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드득.

라벨스티르가 서 있는 바닥에 마찰음이 울렸다.

강대한 마력이 그를 에워쌌다.

“종교 권유라. 이토록 멋들어진 제안은 오랜만이군. 무슨 종교로 바꾸란 거지?”

“광신교.”

“광신교! 그럼 그대가 그 유명한 해골교주로군. 내가 개종해야 할 만큼 그대의 종교가 훌륭한가?”

강윤수는 담담히 말했다.

“아니.”

“그런데 어째서 내게 개종을 권유하는 거지?”

“권유가 아니라.”

강윤수는 창밖을 가리켰다.

성벽이 둘러싸인 신전의 요새를 세 마리의 드래곤이 파괴해 갔다.

“협박.”

오늘 밤 검은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라벨스티르를 광신교로 개종시켜야 했다.

라벨스티르가 광신교를 믿겠다고 선언하면, 종교통일은 이뤄진다.

라벨스티르는 싱긋 웃었다.

“내가 진심으로 그 제안을 승낙할 거라 예상했다면, 정말 실망이군.”

순간, 방안에서 마력이 폭발했다.

“죽어라.”

콰장창!

창은 깨졌고, 강윤수는 힘에 휘말려 거세게 날아갔다.

강윤수는 성벽에 부딪혔다가 균형을 되찾고 도로 떠올랐다.

모든 뼈에 선명하게 금이 갔지만 더딘 속도로 회복됐다.

‘불사의 힘이 수명을 다해 가고 있다.’

강윤수는 신전 꼭대기를 봤다.

사악한 마력이 번지고 있었다.

‘예상대로 쉽지 않군.’

지금 라벨스티르는 강력한 흑마법을 외우고 있다.

‘세 드래곤에게 마법으로 대적할 정도로 라벨스티르의 힘은 강력하다.’

라벨스티르는 평생을 흑마법에 바쳤던 강력한 리치다.

미약한 꼬마 리치와 달리 노련한 리치의 강대함은 무섭기 그지없다.

라벨스티르를 몰락시키고, 강제로 광신교를 믿게 하기 위해선 보통 방법으론 안 되었다.

강윤수는 세 마리의 드래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크라아아아악!”

“목덜미의 비늘이 가장 얇다! 신성력을 담은 화살을 쏴라!”

“성기사들은 드래곤의 목덜미 위로 올라타 검을 내찔러라!”

드래곤의 위압감에도 불구하고 실피아교 신도들은 매섭게 싸웠다.

시련 속은 역사상 실피아 교단이 가장 부흥했던 시기이다.

광적인 믿음을 가진 신도들은 패배를 용납치 않았고, 무척 강인했다.

또한, 신전에선 신성력이 빠르게 보충되고 성직 관련 클래스에게 각종 혜택이 많아진다.

‘그래도 드래곤들이 압도적이군.’

전황은 세 마리의 드래곤이 완벽하게 우세했다.

실피아 교단 측에 유리한 이점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드래곤이란 종족은 그만큼 강대했다.

신전은 순조롭게 파괴되어 갔다.

‘단순히 신전을 부수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라벨스티르를 광신교로 개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라벨스티르를 굴복시키고, 개종을 선언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찾아야 할 물건이 있다.

리치의 유일한 약점.

‘생명그릇.’

불사에 강대한 리치이지만 한 가지 약점이 존재한다.

근처에 숨겨둔 생명그릇이 깨지면, 리치는 사망해 버린다.

「실피아 교단 신전 꼭대기 교주의 방에서 내려왔습니다.

최상층에 도달한 자는 결계를 통과할 자격을 얻습니다.

신전의 모든 구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습니다.」

‘일부러 신전 꼭대기까지 오르길 잘했군.’

그 순간 라벨스티르의 주문이 완성되었다.

신전 꼭대기로부터 새카맣고 거대한 사슬이 나왔다.

시커먼 사슬이 날뛰는 세 드래곤의 목덜미를 묶어버렸다.

“크라아아아아-!”

세 드래곤은 격렬히 저항했다.

그러나 저항할수록 목덜미에 상처가 깊게 남았다.

“지금이다!”

“드래곤을 죽이자!”

그 틈을 이용해 신도들은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세 드래곤과 교단이 싸움을 벌이는 동안, 나는 생명그릇을 찾는다.’

강윤수는 신전에 다시 들어갔다.

낡은 창고 뒤편으로 숨겨진 지하실로 통하는 통로가 보였다.

「실피아 교단 신전의 결계를 통과할 자격이 있습니다.

금단의 지하실에 출입합니다.」

끼익.

문을 열고 통로를 빠르게 날아가자 진득한 피비린내가 풍겨왔다.

피에 젖은 감옥이 보였다.

감옥에는 제단의 희생양으로 바쳐질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사, 사람? 아니, 해골이잖아!”

“해골? 아, 아냐! 악마라도 좋아! 제발, 제발 우릴 여기서 꺼내줘!”

