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도제국시대의 장인 코헨.

당연하지만 그가 만든 무구는 현재 내 수중에 있는 ‘우레’뿐만이 아니라 몇 종이 더 있다. 눈앞에 있는 지팡이, ‘서리’ 역시 속성 무구 시리즈 중 하나였다.

서리는 본편에 등장한 대표적 속성 무구이며, 무기수집벽이 있는 무인들 사이에서는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이를 증명하듯 경매장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

사회자가 외쳤다.

“첫 입찰이 나왔습니다! 백금화 100닢!”

“117번 손님께서 바로 두 배! 200닢을 부르셨습니다!”

“이거 놀랍습니다! 개시 몇 분 만에 벌써 500닢을 향하고 있군요!”

코헨이 만든 무구에는 웃돈이 붙는다. 네임밸류든 실제 가치든 실상 오늘의 메인디쉬라고 할 수 있는 상품이다.

천인살이 양어머니께 우레를 남긴 이유는, 추후 무슨 변고가 벌어지더라도 우레를 경매장에 내놓는다면 그 돈으로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녀는 결국 수십 년 동안 우레를 처분하지 않고 창고 한구석에 보관해뒀지만 말이다.

『코헨제 속성장·서리(S)』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수속성의 마력이나 기를 소비하여 물리력을 지닌 채찍을 형성

마력을 소비하여 채찍의 길이/무게/형태를 어느 정도 조절 가능

무구에 닿은 수속성 기운을 98% 효율로 흡수해 채찍의 물리력으로 치환

※수속성 기운을 지속해서 공급하지 않는 경우, 생성한 채찍이 증발할 수 있음

※피아 구별 기능이 없어 사용자 역시 약간의 빙결 피해를 봄

‘서리’의 또 다른 이름은 『코헨제 속성편·빙결(S)』이다. 지팡이가 흡수한 물의 속성력을 이용해 얼음 채찍을 만든 편에서는 후기란에 기재된 이름도 변했다. 개인적 추측이지만, 채찍을 뽑는 순간 ‘감정’으로 볼 수 있는 정보도 변하지 않을까 싶다.

“백금화 2,000닢이 나왔습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경매가. 어중간한 재력을 가진 이들은 빠르게 떨어져 나가고, 삽시간에 진짜배기들만 남아 경쟁하게 되었다.

시니샤가 내게 물었다.

“슬슬 참전할 때가 되지 않았나?”

“내가?”

“아닌가? 당신도 코헨제 무구에 관한 소식을 듣고 여기 온 줄 알았는데. 재력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만큼 빵빵하니 말이야.”

허리춤에 꽂힌 우레를 바라보는 시니샤. 이 기회에 내가 속성 무구를 콜렉팅 하려는 건 아니었을까 미루어 짐작한 것 같다.

실제로 돈이 남아돌아서 웨스터가 『황금을 보는 눈(U)』을 통해 눈여겨본 물건들은 등급이 좀 낮아도 어김없이 구매했다. 그가 등급보다 높이 평가하는 물건들은 간접적으로도 가치가 파생된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당장 속성장 입찰에 참여할 생각은 없다. 본래 역사의 낙찰자는 회수해야 할 맥거핀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2,500닢!”

“3,000닢!”

경매가는 말 그대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가격의 고도가 올라와, 그 기세는 조금씩 둔화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무, 무려 8,000닢! 8,000닢을 제시한 손님분이 있으십니다! 더 높은 가격은 없습니까?!”

““·········.””

“코헨제 무구의 낙찰가는 8,000닢입니다!”

‘서리’는 결국 8,000닢에 낙찰되었다.

다행히도 원작과 완전히 똑같다.

“겨우 무기 하나에 8,000닢이라··· 도대체 어떤 녀석인지 모르겠군.”

시니샤가 흥미로운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경매장의 객석은 마법 유리로 보호되고 있어 내부에서 다른 곳을 엿볼 수는 없다. 또한 흑시에 참여한 이들의 개인정보 역시 철저하게 보호되기에, 주최측인 알파니움 도서관의 일부 고위층만이 열람할 수 있다.

