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egression Manual 251ze

눈치 빠른 백조(1)

녀석과 뜻하지 않은 부자의 정을 나누기는 했지만 원정은 완벽하게 마무리됐다.

신화 아이템 한 정과 전설 등급의 아이템 두 정을 습득했고 질이 좋은 영웅 등급의 아이템 역시 얻을 수 있었다.

아쉽게도 방패는 박덕구가 아닌 검은백조의 손안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파란에서 방패마저 챙겨갔더라면 귀갓길 내내 얼굴을 들 수 없었을 것이다.

‘차라리 잘됐어.’

박덕구에게는 쓸 만한 방패를 하나 만들어 주면 된다.

파란에는 유능한 대장장이가 탄생할 예정이고 재료 역시 썩어빠질 정도로 많다.

중요한 건 이쪽이 저쪽보다 더 이득을 봤다는 사실 하나.

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공이 가장 큰 사람이 파란의 주축 인물들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딱 알맞게 분배됨 셈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살아가야 될 관계인만큼 양심적인 배분은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이쪽에서 챙긴 것들은 값으로 가치를 매기기 힘든 것들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렇다.

칭호, 아이템 등 여러 가지를 얻었지만 당연 돋보이는 것은 김현성이 얻은 신화급의 무구와 내가 얻은 박물관 제어 장치.

당장은 모두의 초점이 신화 등급의 아이템에 맞추어져 있었지만 이곳에 있는 것들은 나에게는 그 어떤 성과보다 커다란 성과라고 하는 것이 맞다.

‘세상이 바뀔 거야.’

생각하고 있는 것만 잘 풀린다면 커다란 변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할 수 있는 게 많아.’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것이 가능해진다.

하루라도 빨리 린델로 돌아가 연구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행군길이 더딘 것이 문제.

모든 원정대원이 체력적으로 한계를 맞았으니 속도가 느린 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다지 초조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 주변을 벗어나면 마차가 들어올 테고 마차에 탄 이후에는 린델까지는 금방일 테니까.

‘행군 분위기도 좋고….’

조금 당황스러운 이유였지만 이쪽에 새로 합류한 새로운 손님 덕분이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고립된 이들 역시 이 식구에게 조금 호의적이었다는 것.

예상은 했었지만 녀석이 고립된 검은백조의 원정대원들을 핍박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호의적인 면모를 보였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 단순히 내 추측일 뿐이겠지만 아마 녀석은 외로웠을 거라고 생각했다.

‘외로운 게 당연하지.’

많은 시간을 혼자서 지냈다.

박물관이 녀석의 유일한 친구였고 실제로 그곳에 광적일 정도로 집착하고 있는 것을 보면 홀로 지내는 외로움을 박물관으로 풀었다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물론 원정대원이 녀석을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끄으으으으윽….”

“흐어엉….”

녀석의 이야기가 공개됐고 곧바로 동정 여론이 원정대를 뒤덮기 시작한 것.

“끄어어어엉….”

특히나 박덕구를 중심으로 한 이 눈물 집단은 관리자 막스를 완벽하게 케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음은….”

-사실 그때부터 쭈욱 박물관에서….

“외로웠겠구만….”

-조, 조금 그렇기는 했지만 익숙하기도 했고… 박물관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서요.

“거, 아무말 하지 말라니까. 끄윽…. 형님 자식이면 내 자식이기도 하니까!”

-아… 네.

물론 내가 막스의 보호자가 됐다는 사실은 굳이 숨기지 않았다.

어차피 호칭일 뿐이었고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법 충격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정하얀은 이쪽은 별로 관심이 없다는 듯이 시큰둥했고 디아루기아도 별 상관이 없다는 느낌.

혹여나 똘똘이에게 소홀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함께 자라는 형제가 있어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아무튼 간에 녀석은 역적의 포지션에서 원정대에서 가장 귀여움 받는 포지션으로, 완벽한 태세전환에 성공했다.

기계 같았던 더미와는 다르게 본체는 감정 표현에 충실하기도 했고 일단 그 외관이 끔찍하게 귀여웠기 때문이다.

‘더러운 외모지상주의.’

검은백조의 단원들의 마음을 순식간에 빼앗아 버렸다는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렇게 조용히 떠들썩한 무리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마차가 진입할 수 있는 지역까지 당도한 것이다.

소식을 미리 전해 들었는지 이미 나와 기다리고 있는 검은백조의 마차들이 보였다.

함께 나온 김예리와 황정연 역시 조용히 마차 위에 앉아 있는 모습.

파란의 병아리들은 함께 나오지 않은 모양. 뭔가 할 일이 있었을 것이다.

