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번대 맥거핀?

숫자를 보면 『No.101 / 마검과 태양의 무녀』는 물론 디어사이드 유파의 정기가 담긴 『No.94 / 무신살』보다도 중요하게 취급된다는 뜻이다.

유성금은 ‘레대연’ 최고의 떡밥 덩어리인 용살검 플레벨지암을 구성한 재료, 확실히 서두부터 심상치 않은 이야기다.

나는 재촉하듯 황제를 바라보았다.

“유성에서 태어난 정신체들. 본래 대정령과 같았던 그들은 악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지금과 같이 타락하고 말았지. 지하에 있는 정화결계는 그들이 후천적으로 지니게 된 악한 기운을 없애, 본래 형태로 되돌린다는 의도로 설계된 것이다.”

“···과연. 혹시 유성의 악마들이 타락한 이유에 관해서도 알고 계십니까?”

“안타깝지만 연구의 명맥은 이미 300년 전에 끊겼다. 당시의 황제는 연구에 돈을 쏟는 대신 그저 뛰어난 정령사를 육성하는 현 상황에 만족했고, 정화결계는 발전을 멈추었지.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연구원들은 전원 처형당했고, 시간이 지나며 자연히 연구 기록에는 해석 불가한 구간이 생겼다. 따라서 짐 역시 이 이상으로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한다.”

“음···.”

상념에 잠긴 나를 보며 그가 덧붙인다.

“···그대가 궁금해하는 것과 관계가 있는지는 불명이나,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마스터 스트로크, 그대는 우리 황가에 슈니펠트 가문의 가주가 움직였다는 정보를 담은 편지를 보낸 바 있지. 그렇다는 건 1,000년 전 용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자들에 관해서도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슈니펠트 가문을 필두로 한 세력, ‘반역자들’을 이르는 것입니까?”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짐이 시조의 연구서와 각종 문헌을 대조해 보고 유추한 것에 불과하나··· 문서 중간중간에는 유성의 악마들이 반역자들 가운데 하나였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보였다. 어떤 형태로든 엮여 있을 거로 생각하는 편이 합당하겠지.”

“문서와 대조해본 문헌이란, 혹시 ‘용신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맥거핀 No. 280 / 『용신서의 비밀』을 회수했습니다.]

[업적 포인트 + 2,000]

실제로 나는 용신 성당이 어떤 형태로든 악마와 엮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겼다. 다름 아니라 그들의 성서중 하나인 ‘용신서’에 66체의 악마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있었으니까.

“짐이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다.”

황제, 엘리오도로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전부 얻은 것 같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저택을 나섰다.

8.

새로 알게 된 정보가 많다.

하지만 파생된 의문점은 더 많았다.

···정리해 볼까.

황제의 말에 따르자면, 반역자들에게 가담했던 유성의 악마들은 어떠한 이유로 타락했다.

그리고 고대사에 해박한 이르모크위는, 얼마 전 플레벨지암을 보고 ‘숙주’니 ‘타락’이니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프라즈케악 길드와의 결전 당시 벌어진 일이다. 플레벨지암과 악마 사이에 뭔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개조된 마법의 램프(S)』를 품속에서 꺼내 슬쩍 말을 걸어 보았다.

“이봐, 이르모크위.”

무슨 일이야.

“저번 싸움에서 에피오와 플레벨지암을 보고 말한 거. 타락인지 하는 이야기 말이다.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었지?”

아앙, 그런 게 궁금했어? 날 죽이면 본체로 직접 와서 말씀해 드릴게.

“·········.”

말없이 램프에다 마법천을 감았다.

문제의 발언을 한 이르모크위의 분신이 수중에 있긴 하지만, 분신은 어디까지나 분신. 안타깝지만 시니샤의 『리다이얼(U)』을 이용해도 본체에서 분리되기 이전의 기억은 읽어 들일 수 없었다.

따라서 나는 지금 가진 정보들로 추측에 추측을 거듭할 수밖에는 없었다.

1. 플레벨지암은 용살검이다.

2. 그리고 원래는 (아마도) 마룡이었다.

3. 태양의 무녀와도 묘한 인연이 있었다.