강윤수는 그들의 간곡한 애원을 무시하고 날아갔다.

곧 피에 젖은 제단이 보였다.

거대한 신전 못지않게 제단도 무지막지한 크기였다.

“크르르르르르렁……!”

제단의 주위에는 괴악한 생김새의 변이체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제단의 타락한 피를 먹고 변이된 생명체들.

금속방패를 단박에 뜯어버릴 수 있는 정도의 악력과 민첩한 움직임을 가졌다.

강윤수는 기둥 뒤편으로 숨었다.

‘불사의 힘은 거의 떨어졌다. 이제 몸을 사려야겠지.’

혼자의 힘으로 제단 주위의 변이체 수백 마리를 처치할 순 없었다.

그러나 생명그릇을 훔치기 위해선 반드시 저들을 넘어서야 했다.

강윤수는 감옥으로 돌아왔다.

“해, 해골이다! 아까 그 해골이야!”

“제발, 제발 우릴 구해줘!”

사람들이 애원을 했다.

강윤수는 손에 검은 신성력을 담아 휘둘렀다.

콰강-!

감옥의 문고리가 각각 폭발했다.

철창이 열리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뛰쳐나왔다.

“사, 살았다! 이젠 살았어!”

“감사합니다! 교단에 잡혀 살았던 인생도 이젠 끝이야!”

“겉모습은 해골이지만 마음은 정말 따스한 분이셨군요. 맞지요?”

강윤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검은 신성력이 사람들을 감쌌다.

그제야 사람들은 이상함을 눈치챘다.

“어, 어?”

“가, 갑자기 몸이 떠올라.”

“우릴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강윤수는 사람들을 허공에 이끌어 제단으로 가져갔다.

그들은 경악했다.

“서, 설마!”

“아, 안 돼!”

콰직-!

사람들은 뭉개졌고, 제단은 핏물로 물들었다.

「512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제단의 희생양으로 바쳤습니다.

희생된 인원은 성기사 195명, 용병 167명, 마상기사 147명, 마법도적 3명입니다.

희생양들의 능력치가 타락한 힘이 되어 뼛속을 가득 메웁니다.

추악한 악행을 한 몬스터가 되어 인간들과 적대관계가 형성됩니다.」

본래라면 실피아교 성기사들이 한 명씩 나눠 가졌을 힘이다.

그러나 강윤수는 혼자 독식했다.

‘이제야 싸워볼 만하겠군.’

강윤수는 자신의 갈비뼈를 하나 뜯었다.

온몸이 강화되어 웬만한 둔기보다 뼈다귀를 휘두르는 것이 나을 정도였다.

강윤수는 빠르게 날아가 가까운 변이체의 머리를 후려쳤다.

콰직-!

변이체의 견고한 머리뼈가 깨지고, 단숨에 즉사했다.

“크르러러러러렁-!”

수백 마리의 변이체가 강윤수를 향해 몰려왔다.

강윤수는 갈비뼈를 하나 더 뜯어 양손에 뼈다귀를 매섭게 휘둘렀다.

「실피아 교단의 타락한 변이체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선사했습니다.

손에 든 뼈다귀가 강철 둔기보다 강력한 공격력을 선보입니다!

변이체의 머리를 연속 3회 터뜨렸습니다!」

강윤수는 신중히 변이체들을 한 마리씩 제대로 처치해 갔다.

모든 변이체를 죽이고 나자 별안간 천장이 거세게 흔들렸다.

‘지상도 거칠게 싸우고 있군.’

시간이 별로 없었다.

‘라벨스티르는 지하실에 생명그릇을 숨겨뒀다.’

리치는 특성상 자신과 가까운 곳에 생명그릇을 숨겨둬야 한다.

그래서 가장 은밀하고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숨긴다.

강윤수는 지하실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 막다른 벽에 도달했고 벽에 뼈다귀 손을 가져다 댔다.

촤아아악-

벽이 허물고 저편에 희고 새하얀 공간이 나타났다.

마법으로 이뤄진 널따란 복도.

양편으로 수많은 문이 존재했다.

끼익.

강윤수는 첫 번째 방문을 열었다.

방문을 열자 환한 빛이 들어왔다.

빛나는 그릇이 산더미처럼 방안에 가득 쌓여 있었다.

‘모든 방은 생명그릇으로 쌓여 있다.’

다른 방문을 열어봐도 마찬가지.

방마다 생명그릇이 수백 개.

그리고 그릇이 넘치도록 담긴 방이 수백 개였다.

라벨스티르가 가짜 생명그릇을 잔뜩 준비해 둔 것이다.

만에 하나 침입자가 오더라도 손쉽게 생명그릇을 찾을 수 없도록.

각방에 일일이 들어가 모든 그릇을 파괴해도 하루가 꼬박 걸린다.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강윤수는 손을 휘둘러 검은 신성력을 발휘했다.

모든 방문이 부서지고, 내부에 있던 그릇이 파도처럼 몰려나왔다.

