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s Double Track Recovery Log

229. Early Resurrection (3)

8.

식당에서의 사건이 있은 지 이틀 뒤.

마야나가 집무실로 찾아왔다.

“아이덴. 계획이나 이어서 검토하자.”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는데,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묵묵히 일에만 열중했다. 사실 사태는 이미 말끔하게 정리하긴 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기는 준비 다 했으니 진도 빼는 건 내 선택에 맡기겠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찌질하게 더 우물쭈물 해봐야 추할 뿐이니, 나도 심기일전했다. 그렇게 여러 가지를 논의하고 있을 때였다.

“주인님, 손님분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대수림의 키리렌 라 피리온 공입니다.”

“···키리렌이? 일단 라운지로 모시도록 해. 지금 보는 용무만 끝마치고 바로 갈 테니까. 아마 한 시간 정도면 될 거야.”

그러자 리니아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키리렌 공께서 지금 당장 주인님을 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뭐?”

고개를 갸웃거린다.

키리렌은 일전 별다른 연줄이나 대가 없이도 우리 클랜의 용병으로서 아인 전쟁에 참여해주었다. 갑자기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는 빚이 있으니 신신당부를 받았다면 들어주는 게 도리에 맞으리라.

목적지에 도착하니 키리렌이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으로 앉아 있었다.

“···키리렌 님?”

“수호목의 대리자여! 다행히도 빨리 왔군. 중대한 소식이 하나 있어 며칠을 밤낮없이 달려왔소. 실례일지도 모르나, 한 가지만 물어도 괜찮겠소?”

“물론입니다.”

“혹 대수에 이상이 생겼음을 느꼈소?”

“···!?”

무심코 눈을 크게 치떴다.

대수에 이상이라고? 이 시기에?

“자세히 말씀해주십시오.”

“···먼 옛날 멸종했다고 알려진 불꽃 거인이 숲에 나타났소. 나무를 죄다 태워버리고 일리노어 한가운데까지 쾌속으로 진격하더군. 세 가문의 기사들이 힘을 합쳤지만, 힘의 차이가 너무 극심했소.”

“지금 불꽃 거인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무언가 짚이는 거라도 있으신지?”

알다마다.

불꽃 거인은 원작의 이르모크위가 애용하는 전투 형태 중 하나였다. 70레벨을 넘으면 화속성 최상위 주문 〈라그나로크를 사용할 수 있는 종족이라, 숲에 사는 요정족에게는 특히나 치명적인 상대다.

그렇게 눈에 띄는 종족이 어디 숨어있다가 나올 수도 없을 테니, 대수림에 나타난 건 이르모크위의 본체라고 봐야겠지.

하지만 이러면 의문이 하나 생긴다.

지르갈이나 툴그하가 생각보다 일찍 깨어난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깨어난 시기는 원작이나 설정집에도 정확히 명시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르모크위가 깨어나는 시기는 알고 있다. 3부 시작과 거의 동시였다. 따라서 그녀의 이른 참전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변수가 개입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하지만 툴그하가 머물고 있는 페클 씨족 마을은 개화 파벌의 전투원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외부로 내 정보가 드러날 여지는 없을 텐데.

···이 문제는 일단 뒤로 미뤄 두자.

나는 키리렌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불꽃 거인이 대수에 무슨 짓이라도 했습니까?”

“대수 자체에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소. 그러나 대수 아래 숨겨져 있던 지하 신전에 침입해 무언가를 꺼내 갔지. 좀처럼 용도를 알기 힘든 얼음 관이었는데, 그게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왜 지하 신전에 소중하게 보관되고 있었는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더군.”

티아미아가 갇혀 있는 관이다.

“···감사합니다, 키리렌 공. 정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혹시 이곳으로 오기 전 다른 요정족들이 무언가 이상한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습니까?”

“그걸 어찌 아셨소? 역시 수호목의 대리자로군!”

감탄한 키리렌이 말을 잇는다.

“사실 수호자를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향한 건 나뿐만이 아니오. 처음에는 여러 요정족 동포가 동행했지만, 나를 제외한 전원이 대수림으로 돌아가 버렸소. 뭔가에 홀렸는지 말려도 전혀 듣지 않더군. 일단 한시가 급해서 나 혼자라도 여기 오긴 했는데, 생각해 보면 대단히 이상한 일이오.”