낙찰자가 누구인지 알아내려면 『리다이얼(U)』을 가진 그라도 상당한 심력과 시간을 소모할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우리 클랜에는 쉽게 대상을 추적할 만한 방법이 있다. 그것도 둘이나 말이다.

“플레벨지암, 비사냐.”

〔좋을 대로 부려 먹는군.〕

“네··· 네!”

플레벨지암이 가진 감각은 극도로 예민하다. 주변을 떠도는 생명체들의 기운과 그 유동을 빠짐없이 파악할 수 있을 정도.

비사냐가 지닌 ‘천안의 대정령’이 휘두르는 권능은 또 어떤가. 일말의 흔적도 남기지 않는 원격 감시 카메라, 그 자체다.

그녀가 다루는 아르고스의 눈은 경매가 시작했을 즈음부터 경매장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어중간한 방어 마법 따위로는 대비할 수 없는 권능이었으니 말이다.

“···8,000닢을 부, 부르기 전에··· 나비 가면을 쓰, 쓴 사람이 소, 소,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나비 가면인가··· 위치는?”

“211번석···.”

〔그래. 그쪽 자리에 있는 녀석의 파동, 기억했다. 나중에 어디서 다시 만나면 알 수 있을 거야.〕

“···좋아.”

오늘 볼일은 끝났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2.

‘레대연’의 ‘서리’는 기념비적인 물건이다.

작중 최초로 등장한 S등급 무구이며, 수속성 공격을 남김없이 흡수하거나 고스란히 내뿜는 등 충격적인 성능을 보였다.

물론 등장 자체만 빨랐을 뿐, 그 진가를 발휘하는 건 1부 중반부 즈음이었다.

‘서리’, 혹은 ‘빙결’이 활약한 사건은 소설의 서두를 장식한 게렉과의 결투와도 깊은 관계가 있는데, 다름 아니라 델다브리안 부족이 복수를 위해 에피오에게 자객을 보낸 게 원인이다. 본편 시점 이 무구의 사용자는 ‘베노블리아 아리아가’라는 인물로, 암살을 생업으로 삼은 아리아가 가문의 적녀였다.

당시의 에피오는 수속성 내성이 전혀 없었던 탓에 사방팔방으로 파고드는 채찍을 상대하는 일에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사기 특성인 『인카네이션(S)』과 불속성 무기빨로 대충 이겨내고 방심 중인 베노블리아를 생포하긴 했지만 말이다.

베노블리아는··· 말하자면 1부 초반부를 함께한 서브히로인이다.

전형적인 암살자 타입이며, 잠재 레벨도 2부 이후까지 활약할 만큼 높지는 않다. 현시점에서는 신관의 역할까지 겸할 정도로 성장한 아미엘의 하위호환에 가깝기에 굳이 영입할 생각까지는 없다.

그것보다 신경 쓰이는 건 베노블리아의 아버지인 ‘로스토 아리아가’다. 일전 상대한 극독공 이에들과 마찬가지로, 세간에서 십이걸 후보로 자주 언급되곤 했던 인물. 원작에서는 에피오의 아군에 가까웠으나, 나와 블리스피엘 클랜이라는 변수가 생긴 이상 이쪽을 노릴 자객으로 고용될 가능성도 있다.

뭐··· 한 1~2년 전이라면 꽤 위협적이었겠지만, 아르고스라는 패가 있는 이상 그렇게 경계할 대상까지는 아니다.

─아군으로 포섭할 수 있다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핵심은 예지몽에서 본 ‘서리’가 어떤 경로로 아리아가 가문에 흘러들어 갔느냐, 하는 거겠지.”

“그냥 아까 그 막대를 사간 사람이 뭐시기 가문 사람 아냐?”

에피오의 말에 리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리아가 가문이라면 지금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을 거예요.”

“맞아. 금화도 아니고 백금화를 8,000닢이나 낼 여유가 있을 리 없겠지.”

아리아가 가문의 기심법은 빙결의 속성을 띄고 있다. 따라서 ‘서리’는 그들이 탐낼 만한 물건이긴 했다. 하지만 금화 8,000닢이면 나쁜 마음을 먹는 순간 소국 하나를 모래성처럼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이다.

