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ve

Eighteen dollars.

흰색 문밖으로 나가자 텅 빈 공간이 보였다.

공간은 넓었다. 작은 운동장 정도 크기는 됨 직했다.

다만 무언가 가로막고 있는 벽과 천장은 바깥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아무도 없나……?”

정규는 의아한 듯 주위를 둘러봤다.

텅 빈 공간에 있는 거라고는 오직 문뿐이었다.

“……어?”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윤재와 정규는 고개를 돌렸다.

“너희가 어떻게 여기에……?”

“오랜만이다.”

윤재는 박주호를 향해 씩 웃으며 인사했다.

박주호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오랜만이라니, 방금 헤어졌는데.”

“방금이라고요?”

정규 역시 영문을 모르긴 마찬가지.

하지만 윤재는 두 사람의 반응이 왜 이런지 대강 알고 있었다.

[어느 색 문으로 들어가든 마찬가지였다. 붉은색이든, 푸른색이든, 흰색이든 결국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다음 튜토리얼이 진행되었다.

처음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특히 붉은색 문에 들어간 사람과 흰색 문에 들어간 사람 간의 괴리감이 가장 컸다.]

시간의 괴리감.

붉은색 문이든, 흰색 문이든 결국 튜토리얼 4단계는 함께 진행하게 된다.

윤재와 정규는 열흘 동안 개고생을 했지만, 흰색 문을 선택해 아무런 제약 없이 튜토리얼을 통과한 박주호는 그저 문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딘 것뿐이었다.

참 웃긴 상황이다.

시간을 느끼는 감각을 속인 건지, 아니면 진짜 시간을 역행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시간 감각을 속인 거라면, 박주호는 흰색 문에 들어섬과 동시에 동결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붉은색 문에서의 튜토리얼이 다 끝날 때까지 말이지.’

시간을 조종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으로 그게 훨씬 쉬운 방법이다.

흰색 문에 들어간 사람은 그대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도록 동결된다.

푸른색 문을 진행한 사람들 역시, 붉은색 문이 끝날 때까지 마찬가지로 동결된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아마 윤재와 정규가 붉은색 문을 통과한 시점일 것이다.

당장 박주호가 윤재와 정규보다 한 발 늦게 도착한 것만 봐도 그게 더 현실성이 있는 가설이었다.

“아무래도 여기서 다시 다 모이나 보군.”

윤재는 영문을 몰라 멍해 있는 정규와 박주호에게 주위를 둘러보라는 듯 말했다.

문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들이 나온 문까지 합쳐 도합 열 개.

그리고…….

끼이익-

그 문이 차례로 열리기 시작했다.

열린 문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윤재와 정규가 나온 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붉은색 문으로 들어갔던 윤재와 정규, 흰색 문으로 들어갔던 박주호에 이어 푸른색 문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 문에서는 다섯 명, 혹은 여섯 명의 사람이 나왔다.

붉은색 문에 들어간 사람들 중 살아남은 사람은 몇 명 없었다.

‘저들인가.’

일곱 명의 사람이 나온 문.

윤재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흰색 문과 푸른색 문의 정원은 합쳐도 여섯 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 이상의 정원이 나왔다는 건, 붉은색 문을 통과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왜 일곱 명이지?’

윤재는 일곱 명이 나오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붉은색 문을 통과한 사람은 모두 여덟 명이었다. 아무래도 붉은색 문을 진행하던 중 두 명은 죽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다른 곳은 넷, 다섯씩 죽어 나갔는데.]

분명 일기에 적혀 있던 그들의 숫자는 여덟 명이었다.

얼굴을 확인해 보니 확실했다. 그들 중 두 명은 던전에서 윤재와 얼굴을 마주쳤던 사람들이었으니까.

‘뭔가 잘못됐어.’

또다시 미래가 바뀌었다.

여덟 명이 살았어야 할 미래가, 일곱 명으로 줄었다.

‘나…… 때문인가?’

그럴 가능성이 크다.

바뀐 건 윤재가 던전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그들이 얻었어야 할 보상을 취했다는 것뿐이니까.

그 과정에서 미래가 바뀐 것이다.

