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Seventy Dollars Outlaw Zone

“이게 뭐야?”

수호가 상태창에 대해 의문을 품자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레벨 : 1

이름 : 박수호

클래스 : 드루이드

업적 : 4

스탯

근력 120 민첩 110 체력 135지능 90 회복 89 치유 75

조화 8 야성 21

스킬

업적상점(Lv 1)

“허 참.”

지구로 돌아온 뒤로 이 메시지와 음성이 참 다양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스탯이나 스킬 등이 뜻하는 바가 뭔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멍청하진 않다.

두뇌 활동력을 나타내는 지능도 꽤 높은 상태.

“와, 이게 뭐야.”

수치들이 이상했다.

천 년 넘도록 들은 스탯 알림음만 수백 번이 넘는데 고작?

“어쩐지 한 번에 못 오르더라.”

본래 몸 상태였다면 아파트 따위는 한 번의 도약에 옥상까지 올랐을 것이다.

정말 차원 이동 후유증이라도 겪어서 그런 것인지, 스탯들이 형편없다.

“다시 훈련해야 하나?”

생각해보니 굳이 몸을 다시 단련해야 하나 싶었다. 몬스터 놈들이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별 대수롭지 않게 상대할 수준이니까.

보다 강한 적이 나타난다면 그때부터 대비해도 될 성싶었다.

띵!

엘리베이터를 타고 발급과에 가서 여러 가지 서류를 작성했다.

“위치수집 동의서?”

“네, 혹 위험에 처할지 모를 각성자 분들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명목이 그렇지, 실시간 감시와 다르지 않았다.

“이건?”

“각성자로 판정된 것만으로도 계좌 개설이 가능한 신용도는 확보하실 수 있으세요.”

대격변 이후 많은 일을 겪은 세계에서는 통장 발급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호가 사인을 다 마치자 직원이 잠깐의 시간을 두고 선물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각성 축하 지급품이에요.”

용병훈련 입소 안내, 각성자 법률 상식 등의 몇 가지 혜택이나 의무, 정보 등의 책자들이 있고, 스마트폰 하나가 놓여 있었다.

개통 절차를 다 마쳤을 때쯤에 각성자 등록증이 나왔다.

주민등록증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김새에 간단한 정보들이 기재되어 있었다.

박수호

등급 F 구현계

직원이 카드에 박힌 칩을 가리켰다.

“등록증은 발급받으신 통장이랑 연계되어 체크카드로도 쓰실 수 있으세요.”

“네, 고마워요.”

“그럼 궁금하신 건 안내 책자나 각성자 관리국 앱을 통하시고, 앞으로도 인류평화를 위해 활약하시고 승급하시길 바랍니다.”

몸 안에 차원에너지를 축적하려면 몬스터를 사냥해 뺏어야 한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자체가 경력이자, 인류 수호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일이 되는 터.

등급을 E급으로만 올려도 월마다 연금이 지급되고, 그 외에도 각종 혜택이 즐비하다.

더욱이 고랭크의 각성자들은 사회적 지위 또한 상당하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가 랭커들이다.

수호는 1층 로비의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이것저것 만져보니 곧 익숙해질 수 있었다.

김정국 교수의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걸어봤으나 바쁜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음에 보지 뭐.”

관리국 앱을 켜보니 필드맵도 자세히 제공하고 있었는데, 출몰 몬스터부터 현상금 액수까지 여러 정보가 표기되어있었다.

“남양주 게이트가 가깝네.”

수호는 가장 가까운 게이트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게이트 77.

남양주시의 동쪽에 있는 이곳은 저번 수원 필드보다 더욱 사람들의 왕래가 활발했다.

관리국 앱을 통해 습득한 정보에 의하면, 게이트 밖 필드에서 최근에 던전 하나가 터져 토벌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1차로 강력한 화력의 미사일 폭격이 가해지고 2차로 군인들의 토벌이 일어난 뒤, 여기저기 운 좋게 살아남은 몬스터들에게 현상금을 매긴다.

2차 토벌을 마친 시간이 고작 1주일 전이다. 아직은 꽤 빈번하게 숨어든 몬스터를 찾을 수 있으니, 필드를 주 무대로 하는 용병들이 몰린 것이다.

“응? 혼자입니까?”

게이트 출입구의 군인이 의아한 얼굴로 수호를 봤다.

“혼자죠.”

수호가 신분증을 내밀자 그것을 스캔한 군인이 화면에 뜬 간략한 이력을 보곤 의외의 눈으로 수호를 봤다.

“최근에 고블린 7마리 토벌 기록이 있군요. 실례했습니다. 무운을 빕니다.”