“키리렌 공 홀로 아무 이상을 보이지 않은 건, 분명 대수의 축복을 거두었기 때문일 겁니다.”

내 말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축복··· 그런 거였나! 지금 다시 보니 반요정인 리니아 양도 멀쩡하잖아. 이것도 몇 년 전에 대수의 축복을 거둔 덕분이로군.”

“덤으로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에렌드렐도 지금쯤 수련장에서 멀쩡히 칼질하고 있을 겁니다.”

사실 나는 티아미아의 부활을 대비하기 위해 대수림의 강자들에게 종종 축복 해제를 권하는 편지를 보내긴 했다. 하나 같이 귓등으로도 안 듣긴 했지만 말이다.

3부 시작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남았기에 그리 조급해하지 않았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흘러갈 줄은.

“일단 클랜 하우스에서 좀 휴식하시죠. 밤낮없이 먼 길을 달려오셔서 그런지 얼굴이 반쪽이 되셨습니다.”

“후우··· 호의에 감사드리오.”

키리렌은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9.

이르모크위가 부활한 건 확실하다. 게다가 정황을 보면 대수림의 요정족들도 이미 티아미아의 꼭두각시가 된 것으로 보였다.

나는 급히 연락망을 가동했다.

“···레이. 잠깐 샤페크 가문으로 돌아가서 움브릴의 ‘성소’에 관한 조사를 부탁해 줘.”

“마스터,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저희 가문의 성소란 것은···?”

“가 보면 자동으로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극비 중의 극비다 보니 에크하트 경께 이야기해야만 효과가 있을 거다. 한시를 다투는 상황이니 멜키나에 탑승해서 이동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레이는 오랜만에 친가로 향했다.

슈니펠트 가문과 달리 5영웅의 위협을 인지하고 있는 세력은 매우 적다. 하지만 밑작업을 조금씩 해뒀으니 최소한의 대비 정도는 가능할 거다.

“···이상하군. 왜 일이 이렇게 된 거지?”

중얼거린 나는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귀가 안 맞는다.

페클 씨족 마을에 관한 사후처리는 분명 완벽했다. 지르갈 역시 부하가 무덤 도굴에 실패했다는, 그런 사소한 동기로 먼저 움직일 만한 성품은 아니었다.

이르모크위의 간섭에 의해 깨어난 티아미아를 제외하면, 이 일을 주도할 수 있는 건 소거법에 따라 벨리포트나 이르모크위뿐이다.

문제는 두 사람 다 본래 역사에서 3부 이후에나 깨어났다는 점이다.

정황상 5영웅 이외의 외부 요소가 개입했다고 여길 수밖에는 없었다.

“이게 호재인지, 악재인지 모르겠군···.”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어. 우리가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면 될 문제지.”

마야나가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회의실을 슥 둘러보았다. 레이와 동행한 채 샤페크 가문으로 향한 쿠르트나 베노블리아를 제외하면, 클랜원 전원이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아마 지금이 클랜 창단 이래 최고의 비상사태가 아닐까 싶다. 전원 함께 대책을 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불렀어. 리니아, 사정을 잘 모르는 클랜원도 있으니 네가 설명해줘.”

“알겠습니다, 주인님.”

리니아가 알아듣기 쉽게 상황을 설명했다. 『얼티밋 메이드(S+)』 소유자는 완전히 만능 비서라서 말도 조리 있게 잘 할 수 있다.

발레리가 살짝 미간을 좁힌다.

“그러니까 리니아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전설 속 영웅들이 다섯 명이나 부활해서, 세상을 혼란에 빠트릴 거라 이거지? 여러모로 대단한 이야기네.”

“클랜 마스터의 이야기는 분명 사실일 겁니다. 예지몽을 통해 얻은 정보로 재산을 불려온 제가 보증하죠.”

재무담당, 카밀로가 나를 변호했다.

