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ning Away From The Hero!

2. What is this? Scary. (2)

분노.

오직 그 단어만이 그 눈동자 속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감정을 대변해 줄 수 있었다.

“힘들 것이다.”

솔직히 마법을 주력으로 삼는 이 녀석에게 저 훈련은 불리하다.

마법이란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마법을 강화하려면 촉매나 마법진도 필요하고, 근접 보다는 원거리 포격이 편하며, 검사가 근접거리에서 공격하면 죽어라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괜히 같은 마법을 위주로 사용하는데도 마법사와 마도사가 갈리는 것이 아니다.

강력한 한방을 주로 사용하는 마법사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밀한 마력 분배로 장기간 전투를 목적으로 하는 마도사는 그 영역이 전혀 다르다.

17호의 기본 베이스는 마법사.

요즘 하급 훈련소가 제법 잘 가르치는지 여태까지 보았던 이들 중에서도 수준급의 마법사다.

하지만 마법사는 누군가가 지켜주는 상태에서 최상의 위력을 발휘하는 법.

1:1:1의 현재 구도에서, 특히 상대방들이 검을 위주로 사용하는 검사인 경우,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

전투 방식을 근접전투기술과 기타 도구를 이용해 마도사 타입으로 바꾸는 방법과 소환수와 계약을 시켜, 전력을 보강하는 방법.

그리고 빠르게 가능한 수단은 당연히 후자 쪽이지.

애초에 마도사는 적어도 실전에서 1년은 굴러야 마도사로 인정을 받는다.

그것도 신입, 혹은 애송이로.

이 과정을 받지 못하면 마도사라 불리기보다는 날아다니는 구더기 혹은 고기방패 정도로 취급된다.

실제 훈련 받은 마도사들 중 전장에 투입하고 살아남는 이들은 10명 중 세 명밖에 되지 않는 극한 직업이고, 그 다음에도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다.

안 그래도 적들이 처단해야 할 1순위인 마법사들이 알아서 최전방까지 내려와 주니 보이는 족족 저격당하기 쉽고, 요즘 세상이 참 많이 좋아져서, 마법 장벽을 그냥 찢어버리는 특수 화살도 개발되었으니 자금만 되는 곳이라면 뛰어난 마법사, 마도사도 멀리서 저격이 가능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괜히 그런 것들을 오래 가르치는 것 보다, 맷집 좋은 소환수 하나 몸빵으로 세워두고 멀리서 마법을 난사하는 화력마법사를 만드는 것도 괜찮지.

마력이 많이 잡아먹히는 것이 단점이지만 원래 후방의 화력마법사는 전쟁 중 목이 마른 법이 없다.

거의 24시간 내내 마력회복 포션을 입에 물고 사니까.

대신 화장실을 많이 간다는 것이 단점.

옛날 재수 없게 대전에 참가해야 했을 때는 특별히 기저귀까지 개발해내서 마법사들이 그냥 바지에 지리게 한 적도 있었다.

참, 원망 많이 받았지.

근데 나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고?

한 놈이 화장실 간다고 포격이 중단 되면 적 주력이 바로 달려들 정도로 힘들었는데.

그냥 바지에 지려 냄새나지 않게 기저귀까지 개발한 내 수고를 마법사 놈들은 몰라주었다.

그러니, 좋은 노… 아니 소환수를 얻어 보기로 하자.

마침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도 있었으니.

일단 미리 준비한 바닥에 소환진을 그린다.

"이건… 악마를 소환하는 마법진이 아닌가요?!"

오호. 요즘 하급 훈련소, 정말 잘 가르치나 보구나. 마법진만 보고도 무슨 마법진인지 알다니.

이거, 상급 훈련관 교관의 대표로서, 나중에 따로 칭찬의 한마디라도 보내야겠다.

말에는 돈이 들지 않거든.

"알고 있구나."

"악마와의 계약은 제국의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 않습니까?"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 17호를 보고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 멍청이가 뭐라는 걸까.

