뤽은 나비를 보았다.

단아한 머리칼 위로 어여쁜 나비가 내려앉았다.

“내가 이 나비를 죽이게 해줘.”

“미쳤냐?”

“아니면, 널 죽일 거야.”

“넌 실 없이 못 움직이잖아.”

“내가 미치면, 실을 끊고 나 혼자 움직일 수 있어.”

헨릭은 얼굴을 찌푸리며 마나의 실을 감은 손아귀를 움직였다.

뤽은 나비의 날개를 잡아 쥐었다.

“저걸 어떻게 키워야 하냐?”

헨릭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밤새 있었던 일을 들은 샤네트와 아이리스는 고심했다.

헨릭은 슬쩍 말했다.

“그냥 인형소환상자에 처박아 둘까?”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아요.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축에 속하는 인형이잖아요. 잘하면 좋은 전력이 될 거예요.”

샤네트가 방안을 제시했다.

“일단 뤽의 불안정한 성향부터 바꿔 봐요.”

“아이를 키우는 거라면 내가 해보고 싶구나.”

아이리스가 자신 있게 나섰다.

그녀는 조그만 소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뤽, 그 나비를 놓아주렴.”

“어째서?”

“생명은 작은 것이라도 소중하단다.”

“옛날 사전에서 봤던 기억이 나. 이 나비는 식용이래.”

“……정말이니?”

아이리스가 혹한 표정을 지었다.

샤네트가 재빨리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끌어당겼다.

“제가 해볼게요.”

그녀는 뤽과 시선을 맞추곤 조근조근 얘기했다.

“뤽, 그 나비를 놓아줘.”

“어째서?”

“뤽이 그 나비의 입장으로 생각해봐. 거인이 날개를 꼬집고 있다면 얼마나 아프겠니?”

“난 아픈 것도 좋은걸.”

“…….”

샤네트는 말문이 막혔다.

두 여자가 바라보자 헨릭은 손 사레를 쳤다.

“난 못한다.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것들은 보기만 해도 신물이 나.”

“하긴 제가 봐도 그래요. 아저씨는 어린애랑 잘 못 놀아주시죠?”

“인마, 저 인형이 모습은 어려도, 실제 나이는 수백 살이 넘어. 괜히 내가 할머니라고 했겠냐?”

결국 세 사람의 시선은 한 명에게로 갔다.

강윤수는 술병에서 입을 떼고 말했다.

“하기 싫어.”

“세상에서 가장 육아가 어울리지 않는 놈을 꼽으라면 난 단연코 저놈부터 가리킨다. 그 다음은 나고.”

헨릭이 덧붙였다.

그러나 샤네트는 고개를 저었다.

“강윤수 님 말고 소환수들은 어때요? 특히 샐리라면 뤽이랑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강윤수는 오른손을 내뻗었다.

“샐러맨더 샐리 소환.”

불길이 피어올랐고 샐리가 소환됐다.

자그마한 소녀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뤽을 발견하곤 반색했다.

“안녕!”

“안녕.”

“넌 누구니? 난 샐리라고 해!”

“뤽이야.”

“만나서 반가워! 샐리랑 놀자!”

샐리는 자기 또래의 소녀를 만난 것이 반가운지 살갑게 굴었다.

“정령이네.”

뤽은 나비를 품에 넣고 미소 지었다.

두 소녀는 마주앉았다.

“흐음, 인형 놀이를 하고 싶은데, 인형이 없어!”

“나한테 있어.”

뤽은 풍성한 옷자락 밑에서 인형 두 개를 꺼냈다.

인형 놀이에 쓰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예술품이었다.

“와아! 신기해!”

두 소녀는 웃으며 인형을 쥐었다.

헨릭은 뤽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손아귀를 높이 들었다.

그가 실을 휘감은 손을 높이 들면, 뤽은 가벼운 행동은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제법 괜찮아 보이는데?”

“그렇죠? 어린애들은 또래끼리 금방 친해진다니까요.”

그러나 친목은 오래가지 않았다.

샐리가 눈을 크게 떴다.

“뤽이 샐리 인형을 부러뜨렸어!”

“하지만 목을 부러뜨려야 죽는걸.”

“왜, 왜 인형을 죽여……?”

“그게 인형 놀이잖아.”

“으아앙! 아빠!”

샐리가 울먹이며 강윤수에게 달라붙었다.

샤네트는 한숨을 쉬었다.

“……샐리는 안 되겠네요.”

강윤수는 샐리를 소환계로 돌려보내고 다음 소환수를 불러냈다.

“아이시클 아클, 소환.”

“후우! 드디어 사막에서 벗어났군.”

백발의 소년이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나타났다.

“아클.”

“왜 그래?”

강윤수는 뤽을 가리켰다.

아클은 못마땅한 눈초리로 소녀를 바라봤다.

“흥, 또 어쭙잖은 잡일이나 시키려고…… 허억!”