“네. 수고하세요.”

각성자들은 죄다 초능력자다.

그들의 전투력은 무장상태로 유추해서는 안 된다. 수호의 등급이 고작 F등급이지만 쉽게 무시해서는 안 될 일이다.

“아는 사람이에요?”

다음 차례의 남자가 군인에게 묻자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 사람 등급 뭐예요?”

“개인정보 유출은 불법입니다.”

“이름은요?”

“직접 물어보시죠.”

“쳇.”

남자가 자신의 신분증을 내밀고는 서둘러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군인 말대로 직접 물어볼 요량이었다.

“어? 어디 갔어?”

게이트 밖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나무든 건물이든 죄다 밀어버린 개활지다.

쭉 뻗은 도로가 전부이건만, 차도 안 가져 나온 사람이 그 잠깐 사이에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허, 뭔가 느낌이 오는데?”

남자는 수호의 모습을 떠올렸다.

청바지에 면티. 무기는커녕 이렇다 할 가방도 없이 필드로 나갔다.

정신 나간 놈이 아니고서는 저렇게 무방비한 차림으로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막 초능력을 각성한 얼치기들도 무리를 이루거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사냥에 나선다.

“냄새가 나. 냄새가.”

호기심을 끈 것은 남자의 지나친 자신감이다. 여유라고 해야 하나? 필드를 나가는 사람답지 않게 조금의 긴장도 보이지 않았다.

필드에 고랭크 각성자가 나타날 리가 없으니, 배포 하나는 타고난 놈인 듯싶었다.

빵빵!

차량용 게이트를 통과한 픽업트럭 하나가 옆에 서더니 경적을 울렸다.

“강 팀장님. 왜 혼자 걸어나가고 그러세요.”

“어? 아, 그냥 뭐 볼 게 있어서.”

“어서 타세요.”

강민혁이 픽업트럭에 올라타니, 뒷자리에 바짝 긴장한 남녀 셋이 옹기종기 붙어있다.

길드의 신입용병들로 이번 던전 공략에 함께하게 된 이들이다. 첫 던전이라 그런지 과하게 긴장한 모습이다.

“야야, 긴장 풀어. 각성도 한 놈들이 뭘 그리 쫄아?”

“넵! 시정하겠습니다.”

시정은 무슨.

군대 신병도 저 정도 긴장은 않겠다.

“헤헤, 우리 강 팀장님 왜 갑자기 이리 까칠하실까?”

운전석에 앉은 팀원의 말에 강민혁이 앞을 가리켰다.

“출발이나 해, 임마.”

“넵. 하하.”

기존에 자신의 팀원이던 이놈과 신입 대원 셋. 총 다섯 명이 이번 던전을 공략한다.

레벨 1 판정이 내려진 아주 쉬운 던전이지만 신입들은 바짝 긴장했다.

몬스터 몇 마리 죽이면 초능력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다.

생명을 해칠 독기 정도야 장착한 놈들도 미지의 적을 두곤 저렇게 떤다.

무기를 가지긴 쉽지만, 진정한 투사가 되고 전사가 될 놈들은 진정 타고난 소수다.

룸미러로 보이는 신입들을 보니 가관이다. 눈 감고 기도하는 놈, 다리 떨며 눈알 굴리는 놈, 손톱만 물어뜯고 있는 여자 하나.

제대로 각오가 선 모습은 아니다.

‘이번 신입들도 망했구나.’

길드 면접관 놈들이 죄다 애꾸들만 모였나. 왜 자꾸 저런 애들을 뽑아 오지.

보나 마나 반년도 못 버티고 용병 때려치울 놈들이다.

아까 스쳐 간 얼치기 한 놈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사냥 온 거겠지?”

얼핏 지나가다가 고블린 처치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냐, 운전이나 해.”

강민혁은 조용히 눈을 감고 이번 던전 공략에 대해 다시금 복기했다.

아무리 수준 낮은 던전도 방심하는 순간 목숨이 위험해지니까.

*

슈아아악!

도로를 벗어나 숲길을 마구 달렸다.

나무를 박차고 올라가 나뭇가지를 밟으면서 달리는 수호의 모습은 흡사 날다람쥐 같았다.

촤악!

아무렇게나 자란 나무 넝쿨을 잡고 바닥에 몇 바퀴 구르더니,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숲길을 질주했다.

“후아!”

한참을 달리다 멈춰선 수호는 이마에 송골송골 난 땀을 닦았다.

“이게 내 몸이란 말이지?”