"악마와 계약해서 죄를 짓기 이전에, 우리는 이미 악의 조직의 일원으로서 훌륭한 범죄자들이다만."

"아…"

순간 멍한 표정을 짓는 17호를 보며 다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건 하급 훈련소에서 배우지 않지. 훌륭한 교관으로서 알려주도록 하자.

"그리고 제국의 법 자체를 살펴보면, 딱히 악마와 계약하는 것이 불법이란 것은 아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

이렇게 보여도 한 때 임무로 몇 년간 황위계승권 문제로 피바람이 부는 황실에서 일 한 적이 있다.

법을 모르면 언제 모가지가 날아갈지 모르니 열심히 외웠지.

국제법과 제국법에 한해서는, 제국 재판관하고 맞짱 뜰 정도는 된다!

"악마와 계약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 악마와 영혼을 걸고 계약하는 것이 죄다."

"그게 그거 아닌가요?"

아니다 멍청아.

"원래 모든 소환수는 그 격에 따라 제한이 걸린다."

정령이나 환수는 물론, 다른 세상의 신조차 소환이 되는 곳이다.

익숙한 제우스니, 오딘이니 그런 놈들도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거기에 악마는 메이저급인 솔로몬의 72악마라던가 클리포트 나무의 악마를 시작으로 그리스, 북유럽, 동양 등 각종 신화 속에 등장하는 마왕이나 그와 비슷한 종류도 모두 소환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중 악마의 파괴력은 독보적이다. 그 이유가 바로 계약의 조건인 영혼.

"악마만이 유일하게 영혼을 대가로 계약을 허락하지."

사기꾼도 이런 사기꾼이 없다.

100만원 빌려주고 1억 뜯어가는 사채업자 같은 놈들.

"영혼은 신들조차 건드릴 수 없는, 세상을 창조하고 신들에게 세상을 보살피게 했다는 창조주들만이 건드릴 수 있는 영역. 그 영역을 계약이라는 이름하에 뜯어가는 사기계약. 그렇기 때문에 악마와 계약하는 이들은 자신의 영혼을 대가로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지."

유지비가 너무 나쁘다.

카탈로그를 주고 선택하면 절대 선택 할 일이 없겠지만, 아쉽게 소환에 전문적인 서적자체가 적고, 시중에 돌아다니는 책들 또한 내가 아는 것에 비해 너무나도 허접한 수준이라 볼 가치조차 없다.

"그래서, 계약을 금하는 것이다. 악마는 영혼이란 금기를 건드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럼 안 되는 것이 맞지 않나요?"

잠시 생각을 하던 17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온다.

나이에 어울리는 모습이 꾀나 귀엽다.

"반대로 생각해라. 악마가 영혼을 대가로 사기를 치는 새끼들이라면."

탁!

분필로 그리던 마법진이 완성됐다. 음. 아마 되겠지.

안되면 17호가 범죄자가 되지만, 이미 악의 조직의 꿈나무니 예비 범죄자다.

뭐, 진짜 중요한 것은.

영혼이 악마에게 저당 잡히는 것이겠지만, 내 영혼이 아니니까 넘어가고.

내가 해보려고 해도, 마력이 전혀 없어서 소환도 불가능.

다른 사람이 소환한 소환수랑 계약해 보려고 해도 거절당했었다.

참나. 악마한테 영혼이 썩었다는 소리를 듣다니. 이건 무슨 개소리일까?

그런고로. 이 실험의 제물이 되어줘야겠다. 실험 제목은.

"우리도 악마에게 사기를 칠 수 있다는 소리다."

어떤 악마의 사기계약 정도일까?

#2 그들의 사정 : 대악마의 주인님의 사정

“우리도 악마에게 사기를 칠 수 있다는 소리다.”

이건 뭔 획기적인 개소리일까?

강해지고 싶다고 했지만, 범죄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교관의 말을 듣고 보니 나는 이미 범죄자 예비생.