얼음의 정령은 순간 가슴을 움켜쥐었다.

태생부터 차갑기 그지없는 심장이 뛰었다.

뛰어난 미색이 순진한 소년을 홀렸다.

“너, 넌 이름이 뭐야?”

아클이 간신히 한마디 떼었다.

“뤽.”

“혹시 왕관 필요 없어? 이거 되게 귀한 건데.”

아클이 그토록 아끼는 서릿발 왕관을 벗어줬다.

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강윤수가 난입해 벗어 둔 왕관을 가로챘다.

“너, 너 이 자식!”

“돌아가.”

아클이 불평을 토로하지도 못한 채 소환계로 강제로 돌아갔다.

애당초 아클을 소환한 것은 서릿발 왕관을 돌려받기 위해서였다.

강윤수는 다음 소환수를 불러냈다.

“백랑괴수 화이트 소환.”

“카르르릉-!”

화이트가 투지를 태우며 소환됐다.

은빛 갈기의 웨어울프는 성장해 울티카 유적에 있을 때보다 훨씬 늠름해졌다.

강윤수는 그에 맞는 명령을 내렸다.

“뤽을 설득해.”

“……리마쿠로. 라케둔.”

주인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따르겠다 라는 의미였다.

화이트는 뤽에게 어슬렁어슬렁 접근했다.

“라쿠라므르.”

“…….”

“키모르쟈나?”

“…….”

“하키모크. 하키모크.”

“…….”

“라추미름? 하키모크릴.”

“…….”

“……우르노크라!”

화이트가 울부짖었다.

강윤수는 화이트를 소환계로 돌려보냈다.

헨릭이 기가 차서 웃었다.

“……대체 웨어울프는 왜 불러냈냐?”

“맞아, 웨어울프는 무섭단다.”

아이리스는 숨었던 나무 뒤편에서 덜덜 떨며 나왔다.

도플갱어인 그녀는 웨어울프를 무서워했다.

강윤수는 마지막 소환수를 불러냈다.

“꼬마 리치 소환.”

땅딸막한 해골이 나크론의 일기장을 꼭 쥔 채 소환됐다.

“스승, 이 일기장에 이상한 글귀가 많다. 비밀 내용을 암호로 숨긴 것 같은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 부분들은 나크론의 사적 생활이다. 해독하지 않아도 괜찮아.”

“고맙다.”

강윤수는 뤽을 가리켰다.

“뤽을 설득해.”

꼬마 리치는 뤽에게 다가갔다.

“너한테서 죽음의 냄새가 난다.”

“해골이네. 너를 죽이고 싶은걸.”

“너는 날 죽일 수 없다.”

“어째서?”

“나는 생명 그릇이 깨지지 않는 이상 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그걸 깨뜨리면 되겠다.”

“…….”

꼬마 리치는 자신의 약점만 알려주고 말았다.

결국 리치도 소환계로 돌아갔고, 뤽의 성향은 바꾸지 못했다.

헨릭은 마나의 실을 휘감았다.

“하기야 미쳤던 놈이 그리 쉽게 제정신으로 돌아오겠냐.”

그는 뤽을 인형소환상자에 넣었다.

소녀의 작은 몸뚱이가 상자 속으로 사라졌다.

헨릭이 투덜댔다.

“평생 혼자 살다가 애 하나 떠맡으려니 죽겠구먼.”

샤네트가 픽 웃었다.

“그러게 제가 그랬죠? 여자 마음 신경 안 쓰다가, 나중에 여자 생기면 골치 아파질 거라고.”

“설마 여자가 생겨도 이런 식으로 생길 줄 누가 알았겠냐?”

강윤수는 헨릭이 홀로 뤽을 육성했던 삶을 떠올렸다.

그때 뤽의 클래스는 ‘술꾼’이었다.

‘……이번엔 다른 일행이 있어서 다행이군.’

그가 소환수까지 불러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뤽은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강력한 인형이 되어 주인을 돕지만, 때론 쓸모없는 인형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마황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서둘러야 한다.’

마지막 삶이란 것을 안 이후.

마황이 일찍 나타난다고 들은 이후.

마음은 언제나 조급했다.

“가자.”

다음 목적지인 블페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들은 짐을 챙겨 숲을 떠나갔다.

아이리스는 울적하게 말했다.

“백설이가 살아 있었다면, 걷지 않아도 됐을 텐데.”

헨릭이 빈정거렸다.

“그놈의 백설이 타령, 지겹지도 않냐?”

“헨릭은 정말 매정하구나.”

아이리스가 울먹이며 주먹을 꽉 쥐었을 때였다.

헨릭이 품에서 세공품을 꺼내 그녀에게 줬다.

한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작은 크기의 백마였다.

“헨릭?”

“그거 줄 테니까 그만 좀 징징대.”

희고 세련된 세공품이었다.

척 보더라도 세공품을 만든 사람의 정성이 느껴졌다.

