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ve

34.00.

성 밖은 황량했다.

시커먼 땅은 풀 한 포기 살지 않았고, 멀리 보이는 숲은 메말라 죽어 있었다.

해가 뜬 맑은 하늘과 땅이 너무나 대비되었다.

퍼석-

발길이 닿은 나무 한쪽이 으스러져 바닥에 쓰러졌다.

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나왔지만, 보이는 건 처참하기 그지없는 죽은 땅뿐이었다.

‘망자들 때문인가?’

윤재는 주위를 둘러봤다.

성 밖으로 나가겠다고 했을 때 맥스는 만류했다.

밖은 위험하다고.

언제 다시 망자들이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고.

놈들은 하늘이 어두워지고 해가 사라지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그럼에도 윤재는 성 밖으로 나왔다.

가만히 성안에 앉아 있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진짜 아무것도 없군.’

망자들이 나타나는 원인.

윤재는 그것을 찾고 싶었다.

그 원인만 알 수 있다면 망자들로부터 성을 완벽하게 지켜 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수풀은 물론 나무도 죽었다.’

윤재는 몸을 숙여 수분과 생명력이 모두 빨려 나간 수풀을 손으로 매만졌다.

그리고 망자의 손에 붙들렸던 어깨를 힐끔 돌아봤다.

‘그때 그건…….’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힘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존재의 생명력을 빼앗는 것이라면 철로 만들어진 성문이 부식되어 무너질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부식시키는 힘에 가까운 건가?’

망자들의 힘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대충 알겠다.

문제는 그들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왜, 슬롯 성을 비롯해 살아 있는 사람들을 노리는가 하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럴 리가 없지.”

이곳은 튜토리얼의 한 단계.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어째서 이곳이 자신의 튜토리얼 공간으로 정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필시 망자들이 나타나게 된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알기 위해선 일단 망자들이 나타나는 걸 봐야 하나?”

슬롯 성을 지켜라.

간단하기 이를 데 없는 내용이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우선 지키라는 범위가 너무 포괄적이었다.

무엇으로부터?

언제까지?

무엇보다 ‘지켜라’의 명확한 범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성이 지켜진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설명이 없는 것이다.

적어도 열흘 뒤, 지원이 도착한다고 해서 슬롯 성을 지킨 것은 아닐 것이다.

고작 그 정도라면 이번 튜토리얼이 S등급으로 설정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미로를 걷는 게 낫겠군.”

그때는 적어도 이렇게 머리 아플 일은 없었다.

윤재는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망자들이 출몰한다는 숲.

이곳이라면 망자들이 나타나는 원인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위험하긴 하겠지만, 그 위험부담을 안지 않고서는 이번 튜토리얼은 통과할 수 없었다.

윤재는 한숨을 푹 내쉬며 숲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망자들이 다시 나타난 건 해가 지기 전의 초저녁 무렵이었다.

* * *

쿠르르르-

슬롯 성 위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갑작스럽게 날씨가 달라졌다.

먹구름 아래로는 번개가 내리치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좋지 않군.”

맥스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벌써 해가 거의 다 가려졌다.

날씨가 날씨인 만큼 망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날 것이다.

날이 개지 않으면, 하루 온종일 나타나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자는 어디로 간 거지?’

맥스는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는 윤재를 떠올렸다.

잠깐 성 밖을 확인해 보겠다며 나간 윤재는 곧장 황량하게 변한 숲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역시…… 도망친 건가?’

맥스는 윤재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알고 있는 건 그가 다른 병사들과는 다른,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윤재는 일당백, 아니 그 이상의 몫을 해내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상대는 인간이 아니었다.

망자들의 수는 끝이 없고, 무엇보다 윤재는 슬롯 성의 병사가 아니었다.

‘뭘 기대한 건지.’

자신들은 이미 한 번 윤재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가 아니었다면 동쪽 성문은 뚫리고 망자들이 성안으로 들이닥쳤을 터.

그랬다면 전날 밤 많은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다.

이미 한 번 은혜를 입었는데, 더 도움을 바란 것부터가 욕심이었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몫이다.’

윤재의 도움을 바라선 안 된다.

맥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성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

“오, 옵니다!”

“망자, 망자들입니다!”

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숲.

그곳에서 수많은 망자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수가 눈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언제 봐도 징글징글하군.”

벌써 몇 번째 보는 녀석들이지만, 볼 때마다 느껴지는 음습함은 영 적응이 되질 않았다.

툭-

투둑, 투두두둑-

곧이어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한 비가 거세졌다.

굵은 빗방울이 예사롭지 않았다.

맥스는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망자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꽤 쏟아지겠어.”

쉽게 그칠 비가 아닌 듯했다.

망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다.

‘열흘은커녕 닷새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

끊임없이 나타나 죽어도 계속해서 살아나는 망자들과는 달리, 병사들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부식된 성문은 더 이상 내구도가 남아 있질 않았다.

과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여기가 고비겠구나.”

맥스는 담담한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곧이어 소리쳤다.

“1조부터 3조는 동쪽 문을 사수한다! 4조와 5조는 남쪽을 맡되, 5조는 동쪽 성문의 지원에 대비하도록! 서쪽 문은…….”

맥스는 분주히 명령을 내렸다.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 역시 알고 있었다.

날씨로 탓에 망자들의 출몰 시간이 제법 길어지리라는 것을.

이번 싸움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반경 일 리 안으로 놈들이 진입했습니다!”

“궁수들은 화살을 장전하라! 놈들이 더 가까이 접근하면…….”

“저, 저기 보십시오!”

그때 성 가장 높은 곳에서 망자들의 동태를 살피던 병사가 소리쳤다.

병사들 가운데서 명령을 내리던 맥스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

“누군가 망자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뭐, 뭐?”

병사의 대답에 맥스는 화들짝 놀라 성벽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성 아래, 저 멀리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저자는…….”

몰려오던 망자들 가운데서 싸우고 있는 한 사람.

윤재를 발견했다.