‘내 행동으로 미래가 바뀌고, 죽지 말았어야 할 누군가가 죽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든 순간, 윤재의 어깨가 갑작스레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순 없지.’

윤재는 아래로 내리고 있던 손을 꽉 쥐었다.

애초에 미래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애초부터 윤재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을 통해 은경과 민아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잠시 감정을 추스른 윤재는 더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왜 저 문에선 아무도 나오지 않죠?”

정규와 윤재는 동시에 같은 문을 보고 있었다.

유독 열리지 않는 하나의 문.

흰색 문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다면, 다른 문처럼 바로 열렸어야 한다.

‘왜 열리지 않는 거지?’

흰색 문으로 들어간 사람이 없다면 저 문도 붉은색 문을 진행했다는 뜻이었다.

아무도 흰색 문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건 열 명이 모두 붉은색 문을 선택했다는 뜻이니까.

사람들은 강당에 모여 열리지 않는 문을 바라봤다.

아무런 메시지가 없었다. 아마도 모든 문이 열려야 튜토리얼이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끼이익-

열리지 않고 있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다 죽은 건 아니었군.’

열리지 않는 문.

일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정보였다.

윤재는 설마 저들이 붉은색 문을 진행하고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죽지는 않았을지 걱정하고 있었다.

‘이번 튜토리얼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살아남는 게 좋아.’

튜토리얼 4단계.

3단계와는 달리 4단계의 튜토리얼은 많은 사람이 살아남을수록 이점이 많았다.

그것을 위해 튜토리얼 2단계에서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을 막아서기까지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미래는 가능한 한 크게 바뀌지 않은 게 좋고.’

미래가 바뀌지 않을수록 일기를 통한 계획에 변수는 사라진다.

붉은색의 문을 통과한 사람 중 한 명이 줄어들었다는 건 분명 아쉬운 일이지만, 다른 변수는 최대한 없어야 한다.

저벅-

마지막으로 열린 문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본 윤재의 미간이 살며시 좁아졌다.

‘저 녀석은…….’

김두형.

그리고 그 뒤로 나온 사람은 바로 함께 다니던 정유라였다.

그렇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서 신경 쓰이던 차였다.

설마 죽기라도 했나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열린 문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쿵-

두 사람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주위가 술렁거렸다.

총 열 개의 문이 있었지만, 각 문에서 최소한 다섯 명은 나왔다.

그런데 고작 둘이라니.

“……살아남은 건, 저 둘뿐인가?”

그것도 함께, 나란히 나왔다.

흰색 문을 통과한 게 아니다. 윤재는 무언가 냄새를 맡았다.

‘들어간 문은 아마도 붉은색.’

이 또한 일기의 기록에는 없었다.

무언가 저 안에서, 벌어지지 말아야 할 일이 벌어졌다.

윤재는 김두형과 정유라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꾀죄죄한 몰골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온몸에 묻어 있는 피였다.

‘설마…….’

한 가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순간.

[생존자 56명. 지금부터 튜토리얼 4단계의 규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튜토리얼이 시작되었다.

‘이것도 이제 두 번 남았군.’

튜토리얼은 총 5단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모든 튜토리얼을 통과하면 본격적인 이면세계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애초에 자격이 없는 자는 발조차 들일 수 없는 세계라는 걸까?

지금 이 자리에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은 애초의 사분지 일밖에 되지 않았다.

[튜토리얼 4단계는 경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금부터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의 팀으로 구성됩니다.]

‘팀이라…….’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윤재는 이번 튜토리얼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붉은색 문을 선택한 튜토리얼 3단계와는 달리 튜토리얼 4단계에 관한 기록이 일기에 남아 있었기에.

[지금부터 여러분은 또 다른 튜토리얼 장소에서 도착한 해당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면세계의 튜토리얼에 참여하게 된 사람은 고작 2백 명 정도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과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튜토리얼을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과 경쟁해야 한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지만 영문도 모른 채 살기 위해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어느 팀이 더 많은 괴물을 사냥해 ‘팀 포인트’를 많이 획득하느냐를 통해 승패를 겨룹니다. 더 많이 팀 포인트를 획득하는 쪽은 마지막 튜토리얼을 진행하게 됩니다.]

마지막 튜토리얼.

