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Double Track Recovery Log

Episode 216. Ain War (3)

3.

쿠엔탈틸은 대륙 4대 클랜에 준하는 영향력을 자랑한다. 전체적으로는 한 수 아래지만, 지역을 남부로 한정 짓는다면 비교 대상조차 없는 최고의 클랜이다.

그런 거대 클랜의 마스터께서 직접 행동하는 건, 그것도 소수의 호위 부대만 대동하고 움직이는 건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쿠브리가 말했다.

“상대방의 눈을 속이기 위해 빙 둘러 이동하다 보니, 꽤 시간이 지체됐군요.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별일 없는 것 같지만···.”

“제가 쇄국 파벌이라도 쿠엔탈틸 클랜이 언제 나설지 모르는 지금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을 겁니다. 필시 상황을 관망하겠지요.”

클랜 간부인 청와족(개구리 아인) 마법사가 대답했다. 그 말대로, 쿠엔탈틸이 쇄국 파벌의 요청을 거절한 지도 벌써 한 달 하고 반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표면상으로는 별다른 정세 변화가 없었다.

“머릿수는 개화 파벌 쪽이 우월하다지만, 그리 낙관할 수는 없다. 그쪽에는 ‘마돈 네기진’ 같이 막강한 전사가 여럿 가담했으니, 한 끗 어긋나면 사태가 전쟁까지 발전하는 건 기정사실. 필시 고된 싸움이 되겠지···.”

라발베아가가 그리 말했다. 비관적 전망과는 달리 흥분에 찬 목소리다. 과연 호전적으로 유명한 우인족 전사답다.

별안간 호위대 중 누군가가 탄성을 내질렀다.

“임피시! 석척족 왕국의 수도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도착했···.”

긴 여정 끝에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 생각한 호위 부대원들의 긴장감이 바닥까지 떨어진 순간이었다.

서늘한 무언가가 쿠브리의 등골을 스쳤고, 그는 망설임 없이 외쳤다.

“전원 엎드려!”

직후.

서걱!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던 호위대원 두 사람의 목이 깔끔하게 날아갔다.

클랜 마스터 호위대는 전원 백전연마의 베테랑이었고, 이를 증명하듯 최대한 신속하게 대응했다. 그런데도 이런 참사가 벌어진 것은, 단순히 습격자의 기량이 상상 이상으로 뛰어났던 까닭이다.

“절반은 죽일 생각으로 휘둘렀는데··· 과연 쿠엔탈틸 클랜의 명성이 헛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군.”

푸른 물고기 비늘이 인상적인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가 손에 쥔 무기는 단두대의 낫처럼 생겼는데, 살아 있는 촉수처럼 연신 꿈틀거렸다.

쿠브리는 눈매를 좁혔다.

쇄국 파벌에 가담한 아인족 중 이 정도로 놀라운 기량을 지녔다고 알려진 전사는 단 넷뿐이다. 개중 어인족 출신인 한 사람은 마법 금속으로 만들어진 기요틴을 사용하는 거로 유명했다.

“셀마 디다키에렐투.”

“오오, 제대로 활동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날 알고 있다니 뜻밖인데? 인간들과 부대끼며 산 쿠엔탈틸의 마스터치곤 남부 소식에도 그리 어둡지 않은 모양이야.”

“설마 적지 한가운데서 매복하고 있을 줄이야··· 너무 안일했군.”

어인족 최강의 전사, 셀마가 이끄는 부대는 기척을 감추는 데에 매우 능하다. 더욱이 석척족 왕국의 수도 임피시는 주변에 큰 강을 끼고 있었으니, 그들이 은신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가 없는 지형이다.

쿠브리가 앞으로 나섰다.

“셀마 공. 아무리 남부의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지만, 아직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쿠엔탈틸 클랜을 습격하다니, 이 무슨 만행입니까?”

“흐히히, 아쉽지만 바깥세상 눈치를 보는 건 너희뿐이라고. 개화파 수뇌부들의 목을 쳐내고 신속하게 남부를 장악하면, 남은 놈들은 찍소리도 못할걸?”

“·········.”

그녀의 말대로, 부족 사회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는 이 지역은 근본적으로 강자존의 정글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 이상 대의명분 따위는 무의미하리라.

“웃기는 소리!”

콰직! 혼란을 틈타 돌진한 라발베아가가 자신의 키만큼 거대한 도끼를 내려찍었다. 어인족 전사 하나의 머리가 토마토처럼 터진다.