구매자는 모종의 이유 탓에 이 물건을 아리아가 가문 측으로 넘겼고, 그 과정에서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설정을 다 꿰고 있는 내게는 그 이유로 짐작 가는 구석도 몇 개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흥미. 장인 코헨의 무구들입니까. 개인적으로 신경 쓰입니다.」

코어만 덜렁 남은 채 체샤의 품속에 들어 있었던 멜키나가 반응을 보였다.

“그러고 보니 기신족의 연원도 마도제국시대에 있다. 너나 레스피넬은 코헨에 관해 뭔가 아는 거냐?”

「긍정. 메모리 프로텍트가 걸려 있어 자세히는 파악할 수 없으나, 아마도 코헨이라는 자는 기신족의 탄생에도 관여했을 거로 추정됨.」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처음 듣는 이야기가 나왔다.

“···프로텍트라고?”

「메모리 프로텍트. 고대 문명 시절의 정보를 떠올리는 일을 원천 차단하는 기능입니다. 모든 기신족의 코어 중추에는 이러한 보호 장치가 있습니다. 이를 점진적으로 해제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금속을 다수 흡수하여 기신족으로서의 격을 끌어올려야만 합니다.」

이 세계의 주민들이 말하는 ‘격’이나 ‘그릇’은 곧 레벨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여러 금속을 먹고 레벨을 올린 기신족은 자연스럽게 종족과 자신의 근본에 관해서도 잘 알게 된다는 소리다.

“···레스피넬은 한 번도 한 적 없는 이야기군.”

「휴면 상태에서 깨어난 지 오래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백 년을 내리 활동한 저 멜키나와는 달리, 개체 레스피넬은 기신족의 상식 또한 많이 잊어버렸겠지요. 혹 활동 초기 언어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습니까?」

“성물 먹이고 막 깨어난 시점에는 다 그러는 거 아니었나?”

「부정. 개체 차이가 있습니다.」

막 성물을 먹고 깨어난 기신족의 상태는 원작에서도 거의 묘사된 바가 없다. 따라서 이건 나로서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원작에서도 활동 기간과는 별개로 레벨 높은 기신족일수록 뭔가 아는 게 많아 보이기는 했다. 루틀레미스, 에마엑스, 드라이드렐 같은 녀석들 말이다.

혹시 그게 메모리 프로텍트의 단계적 해금과 연관된 걸까?

[맥거핀 No.220 / 『메모리 프로텍트』를 회수했습니다.]

[업적 포인트 + 2,000]

생각지도 못한 데서 맥거핀 회수다.

동시에 강한 의문이 들었다.

정보 봉인이라니, 왜 이런 이상한 기능이 달린 걸까?

「설명. 개체 멜키나는 메모리 프로텍트가 코어의 과열을 막으려는 의도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과열이라고?”

「기신족의 코어 심층에 응축된 정보량은 인류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격에 맞는 외부 연산 회로가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질 높은 금속으로 보조해야만 과부하를 막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요약하자면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거군.”

「적당한 비유입니다.」

“그러면··· 기신 도시의 지배자인 드라이드렐 정도면 정보를 얼마나 해금할 수 있지?”

전면에서 활약한 바는 없으나, 드라이드렐의 레벨은 80을 넘는다. 프리마 대륙의 기신족 중 단연코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멜키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2% 남짓입니다.」

“···뭐라고? 98%도 아니고 2%?”

「긍정. 개체로서 아무리 격이 높아지더라도, 코어 내부에 잠재된 정보를 전부 처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얼이 빠진 채 멜키나의 코어를 바라본다.

잠깐 혼란스러웠으나, 어느덧 기신족과 엮인 근본적 의문을 떠올리기에 이르렀다.

이 녀석들의 정체에 관한 건 최후의 최후까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종족의 생리에 관해 밝혀진 거라고 해봤자 금속을 흡수해서 몸처럼 다룰 수 있으며, 휴면 상태에서 성물을 흡수하면 이를 동력으로 반영구적인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 정도다.

···가만.

지금까지는 독자로서 당연하다고 여긴 까닭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위화감이 든다. 신들의 현신이나 다름없는 성물을 갈아 먹어서 연료로 쓴다니··· 사실 대단히 이상한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