강윤수는 허공에 그릇들을 움직이게 했다.

‘만물제작가로서 창조했던 삶.’

그는 날 선 눈초리로 생명그릇들을 관찰했다.

수백의 그릇 중 교묘하게 질감이 다르고 두꺼운 그릇이 존재했다.

강윤수는 그 그릇을 잡아챘다.

‘이게 진품이군.’

그는 진짜 생명그릇을 쥐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석양은 지고, 밤이 되어 있었다.

칠흑의 보름달이 떠올라 제한시간이 거의 다 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매서운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어둠의 사슬이여.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존재를 속박하라.”

라벨스티르의 흑마법은 마나 대신 희생양을 소모했다.

“어억!”

“실피아 여신이시여!”

주변의 신도들이 떼거리로 죽어 나가고, 강력한 흑마법이 드래곤들을 덮쳤다.

“크라아아아아-!”

세 드래곤은 격렬히 저항했다.

이그누스 드래곤과 빙설룡이 동시에 숨결을 내뱉었고, 신전은 엉망으로 변해갔다.

“타락한 자가 두려움도 없구나!”

더스트 드래곤이 괴성을 내지르며 독액 숨결을 내뱉었다.

라벨스티르는 재빠르게 움직였으나 장대한 독액숨결에 파묻혔다.

솨아아아악……!

“정말…… 멋대로 해대는군.”

라벨스티르의 살점이 녹아내렸다.

두꺼운 뼛골에 긴 로브를 착용한 리치가 본모습을 드러냈다.

라벨스티르는 파괴된 신전과 죽어 나간 신도들을 보며 냉소했다.

“한낱 도마뱀들이 내 모든 것을 파괴했구나. 중립을 운운하는 놈들이 무엇에 이끌려 날 덮쳤는지 모르겠다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라벨스티르의 형체가 희미해졌다.

공간전이 마법.

생명력이 떨어지자 세 드래곤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이다.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언젠가 반드시 대륙은 내 손 안에 들어올 것이다.”

끔찍한 웃음소리와 함께 라벨스티르가 사라지려는 찰나였다.

콰직.

“커헉!”

순간 라벨스티르의 형체가 도로 뚜렷해졌다.

라벨스티르는 평소 느끼지 못했던 격통에 아연실색했다.

그리고 강윤수가 생명그릇을 든 채 걸어왔다.

“네, 네놈은…….”

“광신교를 믿어라.”

강윤수는 생명그릇을 칼자루로 내려쳤다.

콰직.

“커허헉!”

생명그릇에 실금이 갈라졌다.

세 드래곤은 눈매를 좁히고 일단은 그 상황을 방관했다.

라벨스티르는 증오스런 눈길로 그에게 손을 내뻗었다.

“스니치!”

상급 절도마법.

강윤수의 손에 들린 생명그릇이 일순간 흔들렸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광신교 믿어.”

강윤수는 또다시 생명그릇을 내려쳤다.

콰직.

“커허헉! 제길. 무슨 수를 부렸지? 어째서 마법이 먹히질 않는 거냐!”

“리치로서 미숙하군.”

“무, 무슨 소리지?”

“리치는 생명그릇에 금이 간 순간부터 마력이 새어나간다.”

“말도 안 돼!”

라벨스티르가 이를 갈았다.

“리치는 흑마법의 정점으로 군림한 종족이다! 네깟 놈이 리치에 관해 뭘 안다고!”

“나는 리치가 되어본 적이 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네가 알아서 뭐하게.”

강윤수는 연속해서 생명그릇을 내리찍었다.

라벨스티르는 한낱 스켈레톤처럼 괴로워하며 꿈틀댔다.

“허억……! 내, 내게서 뭘 바라지? 돈이냐? 아니면 흑마법? 뭐든지 주겠다!”

강윤수는 리치를 협박했다.

“광신교 믿으라고.”

서서히 밤이 다가왔다.

검은 보름달이 떠오르려던 찰나.

라벨스티르가 신음하며 말했다.

“나, 나는…… 실피아교를 버리고…… 광신교를…… 믿겠다.”

「대륙 최대교단의 교주 리치 라벨스티르가 개종을 선언했습니다!

실피아 대륙 내 몬스터 신도들의 종교통일이 이뤄집니다!

+모종의 이유로 웨어울프 종족이 광신교를 증오합니다.」

커다란 울음소리가 순식간에 대륙에 울리기 시작했다.

바로 몬스터들의 기도문이었다.

“케륵! 케르륵! 우르노크라!”

“커르륵! 우르노크라…….”

“우르노크라아아……!”

몬스터 수천의 합쳐진 울음소리가 드높은 신전까지 들려왔다.

세 마리의 드래곤이 사라지고, 파괴된 신전이 허물어졌다.

모든 것이 새하얘졌다.

「세 번째 시련을 통과했습니다!

본드래곤 라웰칸을 처치해 추가보상을 획득합니다.

어두운 돌

명계왕의 뼛조각(추가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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