“설마 일개 암살 부대 따위로 우릴 전멸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멍청한 년!”

“그렇게 생각하면 어디 한번 덤벼 보시던가.”

“바라던 바다! 돌격!”

셀마 휘하 어인 부대와 쿠엔탈틸 클랜원들이 충돌했다. 챙! 채챙! 콰직! 양 세력의 전위들이 한데 얽혀 금세 난전 상황이 되었다.

‘이상하군···.’

쿠브리는 열심히 손도끼를 휘두르면서도 흰 미간을 좁혔다.

적 대장인 셀마는 자신보다 약했다. 부대 전체의 전력을 비교해 봐도 각 종족의 정예로 이루어진 쿠엔탈틸 쪽이 질적으로 우위다. 하지만 철두철미하게 매복한 셀마가 이리도 맥없이 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필시 노림수가 있다.’

불안하지만 막연한 감 하나만으로 한참 교전 중인 클랜원들을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정적으로, 기감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는데도 지원군이 나타날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소수의 지원군 정도라면 있을 수 있겠지만, 교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전투가 소강상태다. 이 정도 차이라면 바깥세상에서 대륙십이걸이라 일컬어지는 수준의 강자가 하나 더 오더라도 전황을 뒤집기는 어려웠다.

“어인족 필두의 수급을 왕국 방문 선물로 가져갈 수 있는 건가. 썩 나쁘지는 않군요.”

일격에 어인 전사 세 명을 베어 가른 쿠브리는 수세에 몰린 셀마를 향해 돌진했다.

콰앙! 그의 일격을 받아낸 셀마가 뒷걸음질 치며 물러난다. 그리고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소리쳤다.

“젠장, 루타하 공! 뭐 하는 거야! 보고 있으면 빨리 도와달라고!”

“···?!”

쿠브리를 비롯해 셀마를 몰아붙이던 쿠엔탈틸의 전사들은, 문득 강렬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신속하게 땅을 박차며 물러난다.

쿠과과광! 파슈슉!

그 직후 셀마가 서 있던 주변 땅이 갈라지고, 정체불명의 녹색 액체가 솟아 나왔다.

“저건···.”

독에 익숙한 쿠브리는 본능적으로 그것의 위험함을 느꼈다. 내성을 지닌 자신조차 목숨이 위험해질 만한 맹독이다.

갈라진 땅 사이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뱀의 몸에 팔다리를 붙인듯한 모습. 언뜻 보면 석척족과 비슷해 보이나, 몸체가 더욱더 호리호리하다. 쇄국 파벌에 속한 장충족이었다.

“곤란하군. 그대가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지 않았나.”

“시끄러···! 더 시간을 끌었다간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단 말이다! 당신은 도대체 땅속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저 석척족 영웅을 즉사시킬 정도의 맹독을 그렇게 아무렇게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나. 이쪽도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단 말일세.”

정체불명의 장충족은 어인족 최강인 셀마와 대등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쿠엔탈틸 클랜원 중 그에 관해 아는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누구야 저건?”

“···셀마 디다키에렐투가 외치기 직전까지 습격할 낌새조차 느끼지 못했다. 장충족에 저 정도 전사가 있었단 말인가?”

쿠브리는 지긋이 두 아인을 바라보았다. 저 장충족은 그조차 바닥을 엿보기 힘든 강자였다. 그가 셀마와 제대로 연계할 수만 있다면, 수적으로 훨씬 우월한 쿠엔탈틸이라 해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어 보였다.

쿠브리는 꿀꺽 침을 삼키고서 말했다.

“라발베아가. 당장 왕궁으로 달려가 이곳 상황을 전해주지 않겠습니까?”

“···나보다는 차라리 클랜 마스터인 자네가 가는 게 낫지 않겠나? 여기서 허무하게 죽었다간 우리 클랜도 끝장이란 말일세.”

“지금 제가 빠졌다간, 여기 남은 클랜원들은 반드시 전멸합니다. 모두가 살길은 이것뿐이에요.”

“···! 알았네. 조심하게.”

라발베아가는 곧바로 도심지를 향해 내달렸다. 오랜 친우 사이에 그 이상 사사로운 표현은 필요치 않았다.

장충족, 루타하가 땅굴에서 기어 나왔다.

“직접 이야기하자니 부끄럽지만, 이 몸이 땅굴을 파는 솜씨는 토굴에서 살다시피 한다는 언서(鼴鼠/두더지)족 최고의 달인과 비교해도 못하지 않다네. 하지만 병장기를 다루는 솜씨는 그것보다도 뛰어나지. 전위의 주축 하나가 빠진 상태로 그런 나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가?”

