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58 SFC (2)

후두두두둑!

땅이 뒤집히고 나무가 뽑힌다.

한차례 난리가 난 일대에 뿌연 흙먼지가 날리더니, 공중을 빙빙 돌던 모든 물체들이 떨어져 내렸다.

“꾸엑!”

그중엔 몬스터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무렇게나 떨어져 부상을 입거나 간혹 운이 나빠 죽기까지 하는 녀석들을 보며 달려드는 이들이 있었다.

저마다 칼을 한 자루씩 찼거나 창을 쥐었다.

“꾸억!”

깔끔하게 목을 쳐내며 척살한다.

“와, 저희 이래도 되는 거예요?”

“뭐가?”

“지금 정부 발표 때문에 일본에서 난리가 났던데, 우린 던전에서 이러고 있어도 되는지…….”

동수의 걱정에 수호가 불쑥 나타났다.

“이야, 이제 3성 던전은 여유롭나 봐.”

“헉. 아닙니다.”

“요번 타임 끝나고 4성으로 옮기자.”

“헉!”

마음 같아서는 5성 던전에 가서 버스라도 태워주고 싶지만 길드원들의 피지컬도, 공격 스킬도 너무 빈약해 사냥시간도 느리고 위험부담도 크다.

그렇다고 마냥 미뤄두는 건 아니고, 곧 도전할 생각이다.

‘일단 레벨업 좀 시키고.’

검술, 스킬숙련, 피지컬 훈련도 중요하지만 일단 레벨업이 먼저다.

두 발로 걸을 정도는 키워놔야 뛰는 걸 가르쳐 줄 것이 아닌가?

“빨리빨리 따라.”

“넵.”

수호의 재촉에 재식, 동수, 준호, 명진이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저기 신음하는 몬스터들을 도륙하고 혈석을 캔다.

혈석은 모조리 모아두고 있다. 당장 현금화해도 상관없지만, 어차피 혈석 자체가 현금으로 통용되는 세상이기에 필요할 때 바꿔도 상관없다.

혈석 자체를 그냥 사용해도 되고 말이다.

일행은 보스까지 처치하고 포탈을 나섰다.

츄아앙!

“음료수나 한잔 마시고 다시 들어가자.”

“넵.”

간이 편의점을 옮겨놓은 듯한 황금마차로 우루루 몰려갔다.

“난 봉봉.”

“전 콜라주세요.”

“사이다.”

“막걸리.”

“잘못들었습니다?”

당황한 황금마차 판매병사를 향해 수호가 다시 물었다.

“막걸리 없어요?”

“네, 그렇습니다.”

“허.”

판매병사가 바짝 긴장했다.

지금 언론에서 실시간으로 회자되는 인물이 왜 필드의 던전에 있으며, 왜 자신의 앞에서 막걸리를 찾고 있단 말인가?

“다른 거 먹지 뭐. 맥주 줘요.”

“네, 알겠습니다.”

수호 길드원들을 향해 중위 하나가 다가왔다.

“관리국장님 연락이 왔습니다. 받아보시겠습니까?”

“응? 내가 여ㅤㄱㅣㅆ는 줄 어떻게 알고?”

“제가 보고했습니다.”

필드의 던전마다 군인들이 붙어 관리하다 보니 이렇다.

“꼭 연락해야 해요?”

“아닙니다. 편하실 대로 하십시오.”

“거 되게 저자세네.”

“하하, 유명인이시라 제가 긴장한 모양입니다.”

수호가 주변을 휘이 둘러봤다.

3성 던전치고 혈석 드랍률이 낮아 인기 없는 던전인지, 공략중인 팀이 없다. 관리 중인 군인들만 스물 남짓뿐.

그들 모두 힐끗 수호를 보고 있다.

“묘하게 신경 쓰이네.”

“죄송합니다.”

“됐어요. 전화 줘 봐요.”

“넵.”

박수호가 군인도 아니고, 자신의 상급자는 더더욱 아니건만 중위는 깍듯하게 대했다.

“여보세요.”

아, 접니다. 관리국장. 허허허.

“네, 말하세요.”

지금 수호 길드에 김미소 팀장이 방문 중입니다.

“왜요?”

예?

“방문 목적이 뭐냐구요.”

아, 하하하. 지금 일본 반응이 꽤 격렬하지 않습니까? 그에 대해 협의하고자 김미소 팀장이 전권을 쥐고 갔습니다.

“으음.”

이야기를 나눠보시지요.

“좋아요.”

수호가 전화기를 돌려주곤 길드원들을 봤다.

“형님. 돌아갑시다.”

“맞아요. 뭔가 결론이 딱 나야지. 이렇게 던전만 돈다고 불안이 가시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 돌아가자.”