샤네트가 싱긋 웃었다.

“이제 와서라도 여자의 마음을 이해해 보시려구요?”

“인마. 어쩌다가 피나무 조각을 발견해서 만든 거다.”

피나무는 목질이 연하고 색깔이 하얘 세공하기 알맞았다.

“원래 내가 세공품 주고받는 거 유치해서 잘 안 하는데 오늘은 어째 하나가 남더라. 뭐, 추우면 땔감으로 써도 되고.”

“헨릭, 고맙구나.”

아이리스는 백마상(白馬狀)을 쓰다듬었다.

“정말 고맙구나.”

그녀는 눈물을 글썽였다.

동시에 가슴 속 흰 그림자의 생각이 전해져 왔다.

지긋지긋하군.

* * *

“의심스럽군.”

셰릴이 말했다.

1급 수사관 일동은 당황했다.

그들은 경험상 셰릴의 말은 무조건 주의 깊게 경청했다.

“뭐가 말입니까?”

“그 남자.”

셰릴은 유명했다.

3계급 특진으로 수사본부를 떠들썩하게 만들어서도 남다르게 황홀한 외견 탓도 아니었다.

그녀의 촉감은 예리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어제 만났던 0급 수사관님을 말씀이십니까?”

0급 수사관.

드래곤 발톱 무늬 아뮬렛을 내보였던 남자.

1급 수사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저도 뭔가 걸리긴 했습니다.”

“0급 수사관이나 라펜터힐 경감님 얘기는 일반인이 알기 어렵죠. 드래곤 발톱 무늬 아뮬렛도 정말 드래곤 것이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였고.”

“하지만 제 눈에는 오히려 자기가 0급 수사관이니 믿으라고 변명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심증만으로 의심하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이 못 된다.

그러나 이들, 1급 수사관들은 유독 감이 남달랐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건 케이스를 읽어온 대뇌가 의심해 보라며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내가 수사본부를 찾아가 보지.”

셰릴이 말했다.

1급 수사관들은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손수건으로 입을 둘러맨 채 급사병에 걸린 시체인형들을 태우고 있었다.

어느 유적에서 발견한 인형들이었는데 급사병에 감염됐는지 보랏빛 반점이 선명했다.

“굳이 지금 움직일 필요가 있으십니까? 돌아가는 길에 확인해도 될 텐데요.”

“아니, 지금 꼭 가봐야겠어.”

셰릴은 단호히 말했다.

그러곤 수사관들을 흘깃 봤다.

“일 빼먹으려는 건 아니다.”

1급 수사관 일동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인원이 없어서라지만, 그들은 자신 정도 계급이 이런 잡일을 맡는다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남은 일은 처리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한 수사관이 대표로 말했다.

셰릴은 곧장 말을 몰아 숲을 벗어났다.

남은 남자들은 한숨을 쉬었다.

“왜 갑자기 저러시죠?”

“좀처럼 예정된 계획을 바꾸시는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혹시 모르죠. 우리 여왕님께서 드디어 눈에 맞는 남자를 찾은 걸지도.”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셰릴은 아름다운 외견과 우월한 몸매와 대조적으로 성격이 차가웠다.

오죽하면 그녀에게 눈독 들인 수사관 남성들도 ‘여왕’이란 별명을 체감하고 돌아올 정도다.

‘마음에 걸린다.’

셰릴은 말을 타며 생각했다.

그녀의 살짝 솟아오른 금발이 목 주위에서 찰랑였다.

어젯밤 본 남자의 모습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 나이라곤 믿기지 않는 눈빛이었지.’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얼굴.

무심한 눈빛.

완벽한 연기를 할지라도 셰릴에게서 그것을 감출 순 없었다.

‘젊은 남자가 가질 법한 기운이 아니다.’

셰릴은 그와 비슷한 눈빛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수십 년의 세월을 견뎌온 사형수.

그 남자의 눈빛은 죽어 가는 사형수의 그것과 비슷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남자가 수사관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저 예감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

어디까지나 심증이다.

하지만 셰릴은 자신이 원하는 일은 반드시 행했다.

그런 뛰어난 행동력이 특진의 1급 공신이었다.

‘0급 수사관 목록에 그가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0급 수사관 목록은 높은 기밀 사항이다.

그러나 1급 수사관인 셰릴은 그 목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저 목록만 확인하고, 수사관이 맞다면 그걸로 된 일이지.’

행여나 그가 0급 수사관이 아니라면?

‘수사관 사칭죄로 체포한다. 그리고 심판대로 보낼 것이다.’

수사관 사칭, 그것도 0급 수사관 사칭은 중죄다.

수사본부 입장에선 귀족을 사칭하고 다닌 것이나 다름없다.

판사에 따라 종신형이나 교수형이 선고될 가능성도 충분했다.

‘내 감이 맞았을 때 얘기지만.’

셰릴은 말을 빠르게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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