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혼란스럽다는 게 주가 된 뒤죽박죽된 감정이 느껴져 왔다.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이 새끼 눈이 살짝 이상하다는 것.

전성기 정하얀이 생각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걔네 진짜 담근 거 맞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망원경을 돌려보지만 이 새끼들이 보이지 않는다.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날아갔는지 모르겠지만….

놈들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파란 길드의 공화국 지부는 참혹한 범죄 현장이 벌어진 사건 현장처럼 보였다.

물건들은 엉망진창 널브러져 있었고 폐허처럼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책상이나 의자 같은 것들은 반쯤이 부서져 있고….

‘저거 핏자국 아니지?’

뭔가 이상한 자국들이 묻어 있었다. 아직까지 말끔한 외관을 유지하고 있는 임시 길드 하우스와는 다르게 안은 못 쓰게 되어버린 지 오래.

지부를 폐쇄 할 생각은 아닌지 길드 직원들이 몇몇 보이기는 했지만 표정이 어두워 보인다.

한쪽에서는 울음소리가 끄윽 끄윽 터져 나왔고 누군가가 엄마 나 어떻게 해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쉬지 않는 것을 보면 관련 업무는 진행 중인 모양, 너무나도 필사적인 그들의 모습처럼 사소한 잡담마저 들려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별로 상관하고 싶지는 않다고 애써 고개를 돌려봤지만 회의 테이블에 남겨져 있는 낯익은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싹싹 비어 있는 도시락 통.’

익숙한 도시락 통이다. 한소라가 항상 들고 다니던 거. 정하얀이 항상 먹는 거.

“…….”

‘너네 웨딩 준비한다며.’

정하얀도 연관되어 있는 건가. 분명히 납치사건은 잘 넘겼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대충 알고 있는 건가?

가장 쉽게 추론할 수 있는 건 김현성이 손을 내밀었을 가능성.

녀석들을 죽이는 건 간단한 일이지만 은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하얀이가 가지고 있는 마법이라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 테고….

그러고 보니까.

‘정하얀만 연관되어 있는 게 아니네. 왜 이 누나는 정하얀이 웨딩 준비 중이었다고 거짓말한 거야.’

이지혜 얘도 수상해.

연관되어 있다면 행정처리도 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김현성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일 테니까.

모험가들이 실종되거나 의문사하는 경우가 흔하기는 하지만 대륙에서도 조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살인사건이나 실종사건이 일어나면 자연스럽게 민중의 지팡이들이 출동하는 것은 물론, 많은 인력을 투입해 관련 사건을 조사한다.

사이즈가 크면 클수록 투입되는 기관은 많아지고 언론들 역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유망한 신입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면 당연히 피드백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들은 모두에게 알려진 루키였으니까.

요즘에 들어서는 범죄를 은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거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나 집단들을 감시하는 장치도 마련되어 있기까지 하다. 이를테면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 같은 거.

사람을 아예 꺼버리게 만들려면 방법은 두 가지. 마법조사단이나 레인저조차 파악할 수 없는 마법과 방법으로 범죄를 저지르든가. 꼭대기에 있는 이지혜가 행정처리를 하든가.

-막아들.

-아, 아버지! 오랜만이에요. 안 그래도 누나랑 같이 인사드리려고….

-파란 공화국 지부 임시 길드원들 모험가 등록증이나 신분증명 할 수 있는 거… 아무거나 상관없으니까. 지금 찾아서 말해줄 수 있어? 아마 이름이….

-네… 넵.

-나온 거 있어?

-네. 그… 그런데 공화국 지부는 임시 길드원들을 뽑은 적이 없는데요. 말씀해 주신 이름으로 검색해 봤는데 아무것도 안 나와요.

-확실해? 공화국 튜토리얼 던전에서 공략조로 빠져나온 인원들로 한번 찾아봐.

-이번 공화국 튜토리얼 던전에서는 공략조가 없… 없었데요. 로그에는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 조금 더 알아봐야 할까요?

-아니, 괜찮다. 언제 누나랑 식사 자리 한번 마련할게. 사랑한다.

-네. 저, 저도 사랑….

-그래. 또 연락할게. 막아들.

아무래도 이번 같은 경우에는 두 가지 방법을 전부 사용했다고 봐야겠지.

베니고어넷 관리자도 모르고 있을 정도면 누나가 개입했다는 게 맞다. 내가 방에서 편하게 쉬고 있는 삼 일 동안….

‘누나가 설계한 건가 본데.’

김현성이 전체적인 그림을 그렸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눈은 조금 이상해지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심성은 착했으니까.

‘이 누나 진짜 솔직하지 못하게….’

뭐 이런 걸 숨기고 그래.

“저… 기영 씨?”

“네. 현성 씨.”

“그래서… 지금 어디 가신다고….”

“젠 님을 조금 뵈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건강하게 잘 계실지 걱정이 돼서.”

“…….”

“함께 가겠습니다.”

“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야 할 테니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호위 인력은 많으니까요. 현성 씨는 현성 씨가 할 일을….”

“다른 할 일도 할 일이지만 제게는 이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왜 따라오겠다는 거야. 이 새끼는.’

불편하게.

표정을 보면 쉽게 떠날 것 같지 않다. 수백만 대군을 앞에 둔 장수의 결연함마저 엿보이는 상황.

“파란 길드도, 교황청의 성기사님들도 계시니까요.”

“믿을 수 없습니다. 그 범죄자에게 가시는 거라면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와봤자 네 속만 뒤틀리겠지. 뭐.’