제국군한테 잡히면 가문에 먹칠하기 전에 자살하는 게 답인 상황이었다.

‘진짜 직인이든 뭐든. 다 포기하고 그냥 시집가?’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내가 이러려고 조직에 들어왔나 자괴감이 들기 시작한다.

강해지려는 이유 또한 밥 때문이라니? 제국의 수많은 가문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가문인 네르미아 백작가의 영애인 내가?!

‘아니야, 이건… 그래 괘씸한 1호 때문이야.’

사람이 도움을 주려 한 것을 이용하다니.

심지어 손목에 수갑을 6개, 발목에는 7개를 채웠다.

여리고 여린 이 손목에 주렁주렁! 죄인에게 인권이 없기로 유명한 제국에서조차 흉악범에게 이런 처사를 하지 않는데, 나같이 연약한 소녀에게!

심지어 자신을 도와주려 했던 대상에게 온갖 마법진과 수갑을 채우다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왜 존재하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1호는 한 번 밥을 먹기 시작하자 그동안 참고 있던 욕망이 폭발했는지, 악착같이 달려들기 시작했고, 그 이후 점점 내가 먹던 식사량이 줄어들고 있었다.

솔직히 교관이 초반부 진행했던 지옥 같은 몇 달 이후, 훈련 자체는 강도가 높지 않다.

아니,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정상적이고 효과적이며, 가문에서조차 듣지 못했던 이론들이 가득한 교육들에 내심 흡족한 마음마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1000호가 딱 한 번, 밥을 먹지 못한 이후로 변하고 말았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때의 자신에게 달려들어 말리고 싶을 정도로.

“생각해보니, 1000호는 굶은 적이 없잖아?”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입 밖으로 낸 말에 1호도 동조했고, 서로 협력한 결과 1000호의 1등을 저지할 수 있었다.

솔직히 진짜로 죽이려는 듯이 달라붙던 공격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고, 왜 내가 이런 고생을 사서했을까 후회하기도 했지만, 식사시간에 울먹이며 노려보는 1000호의 시선에 왠지 모를 쾌감까지 느꼈었다.

물론 식사시간에는 긴장을 했었지. 그때는 포크만을 이용해서 밥을 먹었다.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1000호 때문에 왼손의 나이프는 최후의 호신용 무기로 간직하고 있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1000호는 울먹이며 쳐다볼 뿐, 음식을 향해 덤벼들지 않았다.

그리고 식사시간이 끝난 후, 겨우 긴장이 풀려 안도하고 있던 나에게 교관은 이런 말을 하였다.

“1000호는 그 누구보다 약육강식이란 말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억울한 것이겠지.”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두 사람에게 공격을 당한 것이요?”

“아니, 고.작.두.사.람.의 공격을 버티지 못해서, 그래서 자신이 먹어야 할 먹이를 먹지 못하게 만든 자신의 나약함에.”

이해하기 힘든 말. 하지만 교관은 평소와는 다른, 보는 순간 내 온몸에 소름 돋을 만한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더 하고 사라졌다.

“너희는, 깨우면 안 되는 것을 깨웠을 수도 있다.”

멍하니 교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내 등 뒤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1000호가 검기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 주, 1000호는 스스로 마법까지 깨우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우리 둘의 합공에도 1000호를 이길 수 없게 되자, 동맹도 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상황파악이 된 순간, 나는 3명 중 가장 약체가 되고 말았다.

그냥 만만 할 때, 1호랑 계약하고 순번으로 돌아가면서 먹으면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말해봤자 먹히지도 않겠지.

그렇게 하루, 이틀이 되자 위기감이 목까지 몰려들었다.

그리고 1호에 대한 증오가 다시 되살아났다.

솔직히 내 책임도 있지만, 그래도 인정하기는 싫으니까!

“나, 여기에. 내 이름과 마력을 걸고, 그대의 이름을 부르니.”

읽으라는 데로 읽고 있는데, 이거 심상치가 않다. 온 몸의 마력이 다 빠져나가는 탈력감.

