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213 Satellite Cities (1)

수호시티.

외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호텔의 10층 스위트룸.

어느 방향의 객실을 잡아도 막힘없는 뷰를 자랑하는 호텔이지만, 북쪽 뷰는 조금 다르다.

시원시원한 숲이 시야 가득 보이는데, 사실 저건 내성벽이다.

10층 높이의 호텔에서도 무성한 나뭇가지만 보일 정도로 내성의 보안은 완벽했다.

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수호 길드의 일원뿐.

길드원이 아닌 가족들은 모두 외성에 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드넓은 들판 뷰를 자랑하는 다른 객실은 하루 종일 공사 현장을 봐야 한다.

아직 정비되지 못한 모습이지만 관광모델로서의 가치는 상당했다.

절망적인 시대 속에서도 푸른 환경과 안전을 제공하는 게 가장 큰 메리트.

이런 수풀이 우거진 자연이 또 어디 있을까? 몬스터 대신 이웃으로 자리 잡은 야수들은 어떤가?

사파리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거리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길을 걷다 보면 마주치는 게 곰이고 늑대고 코끼리다.

심지어 자기들 기분이 좋으면 등에 태워 주기도 한다.

강에는 악어도 살고, 민물에 있는 게 신기한 상어도 존재한다.

물고기나 먹을 걸 사서 던져주면 먹는다.

“평화롭군.”

1017호실의 투숙객은 창밖으로 그 광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수호호텔이 운영을 시작하고 단 7시간 만에 전 객실의 예약이 종료되었다. 향후 한 달간의 모든 예약이 말이다.

물론 그 이후 전 객실이 만실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돈을 지불하고도 체크인하지 않은 예약객이 90% 이상.

그들은 관광지 호텔이 필요한 게 아니라 유사시에 대피할 벙커가 필요할 뿐이었다.

10%의 진짜 투숙객 중 하나.

알 무스비는 서열에서 밀리긴 하지만 왕족이자, 바쁜 사업가 중에 하나.

그가 한가하게 이곳에 투숙중인 이유는 본국의 일이 덜 바빠서가 아니다.

이곳에서의 일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해서다.

“아직도 무소식인가?”

“네.”

수호 길드에 다방면의 사업 제안을 했지만 모조리 거절당했다.

한 번도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없던 알 무스비지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세계의 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남자.’

박수호의 영향력은 얼마나 될까?

알 무스비가 생각하기엔 지금의 챔피언 박수호나 수호 길드장으로서의 그는 지나치게 과소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

세계는 그를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유일무이한 사람이다.’

그를 대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니, 국가는?

세계 패권을 두고 다퉜던 옛 국가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그 홀로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숨죽이고 있지만, 그가 야망을 드러내는 순간 어떻게 될까?

“아쉽군.”

그 터럭을 잡고 올라타고 싶은 알 무스비지만, 저들은 남의 도움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투자하고 싶어도 투자할 수 없는 미래 유망주식과도 같다.

가질 수 없기에 더 가지고 싶지만, 방법이…….

“왕자님.”

그때 시종 하나가 더 들어왔고, 보고했다.

“수호 길드와 평리 길드의 업무협약이 공표되었습니다.”

“음?”

수호 길드에 관한 새로운 소식은 모조리 보고받고 있었다.

곧 다른 시종 하나가 번역된 기사 전문을 가져왔다.

“허어.”

자신들의 제안은 매몰차게 거절하더니…….

같은 국가 안이긴 하지만 얼마 전 분리독립한 영남연합의 도시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무려 레벨 7 길드 권한 획득.

레벨 6 이하의 권한은 평리 길드를 두고 대행.

수호 길드와 평리 길드의 업무협약.

“우리의 제안과 무엇이 다른가?”

알 무스비가 손대는 사업 중에 PMC가 없을 리 만무하다. 대격변 이전부터 운영해온 용병업체이고, 지금은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회사.

그런 회사와의 업무협약도 거절하고 소도시의 길드와 갑자기 손을 잡다니.

그 와중에 시종 하나가 다른 점을 찾아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말하라.”

“그들은 형제를 원하지 않는 것 같사옵니다.”

“음.”

알 무스비는 고민했다.

그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위에 둔 적이 없다.

동업자로서 옆에 서 준 적은 꽤 있었으나…….

