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143 smiles

수호시 외성은 내성의 수십 배 될 정도로 부지가 크다.

그 대부분의 땅들이 개발되지 못한 것은 인구가 턱없이 모자라서다.

김미소는 관리국장과 면담하고 온 협상안을 수호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군수공장설립 허가, 미사일수주의 화기 사용도 허가, 개인화기용병 양성 허가, 완전한 자치권 인정이에요.”

“뭐야? 그런 것도 다 허락받아야 하는 거였어?”

“당연하죠. 개인화기는 여전히 통제되고 있어요.”

세상이 뒤집혔는데도 총기 규제는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금지는 아니고, 길드들은 다들 총기로 무장하고 있었으나 그 수에 제한이 있었다.

물론 규제한다고 다 따르는 길드는 없지만, 표면적으로는 제한된 수의 총기부대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별거 없네.”

“아니죠. 온전한 자치권 인정이 중요해요.”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애당초 수호시티는 길드 기반으로 필드에 일궈낸 도시다. 국가에서 지원받은 거라곤 필드 땅을 불하받은 것뿐이다.

도시 구성에 큰 도움도 없었는데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음, 친구로 인정한다는 거예요. 서울시와 수호시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죠.”

“원래 그랬잖아?”

김미소는 이해시키기 위한 설득을 포기하고, 쉽게 설명해주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하하, 그쵸. 그걸 법제화하고 서류로 남기고 하는 게 복잡하고 귀찮은 건데, 이번에 제가 처리했어요.”

“으음.”

“그리고 자치권을 인정받은 가장 큰 이유가 시민권 부여 권한 때문이에요.”

“그게 왜?”

“우리 도시는 작아요. 단번에 몇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주해오면 자멸할 거에요.”

아직 그만한 체력이 되지 못한다.

조각배에 수천 명이 타버리는 꼴이다.

“사람을 가려 받는다?”

“네. 넓은 땅이지만 여길 모두 주거지로 채울 순 없잖아요?”

몬스터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는 땅이다.

옛날이었으면 당연히 누렸을 대지의 축복이지만, 이제는 여러 지성체를 가진 종들이 난립하며 불가능해졌다.

지금도 필드 곳곳에 고블린이나 오크들이 저마다 터를 잡고 마을로 발전시키고 있으니까.

지구의 주인을 자처했던 인류는 이제 행성의 주도권을 쥐고 타 종족과의 전쟁의 역사를 걷게 될 것이다.

‘보급이 무한인 종들과…….’

김미소는 몬스터들의 사회화를 결코 얕보지 않았다. 포탈이 언제까지 생길지 알 수 없지만, 저들의 병력 충원은 무한인 데 반해 인류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까.

이 생존게임에서 실패하면 인류 멸종의 길은 결코 후대의 일이 아닌 현시대에 일어날지도 모를 위협이다.

“뭐, 강한 이들로 무리를 구성하는 건 기본이지.”

수호는 당연하단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짐승들도 그렇다.

부상을 입어 무리의 이동이나 사냥에 도움되지 못하는 개체는 버려지기 마련이다.

무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무리 전체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동족을 불쌍히 여기고 대가없는 도움을 주는 종족은 아마 인간이 유일하지 않을까?

“근데 의외인데? 아주 냉혹해.”

“제가요? 설마요.”

김미소는 웃었다.

수호시티는 초 엘리트 집단이 될 필요가 있었다.

물류 이동이 끊기며 생활반경이 도시 수준에 머무른 현재, 도시국가의 난립은 막을 수 없다.

그 수백의 도시 중에 어디가 제일 안전할 것인가?

‘여기밖에 없어.’

김미소가 성공이 보장된 고위공무원직을 내려두고 수호 길드로 온 것은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제가 얼마나 인정이 많은데요.”

“사람 가려 받는다며?”

“네. 초 엘리트들로요.”

수호 길드는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기반이 수호시티가 될 것이다.

어디보다 안전하며, 어디보다 낙원같은 도시.

누구나 살기를 희망하고, 누구나 그 구성원이 되기를 원하는 도시.

사장인 박수호를 중심으로 용병들은 누구보다 강해야 한다.

세계 패권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강함을 손에 넣어야 한다. 그렇게 큰 힘을 얻어 올바르게 써야 한다.

“서울이 망하면 우리도 망해요.”

이주해 오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한다.

“어휴, 미소야. 친구끼리 돕고 살고 그래야지. 너무 야박하게 그러지 마.”

“…….”

김미소는 미소 지으며 이를 악물었다.

“그럼 허락하시는 걸로 알고 진행해도 될까요?”

“그래. 친구끼리 돕고 사는 거지.”