그 말에 사람들의 눈이 반짝였다.

이 지긋지긋한 튜토리얼도 이제 끝이 보이는구나, 하는 얼굴들이었다.

반면 얼굴에 걱정이 떠오른 사람도 있었다.

패하면?

이제는 묻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었다.

[패한 팀에게 다음은 없습니다.]

꿀꺽-

그 말에 여기저기서 긴장 가득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은 없다.

그 말은 즉 죽는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모두가 긴장해 숨을 죽이고 있을 때.

덜컥-

처음 나타났던 열 개의 문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서 흰색과 검은색의 두 문이 나타났다.

[팀 포인트를 획득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흰색 문으로 들어가 괴물을 사냥하면 팀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간단하다.

그것도 너무나.

하지만 문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검은색의 문으로 들어가면 스탯과 함께 ‘개인 포인트’를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검은색 문에서 사냥한 괴물에게서 획득한 ‘개인 포인트’에 따라 매일 자정 여러분이 서 있는 공터에서 아이템이 지급됩니다.]

아이템이라는 말에 몇몇 사람의 눈이 반짝였다.

그들 중에는 이번 튜토리얼 보상으로 소정의 아이템을 획득한 사람도 몇몇 섞여 있었다.

괜찮은 아이템 하나가 몇 개의 스탯보다 낫다는 것을, 그들은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명령어 ‘문’을 통해서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올 수 있으며, 돌아온 위치는 자동으로 저장됩니다. 또한 팀 포인트와는 별개로 개인 포인트를 가장 많이 획득한 10명은 마지막 튜토리얼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뭐?”

“열 명은……?”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팀 포인트에 상관없이 개인 포인트를 가장 많이 획득한 열 명은 살아남을 수 있다.

그 말이 가져온 파장이었다.

‘진짜 정신 나간 시스템이야.’

튜토리얼 2단계와 비슷하다.

그때는 가장 많은 업적 포인트를 획득한 백 명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작 10명밖에 되지 않았다.

팀 포인트를 획득하면, 그리고 경쟁에서 승리하면 팀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경쟁에서 패하면 살아남는 건 개인 포인트를 획득한 열 명이었다.

대부분은 이미 이 자리까지 오면서 서로에 대한 불신이 가득 쌓여 있었다.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쳐 팀 포인트를 모아 경쟁에서 승리하자!

……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목숨이 걸린 일.

경쟁에서 패할 경우라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단합이라는 걸 못 보는군.’

만약 팀 포인트만을 얻는 경쟁이었다면, 별다른 분쟁 없이 모두가 열심히 사냥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됐으니 자칫 잘못하다간 서로를 믿지 못한 채 모두가 개인 포인트를 얻겠다고 달려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고.’

[우리 분위기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어느 누구도 흰색 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모두가 검은색 문으로 들어가 개인 포인트를 얻기 바빴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다들 진짜 멍청했다. 색부터가 흰색과 검은색, 어느 쪽이 정답인지 말해 주고 있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흰색 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살아남았다. 그야말로 턱걸이였다. 개인 포인트를 가장 많이 획득한, 열 번째 사람이었다.]

군중심리다.

여러 명의 사람이 팀 포인트를 얻기 위해 애쓰면, 개인 포인트를 조금만 획득해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개인 포인트를 통해서는 더 좋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기까지 했다. 당연히 개인 포인트를 획득하는 게 훨씬 더 큰 이익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하나둘 늘어가다 보면, 팀 포인트를 획득하기 위해 애쓰던 사람들은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이러다 경쟁에서 지는 건 아닐까, 역시 개인 포인트를 챙기는 게 정답이 아닐까, 하고.

실제로 이 자리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이건…… 바꿔야 할 미래다.’

가능한 경쟁에서는 승리하는 쪽이 좋다.

단순히 개인 포인트를 획득하는 것만으로는, 팀 단위로 승리해 얻을 수 있는 보상을 얻지 못하니까.

이면세계는 어떤 식으로든 업적을 쌓고 기여를 하면 그에 따른 보상이 돌아온다.

‘팀 단위 보상도, 개인 단위 보상도 모두 챙긴다.’

살아남는 건 당연하다.