“종을 원한다더냐.”

“…….”

시종들이 모조리 입을 다물었다.

수호 길드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지구는 가라앉고 있고, 오직 그의 도시만이 노아의 방주가 되어 줄 것이다.

‘그래서 그랬던가.’

수호 길드의 내성에 드나드는 사람은 모조리 길드원이다.

그리고 외성에 거주 자격이 주어지는 건 오로지 길드의 가족들뿐이다.

많은 외부인들이 오가고 있지만, 모두 서울에서 온 관광객이거나 자신과 같은 호텔 투숙객, 기자, 공사장 인부들뿐이다.

알 무스비는 평생 동안 이토록 콧대 높은 길드나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고민되었다.

‘실리냐, 자존심이냐.’

숙이고 손을 뻗느냐, 마느냐의 고민.

“후우.”

긴 한숨을 쉬기까지 뒤에서 대기 중이던 시종들은 좌불안석이었다.

“다시 제안을 넣어라.”

“어떻게 넣으리오까?”

“세계의 황제가 되고 싶은 모양인데, 그렇게 해줘야지.”

왕족의 입에서 황제라는 말까지 튀어나와버렸다.

사실상 그를 위에 두겠다는 말.

알 무스비의 시종들이 꾸민 새로운 업무협약서가 다시 수호 길드 비서실로 흘러들어갔다.

*

수호 길드 비서실의 우두머리.

비서실장 이소진은 길드 내에서 김미소 다음으로 바쁜 사람이다.

비서실 직원들을 꾸준히 채용해 일의 강도는 줄었으나, 결국 정보 분류의 마지막 손은 그녀를 거쳐야 했기에 여전히 바빴다.

그녀의 손에는 항상 태블릿이 들려 있었다.

수호 길드 전용 인트라넷에 새롭게 업로드된 보고서를 보고 이소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와, 얘들은 정말 끈질기네.”

그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끈질긴 구애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서울의 12개 길드들도 이 정도는 아닌데 말이다.

“실장님 왜요?”

옆에 있던 비서실 직원의 물음에 태블릿을 보여주었다.

“와, 얘들 바짝 엎드렸네요.”

“그러게.”

블랙 코브라.

세계 탑 10을 뽑으면 항상 한자리를 꿰차는 용병회사다.

용병들의 대우가 가장 좋기로 소문나, 현재도 가장 강력한 전력을 구축한 길드다.

“와, 근데 여전히 맥을 못 짚었네요.”

“그치.”

블랙 코브라의 업무협약 제안서를 보며 비서실 직원도 비서실장 이소진도 피식 웃었다.

모든 게 수호 길드 위주로 짜인 제안서지만, 실상 어떤 혜택을 주더라도 이 제안이 통과될 리는 없다.

이소진이 태블릿을 건네받고 사무실로 들어가려 했다.

“어, 보고하시게요?”

“보고는 해야지.”

어차피 까이겠지만, 무려 왕족이 납작 엎드려 건네는 제안서가 아닌가?

임시로 만들어진 컨테이너 사무실을 열고 들어가 보니, 김미소가 예의 그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슨 일이야?”

“블랙 코브라, 얘들 또 제안서 넣었어요.”

“제안서가 한둘이야?”

블랙 코브라가 아니라도 수호 길드 채널이나 메일로 오는 것들이 하루에만 수백 통이다.

그 와중에 이렇게 부사장 보고까지 올라오는 것은, 블랙코브라가 가진 위치 때문이다.

“안 된다 그래.”

보고서를 보지도 않고 거절하는 김미소를 보며 이소진이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어휴, 뭐라고 거절하죠?”

“잘 꾸며봐.”

“그냥 사실대로 말할까요?”

“안 되지.”

거절 이유는 하나다.

수호가 원하지 않으니까.

평리 길드를 하청업체로 선정한 이유도 하나다.

수호가 원하니까.

김미소의 가장 우선순위는 그가 모시는 사장님의 의중이고, 모든 시스템은 그의 의지대로 돌아가고 있다.

김미소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적당히 까.”

“얘들 회장이 호텔이 직접 와 있어요.”

“어휴, 걔 왕족 아냐?”

“맞아요.”

“배알도 없이 왜 그런대?”

적당히 자존심 상해하고 물러나면 좋으련만, 왜 이리 끈덕진지 모르겠다.