땀 한번 쭉 뺀 걸로 몸에 대한 적응이 끝났다. 전보다 굉장히 약해진 몸이지만, 상대적으로 현대인보다는 괴물 같은 신체 능력이다.

채쟁 챙!

“음?”

바람결에 실려 오는 쇠 부딪히는 소리에 수호의 귀가 쫑긋했다.

“이거 칼싸움 난 거 같은데.”

수호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구경 가야지.”

사냥도 좋지만 그건 언제나 할 수 있는 거고. 지구인들은 어떻게 싸우나 보고 싶었다.

짐승들 싸움은 너무 많이 봤다. 드디어 문명인들의 결투를 관전하는구나.

파팟!

몇 번의 도약과 달리기로 소리가 가까워졌다. 살금살금 기척을 죽이곤 접근했다.

옛날엔 주유소였을 폐건물 옥상에 사뿐히 내려앉아 아래를 봤다.

3:9의 싸움이었는데 비등비등했다.

쪽수가 세 배나 차이나는데도 셋 쪽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이 개새끼들아! 지금 꺼지면 안 쫓는다.”

그렇다고 다수를 압도할 정도도 아니라, 셋이서 등을 맞대고 포위당한 상태.

“뒈지기 싫으면 무기 버려!”

“가진 것 다 놓고 꺼지면 살려는 주지.”

9명의 일행도 이대로 싸움을 끝낼 생각은 없는지, 포위를 풀지 않은 채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시발. 우리가 마음먹으면 늬들이라고 무사할 것 같아?”

셋 중 하나가 악을 썼다.

쪽수가 부족해 수비적으로 대응하다 보니 싸움이 교착상태지, 이판사판으로 덤비면 이길 자신도 있었다.

다만, 이기더라도 동료들과 다치거나 죽으면 손해니 그저 적정한 타협점을 찾고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몇 번 주고받던 칼도 멈추고, 서로 허세를 부리며 상대가 물러나길 바라고 있었다.

‘김샜네.’

구경하던 수호는 잔뜩 일었던 흥분이 빠르게 가시는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서로 몸을 사리기 급급해 소극적으로 싸우더니, 이젠 욕으로 싸우고 있었다.

덩치를 키워 강함을 과시하는 놈들의 수법과 같다.

적의 숨통을 끊기 위한 맹수의 사냥이라고 하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피식자들의 몸부림 같았다.

사람들끼리의 싸움이 별 볼 일 없자 수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데,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며 팽팽하던 균형이 깨졌다.

“병신들. 겨우 셋인데 뭐 이리 오래 걸려?”

“죄송합니다. 형님.”

인근에 주차된 차에서 내린 대머리 사내는 걸걸한 목소리만큼이나 인상이 험악했다.

그의 등장에 포위된 세 사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반응이 기꺼운지 대머리 사내가 웃었다.

“끌끌, 내가 누군지 아는 눈치군.”

안다.

필드를 떠도는 약탈자 무리는 자연스레 강한 놈을 중심으로 뭉친다. 사내의 독특한 외향 때문에 금방 누군지 떠올랐다.

“최구식…….”

“파하하하.”

최구식이라 불린 남자가 다가가자 약탈자 무리가 포위망을 넓혔다.

셋은 최구식 하나와 대치하면서도 아까보다 더 큰 압박감을 느꼈다.

된통 잘못 걸렸다.

“다 내려놓고 가면 보내줄 겁니까?”

포기한 듯한 상대의 말에 최구식이 씨익 웃었다. 대머리의 힘줄이 덩달아 꿈틀거렸다.

“그렇게는 못 하지.”

최구식의 항복 거절에 셋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렇다고 맥없이 목을 축 내놓을 순 없는 노릇이다.

“작정하고 도망치면 셋 다 막을 자신 있어요? 괜히 위치 발각되면 그쪽도 곤란할 텐데요? 목에 걸린 현상금이 4천인데.”

“클클. 자신 있으면 튀면 되지. 뭘 이빨까고 있냐?”

어설픈 협박이 우스웠다.

“시발. 가진 거 죄다 놓고 가겠다는데 굳이 목숨까지 뺏을 필요는 없잖아?”

최구식이 웃었다. 번들거리는 눈빛은 사냥을 앞둔 맹수의 그것과 흡사했다.

“필드는 원래 센 놈이 왕이야!”

맹수가 사냥을 위해 존재감을 뽐냈고, 그것이 야수를 깨웠다.

“와아! 그 말 존나 마음에 든다.”

흉물스러운 주유소 옥상에서 수호가 훌쩍 뛰어내렸다.

“넌 뭐야?”

“너보다 센 놈.”

대머리의 힘줄이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