악마라도 하더라도 모두 같은 수준이 아니다.

하급악마 정도 되는 놈들은 실력만 있으면 영혼을 대가로 계약을 맺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약하지만 상급악마 정도 되는 존재라면, 잘못하면 소국 하나가 멸망의 길로 빠질 정도로 위험한 존재다.

그런 위험한 존재에 대한 정보는 널리 퍼져있다.

숨기다가 고대의 유적 같은 곳에서 소환주문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고, 또한 실제로도 모르고 소환하는 경우가 몇 번 일어나자 차라리 그 주문의 일부분을 널리 공개하고, 그 부분이 있는 주문은 절대 소환을 진행하면 안 된다고 소환사 협회에서 공지를 내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마법사 가문으로서 소환수를 자주 활용하는 네르미아 가문에서도 온갖 소환수에 대한 주문을 알고 있고, 악마에 대한 지식 또한 많이 있었지만, 이런 주문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대, 불의 나라, 무스펠헤임의 문지기여. 한 세상을 불태운 위대한 거인이여.”

아, 주둥이를 다물어야 한다고 열심히 머리가 외치지만, 이놈의 주둥이는 닫힐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뭐야. 한 세상을 태우다니?

상급악마를 뛰어넘어 이 정도면 대악마, 아니 마왕 소리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놈 같다.

“신들의 황혼을 마무리하는 자여, 나 여기서 그대의 이름을 부르니.”

아아, 신들의 황혼. 듣기만 해도 위험하잖아!

“위대한 불의 거인 수르트여, 이곳에 강림하여, 내 눈앞에 나타나라!”

아아, 이미 늦었다. 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온 몸의 마력이 빠져나가는 탈력감과 함께 심장이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아아. 이건. 그래. 두려움. 두려움 때문일 거야.

“그렇게 기쁜가?”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번쩍이는 마법진을 바라보며 조금 뒤에 떨어져 있는 교관의 말에 나도 모르게 뾰족한 소리를 내버리고 말았다. 찍히면 안 되는데…

“그럼. 그 미소는 뭐지?”

미소? 내가 미소를 짓고 있다고? 이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일까.

이렇게, 이렇게 심장이 무서워서 뛰는데. 웃고 있을 리가 없잖아?

하하. 참. 젠장.

말없이 교관을 쳐다보는데 어디선가 손거울을 꺼내서 내 얼굴을 비치고 있다.

젠장. 준비성도 철저한 사람 같으니라고.

그래. 인정하자. 거울에는 미친년 하나가 실실 쪼개고 있다. 내 얼굴을 하고서.

그래. 조금, 아니 격하게 심장이 뛰고 있다.

대룩 최강대국 카르안 제국. 그리고 그 카르안 제국 내에서도 마법으로 손꼽히는 곳이 네르미아 가문이다. 그 가문의 거의 모든 도서를 읽은 나조차 수르트라는 거인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주문만 보고도 알 수 있다.

이것은 신화 속에나 나오는 대악마의 이름이란 것을!

마법사 가문으로서. 마법사로서.

모두가 모르는 것을 알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거기에 교관의 말에 따르면 영혼을 이용해 계약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무조건 성공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위험한 도박. 영혼을 내건 도박.

여기서 흥분하지 않는다면 마법사가 아니잖아?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법진의 번쩍임이 최고조를 이룰 때, 마치 불과 같은 붉은 몸의 거인이 강렬한 열기를 내뿜으며 등장했다.

쾅!

“이, 무스펠하임의 주인. 수르트를 불러낸 자들이 너희들인가!”

한 손으로 강하게 바닥을 치며 등장하는 불의 거인. 그 기백에 온 몸에 환희가 가득 차는 순간.

“계약의 대가는 너의 영… 엉?”

담대하게 말을 이어가던 불의 거인이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자신이 내려친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래 영. 제로. 아무것도 없다.”

교관의 매우 사악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