수호는 기지개를 켰다.

얼마 전 크게 깨닫지 않았나?

자신의 무리만 중요한 게 아니다.

너무 외롭게 긴 시간을 살다 보니 사람이 그리워 집착했다.

“다 두루두루 사이좋게 지내야지.”

“호호호.”

김미소는 애써 웃으며 최종 협상이 마무리된 조약서를 내밀었다. 여태 힘들게 이것저것 협약하고 한 게 전부 수호가 거부해서 아닌가?

이렇게 사람 마음이 바뀔 수 있나 싶었지만, 어쨌든 그랬기에 꽤 많은 것을 양보받았다.

서울시 레벨 7길드 방위조약서.

서울시, 수호시 동맹계약 체결서.

“두 개네?”

“네. 우린 자치도시니까요. 그냥 개별국가라 생각하는 게 더 편해요. 대한민국연합에 속해 있는 소국가죠.”

“마음에 드네.”

수호는 사인을 했다.

처음 지구로 돌아와 사인했을 때가 생각난다.

“이제 내 이름도 적을 줄 알아.”

“하하, 사인 멋지시네요.”

“그럼 가봐. 오늘 조카 좀 보고 내일부터 나도 사냥이나 다녀야겠다.”

박수호의 개인 무력이 길드 전력의 대부분이다.

“가실 때 무조건 서 팀장이나 한 이사 하나는 데리고 가세요.”

“안 그래도 번갈아가면서 따라다니더라.”

“다른 용병들도 한 번씩 데려가고 그러세요.”

“그러지 뭐.”

수호가 얼마나 괴랄한 던전 공략을 하는지 알고 있다. 따라다니기만 해도 며칠 내로 등급이 오르리라.

“그럼 이건 오늘중으로 정부에서 발표할 거예요.”

이제 서울시 어디든 7성 던전이 생기면 수호 길드에서 책임지고 소멸시켜야 한다.

선발대 구성은 물론이고, 공략 영상도 오픈해야 한다. 다른 길드들이 이용은 하겠지만, 그 대가로 얻을 이용료 수입 또한 무시하지 못할 액수이리라.

“얼른 하나 생겼으면 좋겠네.”

구천 행성에서 단 1의 업적포인트도 획득하지 못한 수호다. 아직 잠겨 있는 드루이드 스킬도 있고 하니, 어느 정도 레벨을 올리면 아루카 행성에 가볼 요량이다.

’70 정도는 만들고 가자.’

행성은 아예 시스템이 다르다.

어떤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행성에 갈 때마다 몸이 엄청난 데미지를 받는다.

구천 행성에서도 그랬으니 아루카 행성에서도 그럴 확률이 높았다.

‘어쩌면 또 초기화될지도 모르고.’

아루카 행성에 갈 때는 단단히 대비하고 갈 작정이다.

“사장님 덕에 서울시도 수호시도 한층 더 안전해질 거예요.”

김미소는 인사하고 곧장 부사장실로 돌아왔다.

응접용 소파에는 아키코가 얌전히 앉아있었다.

그 맞은편에 비서실장 이소진이 앉아 그녀를 빤히 보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죠?”

“아닙니다.”

“한국말 잘하시네요. 이성우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김미소가 이소진이 비켜준 자리에 앉았다.

“혹시 기분 나쁘셨나요?”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김미소가 감시 역할로 앉아 있던 이소진에게 부탁했다.

“차 두 잔만 내어와 줘요.”

“네, 부사장님.”

아키코와 김미소는 서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침묵은 찻잔이 오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일단 대화에 앞서 분명히 할 게 있어요.”

“경청하겠습니다.”

“사장님 성격상, 아키코 양을 받아들인 건 미모나 미래지식 때문은 아닐 거에요.”

“…….”

둘은 아키코가 가진 가장 큰 무기다.

그럼 일본의 표적이 되어 위험부담만 가득한 자신을 왜 받아들였단 말인가?

“연구실로 배속한 걸 보면 아마도 당신의 분석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 같은데…….”

김미소는 태블릿을 들어 그녀가 스스로 작성한 프로필을 쭉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우가 작정하고 자신의 비서로 키웠는지 잡무능력이 아주 훌륭하다.

영어,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 스페인어의 5개 국어에 정보수집, 분석, 정리까지 그간 해온 일이 그런 쪽이다.

“아예 정보원으로 키워진 모양이죠?”

아키코의 고운 눈이 처음으로 찌푸려졌다.

“나 스스로의 선택이에요. 난 애완견 따위가 아니에요.”

“실수했네요. 사과하죠.”