“남은 어인 부대는 열 명 남짓이고, 저희는 아직 서른 명이 넘습니다.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건 그쪽이 아닌지.”

“흠. 그거야 한번 붙어보면 알겠지?”

이윽고 쿠브리와 루타하가 땅을 박찼다. 잔상조차 포착하기 힘든 속도로, 두 사람의 신형이 교차했다.

4.

챙! 채챙!

금속이 부딪히고 불티가 튄다.

근육통을 느낀 쿠브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헛된 자신감이 아니었군.’

백병전에서 이리도 크게 밀린 게 도대체 몇 년 만일까. 상대방의 기량은 분명하게 자신보다 우위였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바로 목이 날아갈 게 분명하다.

전황 역시 크게 변화했다.

수적인 우위를 내세워 시시각각 상대방을 압박하던 쿠엔탈틸 클랜이지만, 믿기지 않게도 지금 수세에 몰려 있다. 원인은 지하 틈새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루타하의 맹독이다. 별다른 내성이 없는 클랜원들은 조금씩 독기를 들이마시다가 하나둘 쓰러져갔다.

‘반면 상대편 정예 열 명은 멀쩡하다. 독에 내성이 있는 전사들만을 끌고 온 거였나. 참으로 성가시군···!’

쾅! 콰광!

“마스터 롤랑고! 인간들 사이에서 감투 놀이나 하고 있다기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건만, 아무래도 그대의 솜씨는 명성 이상인듯하군!”

“큭···!”

쿠브리는 속이 타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로서도 시간을 끄는 게 고작이었다.

독에 정통한 것도 모자라 근접전에서도 자신 이상이라니. 눈앞에 있는 정체불명의 장충족은, 인간이었다면 틀림없이 트리플 스타의 자리를 꿰찼을 법한 인물이었다.

어인족 전사 중 누군가가 비릿하게 웃었다.

“마스터 롤랑고! 뒤통수가 훤히 보인다!”

익살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강렬한 기척 하나가 쿠브리의 등 뒤로 다가왔다. 하지만 루타하를 상대하는 일만도 벅찬 그로서는 어인족 전사들에게까지 대응할 여력은 없다.

여기서 끝인가···.

그리 생각한 순간.

콰광! 뚜두둑!

굉음이 들렸다.

“꾸워어얽···?!”

동시, 금방이라도 쿠브리의 등을 찢어발길 기세로 접근하던 어인족이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며 즉사했다. 쿠브리를 몰아붙이던 루타하가 표정을 구기고는 말없이 뒤로 물러난다.

“마스터 롤랑고. 멀쩡합니까?”

익숙한 목소리. 피곤죽이 된 어인족을 밟고 있는 인간 청년은, 쿠브리와도 구면이었다.

“제 동료들도 요 주변에 있으니 더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마스터 스트로크···!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설명은 저 둘을 처리한 뒤에 하죠.”

아이덴이 셀마와 루타하를 차례로 바라본다.

“뭐야, 저 인간 놈은?”

“아··· 이런. 대륙십이걸 아이덴 스트로크인가. 일이 성가시게 됐군. 셀마 공, 상황이 변했으니 나는 이만 돌아가 보겠소.”

“뭐, 뭐라고?”

루타하는 대답 대신 땅을 바라보았다.

〈스타 시커

별안간 공중에서 기묘한 빛이 날아와 그런 루타하에게 적중했다. 직후 그의 신형이 땅속으로 꺼지듯 사라진다.

‘다행히도 도망가기 전에 맞췄군.’

이번 내전에서 가장 성가신 상대를 마크했다. 아이덴은 공중 어딘가에 있을 체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쿠엔탈틸 클랜원 사이를 날뛰던 셀마는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깨닫고 뒷걸음질 쳤다.

“제, 젠장! 두고 보자!”

“어딜 가.”

아이덴이 피식 웃은 직후.

콰직!

성대한 피분수가 터졌다. 공중에서 추락한 무언가가, 조금 전 어인족을 뭉갠 아이덴과 마찬가지로 셀마에게 충돌한 것이다. 다름 아니라 『선악균형추(S+)』를 든 레이카디였다. 어인족 최강의 전사는 막대한 운동 에너지에 당해 단말마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깔개가 되었다.

아이덴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쿠브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왕궁까지 같이 가서 알현하시렵니까? 전쟁 건으로 할 이야기도 많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