수호 혼자 살았다면 다 필요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리를 이끌고 있으니, 이들의 동요를 모른 체할 수도 없다.

부우웅.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던전이라 복귀는 금방이었다.

“오랜만이네요.”

“네, 영국은 잘 다녀오셨어요?”

“뭐, 그럭저럭. 하고 싶은 말이 뭐에요?”

성격이 급하다. 김미소가 목적을 간단히 말했다.

“대한민국은 박수호 씨는 물론 수호 길드를 포기하지 않아요.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막아낼 겁니다.”

동수와 준호를 비롯해 길드원들이 눈에 띄게 안심하는 표정과는 달리 수호는 심드렁했다.

“당연한 소리를 거창하게 하시네요.”

“그렇죠. 당연한 소리죠.”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

“그 말을 전하러 왔어요.”

“그게 다예요?”

수호는 어이없는 얼굴로 김미소를 보았다.

그녀가 한쪽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따로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제안이 있다. 외부인을 두곤 할 수 없는 이야기.

“같이 온 거 아녔어요?”

“아뇨. 저쪽은 SFC에서 오신 분들이요.”

“오! 아름다운 레이디가 제 소개를 대신 해줬군요. SFC 아시아 지부장 맥스입니다”

“응? SFC?”

맥스가 사람 좋게 웃으며 김미소를 보았다.

“이제 보니 한국 정부에서 오신 분이시군요. 일본과의 마찰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양국의 긴장관계 해소에 제가 한 팔 거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SFC의 지부 중에 가장 비중 있는 곳이 어디일까?

미국도, 유럽도 아닌 아시아다.

그것도 일본.

세계 랭킹 1위, 챔피언 이성우를 보유해서다.

맥스의 권한 또한 굉장히 크다.

“하하, 챔피언이 박수호 씨를 콕 찍어 매치를 제안했지요. 제가 여기 온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일로 양국의 오해를 풀 수 있을 것 같군요.”

SFC의 매칭 시스템은 단순하다.

최초 랭킹 등록전만 치르고 나면 자신의 랭킹에서 +50위 중에 아무나 찍어 도전할 수 있다.

도전자가 승리하면 서로의 랭킹이 바뀌고, 방어전을 성공하면 랭킹을 지킨다.

랭킹 4자릿수 이하로는 하루에도 수십 명씩 랭킹이 바뀌지만 3자릿수, 랭킹 999위 안쪽부터는 그 변동이 그리 크지 않았다. 특히 상위 랭커 100명 정도는 최근 몇 달 새 거의 고정적이다.

챔피언에게 도전할 수 있는 권한은 규정상 상위 50위까지의 랭커에게만 주어진다.

그들 중 절반은 도전했다가 깨졌고, 또 많은 도전자들이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이성우의 과한 손속 때문에 최근 들어서는 도전자 자체가 적은 상황. 가장 돈이 되는 이성우의 매치가 일 년에 채 세 번도 이뤄지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역으로 챔피언이 하위랭커는커녕 등록도 하지 않은 신인을 지목했으니, 세간이 떠들썩한 것은 당연했다.

“챔피언의 목적이 그것이지요.”

이성우가 매치를 원한다.

아마 의도가 순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 내에 그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지금의 들끓는 일본 여론도, 정치권의 욕심도 잠재울 정도의 영향력이 있다.

“매치를 받아들이십시오. 한국 정부의 발표대로 개인 간의 일이 될 겁니다.”

개인 간의 갈등을 SFC의 매치로 풀어낸다.

그렇게 되면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김미소가 맥스의 말을 가로막았다.

“하지 마세요.”

“왜죠?”

“이성우의 의도가 너무 뻔해요.”

종종 압도적 실력차에도 도전자를 죽여버린 이성우다. 사고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의 사이코패스적 기행이 다음 목표로 박수호를 노린다.

이유야 많다.

일본 입장에서는 두 가지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박수호를 회유하거나, 제거하거나.

어떤 것이든 그들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

이웃나라에 왜 그렇게까지 훼방인지는 굳이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다. 역사 이래 항상 그래 왔으니까.

“의도 같은 건 상관없어.”

녀석이 무엇을 계획 중이든 상관없다.

감히 주인 없는 땅에 발을 디딘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놈은 좀 맞아야 해.”

수호가 맥스를 보았다.

“결투하지.”

“빠르게 일정을 잡겠습니다.”

악수를 나눈 맥스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제 말해 봐요.”

“굳이 결투를 받아들이지 않으셨어도 됐어요. 정부가 당신을 보호할 거예요.”

“보호 받는 게 익숙하지가 않아서요.”

