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날씨가 추웠다.

나는 톰브라운 코트를 잘 샀다고 생각했다. 따듯해 좋고 명품 브랜드라 폼도 나니 내 주가가 더 올라가는 것 같았다.

출근길에 엘리베이터를 타면 다른 회사 직원들에게 아주 자랑스러워보였다.

우리 사무실이 있는 여의도 국제 금융빌딩(IFC)에는 한국IBM이나 AIG생명보험, IBK기업은행, 등의 잘나가는 금융사들이 있고 외국계 은행들도 입주해 있다.

직원들은 모두 세련되고 스카이 출신들이 많았다. 이른바 신이 내린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라는 자부심도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유명한 라임 자산운용사도 여기에 있다.

여기서도 나는 단연 돋보였다.

엘리베이터에 탄 다른 회사 여직원들이 나를 보고 저 사람은 어느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이냐고 수군대기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날마다 3억짜리 승용차를 타고오고 옷도 고급스럽게 입은 것 같고 피부도 말끔하기 때문이었다.

미국계 은행에 근무하는 직원과 친해진 최유나 씨는 미국계 은행 직원들이 저분이 누군가 했는데 너희 회사 사장이냐고 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외국계 은행의 여성 슈퍼바이저 한 사람이 총각이면 소개해 달라고 하기도 했다는 소리도 들렸다.

신림동 달동네의 지잡대 출신이 내가 생각해도 더럽게 출세를 한 것 같았다.

나는 출근하여 따듯한 홍차를 마시면서 인터넷 뉴스를 보았다.

뉴스는 신문이나 TV보다는 인터넷에서 주로 본다. 그러다가 눈에 확 띠는 것이 있었다.

“어? 박운영이 검색어 1위네!”

나는 박운영을 클릭해 보았다.

[박운영 아나운서, 2살 연상의 금융인과 사귀고 있다고 실토.]

“뭐? 나 말고 다른 놈이 있다는 건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도 있었는데 그건 분명히 나인 것 같았다.

기산 저수지의 카페 단궁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어? 이거 나 아냐?”

나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걱정도 되었다.

“이거, 이렇게 되면 운영이 인기가 떨어지는 건 아닌가? 왜 이런 걸 공개했지?”

나는 운영이에게 즉각 카톡을 보냈다.

[오늘 아침 인터넷 기사를 잘 보았어. 그런데 이런 것 공개해도 되나?]

답신이 왔다.

[미안해. 오빠. 그럴 사정이 있었어.]

[나는 괜찮지만 이러다가 운영이 인기가 떨어지는 것 아니야?]

[괜찮아. 그리고 혹시 기자나 팬들이 찾아오면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딱 잡아떼.]

[어떻게 잡아떼니? 이 세상에 다시없는 내 동반자인데!]

[바보 같긴! 꼭 그렇게 해야 돼.]

[알았어. 운영이가 시키는 대로 할게.]

장차장이 내 방으로 왔다.

“카톡을 하시는 모양이네요. 조금 있다가 들어올까요?”

“아니요. 다 되었습니다.”

“모강테크 중국공장 3/4분기 손익보고서가 올라왔네요.”

“이익은 나오고 있습니까?”

“분기 매출 80억에 영업이익 12% 나왔습니다.”

“순항하고 있는 것 같긴 하네요.”

“모강테크 경리이사 말로는 피테스텍 중국공장도 4/4분기 손익에서는 영업이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요?”

“그리고 비박계 수장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내년 대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겠다고 발표했답니다.”

“잘못하면 탄핵 되겠는데요? 야당 3당이야 탄핵에 찬성표를 무조건 던지겠고 여당인 비박계가 동조한다면 박 대통령이 아주 위험하겠네요.”

“야당인사 대선주가 그래서 강세입니다.”

“정과장과 송과장이 대선 테마주 미리 팔았다고 나를 원망하겠네요.”

“40% 먹었으면 되었지 원망이야 하겠습니까?”

“아까 얼핏 보니까 오늘도 대선주 이외는 주식 시장이 나쁜 것 같던데요?”