관건은 얼마나 큰 보상을 챙기느냐다.

[튜토리얼 4단계는 총 닷새에 걸쳐 진행됩니다. 매일 자정, 아군과 적 팀의 팀 포인트와 개인 포인트 랭킹이 집계됩니다.]

튜토리얼에 관한 설명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튜토리얼 4단계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튜토리얼 4단계의 시작.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곧장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서로의 눈치를 봤다.

하나의 팀으로 뭉쳐 있는 만큼 서로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생각은 비슷했다.

흰색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검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검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열 명밖에 살아남을 수 없다.

반면 흰색 문을 통해 팀 포인트를 획득하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선택이 있을 뿐.

흰색 문이냐, 검은색 문이냐.

어느 쪽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큰 것인가.

그렇게 모두가 같은 고민에 휩싸이고 있을 때였다.

저벅-

거의 동시에, 두 사람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윤재.

그리고 김두형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이 향한 문은 서로 다른 색이었다.

“흰색 문……?”

“검은색……?”

정규를 부축하고 있는 윤재는 흰색 문으로, 김두형은 검은색 문으로.

누군가 먼저 움직였다.

하지만 방향이 엇갈려서 그런지, 뒤따라 움직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한 명만 움직였다면 그 뒤를 꽤 많은 사람들이 따라갔을 테지만 거의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뒤따라 움직인 사람은 한 명.

정유라뿐이었다.

김두형과 함께 나타난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김두형의 뒤를 따라 검은색 문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해야 하지……?”

“몰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역시 검은색으로…….”

“그러다 경쟁에서 지면?”

“그걸 대비해서라도 역시…….”

갈팡질팡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나둘.

그들은 검은색 문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팀보다는 스스로 살길부터 모색해야 하니까.

* * *

흰색 문, 팀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는 문으로 들어가자 그 안은 기다란 복도처럼 되어 있었다.

윤재는 주위를 둘러보다 부축하고 있던 정규를 향해 물었다.

“움직일 수 있겠냐?”

“약이 슬슬 듣기 시작했나 봐요. 이제 그만 부축해 주셔도 괜찮아요.”

정규는 그렇게 말하며 윤재의 손을 떨쳐 냈다. 크게 비틀거리지 않는 것이, 엘릭서의 효과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아직 무리할 필요는 없어. 괜찮으면 쉬고 있어도 된다.”

“아뇨, 그럴 순 없죠. 그리고 정말 괜찮다니까요?”

정규는 잘 보라는 듯 팔을 크게 돌려 보였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것이 정말 괜찮긴 한 모양이었다.

윤재는 그만 알았다며 손을 저었다.

정규는 씩 웃더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역시 들어오는 사람이 없네요.”

“처음엔 개인 포인트를 획득하는 게 더 나아 보일 테니까. 하나둘 검은 문으로 들어가는 게 보이면 혼자 팀 포인트를 획득해 봤자 헛수고라고 생각했겠지.”

윤재는 어차피 이렇게 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기록되어 있던 미래에서는, 어느 누구도 흰색 문으로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저희도…… 그냥 검은 문으로 들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정규는 불안한 듯 물었다.

윤재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정규와 함께 둘이서 수십 명분의 몫을 해낼 수는 없었다.

불안감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의문도 들었다.

“형이라면 개인 포인트에서도 순위에 들 수 있을 것 아니에요?”

애초에 붉은색 문은 열 명이서 통과하도록 설계된 튜토리얼이었다.

그런 튜토리얼을 윤재와 정규는 단둘이서 통과했다. 당연히 그런 만큼 그동안 얻은 스탯도, 보상도 남들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윤재는 두말할 것도 없고, 정규 역시 상대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

개인 포인트를 획득하는 경쟁에서도 충분히 순위에 들 수 있는데, 굳이 희생을 감수할 필요가 있나 싶은 것이다.

“나라고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

“그럼 왜…….”

“개인 포인트를 포기할 생각은 없어.”

윤재의 대답에 정규는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정 수준만큼의 팀 포인트를 획득한 뒤, 우리도 개인 포인트 획득에 참여할 거다. 여기 있는 건 아주 잠깐일 뿐이야.”

“왜 굳이…….”