4. 그러면서 악마와도 관계가 있다.

5. 검이 된 후엔 많은 ‘숙주’를 ‘타락’ 시켰다.

·········.

“···아니, 이놈은 도대체 정체가 뭐야?”

마검 플레벨지암.

별다른 상세가 밝혀지지 않았던 원작에서도 정체불명인 녀석이었다. 그런데 직접 소설 속으로 들어와 보니 까도 까도 뭐가 나오는 양파 같은 존재였다. 이 정도면 최중요 복선인 『맥거핀 No.001』과도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을 게 분명하다.

뭐가 어찌 됐든 간에, 앞으로는 플레벨지암에 관한 정보 수집을 최우선으로 해야겠다.

1.

출가 이후 처음으로 마음 놓고 즐긴 휴가가 끝났다.

이후 클랜 하우스로 복귀한 나는 카밀로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까지 향했다.

“마스터의 결재가 필요한 서류들입니다.”

“···진짜 산더미처럼 쌓였군.”

대부분의 일은 재무 담당인 카밀로나 서브 마스터 레이의 재량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마스터를 상징하는 공리인장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다. 보통 그런 안건은 극히 적으나, 블리스피엘 클랜은 근래 들어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기에 내가 할 일도 많았다.

“그나마 위안인 건, 도장만 찍고 넘기면 된다는 건가···.”

기계적으로 손만 움직이면 되는 단순 노동이다. 『비익조(S)』를 통해 내 마력 파장을 모방할 수 있는 체샤의 도움을 받으며 며칠 밤을 새운 결과, 무사히 모든 서류를 처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업무를 끝내고 둘이서 휴식을 즐기고 있는 참에 리니아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주인님. 곧 손님분들께서 도착할 것 같습니다.”

“손님? 누군데?”

“수인족 사절단분들이십니다. 사파리아에서 이곳까지 몸소 오셨다고 합니다.”

“아··· 미리 연락도 받았었는데, 참.”

그 보고를 받은 지 며칠 후, 나는 클랜원들을 이끌고 자유중립도시의 입구로 나갔다. 그곳에서 수인 왕국 사파리아 측에서 보낸 사절단을 맞이한다.

대표로 우리 앞에 나온 건 머리에 고양이 귀를 단 중년 남성이었다.

“반갑습니다, 블리스피엘 여러분. 사파리아의 외무대신 드노 위 가테스라고 합니다.”

“블리스피엘 클랜의 마스터, 아이덴 스트로크입니다. 편히 모시겠습니다.”

“격한 환영에 몸 둘 바 모르겠군요.”

이후 그들과 함께 클랜 하우스 내부에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수인족의 대표로서 자리에 앉은 드노가 헛기침하고서 발언한다.

“글리시아 왕국의 사절단에게서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본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요녀’ 알리키의 신병을 양도받고 싶습니다.”

“음···.”

사파리아의 수인 부족들은 각각 두 명의 지도자를 섬긴다.

실질적 부족 지도자인 ‘족장’.

상징적 지도자인 ‘요녀(燎女)’다.

소티로의 아버지인 맹호왕이 여러 부족 중 하나인 호족의 족장이고, 역으로 알리키 쪽은 묘족의 요녀다.

설정집에서 언급되기를, 알리키 같이 뛰어난 요녀가 사파리아에서 탈주하는 건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뒷사정이 하나 있는데, 혼각인 『광신세뇌(U)』에 눈 뜬 알리키는 고양이 수인 부족 전원을 세뇌해 자신만을 섬기는 수족으로 삼으려 했다. 물론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알리키는 사파리아의 집행부를 피해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 하겔의 눈에 띄어 용마교단에 몸담게 된 거다.

하겔은 언젠가 국보인 『용신의 눈물(S+)』을 강탈하고, 부족 지도자들을 알리키의 발 아래 깔아주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번 역사에서든 본래 역사에서든 약속한 바가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가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단, 그녀를 넘겨주는 대가로 저희 클랜은 사파리아 내부에 있는 유적지의 탐사 권한을 받고 싶습니다.”