수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할 이야기가 뭐예요?”

“……일 년에 한 번 길드 총회가 열려요.”

서울, 부산, 제주도 등 각 도시에 흩어진 길드들의 대표를 모으는 자리다.

모두가 모이는 건 아니다.

레벨 6.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방위길드의 최정상들이 모인다.

사실상 S급 각성자들 32인을 보유한 길드들이 모두 모여 국가와 토론하는 자리다.

“거기에 날 초대한다고? 난 아직 S급이 아닌데?”

S급은커녕 아직 A급도 아니다.

지금은 40레벨로 B급에 겨우 진입한 상태.

60레벨은 되어야 측정기에서 S등급을 띄울 터다.

“상관없어요. 정부는 이미 수호 길드를 레벨 6으로 인정하고 있어요.”

“으음.”

함께 모여 대한민국 안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 그런 자리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모양새다.

“수호 길드가 꼭 필요해요.”

레벨7 던전의 등장이니, 위태로운 북한의 붕괴가 코앞이니 하는 따위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구구절절 이유를 늘어놓는 것보다 진심을 다한 부탁이 더 먹힐 테니까.

“뭐, 좋아. 가보죠.”

“아니, 형님. 덥석 받을 게 아니죠.”

가만있던 동수가 끼어들었다.

“명예고 뭐고, 이거 군대도 안 가는 사람한테 나라 지키는 데 한몫 보태라는 말인데, 뭔가 얻는 게 없잖아요?”

동수 입장에서는 손해 보지 않기 위해 한 일이지만, 김미소는 되레 고마워하는 눈빛을 보냈다.

“옛 의정부 지역 전체를 수호 길드의 영역으로 드릴게요. 온전한 자치권을 인정하고, 원하신다면 서울 13구역으로 지정해드릴게요. 기반 공사도 국가에서 진행해드리겠습니다.”

“응?”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나오는 말에 동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서울 13구역을 만들고 그에 대한 자치권을 준다?

시장 정도가 아니다.

그냥 옛날로 치면 영주 정도의 권한이 있는 거다.

“굳이 이사할 필요가 없는데.”

이미 수원과 용인의 경계에 작지만 둥지를 마련한 수호다. 굳이 이사할 필요가 있는가?

초목지를 찾아 활동 영역을 옮겨다녀야 하는 초식동물도 아니고, 사냥감이 풍부한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육식동물도 아니다.

현대 인간들의 사냥터는 던전이고, 이건 지형을 따지지 않고 생성된다. 게다가 수호에게는 와이번도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아시아 인근은 죄다 하루생활권에 사냥터나 다름없다.

사냥터를 옮겨다닐 필요가 없는데 굳이 보금자리를 키울 필요가 있는가?

“테이밍을 위해 비무장지대에 갔다고 알고 있어요. 비무장지대는 의정부에서 아주 가깝죠. 강원도는 빈 땅이나 다름없어요.”

“음?”

이건 좀 땡기는데.

수호가 솔깃하며 길드원들을 봤다.

“이사해?”

“당연히 해야죠!”

길드원들은 다들 신이 났다.

서울의 13번째 레벨6 길드가 되는 거다.

그냥 수호 덕 좀 보다고 클랜에 가입했는데, 두 달 만에 레벨6 길드가 되어버렸다.

대한민국 길드 총회는 본래 1년에 한 번 이뤄지지만, 레벨7 던전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임시 총회가 잡혔다.

총회까지는 두 달.

수호 길드는 곧장 이사 준비를 했다.

관리국과 국방부의 대대적인 지원 아래 순식간에 새 보금자리가 마련되어갔다.

시간이 일주일이 흐른 어느 날, 일본 언론에서 이성우의 인터뷰가 떴다.

박수호의 도발? 해프닝일 뿐, 예의를 가르쳐 주겠다.

세계 최초 레벨7 던전의 두 번째 공략을 무사히 마치고 귀환한 챔피언 히로의 인터뷰 전문을 싣는다.

히로가 세계평화를 위해 던전 공략에 나선 그때 일본 본토에 무단 침입해 일본인을 상하게 한 박수호의 무력시위에, 히로는 혈기왕성한 후배의 귀여운 도발로…….

챔피언으로서, 인류수호를 위해 최전방에서 활약하는 선배로서, 박수호의 무례함을 꾸짖고 예의를 가르쳐 주겠다는 넉넉한 마음으로…….

오는 8월 21일 도쿄 SFC 경기장에서 매치를 가질 예정이며…….

‘박수호는 내가 개박살 내 놓겠다.’

일본인의 자부심.

세계 랭커 1위 이성우의 선언에, 전쟁론까지 번졌던 일본 내 여론이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