 후보는 ‘구도교회’의 큰 어른 중 하나이신 ‘티시에 베르다드’ 님이야.”

“·········.”

“···왜 그렇게 쳐다봐?”

“아이덴이 삼자를 언급할 때 ‘님’ 같은 존칭을 붙이는 건 처음 봤거든.”

“아.”

생각해 보니 나 그런 건방진 캐릭터였나?

하지만 티시에의 인생에는 개인적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은 게 사실이다. ‘레대연’ 3부의 조력자인 그는 독자들 사이에서도 최고를 다투는 수준의 인기를 자랑했다.

“그것보다 구도교회라면 험준한 산속에 터를 잡았다는 그곳 맞지? 전대 트리플 스타, ‘브루노 가이거’가 소속되어 있는.”

“맞아. 티시에 님은 그 브루노 가이거의 교회 입단 동기야. 비록 세간에서는 별로 안 유명하지만, 이리스를 상대로도 승리를 거둘 가능성이 있는 강자야.”

“···내가 알기로 브루노 가이거는 이미 100세도 넘었어. 그런 사람의 입단 동기라면 이미 거동도 불편할 나이 아니야?”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구도신이 내려주는 축복 중 영구히 젊음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 있다. 에스트리엘이 받은 순환신의 축복과 더불어, 신체 연령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유이한 축복이다.

체샤가 내게 물었다.

“나머지 하나는 어떤 사람이야? 유명해?”

“음··· 특정 지역에서는 유명한 주정뱅이야.”

“···주정뱅이?”

무려 ‘EX’급 특성이 있는 그 녀석은 통제 불가능한 폭탄 같은 존재다. 지금 우리 수준으로 섣불리 접근했다간 전멸할 가능성도 있으니, 우선순위는 티시에의 한참 뒤로 미뤄두는 게 좋다.

사실 내가 내세운 후보 둘 다 레벨로는 이리스에게 한참 못 미친다.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언더독 포지션이라 그 가능성이 1할을 넘을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수 앞에서는 장사 없다.

때가 되면 나는 티시에를 위시한 강자들을 전원 포섭해서 슈니펠트 가문이 있는 겨울이슬 섬에다 선공을 가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그랜드 밸리로 출발하는 날이 되었다.

[영경보(B)/암지행(B)/수면공(B)이 모두 ‘통달’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세 기술이 하나로 합산됩니다.]

[무음경(A)를 습득했습니다!]

[‘입문’ 단계입니다. 효과가 미미합니다.]

태양 성당에서 목숨의 위기를 겪으며 내 기량은 크게 진일보했다. 3대 보법에서도 나름대로 큰 성취를 보았고, 자연스럽게 상위호환 기술인 무음경을 습득했다.

“아이덴 님! 저도 같이 갈래요!”

타냐의 죽음을 전해 듣고 한동안 방 안에 틀어박힌 채 두문불출하던 클라라였다. 그러나 며칠 지나고 나니 그녀는 평소와 같은 활기를 되찾았다.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심경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슈니펠트와 용마교단 측에 적의를 품게 된 건 확실하다.

분위기를 환기할 겸 픽 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개인 교습 받고 있는 리니아나 데리러 가자고.”

8.

그랜드 밸리.

이곳에 모여 사는 솜씨 좋은 장인들의 존재가 바로 알파니움 도서관의 압도적인 부를 구성하는 주요 밑천이다.

예로부터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천연 재료들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이 금싸라기 땅에는 자연히 각지의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역사적으로 그들을 포섭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는데, 그 싸움의 최종 승자는 알파니움 도서관이었다.

다른 권력자들과 달리 연금술사들은 병기의 양산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장인들의 니즈를 파악,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을 택했다.

알파니움 도서관 측은 풍부한 자금력과 무수한 연줄을 바탕으로 골짜기에서 구하기 힘든 희귀 재료들을 쓸어 모아 지원했으며, 장인들에게 자율성을 주었다. 이는 고스란히 생산성의 증대로 이어졌고, 지금에 와서는 일개 무가의 가보로 삼아도 손색없는 최고급 장비들이 매일매일 쏟아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프리마 대륙 전역을 돌아다니는 정밀 이동요새, 탈로스 역시 300년 전 그랜드 밸리의 토인족 공방에서 제작된 것이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실적을 자랑하니, 외부 장인들 사이에서는 ‘그랜드 밸리에다 충분한 재료를 공급하면 신조차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격언이 떠돌 정도였다.

커다란 이권이 얽혀있는 탓에 그랜드 밸리의 경비는 살벌할 정도로 철저했다.

골짜기 주변에는 〈앱솔루트 돔이라는 대규모 결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는 수백 명에 달하는 정예 마법사의 힘으로 유지 및 보수되고 있다. 주문 자체의 위력은 4대 성당을 지키고 있는 결계 이하이나, 도서관이 워낙 많은 돈을 유지보수에 때려 박고 있다 보니 〈세이크리드 크레이들을 훌쩍 뛰어넘는 내구도를 지니게 되었다.

새로 얻은 『마력안(B)』으로 대충 살펴본 결과, 이 마력 돔을 부수려면 500만 나노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레벨 30을 넘는 기사 단장급 용병(그랜드 밸리 산 장비로 무장)들이 수도 없이 주둔하고 있으니 잠입 따위는 꿈에도 생각 못 하리라.

“블리스피엘 클랜에서 왔다.”

“환영합니다.”

나는 투쟁인장을 내밀어 무사히 그랜드 밸리의 입구를 통과했다. 일행인 네 사람 역시 그 뒤를 따른다.

빠르게 마을 한구석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후 도착한 장소는 어느 오두막이었다.

“계십니까?”

“누구시오?”

“여쭙고 싶은 게 있어 외부에서 찾아왔습니다, 베른하트 슐레겔 씨.”

“나를 찾는 손님은 오랜만이군.”

쉰 목소리와 함께 우리를 맞이한 것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지만 탄탄한 근육이 있는 탓에 대단히 정정한 인상이다.

“솜씨 좋은 토인족들이 수없이 많은 그랜드 밸리까지 와서 굳이 나 같은 인간 장인을 찾는 사람은 별로 없지. 무슨 용건이오?”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그냥 이 검을 봐주시죠.”

그리 말하고 살짝 손짓하자, 뒤에서 에피오가 나섰다. 녀석이 플레벨지암을 뽑아 탁자 위에 내려 놓는다.

“화기가 감도는 불그스름한 칼날에 드래곤을 형상화한 손잡이··· 설마, 이건···!”

무표정하던 베른하트가 별안간 눈을 크게 치떴다. 분명 그의 가문에 구전되는 플레벨지암의 특징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