“코스닥 600선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저는 햇살론 대출이 많아지면 주식시장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햇살론요? 햇살론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서민 금융상품인 햇살론의 생계자금 대출이 1천만 원에서 1천 5백만 원으로 상향 조정이 된답니다. 그러면 주식시장이 나아질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생계자금으로 융자받은 서민들이 돈 더 늘려볼까 하고 불나방처럼 주식시장으로 몰려든단 말이군요.”

“그렇죠. 돈을 바치러 오는 거지요. 개미들이 정보도 없으면서 뭘 하겠습니까? 피 같은 돈 대출받아 교활한 세력들에게 갖다 바치는 거죠.”

이 말을 들으니 나도 햇살론 대출을 받던 때가 떠올라 움찔하였다.

“에효, 장차장님 햇살론 말씀하시니까 제가 MG새마을 금고에서 햇살론 받을 때가 기억납니다.”

장차장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사장님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까?”

“그때 트럭이나 한 대 사서 지입차로 들어갈까 했었지요.”

“트럭요? 저는 2종 면허인데 1종 면허를 가지고 계십니까?”

“1종 면허는 있습니다. 중장비 면허도 있는데요.”

“그렇습니까?”

수백억의 자산가며 사모펀드사 사장이 트럭 운전을 했다니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장차장이나 정과장, 송과장은 좋은 대학을 나와 바로 증권사에 취업을 하여 세상의 풍파를 견뎌보지 않았지만 나는 20여 가지 알바를 전전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찌꼬바 영세 공장에서 일하다가 주식을 시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융자받으셨으면 1천만 원 받으셨겠네요.”

“아니오. 회사 재직증명서 가져다주니까 200만원 더 해주어 1,200만원을 대출 받았습니다. 당시 신용도 좋지 못하여 연이자 5.8% 적용도 못 받고 10.6%를 적용하더군요.”

“10.6%요? 그렇게나 많았습니까? 그럼 융자는 받지 않았겠네요.”

“절박한 상황이라 10.6%도 감지덕지했지요. 그것 받아 여기저기서 돈을 꾸어 2천만 원을 주고 트럭을 사니까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았습니다.”

“허, 그랬습니까? 그런데 그 트럭을 사서 뭘 하셨습니까?”

“2.5톤 탑차를 사서 택배 일을 했지요.”

“택배요?”

“택배 일이 보기보다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날마다 온 몸에 파스를 붙이고 살았습니다.”

“정말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하셨네요. 그런데 융자 받을 때 재직증명서를 가져다주었다고 했는데 어디 회사에 근무하셨습니까?”

“명학역에 있는 마찌꼬바 공장입니다.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 하시죠.”

“그래서 피테스텍을 인수하러 갔을 때 생산현장에서 제어기 스위치 같은 것도 넣어보시고 그랬군요. 저는 기계에 대하여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장차장님은 주식에 대하여 잘 아시잖습니까? 시장 분석도 탁월하시고요.”

“아이고, 아닙니다. 주식은 사장님이 천부적 자질을 타고나신 분입니다. 사장님 앞이라 아부하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돈을 버신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잖습니까?”

“돈을 벌었는지는 몰라도 저는 지금 장차장님께 많이 의지하고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부분도 잘 챙겨주셔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장차장이 나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사장실을 나갔다.

내가 서점에서 사온 간추린 한국사 책을 보고 있는데 윤 변호사의 전화가 왔다.

“동생, 오래간만이야.”

“아, 형님. 요즘은 여의도 쪽에 안 오십니까?”

“나,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되었어.”

“겨울에요?”

“그렇게 되었어. 미국에 계신 우리 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 서둘러서 하기로 했어. 원래는 내년 봄에 하기로 했는데 말이야.”

“요즘은 계절에 상관없이 결혼식을 많이 합니다.”

하긴 길음동에 사는 큰아버지 아들도 12월에 하지 않는가!

“그럼 날짜는 받으셨어요?”

“12월 10일 토요일이야. 서울 플라자 호텔에서 하기로 했어.”

“시청 앞에 있는 플라자 호텔 말입니까?”

“응, 거기가 직장에서도 가깝고 교통도 좋아 정했어.”

“축하합니다. 형님. 미향이 한테는 제가 따로 축하의 말을 전하겠습니다.”

“헤헤. 고맙네.”

“그럼 양가 부모님들이 전부 한국에 나오시겠네요.”

