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익조(S) 특성 100% 발현.]

[파트너의 잠재 레벨에 맞춰 성장 보정.]

[잠재 레벨이 3 상승합니다.]

[마력이 1 상승합니다.]

[감각이 1 상승합니다.]

[체샤 스트로크의 감각이 1 상승합니다.]

[특성 빙설한맥(S)을 습득했습니다. 수속성 지배력과 저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이른 아침.

숙면을 취한 후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기다렸다는 듯 줄줄이 출력되는 메시지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빙설한맥(S)』

수속성 지배력 대폭 상승

냉기 계통 공격/상태이상 완전 면역

한기에 부정적 영향을 받지 않음

체내외 냉기 조정 가능

기맥 과열 방지(On/Off)

고유 주문 : 〈글레이셜 피리어드

고유 절기 : ‘쉬버포스트’

“생각지도 못한 수속성 S등급 특성···.”

『빙설한맥(S)』 특성의 힘을 십분 활용할 방법이 몇 개 정도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스테이터스 상승 따위는 결국 한 가지 기쁜 일의 부산물일 뿐이다.

빙의 후 처음으로,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인연을 얻었다. 덕분에 어느 때보다도 묘한 기분이다.

더욱더 가까이에서 살결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 체샤를 꽉 끌어안았다.

「훌륭합니다.」

“나노 이터, 모처럼 좋은 때인데 방해 좀 하지 말라··· 음?”

머릿속을 울리는 음성에 짜증을 느끼고 일갈한 직후였다. 임시계약한 마도서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슷한 기계음이지만, 나노 이터에 탑재된 건 변성기를 겪지 않은 소년 같이 중성적인 음성이다. 이 정도로 부드러운 느낌은 아니다.

“너는···?”

「새 주인님을 섬기게 되어 영광입니다. 본서(本書)에게 붙여진 이름은 버닝 스톤 바인더. 마도서입니다.」

“·········.”

침상 위에 책 하나가 둥둥 떠 있었다. 표지가 시커멓다. 하지만 음산하다기보다는 숯덩이처럼 검게 탄듯한 흑색이다.

「계약자와의 링크를 감지했지만··· 무슨 일인지 그녀의 수중에는 마도서가 한 권 있는 것 같더군요. 그 때문에 날개의 인연으로 엮인 아이덴 님께 우선권이 돌아왔습니다.」

“···과연. 그래서 활동 상태가 된 건가.”

한순간 혼란스러웠지만, 금세 답이 나왔다.

버닝 스톤 바인더는 순간적으로 공격 주문을 퍼붓는데 특화한 마도서. 아마 ‘다른 세계’에서는 빙의자 체샤 유틀란트와 계약했을 거다. 주문 각인이라 불리는 문신, 다중 고리 연성, 거기에 타이틀 특성 『폭마(S+)』까지 가진 그녀와 발군의 상성을 발휘할 만한 물건이다.

“···하지만 언노운은 우리와 싸울 당시 널 사용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본서 역시 여러모로 혼란을 겪었습니다. 사실 꽤 오래전부터 체샤 유틀란트에게서 부름을 받은 바 있습니다만, 메모리에는 그녀와 계약한 기록이 없으니까요.」

마도서와 계약하면 당사자의 혼에는 그 흔적이 남는다. 언노운은 이를 통해 링크를 형성, 버닝 스톤 바인더를 호출했지만··· 정작 이 녀석은 수상하다고 여겨 응하지 않았다는 모양이다.

「하지만 당신의 곁에서 함께하며 일의 진상을 파악했죠. 이번 일은 본서의 인지를 초월한 영역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음··· 그래서 나랑 계약하겠다는 건가.”

「정확히 말하면 이미 가계약 상태입니다. 체샤 양은 언노운의 힘을 흡수하면서 본서와의 계약 또한 흡수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나노 이터가 존재하는 까닭에 계약 각인이 옮겨지다 말았고, 링크는 혼으로 이어진 아이덴 님께 튕겨 나왔습니다.」

“그럼 어쩔 수 없군. 정식으로 계약하자.”

「탁월한 선택입니다.」

손가락을 물어뜯은 다음 버닝 스톤 바인더에다 혈액을 흩뿌렸다. 운석을 형상화한 형태의 음각이 빛난다.

[마도서 버닝 스톤 바인더와 정식 계약 관계가 되었습니다!]

“으음···.”

무언가를 느낀 체샤가 몸을 뒤척였다. 천천히 눈을 뜨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좋은 아침.”

2.

정오.

연무장에 선 나는 버닝 스톤 바인더를 허공에 띄워 놓았다.

『마도서 버닝 스톤 바인더(S)』

주문 : 〈스펠 레코더

기능 : 영창 가속

???【마력 40 이상】

※사용 조건 : 마도서와의 계약

〈스펠 레코더는 ‘주문 하나를 기억하는 주문’이다. 계약한 장본인이 홀로 사용 가능한 마법이라면, 영창을 미리 외워뒀다가 필요할 때 재깍재깍 사용할 수 있다.