“유적지 말씀이십니까? 혹시 최근 모습을 드러낸 ‘백수(百獸)의 길’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아, 이미 발견되어 탐사를 준비하고 있는 유적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추후 다른 유적이 발견된다면 임의로 하나 선택해 탐사권을 독점하고 싶습니다.”

사파리아는 마도제국시대 유적들이 꽤 많이 발견되는 지역이다. 그 안에서 가치 높은 물건들이 발견되는 경우도 많았으니, 내가 말한 게 딱히 이해 못 할 요구는 아니었다.

고민하던 드노가 물었다.

“기한을 붙인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몇백 년 뒤 마스터 스트로크의 후손이 유적의 소유권을 주장하기라도 하면 곤란해지니까요. 적정선에 관해서는 좀 생각해봐야겠지만···”

“20년 정도로 하죠.”

선수를 치자 드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황망한 기색이던 그가 헛기침하며 내게 말했다.

“사파리아는 많은 유적이 발견되는 금싸라기 땅. 20년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깁니다. 그보다는 훨씬 짧은 기간··· 그래, 5년은 어떻습니까?”

“짧아도 너무 짧습니다. 15년으로 하죠.”

“으음···!”

짐짓 흥분한 기색을 보이는 드노.

그를 보며 나는 속으로만 웃었다.

배신자 알리키를 배출한 묘족이기에, 오히려 다른 부족원들이 보는 앞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거다.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조금이라도 사파리아 내에서 부족의 입지를 상승시키고 싶겠지.

하지만 협상이 아예 파투 나면 곤란하다.

눈알을 굴리던 드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10년···.”

“13년으로 하죠. 저희로서도 더 양보해드리긴 힘듭니다. 용마교단의 부교주를 원하는 세력은 넘쳐나니, 그들과 협상해 몸값을 받으면 그만이겠지요.”

블리스피엘이 용마교단을 쓰러트렸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으나, 역으로 묘족 출신 요녀가 용마교단의 부교주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다른 세력으로 알리키의 신병이 넘어가면 필시 이 정보는 퍼질 거고, 사파리아의 명예에도 흠집이 나리라.

수인족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으음···.”

침음성을 흘린 드노는, 결국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최종적으로 정해진 탐사대기 기한은 13년이었다.

“···당일 치러진 협상에 관한 것은, 수왕께 따로 보고하겠습니다. 언제든 사파리아로 오십시오.”

“잘 부탁드립니다.”

낭패를 겪은 수인족 사절단은 엘라노에서 이틀을 머무르다 떠났다.

사실 내가 원하는 유적은 앞으로 1년 안에 발견된다. 그런데도 굳이 조건을 너르게 건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것 같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성공을 반복해왔다.

그래도 아직은 역사에 전례가 없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그 덕분에 부러움과 경탄의 시선에서 그치고 있지만, 이게 지나칠 정도로 심해지면 곧 의혹으로 바뀔 거다. 예지몽 비스름한 능력을 소유했다는 게 알려지면 경계대상이 될 거고 말이다.

뭐든 선을 잘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이후 엘라노에 거주하는 여덟 클랜원들이 모여 오손도손 담화를 나누고 있는 자리에서, 플레벨지암이 내게 물었다.

〔···야. 설마 저 동물귀 놈들 뒤에 있는 그 년을 만날 생각은 아니겠지?〕

“왜 아니겠어?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플레벨지암 너는 수왕한테 정보가 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잖아.”

〔씁··· 똥같은 얼굴을 또 보겠군.〕

플레벨지암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수인족 사회에서도 일부 고위층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나, 수왕의 뒤에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가 있다.

사파리아의 막후 지배자, 대지의 무녀다.

수인족 사회는 대대로 용신 추종자 세력인 ‘대지 성당’의 상징을 배출해왔고, 그녀가 지닌 신성력 아래에서 부귀영화를 누려 왔다.

“추후 사파리아에 방문하면 대지의 무녀와 협상할 자리를 마련할 거야.”

하겔을 포섭함으로써 기본적인 패가 갖춰졌다. 슬슬 본격적으로 슈니펠트 가문을 끌어들일 미끼와 함정을 준비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