“그래서 예식장도 플라자 호텔로 한 거야. 우리 부모님은 시청 건너편의 코리아나 호텔에서 묵고 미향이 부모님은 플라자 호텔에서 묵기로 했거든.”

“형님 결혼하는 것 보니까 저도 빨리 가고 싶네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박운영 부모님도 만나봤다며?”

“예, 만나보았습니다.”

“그럼, 다 된 거야. 그 안에 좀 험난한 과정이 있지만 뽀뽀도 하고 부모님도 뵈었다면 다 된 거야.”

“제가 뽀뽀를 했는지 안했는지 형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다 보았어. 이 사람아. 자네 우리하고 같이 송추에 놀러갔을 때 저수지 있는데서 운영이와 뽀뽀하는 것 다 봤어.”

“하, 그랬나요?”

“자네도 축하해. 아름다운 여성을 배우자로 맞으니 말이야.”

“고맙습니다. 형님. 미향이 덕입니다. 참, 형님 결혼하시게 되면 미향이에게도 반말 하기가 어려워지겠네요.”

“동창이라며? 괜찮아!”

“형님, 결혼식 전이라도 한번 만나 식사라도 하고 싶습니다.”

“12월 3일 우리가 설악산엘 가는데 같이 안 갈 텐가? 미향이가 설악산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해서 가려고 해.”

“그럼 제가 운영이와 상의해보죠. 방송 스케쥴을 봐야 하니까요.”

“응, 그래. 연락 줘.”

나는 윤 변호사가 한국지리도 잘 모르는데 렌트카 빌려 운전하는 것이 서툴겠다고 생각이 되었다.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운영이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랐다.

나는 운영이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윤 변호사와 오미향이 결혼 날짜를 잡았다는데?.]

답신이 바로 왔다.

[조금 전에 미향언니와 통화 했어.]

[아버님 건강이 안 좋아 서둘렀다며?]

[그 이야기도 들었어]

[이번 주 주말은 방송 스케쥴 때문에 바쁘다고 했지? 다음 주 주말은 시간 나지?]

[가급적 다음 주 주말에 오빠네 집에 가도록 할게.]

[다음 주 금요일 저녁에 올수 없니? 그리고 다음 주 주말엔 설악산 가자.]

[설악산?]

[오미향이 설악산을 보고 싶어 하는 모양이야. 그래서 결혼 전에 렌트카 빌려 간다고 했어.]

[그래?]

[아무래도 한국 지리에 익숙하지 못하니까 같이 갔으면 하는데 우리도 같이 가자.]

[글쎄.]

[우리의 인연도 따지고 보면 오미향 덕택이 아니야? 우리도 바람도 쏘일 겸 푸르른 동해 바다도 구경 가자. 더 늦으면 눈 쌓여서 못가.]

[일단은 알았어. 내가 가도록 노력을 할게.]

[금요일 저녁에 우리 집에 오고 토, 일요일은 설악산 가는 거다?]

[알았어.]

나는 오미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축하 전화는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오 변호사? 나 최준식이야. 결혼 날짜 받았다며? 축하해.”

“빨리도 전화 왔네. 내가 방금 운영이 한테 말했는데.”

“아, 나는 윤 변호사한테 들었어.”

“그랬나? 윤 변호사 아버님이 결혼식을 보고 수술에 들어가신다고 해서 서두르게 되었어, 겨울에 결혼을 해서 미안해.”

“아냐, 요즘 그런 것 안 따져. 12월에도 결혼 많이 해.”

“결혼식 날은 운영이와 손잡고 꼭 와. 사실 나는 한국에 연고가 별로 없어 하객도 많지 않을 거야.”

“내가 고등학교 동창들을 다 부를까?”

“에이, 내가 그 학교는 1년도 못 다닌 사람인데. 그리고 동창들도 내가 미국으로 떠난 이후로는 얼굴한번 못 보았는데 부를 수는 없지. 그냥 최 사장하고 운영이만 와.”

“그리고 다음 주 토요일 설악산 간다며?”

“설경이 좋다고 그래서..... 결혼 전에 윤 변호사와 함께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우리도 따라갈까?”

“호호, 그러면 대환영이지. 정말 올래?”

오미향은 우리가 간다는 말에 되게 좋아하였다.

동창들과의 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