‘영창 가속’은 말 그대로의 의미다. 마도서의 보조로 주문을 신속하게 외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숨겨진 세 번째 기능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무려 40 이상의 [마력] 수치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내가 달성하기는 힘들다.

물론 이것도 꼼수가 있다.

“체샤.”

“응.”

체샤가 바인더를 짚고 마력을 주입했다.

그녀는 버닝 스톤 바인더와 가계약 상태이며, 사사롭게는 나와 비익조로 연결되어 있다. 나노 이터와 내가 그렇듯, 체샤는 버닝 스톤 바인더의 스페어 마스터에 해당한다.

그리고 체샤의 [마력]은··· 41이다.

「설정된 선을 초월한 마력 감지.」

「본서의 3번째 기능을 강제 개방합니다.」

『마도서 버닝 스톤 바인더(S)』

주문 : 〈스펠 레코더

기능 : 영창 가속

화, 지속성 주문 추가 기억

※사용 조건 : 마도서와의 계약

마도서의 세 번째 기능은 〈스펠 레코더로 기억 가능한 주문의 가짓수를 늘리는 것.

불꽃 주문과 땅 주문을 하나씩 추가해서 총 세 개를 한 번에 저장할 수 있게 된다. 사용자의 기량에 따라 극대주문 세 개를 한 번에 꺼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이윽고 체샤가 입을 열었다.

“···〈스펠 레코더.”

『압축융화(S)』를 통한 추가 작업이 필요한 보이드는 저장할 수 없지만, 그녀가 지닌 다른 마법이라면 뭐든 기억할 수 있다. 위력 또한 주문을 외운 체샤의 마력을 따른다.

비상시에는 스페어인 그녀 역시 마도서의 힘을 이용할 수 있을 테니, 강력한 무기 하나가 더해진 셈이다.

흐뭇한 마음으로 저장한 주문의 위력을 점검하고 있던 어느 순간이었다. 리니아가 쭈뼛쭈뼛 연무장 문을 열고 들어온다.

“주인님, 그리고 마님··· 한참 좋은 시간에 죄송합니다만, 검성 공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음···.”

디어사이드 각 분파의 정예들 역시 〈리소네이트 하모니의 결계 속에 있다. 에드발은 강검술파의 대표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레겐샤우어와의 결투 이래 쭉 폐관하고 있었다.

무슨 용건으로 이곳에 온 것일까?

3.

[레벨:70/70]

[체력:24][근력:17][민첩:16]

[마력:17][정신:14][감각:12]

[신성:06]

[특성:검성(S+),불요불굴(S),초직감(A) 외 2종]

[기술:유수차원참(U),디어사이드 이중 기심법·극(S+),디어사이드 강검술·극(S),버틀러 류 병기술·극(A),창성 유파 방어술(A) 외 7종]

[설명:만 60세, 인간족. 대륙십이걸의 정점 트리플 스타의 일각이며, 그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는 남자.]

아이덴은 할 말을 잃었다.

“·········.”

오랜 폐관수련으로 인상은 핼쑥해졌지만, 척 봐도 어딘가 달라졌다. 결투로부터 겨우 1년 하고 조금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레벨이 2나 올랐다고?’

검성은 어느샌가 인간의 한계라 일컬어지곤 하는 70레벨에 도달한 상태였다. 별안간 에드발 옆에 자리 잡은 노인이 껄껄 웃었다.

“하하. 과연 자네야. 검성이 겪은 변화를 한눈에 알아본 모양이군?”

“···교수.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일전의 결투에 감명받은 나머지 한 가지를 제안했을 뿐이라네. 어거지로 익힌 삼중 기심법의 완성을 돕고 싶다고 말이지. 그럭저럭 괜찮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지 않나?”

절로 감탄이 흘렀다.

두 절세 검사의 결투는, 디어사이드의 검술을 꺾고자 자신의 기술을 갈고 닦아온 노인의 생각마저 바꾼 것이다.

침묵하던 에드발이 입을 열었다.

“···불완전했던 삼중 절기도, 교수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형태가 잡혔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여기까지가 내 한계인 모양일세. 더는 앞길이 보이질 않더군.”

“무학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대로 정진한다면 언젠가는···.”

기쁜 나머지 그리 말하는 아이덴을 응시하며, 에드발은 고개를 젓는다.

“오랫동안 검술을 갈고 닦다 보니, 우둔한 나조차 검술이라는 분야에 한해서는 감식안이 길러지더군.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 굳은 머리로는 이 이상 앞길을 개척하기 힘들 것 같네.”

살짝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는 에드발.

“···생각을 고쳐 주시죠. 검성 공께서 할 수 없다고 단언하셨다면, 강검술 유파의 다른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동감하네.”