“팀 단위 경쟁도, 개인 단위 경쟁도 이겨야 하니까.”

“그럴 필요가 있어요?”

“튜토리얼은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통과했을 때 그에 따른 보상을 해 주니까. 팀 단위 경쟁에 대한 승리 보상도, 개인 포인트 경쟁에 대한 보상도 챙기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야.”

확실한 근거가 없는 말이었다.

팀 단위 경쟁에서 승리했을 때 그에 따른 보상이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과정을 통한 추측에 불과했다.

물론 윤재는 확신이 있었다.

그에게는 일기가 있으니까.

[팀 포인트는 단순히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조건만이 아니었다. 획득한 팀 포인트에 따라서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전제하에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졌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팀 포인트에 따른 보상은 얻지 못했다. 경쟁에서 승리하지도 못했고, 팀 포인트를 얻지도 않았으니까.]

팀 포인트, 즉 기여도에 따른 보상.

보상이 뒤따른다면 팀 포인트에 따른 보상도 포기할 순 없다.

그것이 윤재의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그건 여기서밖에 얻지 못하니까.’

윤재의 시선이 팔목으로 향했다.

자하르의 족쇄.

튜토리얼 3단계에서 업적을 쌓고, 그 업적을 인정받아 획득한 보상이었다.

정신없이 튜토리얼 4단계로 넘어와 설명을 듣고 곧장 움직이느라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다.

“잠깐만.”

“왜요?”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

“아, 그러고 보니…….”

정규도 막 생각났다는 듯 자신의 손을 확인했다.

윤재가 팔찌의 형태를 한 아이템을 얻었다면, 정규는 반지를 얻었다.

“이게 뭔지 확인은 해 봐야겠네요.”

“나도 그것 때문에.”

윤재는 그렇게 말하며 팔에 찬 ‘자하르의 족쇄’를 보며 생각했다.

‘감정.’

[218 자하르의 족쇄]

등급 : B-(성장)

# 군주 자하르가 자신의 혼을 쪼개어 만든 족쇄. 사용자의 마력을 갉아먹고 더 큰 힘을 부여한다.

# 족쇄에 많은 마력을 주입할수록 족쇄의 힘이 점차 성장한다.

# 소모한 마력에 따라 모든 무기와 방어구에 추가 공격력(절삭력)과 저항력 상승.

# 소모한 마력에 따른 저항력 무시.

# 마력 소모율 20% 감소.

‘미친, 이게 뭐야?’

감정을 마친 윤재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괜찮을 아이템이라고는 예상했다.

하지만 그 ‘정도’라는 게 있지 않은가.

자하르의 족쇄는 고작 튜토리얼에서 나왔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의 물건이었다.

소모한 마력에 따른 절삭력의 증가와 물리, 마법 저항력의 증가.

또한 상대 저항의 무시.

무엇보다 마력 소모율의 감소는 지금껏 윤재가 늘 바라 마지않던 옵션이었다.

자하르의 족쇄를 사용할 때만이 아니더라도 여러 스킬에 활용할 수 있는 옵션이었으니.

무엇보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마력을 주입하면 지속적으로 성장한다고?’

마력 소모율의 감소라는 옵션이 마냥 기쁠 수만은 없었다.

‘그야말로 마력 잡아먹는 귀신이군.’

당장 그저 차고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스킬처럼 마력을 주입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 더군다나 그저 차고만 있을 때도 마력을 끊임없이 주입해야 성장이 가능하다.

‘성장시킬 수 있다면, 이거보다 더 좋아지는 건가?’

기대되었다.

이것보다 더 좋아질 수 있다면, 과연 어디까지 성장하게 될지.

확실한 건 한번 쓰고 버릴 만한 아이템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규에게 사용한 엘릭서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자하르의 족쇄는 훌륭했다.

“표정이 왜 그래요?”

그때 옆에서 윤재의 얼굴을 살피던 정규가 물었다.

그러자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던 윤재는 곧 표정을 수습하고는 물었다.

“내가 왜?”

“대박이라도 나왔어요?”

“……그냥, 좀 괜찮은 거.”

윤재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손을 내렸다.

한가로이 새로 얻은 아이템을 감상하는 시간은 끝났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