비록 전투원이 아닌 까닭에 무명은 전혀 쌓지 못했으나, 지금의 카밀로는 불패신화의 투자가였고 대중적인 지위도 남달랐다. 진지하게 우리 클랜에서 나 다음으로 유명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발레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해도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지 않아요? 마스터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자면, 하나하나가 대륙 판도를 바꿀 만한 괴물들인데.”

아미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검성이나 천인살에 필적하는 기신족도 하나 나타날 예정이라죠. 저희 클랜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에는 동감합니다.”

회의적인 분위기가 만연하다.

나는 슬쩍 입을 열었다.

“저쪽도 아직 깨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어. 신중하게 분위기를 살필 요량이다. 여유를 틈타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 있을 거다.”

“···그러고 보니 아이덴은 옛날부터 5영웅에 관해 알고 있었죠? 원래부터 툴그하 같은 괴물 놈들한테 맞설 생각이 있었다는 건데, 계획이 어그러지지 않았다면 도대체 무슨 수를 써서 맞설 생각이었어요?”

핵심을 찌르고 들어오는 에피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우리 클랜의 전력에 티시에 님의 힘까지 빌린다면, 각개격파 정도는 노려볼 만해. 물론 이 정도로는 5영웅과의 싸움을 그렇게 안정적으로 헤쳐나갈 수 없었지.”

순서가 꼬여도 귀찮아진다.

지르갈 알렉시크는 사령술사인 동시 ‘사자부활’ 의식이 가능한 초(超)성황급 성직자였으니, 시체를 제대로 회수 못 하면 리타이어한 영웅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수가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결정타를 날리기 위해 『영령강혼(EX)』 특성을 소유한 그 주정뱅이 녀석이 필요해진다.

다만, 이놈에게는 사정이 좀 있어 2부 종료 시점이 아니라면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에는 난항이 있다.

몇 년 동안 슈니펠트 가문과의 대치를 유지하며 레이나 에피오를 비롯한 클랜원들이 성장을 거듭했다면 자력으로도 어느 정도 헤쳐나갈 수 있었겠지만, 5영웅이 일러도 너무 이른 시기에 부활했다. 계획이 근본적인 부분부터 틀어진 셈이다.

나는 이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어쨌든, 오라버니가 본래 생각해 놓은 계획은 사용하기 힘들다는 뜻이군요.”

“···그래. 정말 임기응변으로 가야겠지.”

내 말에 클랜원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생각의 늪에 잠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클라라였다.

“저희에게는 『다중공상시행자(U)』나 〈보이드 같은 일발역전의 수가 여럿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두 세력 사이에서 난전을 유도하고 빈틈을 노리는 게 가장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 나도 찬성.”

클라라는 슬쩍 손을 들어 찬성을 표한 비사냐를 흘겨보았다. 소심한 비사냐 양은 금세 움츠러들고 말았다.

···지금 꼽 준 건가, 저거?

아무튼, 클라라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었다.

문제는 우리 클랜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정력적으로 활동했다는 점이다. 5영웅이 본격적으로 조사에 나선다면 그간의 수상한 행적이 까발려지는 건 순식간이리라.

어쩌면 벌써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티아미아가 부활했는데도 대수에게서 아무런 이상 신호가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르모크위가 또 다른 대리자의 존재를 알아채고 모종의 수작을 부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 말을 듣고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클라라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뭔가, 없을까요? 5영웅과 슈니펠트의 이목을 서로에게로 쏠리게 할 수단이.”

“···없지는 않아.”

그래.

역시 이 수를 써야겠다.

“···카밀로. 수행원들을 몇 명 데리고 곧 흑시에 출품될 『수은 지팡이(S)』라는 물건을 구해오도록. 마력이 숨겨져 있어서 구분하기는 힘들겠지만, 웨스터 엠버브루라는 상인을 찾아 도움을 받으면 괜찮을 거다.”

“새겨듣겠습니다, 마스터 스트로크.”

“그리고 발레리는 카프리엘 에스크리포라는 대마법사를 클랜 하우스로 초청해줘. 알라브르 각하께 부탁하면 쉽게 일을 성사시킬 수 있을 거야.”

“음··· 잘 알겠어, 마스터.”

카밀로와 발레리에게 그리 이야기한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 클랜원들의 면면을 쭉 훑으며 발언한다.

“나는 기신족, 로판델리를 찾으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