“···예?”

그걸 아는 양반이 왜 내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아이덴은 어처구니가 없어진 나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우리 유파 소속이 아닌 다른 이에게는 가능할지도 모르지.”

“···천인살 말입니까?”

“물론 레겐샤우어가 더 나은 자질을 갖긴 했지만, 그 역시 나와 같은 세대가 아닌가? 머리가 굳은 건 똑같다네. 20년쯤 더 산다 쳐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는 일은 힘들 것 같군.”

옆에서 두 사람의 문답을 바라보던 블레이크가 픽 웃었다.

“아이덴··· 생각보다 눈치가 없군? 검성은 지금 자네에게 기대하고 있는 거라네.”

“···저 말입니까?”

아이덴은 의문을 느꼈다.

검성과 천인살의 결투를 보고 삼중기심법에 관한 갈피를 잡기는 했으나, 고찰의 깊이는 당연하게도 두 검사에게 미치지 못했으니.

에드발이 평온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다시 한 번 레겐샤우어와 검을 나누어 볼 생각일세. 그때 자네가 에피오와 함께 우리 둘을 지켜봐 준다면 좋겠네. 조금밖에 가르쳐보지 않았지만··· 그 아이 역시 대단한 그릇을 가진 것 같더군.”

원작의 그가 그랬듯, 에드발은 짬짬이 에피오에게 디어사이드 유파의 검술을 지도했다. 그 과정에서 종종 반짝임을 보여준 모양이다.

아이덴이 의문에 찬 기색으로 묻는다.

“···천인살이 과연 결투에 응하겠습니까?”

“나와 같은 결말에 도달했다면, 그리고 그가 여전히 디어사이드 유파의 무인이라면··· 필시 그리하겠지.”

에드발의 말투는 묘한 확신으로 차 있었다.

4.

오래 전 세상에서 멸종한 푸른 새가 겨울이슬 섬 상공에 나타났다. 한번 날갯짓할 때마다 찬바람이 휘몰아친다.

이르모크위는 크게 외쳤다.

“이리스 슈니펠트! 나와서 이야기 좀 하자!”

〈서드보이드

우우우웅─ 거대한 검은 구체가 날아와 그녀의 거대한 몸체를 삼키고 지나갔다. 하늘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별안간 수평선 너머에서 사라진 것과 똑같은 새 하나가 날아와 중얼거린다.

“아핫, 아쉽게 됐네. 방금 그거 분신이거든. 그나저나 정말 가차 없구나.”

펄럭! 기신족 루가그리즈를 타고 날아온 이리스가 혀를 차며 물었다.

“너도 분신인 것 같네. 여긴 무슨 용건?”

“한 가지 알려줄 게 있어서. 우리 동료 중 둘이 블리스피엘 녀석들에게 당했어. 리더인 벨리포트 샤페크와 성직자 지르갈 알렉시크. 덤으로 기신족인 스크리젬도.”

“그래서?”

“갑의 위치가 뒤바뀌었다는 뜻이야. 내가 느끼기로는 외곽 섬에서도 비범한 기운이 있는 것 같은데, 저번 싸움에 나오지 않은 인원 중에도 강한 녀석이 숨어 있지?”

이르모크위 말대로, 이리스의 친족 중에는 하겔 이상의 강자가 몇 명 있다.

5영웅 측에는 여전히 세 명의 주축이 남아 있으나, 정예 전력의 숫자나 결전병기 유무를 보면 그들에 비해 부족하다. 총력전을 치른다고 하면 분명 슈니펠트 가문이 최강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아이덴 그 녀석의 발목을 좀 붙잡아 줘. 나는 그사이에 움직여서 볼일을 좀 볼 생각이니 말이야.”

“뭘 할 생각인데?”

“하하, 너희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신경 안 써도 돼. 무슨 수작을 부려서 슈니펠트 가문을 위협할 수 있었다면, 진작 섬을 침공할 때에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겠어?”

이리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쪽에는 별 이득 없는 일이란 거네.”

“그건 아니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눈에 거슬리는 놈들을 치워버릴 기회잖아?”

“정보는 잘 받았으니까, 이만 꺼져.”

〈프리즘 프레셔

빠드득! 이리스가 발한 압력에 분신의 몸은 종잇조각처럼 찌그러진다. 그리고는 피를 내뿜으며 폭발했다.

‘어쩔까···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긴 하지만, 저 녀석의 의도에 넘어가는 것 같아서 별로 내키지 않는데.’

한참을 상념에 빠져 있던 이리스는 조용히 고개를 내저었다. 이르모크위의 속셈이 뭔지는, 원로회와 회의하며 천천히 파악해 보면 될 일이다.

별안간 멀리서 새 한 마리가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또 분신···은 아닌 것 같네.”

은청색 깃털의 새가 병 하나를 쥐고 있다. 추운 북부에서 전서구로 쓰이는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