“그냥 멀어서 안 된다 그래.”

“네, 그럴게요.”

사실 이런 외교적인 일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사람은 언제나 눈앞의 일이 중요하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야 전쟁이 나든 금광을 캐든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리니까.

김미소라고 예외일까?

‘우리가 세계평화수호길드도 아니고 말야.’

대중들은 큰 힘에 큰 의무를 지우는 걸 좋아한다.

그 힘이 대중들에게서 나온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저 짐 떠넘기기일 뿐이다.

“근데 사장님 아직이죠?”

“그러게. 조금 걸리시네.”

두 번째 공략에 나선 박수호가 아직 던전 공략중이다.

김미소가 여전히 대구에 머무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평리 길드와의 세부 조율도 마쳤고, 반 협박해서 얻은 영남연합과의 조약도 마쳤다.

‘뭐하시는 거지?’

박수호와 진세연 박건우 셋이서 공략에 나섰다.

박수호가 있는 이상 공략대의 숫자는 무의미.

벌써 던전 진입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겨우 두 배 시차라, 던전 시간으론 이 주일.

“홍 팀장은?”

“방금 재진입하셨어요.”

공략을 무사히 마치고 복귀한 2공격대는 하루 휴식 후 다시 진입했다.

“서 팀장은?”

“아직 공략중이에요.”

박수호를 논외로 잡고, 2, 3공격대를 기준으로 잡으면 공략시간 5일, 던전 내 시간 10일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서민수가 이끄는 3공격대도 오늘 내일 중으로 공략을 마치고 나올 것이다.

“평리 길드는?”

“거긴 아직 멀었죠. 이제 3일 됐어요.”

평리 길드도 자체적으로 공략대를 이끌고 공략에 나섰다.

보스몬스터인 트윈헤드 오우거를 혼자 잡은 김동완이 있기에, 그들 자체적으로 공략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도전에 나서고 있는 중이다.

현재 공략중인 팀만 4곳.

진즉 나왔어야 할 박수호가 공략을 시작한 지 일주일.

“뭐 한다고 이리 안 나오시지?”

“사장님이 가셨는데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겼겠어요.”

“흐음.”

김미소는 괜히 진세연을 딸려보냈나 후회했다.

U급 각성자를 넷이나 보유한 수호 길드다.

꼭 박수호 사장이 아니더라도 인턴들을 버스 태워 줄 인력이야 넘쳤다.

“한 이사는 왜 아직 복귀 안 하고 있어요?”

“오는 길에 군주를 만나서 사냥 중이라고 연락 왔습니다.”

“루팅한 차원석이 총 몇 개라고 했죠?”

“열둘이랍니다.”

“좋네요.”

수호 길드가 가지고 있던 차원석은 3개였다.

2개는 귀환석을 만들었고, 하나는 협상 끝에 대한민국 정부에 양도했다.

통신위성 하나를 받아내고 말이다.

이제 한동수가 돌아오면 추가로 12개의 차원석이 생긴다.

협상 카드로 써도 좋지만, 이제 그 정도 숫자면 연구 중인 ‘이동포탈’의 실험재료로 써도 충분할 양.

‘포탈 망만 구축되면…….’

공간의 제약이 대폭 사라진다.

수호시와 대구시를 이을 수도 있고, 구천 행성 게이트가 있는 익산과의 포탈망을 만들어도 좋다.

섬인 제주도와의 통행로를 뚫을 수도 있고, 몬스터들 천국인 시베리아나 아프리카와 이을 수도 있다.

‘도시가 커지겠어.’

세계가 수호시티를 중심으로 연결될 것이다.

밝은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데 급히 소식이 전해졌다.

“사장님 나오셨습니다!”

“헙, 가 봅시다.”

김미소가 서둘러 컨테이너 사무실을 나섰다.

포탈이 바로 곁에 있기에 나오자마자 공략을 끝낸 박수호의 모습이 보였다.

가만히 서 있는 수호의 등짝.

그리고 털썩 주저앉은 진세연.

그 옆에서 핼쑥한 얼굴의 박건우까지.

“사, 사장님.”

“미소.”

슬쩍 돌아보는 박수호의 얼굴을 보며 김미소가 그답지 않게 살짝 긴장하며 물었다.

“무,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무 일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