미처 손을 들기도 전에 저 멀리서부터 꼬맹이가 빠르게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오매불망 김현성을 기다려왔을 테니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게 당연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를 곧바로 지나치는 얼굴을 보니 괜스레 심사가 뒤틀렸다.

‘귀염성 없는 꼬마….’

내가 오기만을 열렬히 기다리고 있는 똘똘이가 눈에 밟힌다.

황정연 역시 인사는커녕 박덕구에게 달려가는 걸 보니 이쪽의 생환은 반갑지 않은 모양.

그 와중에 김예리는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 김현성을 덮치듯 껴안았다.

“철컹 철컹.”

“네? 뭐라고 하셨어요, 오빠?”

“아무것도 아니야, 하얀아.”

꽤나 찐하게 포옹하고 있는 꼴을 보니 내가 다 불안해진다.

김현성이야 여동생을 다루는 것처럼 꼬맹이를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내가 볼 때 저 꼬맹이의 눈빛은 이미 수상하다는 선을 넘어섰다.

눈치채지 못한 건 전형적인 주인공들의 고유 속성이라고 할 수 있는 둔감함을 가지고 있는 녀석뿐이리라.

“빨리 마차 안으로 들어가서 푹 쉬어요, 오빠.”

“응. 그래야지. 관리실에서도 마력을 너무 많이 사용했고… 잠이라고 해봤자 세 시간 정도 잔 게 전부니까.”

“아아아….”

“혹시 따로 몸이 불편하신 곳은 없으신가요?”

“네. 희영 씨. 어딘가 아프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푹 주무시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역시나 이쪽을 챙겨주는 건 선희영과 정하얀밖에 없다.

떠들썩한 박덕구와 곧 누군가에게 잡혀갈 것만 같은 김현성을 두고 마차에 오르려고 했을 때였다.

“무사하셨군요, 기영 씨.”

“아. 지혜 씨.”

이지혜 역시 자신의 길드 마스터를 마중 나온 것이다.

갑자기 등장한 이지혜를 정하얀은 조금 경계하듯 바라봤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어오는 그녀 덕분인지 조금 긴장을 놓은 것 같았다.

“어머. 하얀 씨, 오랜만이네요. 여전히 두 분이 붙어 있는 모습은 보기 좋네요.”

“아. 지, 지혜 씨. 안녕하세요.”

“희영 씨도 오랜만에 뵙죠?”

“네. 오랜만입니다.”

그야 저런 식으로 친근하게 다가오면 가지고 있던 경계심도 허물어져 버리리라.

대놓고 나와 정하얀이 잘 어울린다고 칭찬하는 모습은 조금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항상 저런 식으로 정하얀을 띄워주기는 했지만 오늘은 뭔가 평소보다 기합이 들어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전해 들었나 보네….’

오늘은 사적이 아니라 공적으로 볼 일이 있는 모양.

‘벌써 검은백조에 소식이 들어갔구나….’

던전에서 먼저 나간 레인저 중에 한 명이 빠르게 달려가 린델에 소식을 전했을 때, 단순히 마중 나와 달라고만 이야기했을 리가 없다.

아마 던전 안에서 있었던 일은 물론 각 길드가 얻은 성과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심지어는 간이 공략 일지까지 전해 받았을지도 모른다.

검은백조는 린델 내에서 정보에 가장 민감한 길드 중 하나였으니까.

굳이 이지혜가 바쁘신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다는 건 최소 길드 마스터인 박연주의 직접적인 전갈을 받았다는 이유밖에는 없다.

냄새를 잘 맡는다는 건 알았지만 린델에 들어가기 전부터 작업을 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박연주가 있는 쪽을 바라보니 이지혜와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혜 누나도 열심히 사네.’

그녀 역시 길드 내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필사적이라는 거다.

아무튼 간에 즐겁게 정하얀과 선희영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타이밍을 재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도와주는 게 좋을 것 같아 한 번 헛기침을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말을 걸어왔다.

“아! 그러고 보니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조금 중요한 이야기라 이런 자리에서 말씀드리기는 그렇고…. 소소하게 이야기라도 나누시면서 린델로 돌아가시는 건 어떠세요? 마차는 따로 준비해 놨어요.”

“조금 피곤하기는 한데….”

살짝 말을 돌리니 찌릿 하고 이쪽을 쳐다보는 얼굴이 보였다.

굳이 해석해 보자면 ‘이러기야?’라고 말하는 느낌.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한 번 놀려보고 싶어 운을 띄어봤는데 절박한 표정을 보니 언질을 받아도 단단히 받은 모양.