김미소의 빠른 사과에 아키코가 변명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히로의 팀은 전부 엘리트예요. 미래에 크게 될 용사들을 모았으니 당연하죠. 그들에 비해 제 능력은 비루해요. 한계를 느끼고 팀에 도움이 되기 위해 배운 것들이에요.”

김미소는 웃었다.

“당신은요?”

“무슨 말이죠?”

“미래의 인재들만 모은 히로가 당신을 선택했잖아요. 당신의 미래는 어떻다던가요?”

“……난 2년 전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호, 그런데 히로가 살렸다?”

“네.”

“그래서 충성하고 있었다?”

“히로는 영웅이에요. 인류를 구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써 몇백 년이나 하고 있는…….”

“아니죠.”

김미소는 아키코의 말을 끊었다.

“회귀한다죠? 타임머신처럼.”

“네.”

“우리 사장님이 그러더군요.”

김미소가 수호 길드에 합류하고 전에 SFC매치에서 이성우를 만나 회귀에 관한 말을 들었을 때 이야기다.

“과거를 구하려는 멍청이라고.”

“…….”

“그가 잠적한 걸 보면 또 과거의 영웅이 되기 위해 간 모양이죠. 어쨌든 지금 이 세상은 구해야 하지 않겠어요?”

“맞습니다.”

“그래서 여기 온 건가요?”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만, 난 그저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아키코는 본인 스스로 전투능력이 떨어진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엘리트들 사이에서의 이야기.

A급 각성자인 그녀를 일반 감옥에 가뒀을 리가 없다.

그녀는 캡슐이라고 불리는 감옥에 갇혔는데, 정체는 다름 아닌 잠수함이다.

운항 능력이 없는 잠수형 캡슐은 군함에 달려 닻처럼 바닷속 깊이 가라앉혀 놓는다.

1평 정도의 생활 공간과 보존식량뿐인 그곳에서 인간다운 시간을 보내기란 불가능.

탈출을 시도하는 순간 산소를 공급해주던 탱크와 함께 잠수함이 터지기에, 군함에서 잠수정을 끌어올려 줄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지금도 몇몇 고위 각성자들이 그렇게 갇혀 있다.

“감옥선이 기항하면서 운 좋게 탈출하였습니다.”

뒤늦게 감옥선이 기항한 이유가 신화급 몬스터의 출몰임을 알았다.

“뭐, 좋아요. 이런 건 사실 볼 필요도 없어요.”

김미소는 그녀의 프로필이 담긴 태블릿을 치웠다.

수호가 원하는 건 그녀의 분석 능력이었는지 몰라도, 김미소는 아니었다.

“사장님은 아닐지 몰라도 전 당신의 정보에 아주 관심이 많아요.”

“내 미래일기는…….”

“아, 환대와 신뢰 문제는 다르겠죠? 그러니 한동안 저랑 붙어 다녀야 할 거예요.”

아키코는 아까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사실 나의 미래일기는 히로가 가진 원본에 비해 정확하지 않아요.”

이성우의 곁에 머무르며 그녀 스스로 작성한 정보들이다. 그가 던져주는 말 몇 마디, 상황 몇 줄 적은 게 전부다.

“일본 정부도 그것을 가지고 있으니 사실상 활용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히로의 말에 의하면, 모든 사건들의 시간이 달라졌다고 했어요.”

그녀의 위축된 말에도 김미소는 환하게 웃었다.

“그거 아주 좋네요.”

“네?”

“일본도 못 써야죠.”

재앙의 존재를 아는 것은 분명 큰 정보지만, 그 시기를 모르면 무용지물인 것들이 많다.

던전의 출몰 같은 거야 박수호라는 치트키를 가지고 있으니 상관없지만, 지진이나 화산 분출 같은 것들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일본 멸망은 시간 문제겠군요. 그것도 몇몇 건드려주면 더 가속화될 거고. 아니다, 안 건드리는 게 낫겠네요.”

어차피 자연 멸망한다.

“…….”

아키코는 혼란한 얼굴이었다.

이 여자가 원하는 것은 미래정보가 아닌가?

“당신이 원하는 것을 모르겠습니다.”

“인재에 관심이 많아요. 삼국지 읽어보셨어요?”

“아니요.”

“아쉽네요. 그건 나중에 읽어보고, 어쨌든 여럿 인재들을 길드로 끌어들일 거예요.”

희망찬 김미소의 말에 아키코가 찬물을 끼얹었다.

“히로가 이미 미래영웅들을 일본에 대거 스카웃해 온 상황이라, 남은 사람들은 몇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요.”

“네?”

“그냥 기다리면 일본 정부가 무너지겠죠.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

“후후, 대형 FA들이 시장에 많이 풀리겠네요.”

“……!”

이 여자, 위험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