조용히 발걸음을 옮긴다. 그 누구도 한마디도 하지 않은 침묵이 왠지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진다. 왠지 모두가 이쪽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 같다. 뚜벅뚜벅거리는 소리밖에는 들리는 것이 없다.

물론 풍경은 점차 바뀌기 시작한다. 빛으로 가득 메워진 신전은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축축하고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니 빛 하나 비추지 않는 지하 심문실이 시야에 비친다.

심문이나 고문은 진행되고 있지 않은 모양,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마 사전에 내가 방문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어서겠지.

“흐윽… 흐으윽… 베니고어시여… 베니고어시여….”

하는 울음소리나.

“끄윽… 허어어엉… 베니고어 님. 제발 저를 구원해주소서.”

기도 소리.

“이 개자식들!”

욕하는 소리도 간혹 들린다.

“나는… 나는 정말로… 모르는 일입니다. 베니고어시여… 저는 그분을 해한 적이 없습니다….”

요한 추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후회 가득한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 양반 아직도 살아 있었네.’

점점 지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자물쇠나 마법, 혹은 신성력으로 봉인되어 있는 문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혼자 들어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명예추기경님. 그렇게는….”

“그분은 저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못 믿자너.’

“저는 템플러 젠을 변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분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분을 변호해야 하는 저의 의무이며, 그분이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입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저는 교국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제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교황님의 뜻이십니다. 명예추기경님.”

“바젤 교황님의 뜻은 존중하지만 저는 베니고어 님의 뜻에 세워진 교국의 신성한 법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이해합니다만… 부디 제 마음을 헤아려주셨으면 합니다.”

‘이 새끼들 왜 이래. 베니고어 님의 뜻에 세워진 교국의 신성한 법이라니까.’

이 새끼들도 물러설 생각이 없다. 빛의 성자의 납치 사건의 파장 때문일까.

아니면 바젤 교황의 메이스가 놈들의 머리를 한 번씩 스쳐 지나갔기 때문일까.

차라리 죽을지언정 나를 절대로 혼자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오늘 다른 스케줄도 있는데.’

“죄송합니다. 명예추기경님.”

“후우… 그렇다면….”

“…….”

“성기사 네 분과 동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것마저 지키지 않는다면 저도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기영 씨.”

‘이 새끼는 또 왜 끼어들어서.’

하지만 성기사들에게는 안도의 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자신들 네 명으로 나를 호위하는 것보다 노을빛의 검사가 내 안전을 맡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노을빛의 검사여.”

내가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성기사들은 거리를 벌리고 김현성은 거리를 좁힌다.

몇몇 사제들이 신성마법을 외우기 시작하고 마왕이라도 봉인해 놓은 것 같은 철문이 천천히 열린다.

그 안에 자리한 것은 온갖 주문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쇠창살, 그리고 조용히 앉아 있는 젠이었다.

“젠 님.”

일단은 작게.

“젠 님!”

그리고.

소리 높여 불러본다. 녀석의 천천히 눈을 뜨는 것이 보였다. 몸 상태는 나름 정상처럼 보이기야 한다.

일단 거지꼴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모난 곳이 없다.

물론 속은 엉망일 것이다. 이단심문실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상처가 없을 수가 있겠는가.

내가 온다는 소리에 급하게 치료했다는 게 더 설득력 있다. 아니나 다를까 신성력으로 몸을 회복한 흔적들이 보인다.

틀림없이 고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마 지옥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건 녀석뿐만이 아니다.

‘나는 시바 또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겠어?’

새장 속에 갇혀 있느라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이기영 역시 지옥에 있었다.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어두운 곳에서 죄수들이 입는 옷을 입고 있는 젠, 그리고 온갖 화려한 장식품에 둘러싸여 마치 인형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명예추기경.

마치 이 대륙의 어둠과 빛을 보여주는 것만 같은 연출. 녀석의 눈이 점점 커다랗게 커지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반가워하는 얼굴이었지만 점차 일그러지는 표정이 두드러진다. 내 모습을 확인할수록, 새장 속에 갇힌 새의 모습을 바라볼수록 놈은 절망하고 있다.

자신의 실수로 일어난 결과물.

자신이 지키지 못해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성자.

“이기영 님… 이기영 님!”

갑작스레 이쪽으로 뛰어오기 시작한다. 물론 녀석은 이쪽에게 닿지 못한다.

녀석을 구속하고 있는 쇠사슬이 놈을 잡아당겼으니까. 팔목과 발목에 영향이 있는지 붉은색의 무언가가 뚝뚝 떨어지고 있지만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괜찮으십니까? 이기영 님.”

“…….”

“괜찮으십니까… 지금… 정말로… 괜찮으신 겁니까?”

일단은 억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네. 저는… 저는 괜찮습니다.”

“…….”

“괜찮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니야. 사실 욘나 괜찮아.’

“그런 모습으로… 그런 미소를 지으신다고 한들 괜찮아 보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니야. 이 새끼야. 삶의 만족도 꽤 높아졌어.’

“슬퍼… 슬퍼 보이십니다.”

‘그렇게 보이기는 해야 하니까.’

근데 진짜 요즘은 이게 인생이구나. 하고 생각한다니까.

빈말로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새장 속이 편하기는 하더라. 내가 거길 왜 떠났나 싶어. 꿀꿀이죽보다는 업진살이지.

“젠 님은… 젠 님께서는 괜찮으신가요?”

하지만 이걸 망칠 수는 없다.

서로의 유대감을 재확인하는 중요한 장면. 극이라면 눈물을 뽑아낼 수 있는 장면이다.

극단적으로 변해버린 입장, 서로 위치한 곳은 다를지언정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우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씬.

그 감동이 넘치는 곳에서….

김현성은 눈에 띄게 초조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