“현성 씨랑 저희 길드 마스터도 함께요.”

“그렇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혜 씨.”

정하얀의 얼굴이 울상이 되기는 했지만 이쪽에서도 어쩔 수가 없다.

정상회의라면 정상회의라고 할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

김현성 역시 박연주에게 언질을 받았는지 김예리를 떼어내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중.

덕분에 박연주와 이지혜는 뜻하지 않게 파란의 여성진에게 미움을 받은 것 같았지만 당장 저들에게 마음 받는 것보다는 눈앞에 닥친 문제가 더 중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마차 안으로 들어가자 여전히 눈에 띄는 화려한 내부가 보였다.

이곳에 올 때 탔던 마차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물론 귀빈을 모시듯 극진히 대접하겠다는 심정은 이해가 갔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도 떨어지는 게 있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원정은 파란 혼자서 마친 것이 아니다. 이쪽이 아무 말 없이 전부 해 처먹은 이후에 입을 싹 닦을 줄 아는 모양.

‘그렇게까지 쓰레기는 아니야.’

양심을 판 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등을 맡긴 동료의 뒤통수를 칠 정도로 썩어빠지지는 않았다.

‘아암. 그렇게까지 쓰레기는 아니지.’

아무튼 간에 겨우 넷이서 쓰기에는 지나치게 큰 마차 안에 나와 김현성은 자리에 앉았고 박연주와 이지혜 역시 편안한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차가 나온 이후에는 슬그머니 다도를 즐기며 잡담을 시작했고 조금 편안한 분위기가 형성되자 이지혜가 진행을 보기 시작.

이런 자리에 무척 익숙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실질적으로 입을 열어오는 것은 모두 박연주였지만 우리 영혼의 단짝이 편안하게 분위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리라.

“성공적인 원정을 축하하기 전에 이번 원정에 참가해 주신 데 감사를 표현하고 싶어요. 현성 씨.”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제안을 해주셔서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그저 앉아서 감사를 받기에는 파란이 얻어간 것이 너무 커, 쑥스럽습니다.”

“그만큼 활약해 주셨으니까요. 실제로 공략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현성 씨와 기영 씨고…. 여러모로 생각해 봐도 소유하실 자격이 있어요. 이미 주인의식을 치른 마당에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고요. 다만… 그… 지금 박물관에 대한 소유가 정확히 기영 씨에게 있죠?”

“네. 정확히는 관리자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막스의 보호자이기도 하고요.”

혹시나 박물관의 소유권 분쟁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이쪽이 조금 떼어주는 형태라면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반반씩 가져가자는 소리가 나온다면 장담컨대 동료고 나발이고 전부 뒤엎어 버릴 수도 있다.

물론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혹시나 해서 말씀 드리지만 저희는 박물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생각이 없습니다.”

눈치 빠른 이지혜가 한 마디 툭 치고 빠진 것이다.

박연주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네. 지혜 말대로 저희는 기영 씨가 가지고 있는 것에 소유권을 주장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기영 씨와 현성 씨, 파란 길드가 진행할 일에 대한 투자와 그에 맞는 정당한 지분 그리고… 아주 약간의 배려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으음….”

표현을 약간의 배려라고는 하기는 했지만 원하는 건 약간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검은백조가 없었다면 박물관도 없었다는 걸 잘 생각해 달라는 의미일 것이 분명.

사실 그녀들은 그 이상을 주장할 자격이 있다. 원정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나 역시 검은백조에게 일정 지분을 넘기려고 했었고 실제로도 공동사업의 형태로 일을 추진하려고 계획했었다. 조금 깜짝 놀랐던 것은… 그녀들의 행동이 굉장히 신속했다는 것.

이쪽이 무슨 일을 벌일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생각하지만….

‘정말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네.’

그야 저 박물관에 한 번 들어가 봤다면 바보가 아니라면 할 수 있는 생각이기는 하다.

“사실 아직까지 사업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냥 이야기해 주세요, 기영 오빠. 저희가 하고 있는 생각을 하고 계신 게 맞는지 궁금한데….”

“물론 생각하고 있는 게 두 개 정도 있습니다. 검은백조와 협연을 하는 그림도 그리고 있었고요. 박물관의 소유권은 어쩌다 보니 제가 가지게 됐지만 검은백조가 없었다면 얻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거 다행이네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생각하시고 있는 것들을 조금만… 들어봐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첫 번째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 등급의 던전 균열 박물관의 운영이고….”

예상했다는 표정.

“두 번째는… 방송국을 만들어 볼까 합니다.”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이지혜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지금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언론의 완전 장악.’

바야흐르 신성제국에 미디어 매체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